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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The Lord)-26화 (26/250)

026. 역관광 ― 1

* * *

이 상황이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왜 지금 이런 당황스러운 경우에 처하게 된 것인가? 든든하던 내 동생들은 왜 다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있는 건가?

우리는 팀이었다.

난 현실에서는 형이나 오빠로서 그리고 게임에서는 파티의 리더로서 동생들을 이끌었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우리는 속칭 ‘알 빼먹기’라는 비매너 플레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게이머들이었다.

하지만 어떤가?

이게 불법인가? 아니면 버그인가?

다들 말하지 않는가! 속이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속는 게 나쁜 거라고.

우리는 속지 않기 위해 속이는 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나와 내 동생들은 그렇게 잘나가는 알 빼먹기 팀이 되었다.

우리는 진짜 잘나갔다.

난 마법사로서 나름대로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동생들도 각각 각자의 클래스에서 아주 좋은 성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이 짓을 계속하려는 건 아니었다.

나도 게임이라면 해볼 만큼 해본 놈이었다.

원래 이런 짓은 치고 빠지는 게 확실해야 했다. 일단 한 번 할 때 화끈하게 해 먹고 빠져야 하는 타이밍에 확실히 빠지는 게 중요했다.

나와 동생들은 이제 조금만 더 이 짓을 하고 깔끔하게 정도(正道)로 돌아설 생각이었다.

물론 또 좋은 사도(邪道)의 길이 생기면 또다시 생각을 다시 해야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일단 이 계획대로 가는 게 제일 좋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잘나갔다.

오늘도 그동안 계속 작업을 해놨던 놈 하나를 가뿐하게 처리했다. 동생 중 한 명이 우연히 발견한 이 던전은 정말 알 빼먹기를 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늘 속이고, 이기는 쪽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우리가 너무나 허무하게 쓰러졌다. 우연히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보고 정말 감사히 먹으려고 했던 우리가 오히려 그 먹이에게 먹히고 있었다.

이건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왜 수적 우위에 있는 우리가 먹이가 되어야 하는 건가!!

“……개, 개자식!”

난 우리를 먹어치운 놈, 그놈을 끝까지 노려보며 쓰러졌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놈에게 복수할 것이다.

“……개, 개자식!”

털썩.

지금에 와서 이렇게 나를 원망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건만, 저 마법사는 끝까지 나를 노려보며 죽었다.

날 꼭 기억하겠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과연 날 진짜 기억할 수 있을까? 온몸에 플레이트아머를 두르고 그 위에 위장용 로브까지 두른 나를?

얼굴은 이미 플레이트헬멧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이름은 가명…… 당장 며칠 후라도 내가 이 장비를 다 벗고 자신의 앞에 나타나도 그는 절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도대체 저들은 왜 이 모든 일이 자신들의 업보라는 걸 모를까?

내가 저들에게 한 짓이라고 해봤자…… 던전 입구를 폐쇄하고 이리저리 도망만 다닌 것밖에 없었다.

어차피 저들은 자기들 능력이 부족해서 죽은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저들은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과한 욕심을 부렸다. 그렇게 그들이 부린 욕심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마법사를 마지막으로 6명 모두 깔끔하게 사망했다.

물론 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보스 방에 남아 있는 건 나와 던전 보스인 그레이트레드웜.

그나마 그레이트레드웜은 많은 상처를 가졌다.

내가 낸 상처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나 대신 죽어간 저 6명의 용자가 낸 상처였다.

키에에에엑!

덕분에 무척 난폭해져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후 줄기차게 초상비(草上飛)와 패스트워크를 잘 조합해 이리저리 공격을 피하기만 했던 난 잠시 호흡을 고르며 레드웜을 바라보았다.

“후후, 이거 진짜 저 녀석들 덕분에 아주 편해졌네.”

6명의 희생으로 편해진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난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도망 다니는 걸 멈추고 공격을 준비했다.

“장비 1번.”

츠리잇!

내 양손 근처의 두 공간이 동그랗게 일그러진다.

그렇게 두 개의 아공간이 생성되었다.

스르릉 챙!

난 그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손잡이를 잡고 두 자루의 장검을 뽑았다.

이 검들은 비록 매직급의 보잘것없는 무기였지만 그래도 내가 주로 사용하는 병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주로 사용할 무기일 뿐 계속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건 다수의 병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장비설정은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이건 내가 익힌 고급 스킬을 사용해 만든 능력이었다. 다수의 병기를 손쉽게 다루기 위해서는 이 스킬이 꼭 필요했다.

아공간마법류(亞空間魔法流) 중 하나인 언령설정마법(言令設定魔法), 이것은 무척 어렵게 구한 AA급 마법이었다.

언령설정마법은 내가 지정한 명령어에 의해 빠르게 아공간에 보관해두었던 물건을 꺼내 쓸 수 있는 마법이었다.

이것은 일명 장비설정 마법이라고도 불렸다.

많은 이들이 익히는 마법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마법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나에겐 꼭 필요한 마법이었다.

현재 숙련도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기에 난 6가지의 장비를 설정할 수 있었다. 나중에 하이마스터가 되면 10가지 설정이 가능했고 그랜드마스터가 되면 무려 17가지나 설정이 가능해졌다.

난 명령어를 간단하게 ‘장비 X번’으로 통일시켰다. 쓸데없이 멋 부리는 것보다는 역시 실용성이 최고였다.

장비설정은 오로지 무기만 가능했다.

현재 내가 등록해 놓은 장비는…….

1번에 두 자루의 롱소드

2번에 한 자루의 롱소드와 타워쉴드.

3번에 철편(鐵鞭).

4번에 그레이트투핸드소드.

5번에 철궁(鐵弓).

6번에 장창(長槍).

이렇게 6가지였다.

언령설정 마법은 내가 특히나 신경 써서 올리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벌써 숙련도가 139.563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하이마스터도 멀지 않았다.

무기들은 각각의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 가지 무기가 만능의 무기가 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장비설정에 지정해 놓은 무기들 말고도 난 많은 무기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등 뒤 허리에 꽂아놓은 두 자루의 단검이나 몸 전체 곳곳에 두르고 있는 비도(飛刀)들…… 다리에 차고 있는 토마호크(Tomahawk) 같은 것들을 보면 내가 얼마나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난 각각의 상황과 상대에 맞은 무기를 계속 바꿔가며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 언령설정마법은 매우 중요한 스킬이었다.

어쨌든 난 아공간에서 두 자루의 롱 소드를 뽑으며 그레이트레드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뮤직 온(Music On). 실행 데이터이름 쾌락(快樂).”

찰칵.

지이잉!

음악이 흘러나온다.

기다려왔던 음악연동 서비스가 얼마 전부터 가능해졌다. 이제부터는 가상현실캡슐의 음악 저장기능을 이용해 게임 중에 언제라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소 경쾌한 락(Rock) 음악.

두 자루의 장검을 이용해 펼치는 검술에는 딱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난 예전에 늘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사냥을 즐겼다.

이유?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리듬을 탈 수 있어서 좋다는 점?

스킬조합, 크로스블레이드+검기난무(劍氣亂舞).

블레이드익스플로젼(Blade Explosion)!

두 검이 교차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폭발은 그레이트레드웜을 덮쳤다.

꽈광!

크아아앙!

울부짖는 레드웜.

레드웜은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지만 아직까진 충분히 위험해 보였다.

블레이드익스플로젼을 정통으로 맞았지만 역시 레드웜은 던전 보스답게 멀쩡한 모습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취이익!

곧장 반격하는 레드웜. 레드웜의 징그러운 입에서 강력한 부식성 액체가 뿜어졌다. 일종의 산성 브레스였다.

“장비교체, 장비 2번!”

츠리잇!

아공간이 열리며 두 손에 있던 검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장 한 자루의 롱소드와 타워쉴드가 튀어나왔다.

철컥!

꽝! 꽝!

재빨리 타워쉴드를 장착한 나는 ‘방패의 벽’이란 스킬을 활성화시켜 몇 번이고 그 부식성 액체를 막아냈다.

“휴우~ 장난이 아니야!”

6명의 알 빼먹기 유저들을 순식간에 전멸시킨 그레이트레드웜은 확실히 강했다.

하지만 강한 걸로 치면 나도 뒤지지 않았다. 산성 브레스가 주춤해진 순간 난 곧장 반격을 시작했다.

“장비교체, 장비 5번!”

츠리잇!

레드웜의 산성 브레스 공격을 막은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장비를 철궁(鐵弓)으로 바꿨다.

아직은 내 장비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나마 경매장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구입한 것이었지만 진짜 좋은 아이템들은 경매장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이 철궁도 최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쓸 만한 매직급 아이템이었다.

스킬조합 속사(速射) + 무빙샷(Moving Shot)

섬전시(閃電矢)!!

연계발동, 더블샷(Double 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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