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8화 (28/250)

028. 퀘스트 ― 1

* * *

일단 자신의 손에 들어온 아이템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그게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템 확인 작업은 유저라면 누구라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템을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난 배울 수 있는 스킬의 제한이 없으니 당연히 감정 스킬을 익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배울 수 있는 스킬 하나를 버리는 걸 아까워해 감정스킬이 담겨있는 스크롤이나 마법증명(Identification)스킬이 담겨있는 스크롤을 구입해 아이템을 확인했다.

커다란 레드웜의 핵(核)

:그 크기가 다른 레드웜의 핵보다 월등히 크다. 하지만 왠지 뭔가가 심각하게 변형된 느낌이다.

능력: 상급 마정석(A급)

특이사항: 등급을 알 수 없는 연계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는 아이템.(밀림의 현자 디아무가 진실의 일부분을 알고 있는 느낌이다.)

*이 아이템은 최초의 그레이트레드웜 슬레이어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크으~!”

역시 드래곤하트는 아니었다. 대략 평범한 레어 아이템 급이라 할 수 있는 상급 마정석이었다.

하긴 이런 곳에서 드래곤하트를 얻는다는 건 시냇물에서 고래를 낚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잠시나마 기대를 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런데 분명 드래곤하트는 아니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대로 재미있는 아이템인 것은 사실이었다.

“연계 퀘스트?”

왠지 흥미로웠다. 원래 몬스터가 퀘스트 시작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던전 보스가 그것도 등급을 알 수 없는 연계 퀘스트라는 묘한 말이 적혀 있는 퀘스트 시작 아이템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연계 퀘스트가 일반 퀘스트보다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보상도 좋았다.

“다크우드 보스가 이런 비밀을 숨기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

아마도 전 생애에서는 누군가 혼자만 슬쩍 알고 넘어간 퀘스트인 것 같았다.

살짝 마음이 동했다.

이미 다음에 갈 던전을 생각해두고 있었던 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무시하자니 등급을 알 수 없는 연계 퀘스트라는 문구와 최초의 그레이트레드웜 슬레이어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문구가 자꾸 신경 쓰였다.

“연계 퀘스트라면 던전만큼이나 쏠쏠한 것이긴 한데.”

연계 퀘스트는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퀘스트는 흔하지 않았다. 거기다 오로지 나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니…….

이런 퀘스트는 그 보상이 무척 좋은 경우가 많았다.

“일단 퀘스트는 받아놓아도 상관없으니 어떤 퀘스트인지 보고 결정하자.”

스윽.

생각을 정리한 난 핵을 무한의 가방에 넣었다.

어차피 밀림의 현자 디아무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으니 다른 던전을 찾아가는 길에 잠깐 들려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결정을 내렸으니 이제 남은 건 실행뿐이었다.

대충 주변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들(레드웜과 여섯 명의 유저들이 흘린)을 주워 담은 나는 빠르게 다크우드 던전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제 사냥할 것도 아니었기에 난 망설이지 않고 쭉쭉 전진했다.

이제 한 달 동안 지긋지긋하게 구경했던 이 썩은 나무 동굴과도 안녕이었다.

‘경험치는 상, 아이템은 하.’

밖으로 나오는 길에 잠깐 던전 다크우드 던전에 대해서 평가해보았다.

경험치는 분명 좋았다.

하지만 아이템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던전 보스에서 좀 회복을 노렸었는데 그마저 별로였다.

특히 기대했던 여섯 명의 알 빼먹기 유저들이 흘린 아이템들은 겨우 매직 급 3개에 쓰레기 아이템 3개가 전부였다.

그들에겐 재수가 좋은 것이었고 나에겐 재수가 별로 안 좋은 것이었다.

‘그래도 총점은 상을 쳐줘야겠지?’

비록 아이템 쪽에서 별로 이득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아이템보다는 경험치였다.

지금 레벨에서 쓰이는 아이템들이라고 해봤자 이제 좀 더 레벨 업을 하면 거의 쓸모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먼저 레벨 업.

그것이 중요했다.

‘현자 디아무라면…… 아마 남부밀림지대 중앙에 있는 푸른늪마을이었지.’

남부밀림지대에서 가장 큰 마을.

특이하게 거대한 늪지대 위에 만들어진 괴상한 마을이었다.

“대충 일주일은 걸리겠네.”

남부밀림지대는 그리 만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각종 위험한 몬스터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지형 자체도 무척 험한 지형이었다.

초보들이라면 길을 잃고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ONE’의 유저들이 가장 싫어하는 죽음 중 하나가 굶어 죽는 것이다.

차라리 몬스터한테 뛰어들어 깔끔하게 죽으면 죽었지 공복도가 한계까지 내려가 체력이 계속 떨어져 죽는 아사(餓死)는 모두가 사양했다.

나 역시 굶어 죽는 건 사양이었다.

“하긴 난 요리도 배웠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

요리 역시 생산 기술이었기에 능숙하지는 못해도 적당한 수준까지는 올려놨었다.

여기서 적당한 수준이라는 얘기는 앞서 얘기했던 다른 생산 기술들처럼 적당히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 * *

스킬 비도술(飛刀術) 유엽비도(鍮葉飛刀)!!

피피핏!

내 양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몸에 두르고 있던 비도들을 뽑아 앞으로 뿌렸다.

퍼퍽!

쓰러지는 두 마리의 커다란 뱀.

비록 레벨은 낮지만 가지고 있는 독성(毒性)이 강해 방심할 수 없는 붉은 반점 구렁이들이었다.

“이놈의 밀림은 도무지 방심할 수가 없네.”

뭐 사냥터라면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밀림만큼 귀찮은 곳은 드물었다.

“크윽, 이런 비도(飛刀)도 거의 다 썼네.”

난 당연히 비도술도 배웠다. 그리고 꽤 자주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그래서일까?

상당히 많이 준비해온 비도였건만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비도는 굳이 장비설정 세팅에 넣지 않았다.

대신 옷 위에 걸치는 특수한 가죽 띠를 구해 거기에 꽂아놓고 사용했다.

완전히 꽉 채워서 무장하면 50개가량의 손바닥 반만 한 비도가 온몸 이곳저곳에 숨겨진다.

물론 그래 봤자 몇 번 사용하면 금방 없어진다.

한 번 뿌릴 때마다 4~6개씩 들어가니 당연히 빠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뭐, 푸른늪 마을도 얼마 안 남았으니 거기 가서 보충하면 되겠지.”

어차피 여러 가지 것들이 바닥난 상태였다.

한 번은 보급해야 하는 상황.

그동안 선별해서 모아 놓은 쓸 만한 아이템들도 팔고 이것저것 사서 보급도 하고 대략 하루 정도는 그 마을에서 쉴 생각이었다.

“장비 1번.”

난 남은 비도를 대충 정리해서 가죽 띠에 꽂고 장비 1번을 소환했다.

지이잉!

아공간이 열리며 튀어나오는 두 자루의 검.

울창한 숲을 헤치고 전진할 때는 역시 쌍검이 최고였다.

“70레벨까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쓸 만한 매직 등급 갑옷 팔아요!”

“흑표(黑豹) 같이 잡으실 분들 구해요! 전 레벨 61에 헌터계열 직업입니다.”

“남부밀림 지역 탐험하실 전사계열 유저 님 안 계신가요?”

“레벨 70대에 사용하기 좋은 검 삽니다!”

시끌시끌

역시 남부밀림지대 중심에 위치한 가장 큰 마을답게 많은 수의 유저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레벨 45~80대였다.

남부밀림지대 북쪽은 레벨 150대 유저들도 충분히 사냥할만한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사냥하는 유저들 대부분은 이 마을이 아닌 북쪽에 있는 다른 마을에 모여 있을 것이다.

현재 내 레벨은 61이었다.

다크우드 던전에서 나와 여기까지 이동하며 살짝 레벨이 올랐다.

이것은 쉬지 않고 사냥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했다. 벌써 상위권의 유저들은 여기 남부밀림지대를 벗어나 더 북쪽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바람의 평원이나 화염협곡쯤에서 열심히 사냥하고 있겠지.’

그들의 현 상황 정도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아직 분명 익스퍼트 레벨인 200은 넘지 못했을 것이고…… 대충 180~190 사이일 것이다.

물론 최상위권에 존재하는 괴물들이야 벌써 치고 나가서 지금쯤 200을 넘어 다들 전직을 했겠지만 그들은 지금 생각할 이들이 아니었다. 일단은 상위권을 따라잡는 게 먼저였다.

“사실 전직퀘스트도 쉬운 건 아니지.”

나는 작게 웃었다.

전직퀘스트, 아마 많은 이들이 아직은 모를 것이다. 기껏해야 최상위권 유저들만 맛보았을 그 빌어먹을 전직퀘스트.

단순히 사냥만 한다고 레벨200이 되는 게 아니었다.

199레벨에서 무조건 전직 퀘스트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 전직퀘스트가…… 한마디로 말하면 ‘어렵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혹시 거기에 부연 설명으로 한 마디 더 말하라고 하면 ‘욕 나온다.’가 어울렸다.

특히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2차보다는 3차가, 3차보다는 4차가, 4차보다는 5차가…… 이런 식으로 어려워졌다.

그나마 2차는 약간의 고생만 치루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조금 난해한 게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3차가 되면 이젠 점점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4차가 되면?

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 더 이상 말을 하지 말자.

어쨌든 전직퀘스트는 그리 만만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각설하고 이 마을에 있는 유저들은 대충 중위권 그룹이라고 보면 된다.

남부밀림지대, 히오나사막, 크랄산맥, 동부해안.

이렇게 네 개의 지역이 지금 중위권 그룹들이 흩어져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있을 만한 지역이었다.

물론 더럽게 넓은 대륙의 특성상 다른 지역들도 많았지만 위에서 말한 네 개의 지역이 가장 레벨을 올리기 좋은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거의 80% 이상의 중렙 유저들이 이 지역들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유저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보다 빨리, 그리고 쉽게 사냥을 하기 위해 늘 정보를 찾았다.

정보를 찾지 못하면 남들을 따라 하기라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적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네 지역을 향해 몰려든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들이야말로 진짜 ‘ONE’을 이끄는 힘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최상위권이나 상위권 유저들과는 다른 힘을 가진…… 사실 아무리 잘난 유저라고 해도 군중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 군중들은 그 대단하다는 천무칠성 중 한 명의 공개사과를 받아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돈줄이기도 하고.”

파닥파닥.

난 나에게 날아온 비둘기만 한 크기의 날개가 네 개 달린 괴상한 새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 새는 일종의 집배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매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팔면 이 새가 아이템과 돈을 배달해주었다.

그곳이 어디라도 이 새는 꿋꿋이 배달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새야말로 대단한 존재였다.

꾸엑!

괴상하게 울고 있는 이 새의 이름은 크리슈나.

이 새는 놀랍게도 마법을 사용했다. 아주 간단한 보관마법이었지만 그 효과는 아주 좋았다.

크리슈나는 그렇게 마법으로 물건과 돈을 보관한 후 해당유저에게 운반했었다.

이 새는 어떤 공격에도 상처 입지 않았고 어떤 속성에도 면역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새는 일종의 특수 NPC라는 소리였다.

띠링, 크리슈나로부터 경매장 아이템 판매대금 121골드를 받았습니다.

“잘 팔리는구나~”

역시 싼 값에 올려놨더니 아주 광속으로 팔려나가고 있었다.

이곳에 널려있는 나의 고객들이 빠르게 사 준 결과였다.

사실 이 정도로 싸게 팔 거면 경매장을 이용하기보다는 직접 외치거나 개인 상점을 개설해서 파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난 굳이 몇 푼의 배달료를 아끼기 위해 시간을 투자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 마을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고 해도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했다.

일단 경매장에서 내가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봐야 했고 각종 물약이나 시약 같은 소비성 아이템들도 대량으로 구매해야 했다.

그뿐인가?

내가 사용하는 비도는 대장장이에게 특별주문을 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제작의뢰를 해야 했다.

이래저래 바쁜 나에게 장사는 당연히 1순위로 포기해야 할 것이었다.

“그나저나…… 이 영감님은 왜 아직도 집에 없는 거야?”

사실 하루 종일 바쁘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몇 번이고 현자 디아무가 살고 있다는 작은 나무집을 찾아왔었다.

그런데 올 때마다 디아무는 집에 없었다.

보통 NPC들이 원래 자주 이동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래 자신의 집을 비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전 생애에서는 다른 이유로 몇 번 만나봤던 디아무였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 자신의 집에서 벗어나지 않았었다.

“쳇, 이따 다시 와야 하나.”

이것저것 준비가 아직 안 끝나 이곳에 더 머물러야 했지만 혹시 준비가 다 끝날 때까지 디아무를 만나지 못하면 난 과감히 퀘스트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 퀘스트 하나 때문에 시간을 따로 낼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밖에 나가서 사냥하는 게 나에겐 더 도움이 되었다.

난 망설임 없이 디아무의 집 앞에서 몸을 돌렸다. 남는 시간에 다시 경매장이나 한번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 쪽으로 걸어오는 평범해 보이는 늙은 영감님이 있었다.

‘디아무!’

현자 디아무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내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디아무라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퀘스트가 나랑 인연이 있나보군.”

왠지 모르게 인연처럼 느껴지는 퀘스트, 이제는 정말 이 퀘스트가 어떤 퀘스트인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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