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3화 (23/250)

023. 사냥 시작 ― 2

* * *

연계기술이라고 해서 무조건 연계에 연계만 계속한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물론 대충 4단 연계가 넘어가면 연계 보너스가 상당해져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지만 보통의 경우는 그렇게까지 연계시키지 못했다.

대부분의 연계기술은 2~3단이었다.

많은 유저들이 주로 그 정도의 연계기술을 사용했고 그건 상위랭커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보통 유저와 상위 랭커와의 차이는 누가 좀 더 효율적이고 위력적인 스킬 연계를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단순히 스킬 + 스킬의 연계는 일반 사람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어렵다고 징징대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건 몇몇 소위 ‘발컨(발로 컨트롤 하는 유저의 약어, 아주 오래전 PC 온라인 게임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라 불리는 이들의 말일 뿐이었다.

난 스킬을 조합한 상태에서 곧장 연환스킬을 사용해 연계기술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순수하게 난이도로만 따지면 거의 단순 스킬들로만 만든 4단 연계기술과 비슷했다.

스킬을 조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연환스킬은 그 자체로 몇 가지의 기술이 한 가지로 변형되어있는 스킬이었다.

그렇기에 이 둘로 연계기술로 만드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가져다 붙인다고 연계기술이 되지 않는다.

어떤 기술과 어떤 기술이 연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노련한 유저들은 대략 그 느낌, 흔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필(Feel)’이라고 표현하는 그것으로 연계기술을 만들어내곤 했다.

하지만 그 노련한 유저라는 건 적어도 ‘ONE’을 현실 시간으로 2~3년은 해야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나?

당연히 난 이미 남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노련한 유저였다.

“음, 아직 연환오행검의 움직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네.”

다른 이들이라면 충분히 만족했겠지만 난 만족하지 못했다. 방금 경우 다섯 번의 칼질이 고속으로 이루어지며 다섯 개의 검기를 뿌렸는데 그 검기의 방향이 너무 제각기였다.

원래 연환오행검은 정확하게 부채꼴 모양을 그리며 검기를 쏟아내야지만 그 위력을 최고로 발휘했다.

단독으로 펼칠 때는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지만 역시 괴력충전과 함께 연계기술로 발동시킬 때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나저나 크로스블레이드는 왜 안 나오지? 변형검술(變形劍術)숙련도가 이 정도면 분명 슬슬 스킬을 습득할 때가 되었는데?”

크로스블레이드는 무척 좋은 스킬 중 하나였다.

난 74개의 스킬을 익히고 있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더, 아직 내가 익혀야 할 스킬들은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었다.

이게 다 내가 얻은 직업 덕분이다.

원래 이런 직업을 얻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타이트하게 익히는 스킬들을 한정지었는데…… 이 직업이라면 대충 3배, 한 200~240개 정도는 익혀도 충분히 관리가 될 것 같았다.

“뭐 언젠간 나오겠지.”

변형검술을 익히다 보면 A랭크의 변형검술류 스킬인 크로스블레이드를 얻는 건 당연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덕분에 난 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게 좋았다.

괜히 조바심을 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

늘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나저나 이것들 거지잖아?”

난 썩은 나무괴물들이 쓰러진 곳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수거했지만 그중에 쓸 만한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전부 아카식 레코드 작업에나 쓰고 버려야 하는 잡템들 뿐이었다.

“이거 원…… 경험치도 아이템도 다 별로네. 아~ 이제 슬슬 3층으로 내려가야 하나?”

다크우드에서 사냥을 시작한 지 벌써 보름(게임시간)이 흘렀다.

그건 이제는 슬슬 2층에서의 사냥을 마무리하고 3층으로 내려갈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여기서 사냥하는 시간은 딱 한 달(게임시간)이 될 것이다.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이용한 후 유유히 사라져 줘야 제대로 던전을 탐험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4층이야 뭐 거의 던전 보스를 위한 층이니까…… 3층 정리는 대충 십 일 안에 끝내면 되겠군.”

지금 내 레벨이 48이다.

다크우드는 나의 아주 훌륭한 폐관수련 장소가 되어줬다.

레벨도 스킬 숙련도도 쑥쑥 잘 올랐다.

남들은 우왕좌왕하면서 한 3개월(게임시간) 동안 올렸을 법한 레벨을 난 단 보름 만에 올려버렸다.

물론 이곳에 들어오기 전 20레벨 정도까지 올렸던 건 사실이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남들보다 대략 4배 정도는 빠른 사냥 속도였다.

혼자서 파티사냥을 하듯 몰아서 잡는 것과 던전의 보너스 경험치 덕분에 나오는 속도였지만 어차피 그것들 모두 내가 내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어제 오프라인에서 확인한 결과 현재 최상위급 유저들 레벨이 170~190 사이였다.

아직 나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ONE’에서 레벨의 끝은 1,000이지만 사실상 1,000에 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레벨 업이 워낙 힘들어졌기에 일단 레벨이 200을 넘으면 익스퍼트급 유저라고 불렸고 400을 넘으면 마스터급 유저 500을 넘으면 하이마스터급 유저 그리고 700을 넘으면 그랜드마스터급 유저라고 불렸다.

이 등급은 그냥 유저들이 알기 쉽게 나누어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의미는 없었지만 등급 간의 능력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그 이유는 나누는 기준이 전직 레벨이었기 때문이었다.

총 다섯 번의 전직.

소문엔 900에 한 번 더해서 여섯 번이라는데……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전 최고 레벨이었던 유저가 876이었기 때문에 그 900에 있다는 여섯 번째 전직은 확인하지 못했다.

사실 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레벨이 700을 넘어가면 그때부턴 진짜 또 하나의 지옥이 시작된다고들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담 삼아 ‘ONE’에는 두 개의 지옥이 있는데 하나는 스킬 숙련도가 150을 넘으면 나오는 지옥이고 하나는 레벨이 700을 넘으면 나오는 지옥이라고 했다.

일명 ‘더블 헬(Double Hell)’이라 불리는 그 지옥들…… 그나마 첫 번째 지옥은 통과한 이들이 그럭저럭 존재했지만(사실 스킬의 방대한 종류를 보면 그들은 그저 맛만 본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지옥은 완벽하게 통과한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두 번째 지옥을 통과해야 올라갈 수 있는 레벨 900, 그건 그 당시 최고 레벨 유저도 앞으로 1년(현실시간)은 더 있어야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던 레벨이었다.

어쨌든 레벨은 뒤로 갈수록 올리기가 힘들다.

그리고 난 페널티도 있고 시간도 늦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의 속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속도를 내기 전에 일단 이놈의 가방부터 정리해야겠군.”

최초 용들의 호수 근처 마을에서 무려 천 골드를 지불 하고 사 왔던 최고급 무한의 가방이 벌써 꽉 차 있었다.

이게 무슨 무한의 가방?

무척 비쌌던 이 가방, 이것은 보통 게임을 시작하면 지급받은 마법 가방보다 10배가량의 물건들을 더 보관할 수 있었지만 나에겐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젠장 가방을 하나 더 사서 두 번째 가상가방으로 설정하고 싶어도 일단 익스퍼트등급(레벨200)까지는 올려야 하니…… 그게 문제네.”

2차 전직부터 전직할 때마다 한 개씩 가방을 추가할 수 있다.

모자라는 가방의 공간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미친 듯이 비싼(천 골드면 재수만 좋으면 A급 스킬북이나 어지간한 레어(푸른색)아이템도 구 할 수 있는 돈이었다.) 무한의 가방을 샀건만 역시나 벌써 그 한계를 드러냈다.

“젠장…… 망할 놈의 시약(試藥)들…….”

문제는 역시 시약들이었다.

시약이란 특수한 주문이나 소환술 또는 마법을 사용할 때 쓰이는 약재들이었다.

보통 시약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지만 그 종류가 무척 많았다. 전부 각각 쓸모가 있기에 충분한 양을 준비해야 했다.

심지어 어떤 스킬들은 매우 특이하고 희귀한 시약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이런 것을 감안 하면 육체를 이용한 기술을 사용하는 직업들이 편했다.

그 직업들은 그저 몇 병의 시원한 물약과 잘 손질된 붕대들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였다.

무한의 가방의 30%를 차지하고 있던 시약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럼 마찬가지로 30%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각종 물약을 버릴까? 당연히 그럴 수도 없었다.

차라리 사냥하면서 주웠던 쓸모없는 매직(녹색)아이템을 버리는 게 좋았다.

내게 중요한 건 첫째도 생존이요 둘째도 생존이었다.

당연히 시약과 물약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었고 매직아이템은 아니었다.

물론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이 아까운 것을 어떻게 그냥 버린단 말인가?

이럴 때를 대비해 난 아주 좋은 스킬을 배워왔다.

생산스킬 가운데 반은 연금술이고 반은 대장기술인 특이한 스킬이 하나 있다.

그래서 이 기술은 연금계열로 취급되면서 또 대장계열로도 취급된다.

마력핵추출(魔力核抽出) 스킬.

이 기술로 마력핵을 추출하면 그게 바로 마정석(魔情石)이다.

마정석은 그 용도가 아주 다양했는데 사실 마정석의 진정한 위력은 좀 많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마정석은 희귀하지만 잘 거래도 되지 않는 그런 계륵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당연히 마력핵추출 스킬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하는 스킬이었다.

그럼 왜 난 이 스킬을 익힐까?

당연히 다 이유가 있었다. 게임이 출시되고 현실 시간으로 3년, 게임시간으로 9년 뒤에 [The One Part2 : 우라노스의 반격]이라는 타이틀로 대규모 업데이트 이벤트가 발생한다.

마정석은 그때를 위해 미리 모으는 것이었다.

그 얘기는 뭐 아직 먼 미래의 얘기니까 다음에 하도록 하고…… 일단 결계석으로 안전지역을 설정한 난 버리고자 마음먹은 매직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력핵추출 작업은 간단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성공 확률도 무척 낮았고 성공을 해도 대부분 마정석 조각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바닥에 앉아서 앞에 놓여 있는 아이템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스킬발동 마력핵탐지(魔力核探知)!!

마력핵추출 스킬의 본질은 바로 아이템의 중심(핵)을 찾아내는 것.

스킬을 활성화시킨 나에겐 마치 아이템이 투시라도 된 것처럼 반투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상한 선들이 마구 교차하며 얽혀 있었고 그 선들을 타고 하얀빛 덩어리들이 끊임없이 순환했다.

‘그냥 대충 핵이나 뽑을 수 있게 하면 되지 뭘 이렇게 자세하게 만들어서는…….’

불평을 해도 소용없었다.

원래 좀 ‘ONE’은 귀찮은 면이 많은 게임이었다.

난 그 선들 사이를 유심히 살펴 붉은 점 하나를 찾아냈다. 이게 바로 내가 찾는 핵이다.

스킬발동 마력핵추출!

팟! 쩌정~!!

띠링, 마력핵추출에 실패하셨습니다.

“젠장!”

재수 없게 처음부터 실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계속되는 시도, 어차피 핵을 추출할 매직 아이템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남들은 생산 스킬 올리다가 깨달음을 얻어 경험치도 많이 얻고 스킬 숙련도도 대폭 올라간다던데…….’

아직까지 나에겐 그런 경우가 없었다.

물론 내 스킬의 95%가 전투스킬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원래 생산스킬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하긴 뭐 내가 이걸로 장인(匠人)이 되려는 것도 아닌데 뭐.”

장인이 되면 게임에서 큰 인정을 받는다.

장인이란 것은 생산스킬 몇 가지를 적어도 하이마스터 이상 올렸다는 소리.

그것은 즉, 길드나 연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유명한 장인들은 늘 대형 길드와 연합에 정중한 초청을 받았었다. 그렇게 장인은 장인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었다.

하지만 난 관심 없었다.

어차피 난 내가 자급자족할 정도의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끝이었다.

적당히 대충 장비를 수리할 수 있는 대장기술.

적당히 쓸 만한 회복 물약을 만들 수 있는 연금기술.

적당한 제련기술.

적당한 채집기술.

……등등

생산 기술은 진짜 적당한 것,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아, 마력핵추출 스킬 하나만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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