032. 뜻밖의 만남들 ― 1
* * *
특수스킬 조합 엘레멘탈버스터!!
쩌저저정!
꽈과과과과광!
땅 바닥에 꽂힌 두 자루의 검으로부터 시작된 균열은 동굴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앞에 존재하던 몬스터들을 모두 집어 삼켜버렸다.
스으으으으~
어려운 전투였지만 결국 승리는 내 것이 되었다.
띠링, 검은 바위 동굴의 마지막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띠링, 최초의 검은 바위 동굴의 정복자 타이틀을 획득하였습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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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 내 귀에 드디어 임무가 끝났음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렸다.
힘든 전투였다. 지금까지 던전에서 겪었던 모든 전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엄청난 혈투였다.
검은 바위 동굴의 마지막은 던전 보스가 아닌 무지막지한 숫자의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던전 보스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특히 파티가 아닌 솔로플레이를 하는 나에겐 끝이 나지 않는 몬스터들의 돌격을 계속해서 막아낸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려 한 시간에 걸친 혈투.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처리했는지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싸우고 또 싸우고…… 중간중간 시간을 벌며 마나회복 물약을 마시고 또 싸우고…… 정말 징그럽게 싸웠다.
“이제 전리품만 챙기면 되나?”
전리품은 몬스터들이 무지막지하게 튀어나오던 몇 개의 구멍들 앞에 놓여 있는 상자였다.
동굴 끝에 존재하는 이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 가지 임무와 함께 이 상자가 등장한다.
그 임무는 앞에서 설명한 무지막지한 숫자의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
나는 그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상자를 열 권리를 획득했다.
“그동안 이어져 온 불운을 이 상자에서 끝내자.”
이제 이 상자에서 전리품을 얻으면 이 동굴과도 이별이었다. 그렇기에 이 상자에서만큼은 좋은 아이템을 얻고 싶었다.
끼익.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호오!”
그것은 두 자루의 권총이었다.
원래 총기류 아이템은 매우 희귀했다. 물론 나중에는 총기류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유저들이 질 좋은 양산형 총기들을 앞다투어 팔겠지만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얻을 수 있는 총기류 아이템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스킬발동 감정!
난 재빨리 감정스킬을 이용해 그 권총들의 정확한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명사수의 트윈 건[유니크(Unique) 세트(Set)22]<총기류>
: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사용하던 두 자루의 권총. 한눈에 봐도 매우 귀중한 물건처럼 보인다.
능력: 내구도[500/500] 공격력[40] 힘[20] 민첩[30]
세트효과: [22] 마력으로 탄환을 만들어 낸다.
특이사항 : 자동장전마법 걸려 있어 따로 장전을 해 줄 필요가 없다. 또한 정확도와 위력이 증가되는 마법이 걸려 있다.
“좋아!”
정말 제대로 된 아이템을 구했다.
사실 그동안 총기류 아이템을 구하지 못해 총기관련 스킬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좋은 물건을 구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총기는 활과 비슷한 원거리 무기였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무기는 서로 장단점이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활과 총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다.
각각의 장단점은 달랐지만 비슷한 원거리 계열의 무기였기에 사람들은 두 개를 모두 사용하길 꺼렸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분명 자세하게 파고들면 총기와 활의 활용법은 무척 달랐기에 난 같은 원거리 무기라고 해도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 ‘트윈 건’은 큰 행운이었다.
사냥으로는 세트 레어아이템도 구하지 못했던 나에게 세트 유니크라니…… 정말 복불복이 맞는 것 같았다.
“공격력도 상당하고…… 거기에 세트효과가 마력탄(魔力彈) 생성이라…… 훌륭하군.”
마력탄을 만든다는 건 따로 탄알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이것은 가방의 여유가 없는 나에겐 최고의 옵션 중 하나였다. 그뿐인가? 마력탄은 일반 탄에 비해 약간의 추가 데미지와 정확도 보정이 있었다.
당연히 좋은 것이었다.
이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레벨 400 정도까지 써도 될 정도였다.
“이제야 안 풀리던 내 아이템 운이 풀렸네.”
사실 이 정도의 아이템을 주려고 그동안 그렇게 운이 없었던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철컥.
“장비설정 6번 등록.”
난 장비 6번에 등록되어있던 장창의 등록을 취소하고 이 두 자루의 권총을 등록했다.
장창은 일단 가방 한구석에 넣어놓았다. 장비설정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등록할 생각이었다.
스르륵.
트윈 건을 아공간에 넣었다.
이로써 이 동굴에서의 사냥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현재 내 레벨은 125.
상위그룹 중 많은 인원이 전직퀘스트에서 헤매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더 속력을 내면 그들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일단 메인퀘스트에 관련된 것들을 좀 조사하고…… 곧장 동부해안 쪽으로 넘어가야겠군.”
대충의 계획을 잡은 나는 나머지 잡동사니 아이템들을 정리해서 챙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동 밖의 몬스터들은 이미 리스폰되어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또 한바탕 전투를 치르며 뚫고 나가야 했다.
“자, 가자~!”
시약과 물약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크랄산맥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우타와까지 가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탁.
또 한바탕 전투를 펼칠 각오로 출구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별 반응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공동에서 마지막 임무를 해결할 동안 다시 리스폰 되었을 몬스터들이 달려들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꽝!
꽈광!
몬스터들은 없었지만 대신 불규칙한 폭발음이 동굴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유저?”
다크우드 때와 비슷하게 유저들이 던전에 들어왔다. 물론 그때와는 다른 게 내가 이미 던전을 완전히 클리어한 후였지만 어쨌든 이렇게 갑자기 던전에서 다른 유저들과 조우할 줄은 몰랐다.
“이것 참…… 타이밍은 정말 기가 막히네.”
어떤 이들인지는 모르지만 조금만 더 일찍 나타났어도 내가 곤란할 뻔했다.
원래 던전에서 다른 유저들과 조우하는 건 그리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특히 이런 좁은 던전에서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 던전에서의 볼일을 모두 끝낸 후였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단지 조금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이 비밀스러운 던전을 찾아낸 걸까?
퍼스트헌터 이나와 같은 관찰력을 지닌 이가 또 있다는 건가? 이번에도 역시 미래가 바뀐 건가?
난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재빨리 앞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 던전에 들어온 유저들이 누구인지 확인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나는 금방 몬스터 떼와 싸우고 있는 유저들…… 아니 유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파티가 아니었다.
몬스터 떼를 상대하는 건 한 명의 유저였다. 그것도 내가 정확히 정체를 알고 있는 이였다.
‘퍼스트헌터 이나!’
미래는 바뀌지 않았다. 단지 이나가 이 던전을 찾은 시기가 내가 대략 알고 있던 시기보다 빨랐을 뿐이었다.
“헥헥, 거기 안쪽의 유저 님~ 좀 도와주세요!”
이나는 넉살 좋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외쳤다. 내가 봤을 때는 충분히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쨌든 도와주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난 가볍게 광역마법을 활성화시키며 이나를 바라보았다.
‘이나라…… 친해져서 나쁠 건 없는 유저.’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유명 플레이어의 정보를 분석해 친해져도 괜찮은 플레이어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플레이어를 구분해두었다.
이나는 그중 전자에 속했다.
“반갑습니다. 이나라고 합니다!”
밝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이나는 굳이 자신의 본명을 숨기지 않았다.
“……가명을 사용하지 않으시네요?”
나는 약간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나를 향해 물었다. 대부분의 랭커들은 가명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얽히는 걸 꺼리는 그들이라 본명 사용을 극도로 자제했었다.
“하하, 제 멋진 이름을 놔두고 칙칙한 가명을 사용할 수는 없죠. 제 생활신조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자 입니다.”
전 생애에서는 이나와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저 소문으로만 이나에 대해 들었을 뿐 제대로 마주친 적도 거의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나는 매우 신비스럽고 통쾌한 남자였다. 실제로 유명 길드들의 많은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관철하며 오히려 그들을 골탕 먹이기까지 한 이나였다.
이미 기본적으로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단 몇 마디의 대화가 오고 갔을 뿐이지만 이미 난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그렇군요. 전 신이라고 합니다.”
상대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데 내가 쪼잔하게 가명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오! 신? 세컨드 네임도 없으신 거 같은데…… 대단한 이름이네요!”
이나는 내 이름이 무척 신기한 눈치였다. 하긴 신이라는 이름이 좀 희귀한 건 사실이었다.
“그저 운이 좋아 클로즈베타 서비스에서 선점할 수 있었습니다.”
“캬아~ 클베도 하셨네요? 역시 이 비밀스러운 동굴을 나보다 먼저 발견하신 이유가 있었군요.”
이나는 자신이 첫 번째를 놓쳤음에도 전혀 아쉬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발견한 것을 축하해주는 모습이었다.
“재수가 좋았습니다.”
“하하, 재수야말로 가장 큰 능력이죠! 제가 세상에서 가장 믿는 말이 바로 운칠기삼(運七技三)입니다. 이 말처럼 운 좋은 사람이 최고입니다!”
이나는 생각보다 무척 쾌활한 이였다. 왠지 같이 있으면 즐거워지는…… 그런 느낌의 유저였다.
“그런가요? 그럼 제가 이나 님보다 운이 좀 좋았다고 치면 되겠네요.”
“네! 맞습니다. 하하하.”
퍼스트헌터 이나와의 뜻밖의 만남.
그것은 처음 만났던 알 빼먹기 팀의 그놈들과는 정반대되는 즐거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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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오나 사막이라면 여기서 꽤 먼데…… 이제 그만 가야죠. 그리고 누차 말했지만 히오나 사막의 유사(流砂)지역이야 말로 탐사 가치가 아주 높은 곳이니까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나는 이나와 상당히 친해졌다.
친해져도 좋은 유저라고 해서 일부러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게임 속에서 동료나 친구를 만드는 것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나였기에 그냥 가볍게 대화를 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이나가 나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굳이 우타와까지 나와 동행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특히 탐험이나 모험에 관심이 많던 이나는 내가 간간이 흘려주는 정보들을 들으며 크게 즐거워했었다.
흘리는 정보들이라고 해봤자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한 소소한 것들이었는데 그래도 이나는 내가 자신과 같은 취향의 유저라면서 무척 좋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