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9화 (29/250)

029. 퀘스트 ― 2

* * *

“호오, 이것은!”

디아무는 내가 보여준 레드웜의 핵을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눈앞에 바짝 갖다 대고 계속해서 탄성을 내뱉었다.

“아시는 물건입니까?”

일단 퀘스트의 비밀을 알려줄 NPC였으니 최대한 공손하게 대해야 했다.

“알지! 알고말고. 내가 장담하건대 이 물건에 대해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지. 저기 크랄산맥에 있다는 현자도 이것에 대해서는 잘 모를걸?”

크랄산맥의 현자?

‘아, 그 괴짜로 유명한 현자를 말하는 것이군.’

현자끼리 경쟁의식이라도 있는 건가? 왠지 이 영감은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현자라고 광고라도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렇군요. 역시 대륙 최고의 현자는 디아무 님이십니다.”

이럴 땐 그저 이런 아부가 최고였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말하는 걸 아낄 필요는 절대 없었다.

“으하하하, 그런가? 역시 자네가 보는 눈이 좀 있군. 그럼~ 이런 물건을 나에게 가져올 정도라면 분명 보는 눈이 있는 것이지.”

만족하는 눈치였다.

이걸로 됐다. 굳이 돈 같은 것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 영감에게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정말로 자네는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네. 이 물건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다크우드 지하에 있던 그 녀석의 몸속에서 나온 것이겠지?”

약간 이상해 보였지만 현자는 현자인 것일까? 하긴, NPC인 그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정보일지 몰랐다.

“맞습니다.”

“역시, 그것이었군. 흠흠, 자네는 혹시 다크우드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고 있나?”

그 질문이라면 대답할 수 있었다.

이미 내 천서에 기록된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레드웜, 바로 방금 말한 그 녀석이 성목(聖木)이라 불리던 거대한 나무를 쓰러트리고 파놓은 동굴이 다크우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오~ 자네의 식견도 대단하군. 맞네. 다크우드는 한때 성목이라 불리며 남부밀림지대의 상징 같은 존재로 취급받던 나무가 쓰러진 후 그 안에 생긴 거대한 나무동굴이지. 그렇다면 다크우드를 만들었다는 그 녀석이 본래 어떤 녀석인지 알고 있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흠흠, 모르는 게 당연하네. 사실 알고 있다면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흐음, 내가 얘기를 하나 해주겠네. 이 얘기는 하나의 전설이자 진실일세. 어쩌면 불멸의 인을 지닌 자네에겐 슬픈 얘기일지도 모르겠군.”

디아무는 내 검은 눈동자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태초에 창조주가 두 명의 신을 만들었지.’로 시작한 그의 얘기는 매우 길게 이어졌다.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이미 전 생애에서 다른 NPC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대륙탄생신화였다.

신들의 전쟁인 라그나뢰크(Ragnarok)부터 대륙의 암흑기라는 아마겟돈(Armageddon)까지 이제는 달달 외울 정도로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디아무의 얘기를 중간에 끊을 수는 없었다.

보통 이런 얘기는 참고 다 들어줘야 했다. 그래야 퀘스트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얘기가 끝났다.

“대륙탄생신화인가요?”

난 슬쩍 시치미를 떼고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은 후 디아무를 향해 물어보았다.

“그렇다네, 레아대륙과 크로노스 대륙…… 자네 같은 불멸의 인을 지닌 이들이 왜 이곳에서 살아가게 됐는지를 알 수 있는 신화지.”

“그런데 이 신화와 이 돌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관계? 허허허허, 관계야 아주 많지! 이 돌을 토해 놓은 놈이 사실은 자네와 같은 크로노스 대륙에서 넘어온 존재니까 말이야!”

“네?”

“뭘 그리 놀라는가? 자네도 이렇게 버젓이 크로노스 대륙에서 넘어와 이곳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그 녀석은 재수가 없는 것이었지. 그 녀석도 자네들과 비슷하게 전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곳에서 부활했네. 좀 재수가 없어서 하필 몬스터들 가운데 레드웜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몸에 전이가 되었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이 워낙 컸던 놈이라 곧장 그레이트레드웜으로 진화해버렸지. 그렇게 빨리 진화한 것으로 봐서는 크로노스대륙에서는 꽤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던 녀석이었겠지.”

단순한 한 마리의 네임드 몬스터가 탄생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해 보였다. 그렇다면 혹시 이 대륙에 존재하는 네임드 몬스터들 중 대부분은 이런 과정을 거친 건가?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일단 내 퀘스트와 관련된 내용이었으니 열심히 집중해서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진화를 한 놈은 난동을 피우며 성목까지 쓰러트려 다크우드라는 던전, 정확히는 자신이 살 집을 만들었어.”

“아~ 던전 다크우드는 결국 큰 둥지 같은 곳이었군요.”

“그렇지, 그 커다란 던전은 그 큰 지렁이 녀석의 둥지일 뿐이었다네. 놈은 그렇게 온갖 난동을 다 부리며 남부밀림지대의 큰 골칫덩이가 되었지. 하지만 놈의 난동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네.”

“왜요?”

“신의 대리자. 가이아가 남겨두었던 그 대리자들이 움직였기 때문이지.”

“대리자?”

설마…….

대리자, 이거 오래전에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대리자, 움직인 건 바로 신의 대리자…… 바로 드래곤들이었어!”

역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신의 대리자이자 이 대륙 최강의 몬스터.

보통 RPG 게임을 하면 최종 보스로 자주 나오는 놈들.

레어에 보물을 가득 숨겨 놓은 욕심쟁이 놈들.

더럽게 괴팍하고 무지막지하게 강한 놈들.

언젠간…… 내가 잡고야 말 놈들!!

그 드래곤이었다.

“드래곤들은 바로 그 변종 레드웜을 녀석이 스스로 만들었던 다크우드 제일 아래층에 가두어버렸지. 신의 대리자로서 신의 뜻에 의해 전이된 존재를 멸할 수는 없기에 봉인을 해버린 것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그레이트레드웜은 다크우드에서 나올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지. 그리고 그때부터 그 그레이트레드웜은 언젠가는 자신을 가둔 드래곤들과 같은 힘을 얻어 던전을 탈출하기 위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힘을 몸 안에 모으기 시작했지. 그게 바로 자네가 나에게 들고 온 가짜 드래곤하트의 정체라네.”

“아!”

이제야 이해가 갔다.

결국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건 한 마리의 지렁이가 용들 좀 따라가 보려고 만든 드래곤하트 모조품이란 얘기였다.

“실망했나? 너무 실망하지 말게. 이 레아 대륙에는 그 그레이트레드웜과 같은 존재들이 무수히 많다네. 단순히 몬스터뿐만이 아니라네. 전이(轉移)는 이곳 대륙에 살고 있던 모든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쳤네. 애초에 가이아께서는 크로노스 대륙의 생존자들에게 저주를 내리셨지만…… 내가 봤을 때 이건 두 대륙 모두에게 내려진 저주라네.”

디아무는 살짝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기억하게…… 이제 더 이상 이곳은 레아대륙이라 부를 수 없는 곳이라네. 레아대륙도 크로노스대륙도 아닌 새로운 대륙…… 어쩌면 그 새로운 대륙에는 새로운 존재들이 필요했기에 이런 시련이 찾아온 것일지 모르겠군.”

쓸쓸하게 웃는 디아무.

그는 마치 대륙의 앞날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띠링, 4등급 연계 퀘스트 ‘대륙의 변화’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본 퀘스트는 메인스토리와 연관이 있는 특별 퀘스트입니다. 퀘스트 등급은 차후에 계속 상승할 수 있습니다.

‘4등급 연계에 메인스토리와 연관이 있는 특별 퀘스트?!’

난 깜짝 놀랐다. 퀘스트 등급도 등급이었지만 메인스토리와 관련 있는 퀘스트라는 말은 나를 놀라게 할 수밖에 없었다.

메인스토리와 관련 있는 퀘스트는 유저들 사이에서 종족퀘스트 또는 메인퀘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사실 지금이야 두 대륙에 인간들만 넘쳐났지만 이 메인스토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일정 순간이 되면 양쪽 대륙에 숨겨져 있던 종족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오크, 엘프, 드워프, 설산족, 호족 등등.

종족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더 재미있는 건 유저들이 그 종족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렇게 등장한 종족들은 새로운 케릭터를 생성할 때도 고를 수 있었고 이미 인간으로 플레이하고 있던 유저들에겐 특별한 퀘스트를 통해 한 번의 환생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종족 간의 능력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단지 모든 능력이 평균인 인간과 달리 새로 생긴 종족들은 각각 그 특징이 모두 달랐지만 그게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많은 유저가 여러 가지 이유로 환생을 선택했었다.

단지 환생 퀘스트가 상당히 난이도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많은 골드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능력이 되는 유저들만 환생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레벨이 낮다면 환생보다는 케릭터를 삭제하고 다시 만드는 게 좋다는 의견도 많았다.

어쨌든 이 퀘스트는 매우 좋은 퀘스트였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많은 유저들이 이것과 비슷한 퀘스트를 해결하고 있을 것이다.

좋은 보상을 얻으려면 그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했다.

쉽지는 않은 일.

하지만 일단 제대로 성공만 하면 그 보상은 아주 좋았다.

‘메인퀘스트는 별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내 계획에 메인퀘스트에 관한 건 거의 없었다. 일단 내가 거의 해보지 못했던 것이었고 정보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계획에서 빼놓았었다.

그런데 메인퀘스트가 이렇게 제 발로 굴러들어왔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 계획에 끼워 넣어줘야 했다. 명색이 메인퀘스트 아닌가!

“자네는 새로운 존재들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 있는가?”

띠링, ‘대륙의 변화’ 퀘스트를 받으시겠습니까? (YN)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예,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허허, 역시 자네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네. 혹시 시간이 된다면 꼭 크랄산맥 근처에 있는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이란 곳을 찾아가 보게. 그곳이라면 자네가 찾으려는 답의 일부분을 알 수 있을 것이네.”

띠링, 대륙의 변화 퀘스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띠링, 퀘스트 목록이 갱신되었습니다. 퀘스트 창을 확인해 주세요.

‘식지 않는 불꽃의 언덕?’

서대륙의 웬만한 지역을 다 알고 있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아마도 퀘스트에서 주로 등장하는 숨겨진 지명 같은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늘 강조한 것이지만 ‘ONE’은 무한의 자유도를 이유로 전혀 친절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당연히 정확한 지명을 알려주면서 ‘이 퀘스트는 그곳에서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가 아무런 힌트 없이 디아무를 찾아왔듯이 유저들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퀘스트 지역이나 NPC를 찾아야 했다. 시간이 좀 흐르면 여러 정보게시판에서 조언을 얻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런 정보게시판도 서로 토의나 하는 정도밖에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가서 정보를 흘리면 날파리만 꼬이지.’

이게 결정적이었다.

어설프게 그런 정보게시판을 이용하려고 했다간 오히려 이용당하는 수가 많았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ONE’의 유저들은 정보 공유를 잘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손해 보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일단 방향을 크랄산맥으로 잡으면 되겠군.”

원래는 히오나사막 근처에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오아시스 던전들 중 하나를 찾아볼 생각이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진로를 좀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크랄산맥 근처에도 생각해 둔 던전이 몇 개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크랄산맥이 아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검은 바위산이었지만 어차피 두 지역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으니 상관없었다.

먼저 검은 바위산을 찾아 던전을 찾고 사냥을 하며 정보를 모아볼 생각이었다.

“잊지 말게. 이 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네. 대륙 변화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일세. 설사 그것이 믿기 힘든 현실이라고 해도…… 자네는, 아니 자네와 같은 불멸인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걸세. 어쩌면 나는 그런 자네들을 위한 길잡이로 선택된 것일 수도 있겠군…….”

마지막 조언을 하는 디아무의 표정에서는 마치 뭔가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나는 그 안타까움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단지 그의 말이 단순한 퀘스트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만 어렴풋이 깨달았을 뿐이었다.

메인퀘스트라 그런 건가?

뭔가 숨겨져 있는 비밀이 많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일단 볼일을 다 끝낸 나는 디아무의 마지막 당부를 가슴 속에 소중히 새기고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일단 퀘스트는 시작되었다.

디아무의 말처럼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몰랐지만 일단 이 퀘스트를 해결하는 건 내 임무였다.

이제 남은 일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것, 다시 달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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