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31화 (31/250)

031. 검은 바위산 ― 2

* * *

스킬 정령빙의(精靈憑依) 실프(Silf)!

스으으.

내 두 다리에 바람의 하급정령 실프가 빙의되었다. 정령빙의 스킬은 대표적인 정령 활용 스킬이었다.

정령의 힘을 육체적인 힘으로 바꿔 주는 스킬, 정령계열의 기술을 이용해 이름을 좀 날렸다는 이들은 모두 이 스킬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파팟!

나는 가볍게 뒤로 물러나며 검을 뻗었다.

스킬조합 정령빙의 운디네 + 검기난무(劍氣亂舞).

검기우(劍氣雨)!

촤아악!

소나기라도 내리는 것처럼 수많은 물방울이 앞으로 쏟아졌다. 물론 이 물방울들은 모두 하나하나가 작은 검기였다.

퍼퍼퍼퍼퍽!

워낙 많은 숫자의 박쥐 떼라 이 공격은 모두 적중했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박쥐 떼가 이 정도의 공격으로 쓰러질 리는 절대 없었다. 이건 말 그대로 초반 견제 공격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장비 취소!”

스팟!

두 자루의 검을 아공간으로 날려 보낸 난 재빨리 무한의 가방에 손을 넣었다.

‘검은 진주, 거미줄, 뼛가루, 숯가루’

스킬 중급흑마법소환술 다크핸드필드(Dark Hand Field)!

치이이익!

시약을 뿌리며 정신을 집중해 중급 흑마법 소환술을 완성시켰다. 다크핸드필드! 흑마법에 몇 개 없는 광역 홀드(Hold)기술이었다.

물론 목표물을 붙잡는 능력은 강력했지만 공격력 자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공격력보다 붙잡는 능력이었다.

스스슥!

검은색으로 물든 바닥에서 마구잡이로 검은 손이 튀어나오며 박쥐들을 허공에 잡아 두었다.

다크핸드필드로 시간을 번 나는 활성화시키는 시간이 조금 긴 주문을 준비했다.

‘검은 진주, 뼛가루, 뼛조각, 마정석가루’

스킬 크리에이트스켈레톤필드(Create Skeleton Field)!!

광역 해골병사 소환 기술은 흑마법소환술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실제로 유명했던 네크로맨서 계열 유저들은 모두 이 기술을 아주 잘 활용했었다.

츠츠츠!

드드드득!

땅 속에서 일어나는 해골병사들…… 그 숫자는 정확히 열이었다.

아직 내 숙련도가 많이 부족해 10기의 해골병사만 소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10기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소환기술은 동급의 기술들보다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괜히 수많은 유저가 고레벨의 소환계열 유저들을 최고로 두려운 직업 중 하나로 뽑은 게 아니었다.

[공격하라!]

해골병사들에게 간단한 명령을 전달했다.

스킬숙련도가 올라가면 아주 자세하고 복잡한 명령도 내릴 수 있었지만 아직 내 숙련도는 이 정도의 명령을 내릴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좀 추워 보이는 해골병사들은 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다크핸드필드에서 벗어나려는 박쥐 떼를 향해 돌진했다.

이로써 시간은 충분하게 벌었다.

이제 진짜 마무리 기술만 날리면 끝을 낼 수 있었다.

마무리 기술은 요즘 새롭게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특수스킬 조합으로 결정했다.

사실 내가 사용하는 스킬조합 중 거의 70% 정도는 전 생애에서 아주 유명한 유저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특히 게임이 서비스 된지 8년 정도 됐을 때. 정확히는 내가 시간을 거스르기 불과 이 주 정도 전에 한 유명한 게임방송 업체가 엄청난 액수의 돈을 이용해 ‘One’에서 좀 유명하다고 소문난 모든 플레이어들의 특별 인터뷰를 성공했었다.

그 인터뷰가 그냥 인터뷰가 아닌 특별 인터뷰가 된 까닭은 그 방송에 출연한 유명 플레이어들이 자신들만의 특별한 스킬조합 연계기술 또는 자신만 알고 있던 비밀 같은 많은 게임 노하우를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술집에서 그렇게 술을 먹었던 게 그 방송을 보았기 때문일지 몰랐다.

솔직히 이 부분은 이상하게 기억이 희미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기억을 뒤섞어 놓은 느낌이었다.

왜 내가 술을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마셨는지…… 사실 술을 언제 먹었는지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른 건 정말 생생히 기억나는데 왜 이것만 이런 건지 나도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기억이 이 모양이니 해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그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해 봤을 때 이 방송이 그 원인이 됐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그 정도로 파격적이고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수많은 비밀이 폭로되었다.

물론 그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시기라 비밀이 가진 위력이 엄청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대부분의 유명 플레이어들이 가장 중요한 비밀들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인터뷰의 파급효과는 그저 역시 유명 플레이어들은 왜 일반 유저들과 다른 것인지를 보여주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분명 그들의 비밀은 대단했던 것들이었다.

특히 게임초반에 그 비밀들을 알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그 위력은 엄청난 것을 넘어서 위대한 것도 될 수 있었다.

난 그 비밀들을 전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비밀들이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새겨지는 순간 시간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비밀들을 전부 알고 있는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만의 스킬조합을 만드는 것도 절대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숫자의 스킬조합이나 연계기술을 알고 있다 보니 더 특별하고 대단한 스킬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초반에 자주 사용한 마무리 기술이었던 스킬조합 괴력충전에 이어지는 연계기술 연환오행검도 이런 노력 속에서 건진 나만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유명 플레이어들의 비밀 중에는 아직도 내가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분석해 만들어내야 하는 나만의 기술들도 아직 더 연구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스킬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강해지는 길이었다.

각설하고, 내가 앞서 말한 특수스킬 조합은 정령계열의 기술이었다.

모든 정령검사의 우상이자 수많은 여성 유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어느 한 세력에 묶이지 않고 늘 ‘One’의 세계를 떠돌던 방랑자 중 한 명. 일명 ‘W4(Wind Four)’라 불렸던 대륙에 부는 네 개의 바람 중 하나였던 그.

‘풍류검사(風流劍士) 란슬롯.’

내가 사용할 스킬은 그 유명한 바람의 정령검사 란슬롯이 사용했던 특수스킬 조합이었다.

그것은 그의 주력기술 중 하나이자 정령검술의 오의(奧義) 중 하나였다. 상당한 난이도를 지닌 스킬조합…… 하지만 난 각고의 노력 끝에 그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장비 1번.”

챙!

난 두 자루의 검을 뽑아 들고 호흡을 천천히 정리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스킬의 난이도는 무척 높았다. 그렇기에 나도 매우 어렵게 성공시키는 스킬이었다. 덕분에 활성화시키기까지 충분히 시간을 끌어줄 필요가 있었다.

스킬조합 정령빙의 셀리맨더(Salamander) + 정령빙의 운디네.

치이익!

두 자루의 검에 각각 서로 상극인 정령들이 빙의되었다.

연계발동, 스킬조합 정령빙의 노움(Gnome) + 정령빙의 실프

이번에는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는 양손에 각각 다른 정령들이 자리 잡았다.

4대 원소 정령이라 불리는 정령 중 가장 대표적인 네 정령이 모두 내 몸에 빙의되었다.

이제 남은 건 이 네 정령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네 정령과의 교감 수치를 한계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불과 물, 그리고 땅과 바람!’

난 마음속으로 네 개의 이미지를 그리며 천천히 검을 뒤집어 잡았다.

교감 수치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때 분심공은 더욱 나를 도와주었다. 분심공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어쨌든 나는 생각보다 쉽게 네 정령과의 교감 수치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교감 수치란 것은 어딘가에 숫자로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정령계열 기술, 아니 소환계열 기술을 익힌 이들이라면 모두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치솟는 네 개의 교감 수치.

그러던 어느 순간…… 난 드디어 발동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었다.

‘지금!’

퍼퍼퍽!

두 자루의 검을 땅에 꽂으며 내 몸에 빙의되어 있던 네 정령의 기운을 하나로 합쳤다.

특수스킬조합 엘레멘탈버스터(Elemental Buster)!!!!

쩌저저저정!

꽈과과과과과광!

엘레멘탈버스터의 위력은 대단했다.

준비하는 시간이 긴 만큼…… 그리고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한 만큼 그 위력은 상당했다.

특히나 지존신공을 바탕으로 펼쳐진 것이라 한층 더 강력했다.

합일(合一)된 네 정령의 기운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동굴을 쓸어버렸다.

박쥐 떼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해골병사 여섯을 제외하고 내 앞에 살아서 움직이는 건 하나도 없었다.

란슬롯이 괜히 자신 있게 자신의 비기(秘技)이자 정령검술의 오의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띠링, 흡혈박쥐들을…….

전투 중에 보류되어 있던 각종 시스템 메시지가 한꺼번에 울려 퍼지며 시끄러워졌지만 난 가뿐히 그 소리를 무시하고 몇 번의 몰이사냥으로 수북이 쌓인 각종 아이템들을 수거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또다시 몬스터 떼가 다시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아이템을 수거할 필요가 있었다.

난 아주 빠른 몸놀림으로 아이템을 전부 수거했다. 보통 유저들은 아이템 수거야말로 사냥의 보람을 가장 많이 느끼는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내 앞에 쌓여 있는 것들은 별로 쓸모가 없는 매직급의 아이템들과 잡동사니 아이템들이었다.

이상하게, 정말 지독하게도 아이템 운이 없었다.

다크우드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은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사냥을 했는데 아직도 제대로 된 ‘득템(상당히 좋은 아이템을 얻는다는 의미의 말.)’을 하지 못했다.

아직 레벨이 낮으니 유니크까지는 별로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세트 레어 아이템 정도는 구했어야 정상이었다.

‘One’의 아이템 체계는 일반(노말) - 마법(매직)- 희귀(레어) - 진귀(유니크) - 정예(엘리트) - 유물(레전드) - 신(갓)으로 구분되었는데 레벨이 낮을 때는 높은 등급의 아이템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사실 아이템에 특별한 레벨 제한 같은 것이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레벨이 낮을 때 구할 수 있는 아이템들은 레벨이 높을 때 구하는 아이템들보다 수준이 떨어졌다.

즉, 유니크 아이템이라고 해도 그것이 100레벨대에서 구한 아이템이라면 200레벨대에서 구한 매직급의 아이템보다 안 좋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이런 것들도 레벨이 대략 700을 넘어가면 거의 사라졌다.

그때 이후부터는 거의 같은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대신…… 유니크나 엘리트 아이템을 구하는 건 정말 쉽지 않게 된다.

어쨌든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내 아이템 운은 지독히도 없었다.

지금 내 레벨은 117이다.

이 정도 레벨이라면 정상적으로 사냥을 했을 때 적어도 세트 레어 아이템 몇 개 정도는 구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난 기껏해야 별로 좋지 않은 유니크 신발 하나와 정말 볼품없는 평범한 레어 아이템 몇 개를 얻은 게 전부였다.

스킬에 관련된 것들은 정말 많은 운이 따르는 나였지만 유독 아이템 쪽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쳇, 언젠간 터지겠지.”

하지만 낙심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런 건 복불복(福不福)이었다. 지금 이렇게 재수가 없는 대신 나중에 한 번에 복이 왕창 찾아올 가능성도 분명 있었다.

“어차피 일단은 레벨! 스킬! 이 두 가지가 더 중요하니까.”

다크우드에서도 그랬지만 결국 여기서도 중요한 건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였다.

특히 실수를 깨닫고 더욱 완성형에 가까운 스킬 조합을 만들어 가고 있던 나였기에 아이템에 대한 욕심은 크게 생기지 않았다.

“앞으로 일주일…… 이 동굴의 마지막 일주일은 더욱 화려하게 불태워보자!”

일주일은 보너스 효과가 남은 시간이었다.

아직은 멀기만 한 상위그룹과의 차이. 하지만 분명한 건 빠른 속도로 그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