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검은 바위산 ― 1
* * *
“적토마(赤免馬) 지배해제.”
히이이잉!
스으으으으~
가벼운 휘파람 소리로 내가 타고 온 붉은색 말의 지배를 해제하자 그것은 마치 허공에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내 테이밍 스킬의 기본은 이 휘파람 소리였다. 다른 이들에겐 다 똑같은 휘파람 소리겠지만 이것으로 약간씩 다르게 수십 가지의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꼭 휘파람 소리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어떤 소리로 할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소리가 이것이었다.
물론 이건 스킬이었다. 기초적인 테이밍 스킬.
이 적토마는 내가 직접 테이밍(길들이기)한 말이었기에 내 테이밍 스킬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테이밍 스킬을 익히지 못한 이들은 겨우 마을에서 대여해주는 사용 시간제한이 있는 탈것을 사용하겠지만 난 테이밍 스킬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사용할 말을 직접 길들였다.
테이밍은 소환술과는 또 다른 능력이었다.
소환술은 이계에 존재하는 소환수와 어떤 매개체를 통해 계약을 맺은 후 그 뒤로 소환과 역소환을 통해 그것을 부리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테이밍은 현세에 존재하는 생물들과 계약을 맺고 그 생물의 도움을 받는 스킬이었다.
물론 테이밍이 되는 생물도 있고 안 되는 생물도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숫자의 생물들을 테이밍 할 수 있었다.
방금 적토마 같은 경우는 경매장에 나온 ‘혼백봉인서(魂魄封印書)’를사서 그것을 이용해 내가 직접 테이밍 한 것이었다.
혼백봉인서는 몬스터나 동물들을 봉인한 특수한 마법주문서였다.
일정 조건을 갖추고 특수한 스킬을 익힌 이들은 혼백을 저장할 수 있는데…… 그건 봉인계열 직업들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었다.
직업에 관한 건 워낙 복잡하니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고…… 어쨌든 이 혼백봉인서는 이렇게 다른 유저가 테이밍을 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혼백봉인서라는 게 원래 좀 비싼 물건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제일 좋은 건 직접 길들이고 싶은 몬스터나 동물을 찾아서 테이밍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게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혼백봉인서라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혼백봉인서를 이용하면 아직 제대로 올리지 못한 내 낮은 테이밍 숙련도로도 A급 길들이기 대상에 속하는 적토마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 망설임 없이 거금을 주고 혼백봉인서를 구입했다.
덕분에 이번에 준비하며 이래저래 돈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전에 구입해 두었던 저택 중 한 채를 팔아버렸다.
급히 파느라고 완벽히 제 가격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시세가 워낙 많이 올라 처음 구입했을 때보단 훨씬 비싸게 팔아 이득을 봤다.
저택을 처리한 돈으로 적토마도 구하고 각종 장비들도 괜찮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진짜 좋은 장비들은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게 현실이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돈이 물처럼 새네~”
수입은 적었고 지출은 많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구조였지만 덕분에 내가 열심히(?) 모아 놓았던 돈은 계속 술술 새어나가고 있었다.
아깝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쓰려고 모았던 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펑펑 쓰는 건 좋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적당한 계획을 가지고 사용해야 했다.
“휴~ 그나마 적토마를 타고 와서 빨리 도착할 수 있었네.”
난 단 일주일(게임시간) 만에 검은 바위산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좀 돈이 들어도 큰 마을마다 연결되어있는 워프게이트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워프게이트는 내가 한 번이라도 방문했던 지역으로만 이동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킹(Marking)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킹, 즉…… 워프게이트에 내 이름을 등록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지역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 이게 워프게이트의 기본 원칙이었다.
그렇기에 난 비싼 돈을 주고 적토마를 구해 빨리 달려온 것이었다.
어차피 적토마는 전부터 테이밍 해두려고 생각했던 것이라 경매장에 적토마 혼백봉인서가 올라오자마자 바로 즉시구매를 해버렸다.
이렇게 필요한 건 과감히 사버리는 게 좋았다. 괜히 좀 싸게 산다고 경매장에 집중하다가는 시간만 뺏기고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경매장 쇼핑에서 건진 건 이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엄청 좋은 건 아니었지만 분명 당분간을 쓸 만한 물건…… 바로 트윈문 소드라고 불리는 한 쌍의 장검이었다.
흰색의 화이트문(White Moon) 블레이드와 검은색의 다크문(Dark Moon) 블레이드.
세트 레어아이템인 이 두 검은 좋은 무기였다.
그렇기에 그렇게 비싼 가격임에도 잽싸게 사버린 것이었다.
내가 현재 가장 능숙하게 사용하는 무기가 이 두 자루의 쌍검인 것을 감안하면 전혀 손해 볼 것 없는 투자였다.
특히 세트효과가 공격 성공 시 20% 확률로 달빛이 그림자를 붙잡아 [스네어(Snare)효과: 목표물의 이동속도를 줄여주는 모든 효과]를 주는 것이라 매우 마음이 들었다.
이 스네어 효과 옵션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는 그저 그런 옵션이었지만 플레이어와 싸울 때는 최고의 옵션으로 평가되는 것 중 하나였다.
앞으로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좋은 사냥터는 PvP가 가능한 지역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PvP는 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못 피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 손해를 봐야 했다.
그렇게 양보하고 손해를 보면 절대 상위권과의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또한 PvP의 보상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킬 포인트가 높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던전도 있었고 몇몇의 특수한 아이템들은 킬 포인트가 일정 수준 이상 되지 못하면 아예 착용할 수가 없었다.
킬 포인트와 연관이 있는 시스템은 그밖에도 많았다.
결국 PvP를 포기하고 평화로운 게임 생활을 선택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ONE’을 반쪽만 즐기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렇게 반쪽만으로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여유롭게 게임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좀 많이 하드코어하게 즐기는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PvP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컨텐츠 중 하나였다.
아마도 내가 구한 이 트윈문 소드는 그 PvP에서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각설하고, 모든 준비를 끝내고 검은 바위산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나는 일단 내가 미리 생각해 두었던 그 던전을 찾아야 했다.
검은 바위산은 몬스터들도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몬스터들도 획득 경험치나 드랍아이템 면에서 최악의 몬스터라고 소문났던 검은 바위괴물들이었다. 그래서 검은 바위산은 유저들이 거의 최악의 사냥터라고 부를 정도로 인기가 무척 없는 사냥터였다.
그렇기에 유저들이 잘 오지 않았을 것은 분명했고 그렇다면 그 던전도 분명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그곳은 던전이라고 부르기도 좀 민망한 곳이었다.
달랑 한 층으로 이루어진 그곳은 다른 던전에 비해 그 규모가 정말 작았다.
2Km 정도의 긴 동굴, 그리고 그 동굴이 끝나는 곳에 존재하는 약간 큰 공동(空洞).
그 공동에 던전 보스(?)가 있었다.
정말 단순한 구조의 던전이었다. 구조는 단순했지만 들어가는 입구는 매우 복잡했다.
검은 바위들이 중구난방 멋대로 솟아 있는 이 산 중턱에 그 입구가 있었는데…… 이걸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퍼스트헌터 이나였다.
원래 이 던전의 이름은 ‘검은 바위산 동굴’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었는데 이나는 이 동굴의 이름을 ‘끝없는 물결의 동굴(Endless Wave Cave)’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물론 그런다고 진짜 던전의 이름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유저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름은 바뀔 수 있었다.
특히나 이 동굴 같은 경우는 이나가 붙여 준 그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내가 이 던전을 찾아온 이유도 그 이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던전은 특이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어 던전 보스마저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물량 공세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던전의 평균레벨은 70~100.
대략 그 사이의 레벨을 지닌 몬스터들이 무조건 떼로 나타났다.
흡혈박쥐 떼, 자이언트마우스 떼, 케이브고스트 떼 등등.
이 동굴의 몬스터들은 무조건 무리를 지어서 유저를 공격했다.
그래서 사실 이 동굴의 난이도는 그 레벨에 비해 높았다.
아무나 쉽게 공략할 수 없는 던전. 하지만 나에겐 최고의 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퍼스트헌터 이나라면 지금쯤 바람의 평원에 있을 거야. 그가 그곳에서 바람의 호수 미궁을 발견한 건 유명한 일이니까…….”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나가 이 지역에 오려면 아직 좀 시간이 더 있어야 했다. 이나는 초반에 특이하게 상위 랭커들과 함께 레벨을 올리며 치고 나가다 갑자기 레벨이 낮은 지역으로 돌아와 저레벨 지역에 숨겨져 있던 많은 비밀을 발견했었다.
아마 이나가 퍼스트헌터라는 명성을 본격적으로 떨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으로 기억한다.
즉, 아직 ‘끝없는 물결의 동굴’은 미발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였다.
“이나 녀석이 찾아오기 전에 깔끔하게 털어먹고 퀘스트를 하러 간다.”
내 계획은 단순했다.
우선순위에서 혹시 뺏길 위험성이 있는 던전이 먼저였기 때문에 일단 검은 바위산부터 공략해야 했다.
“자~ 찾아보자!”
이 던전은 다크우드 때보다는 찾는 게 좀 더 힘들었다.
다크우드는 아무리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고 해도 내가 워낙 잘 아는 곳이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던전은 소문으로만 듣고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었다.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략적이라고 해봤자 대충 범위로 따지면 반경 7km는 되는 지역이었다.
방법은? 열심히 찾고 또 찾는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하루를 꼬박 고생해서 찾은 ‘검은 바위산 동굴’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왜 이곳을 ‘끝없는 물결의 동굴’이라고 부르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거대한 쥐들이었다.
자이언트마우스라고 불리는 이것들은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었다.
혹시 쥐나 박쥐에 거부 반응이 좀 있는 이들이라면 이곳에서 사냥하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바글바글한 몬스터들…… 어떤 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이겠지만 나에겐 아주 좋은 사냥감들일 뿐이었다.
내가 이 던전을 선택한 이유도 모두 이 끊임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들 때문이었다.
진정한 광렙(아주 오래전부터 게임유저들 사이에 내려오는 미친 듯이 레벨을 올린다는 뜻을 지닌 말.)을 할 수 있는 곳.
난 이곳에서 상위그룹과 벌어진 차이를 많이 줄여 볼 생각이었다.
* * *
스킬 정령소환 운디네(Undine)!
마지막 정리는 운디네로 하는 게 깔끔했다.
비록 하급 정령이었지만 이제 제법 숙련도가 올라 몇 마리 남지 않은 몬스터들을 마무리하기엔 충분했다.
사실 그동안 나는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전 생애에서도 익숙하게 사용했던 검술 계열 스킬들을 주력으로 사용하며 주술이나 마법을 보조로 사용했었다.
스킬간의 상성이 사라져 어차피 스킬 숙련도의 하락은 없었기에 마음 놓고 스킬들을 사용했었다.
다른 스킬들은 천천히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스킬의 숙련도만 올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모든 스킬을 전부 활용해서 나만의 전투 기술을 익히는 것이 필요했다.
현재 나는 300가지가 넘는 스킬을 배우고 있었다. 이 스킬들 가운데 비전투 스킬들을 제외하면 대략 250가지 정도의 스킬들이 남았다. 250가지의 스킬들은 모두 전투스킬들이었다.
이 250가지가 넘는 전투 스킬들을 모두 활용한 전투 기술.
그것이야 말로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 동굴에서 3주(게임시간) 동안 사냥을 하며 수많은 기술을 사용했다.
특히 그동안 등한시하던 정령술이나 흑마법소환술, 환수소환술 같은 것들을 더 적극 활용하며 전투를 치렀다.
물론 환수소환술 같은 경우 아직 제대로 된 환수의 알을 구하지 못해 기껏해야 하급 소환술 몇 가지만 연습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전과 비교했을 때 내 전투기술은 더욱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퐁!
꿀꺽꿀꺽.
시원한 맛, 이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한 번의 몰이사냥을 끝낸 나는 최고급마나회복물약을 들이켰다. 이번에 저택을 판 돈에서 다른 장비나 시약 같은 것을 사고 남은 돈은 모두 이 물약을 사는데 써버렸다.
고급보다 효과는 조금 더 좋은 정도였지만 그 크기와 무게가 대폭 줄어들어 휴대성이 엄청 좋은 최고급 마나회복 물약을 대량으로 구입했었다.
내 사냥방식은 체력보다 마력을 월등히 많이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보법 같은 경우는 아주 특별히 신경 써서 수련하고 있었기에 나는 어지간한 공격을 전부 회피하며 싸웠다.
덕분에 체력은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워낙 스킬을 다양하게, 특히 스킬조합과 연계스킬을 아주 많이 사용했기에 내 마력의 소비량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천룡신체로 체질이 바뀌며 마력의 절대량이 엄청 늘어난 덕분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도 중간중간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최고급 마나회복 물약을 마셔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은 감히 남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냥방법이었다. 모자라는 마력을 돈으로 보충하는 방법…… 미리 돈을 왕창 긁어모았던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결론적으로 마력은 늘 부족했다.
그래서 난 이 마력의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계획을 구상해 놓았다.
물론 지금 당장 그 계획을 실행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레벨이 많이 부족한 상태.
하루라도 빨리 상위권 그룹과의 레벨 차이를 좀 좁혀야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스스스스스스!
다시 동굴에 울려 퍼지는 괴이한 소리.
“하여간…… 제대로 쉴 틈이 없네.”
박쥐 떼였다. 이제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장비 1번.”
스르릉! 챙!
두 자루의 트윈문 소드를 뽑아 든 나는 전방을 가득 채운 박쥐 떼를 보며 웃었다.
“나의 경험치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