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전직 완료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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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에서 레벨을 빨리 올리려면 단순히 몬스터만 때려잡아서는 안 된다. 적절한 퀘스트와 사냥의 조화. 이게 빠른 레벨 상승을 위한 상식이었다.
퀘스트(Quest)는 그 숫자가 몇 개인지 절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했다.
퀘스트의 등급은 1~9등급까지 있었고 그 숫자가 낮아질수록 난이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유저들은 자신에게 알맞은 난이도의 퀘스트를 선택해 플레이했다. 동료들이 많거나 능력이 좋으면 높은 등급의, 동료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면 낮은 등급의 퀘스트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한 퀘스트와 사냥의 조합은 보통 사람들에겐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난 좀 달랐다. 난 원래 상식을 파괴하는 존재였다. 퀘스트와 사냥을 병행하려면 마을과 사냥터를 계속 오고 가야 했다. 그런데 난 그 이동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던전이었다.
던전이라면 사냥만으로도 충분히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던전은 PvP 존과 비슷한 특수지역이기 때문에 죽었을 때 아이템을 떨어뜨릴 수도 있었지만…… 난 어차피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단지 아이템 한 개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었기에 난 무조건 죽음을 멀리해야 했다. 던전이라면 괜찮은 아이템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나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용들의 호수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괜찮은 던전은 대략 일주일(게임시간) 정도를 이동하면 나오는 남부밀림지대였다.
비록 몬스터들의 레벨이 상당히 높았지만 외곽부터 잘만 공략하면 그다지 어렵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내가 찾던 소문난 저레벨 던전 중 하나였던 ‘다크우드(Dark Wood)가 존재했다.
더 결정적인 건 아직 아무도 다크우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저레벨 던전이었지만 그 위치가 절묘해 게임이 서비스 되고 대략 1년(현실시간)이 지난 후에나 발견되었던 다크우드.
난 그곳을 독점할 생각이었다.
사실 생각 같아서는 최고의 저레벨 던전이라는 히오나 사막의 스콜피온 납골당을 독점하고 싶었지만 그곳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유저들이 찾아냈을 것이다.
포기할 건 과감히 포기해야 했다.
이미 난 현실시간으로 8개월을 소비했다.
초반 8개월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일 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게임에 존재하는 좋은 것들 모두를 차지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난 과감히 8개월이란 시간을 버린 것이었다.
내가 첫 번째로 탐험을 할 다크우드는 전형적인 저레벨 던전이었다.
이곳은 대충 레벨 20~60까지의 유저들이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하는 곳이었다.
물론 난 파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왜? 내가 파티를 해야 하는가? 던전을 최초 발견한 사람은 기득권을 얻는다.
십 일(현실시간) 동안 무려 경험치 +20%에 아이템획득률 +20%.
이 좋은 걸 남들과 나눌 필요는 별로 없었다. 특히 내 직업의 특성상 난 파티플레이보단 솔로플레이가 훨씬 어울렸다.
난 용들의 호수 마을에 잠깐 들려 여행에 필요한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그리곤 일주일 동안 열심히 달려 남부밀림지대로 들어온 난 다크우드의 입구가 숨겨져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남들처럼 어딘가 숨겨져 있을 숨겨져 있을 입구를 찾으며 천천히 주변을 탐색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 근처 지리를 줄줄이 꿰고 있는 나였다.
그런 내가 왜 힘들게 탐색을 하는가?
난 그저 정확한 위치에 가서 그곳에서 탐색하면 끝이었다.
남부밀림지대라면 내가 한때 무척이나 헤집고 다녔던 곳. 당연히 이곳의 지리는 내 손바닥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난 빠르게 다크우드로 들어가는 입구가 존재하는 곳 근처에 도착했다.
“이쯤이었지?”
대충의 위치를 찾은 나는 재빨리 관찰스킬을 활성화시켰다.
이미 내 관찰스킬은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 하이마스터의 경지로 다가가고 있었다.
138.949, 이것이 현재 나의 관찰 스킬 숙련도였다.
이 정도 숙련도라면 상급 던전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높은 수치였다. 당연히 다크우드 같은 저레벨 던전은 그 위치가 아무리 교묘해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띠링, 숲의 어둠이 밀집되어있는 신비한 나무동굴을 찾았습니다. [던전: 다크우드 발견]
띠링, 교묘하게 숨겨있는 비밀 입구를 발견해 관찰 스킬숙련도가 0.006 상승합니다.
관찰스킬도 오르고 던전 입구도 찾고, 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칙칙한 나무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던전 다크우드를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한 달(게임시간)간 경험치와 아이템획득률이 +20%됩니다.
띠링, 모험의 신전에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모험의 신전에 등록하실 경우 이름이 등록되며 명성이 상승합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Y/N)
난 당연히 ‘N’을 가볍게 쳐주고 던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왜 등록을 하지 않는지 궁금한가?
내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등록하면 그 즉시 모험의 신전 게시판에 이곳의 좌표와 최초 발견자인 내 아이디가 기록 된다.
그럼 여기에 다른 유저들이 벌떼 같이 몰려드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벌써 전 세계에서 7천만 명의 사람들이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아마 조금 있으면 금방 1억 명까지 올라갈 것이다.
아무리 서대륙과 동대륙이 거대한 대륙이라고 해도 레벨업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7천만 명의 유저들이 가지고 있는 위력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그깟 명성은 다른 곳에서 올리면 그만이었다.
명성은 특별히 수치로 표시되는 게 아니었다. 명성이 올라가면 대충 ‘어느 지역에 누가 유명하더라’라는 식으로 NPC들이 얘기하곤 했다.
명성이 많이 올라가면 여러모로 좋은 점도 많았지만 난 솔직히 명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난 원래 체질상 앞으로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더 결정적으로 그것을 더 싫어하게 된 이유는 내가 얻은 직업 때문이었다.
원래 어디에서나 가장 앞장서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어 있었다.
괜히 명성을 올려서 유명해졌다가 전문 PK 단들과 싸움이라도 나면 그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었다.
일단 음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나서 여유가 되면 양지에 나가는 게 옳았다.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모험의 신전에 등록을 거부했다. 이 경우는 아마 나 이후로 이 던전을 찾는 이가 그 권리를 이어받을 것이다.
물론 그는 내가 얻은 경험치와 아이템 획득률 상승은 얻지 못하겠지만…….
스으으~
다크우드는 말 그대로 검은 나무, 그러니까 한때 하늘을 받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거대했던 나무가 쓰러져 썩으면서 생긴 긴 동굴이었다.
총 4개 층을 된 이 던전에는 주로 곤충류 몬스터와 식물류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난 잡화점에서 구입했던 라이트스톤(Light Stone)을 어깨보호구에 장착한 후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라이트스톤은 아주 밝은 빛을 내는 돌이었다.
이것이 없이 던전 탐사를 한다는 건 배도 없이 강을 건넌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누차 강조하는 거지만 ‘ONE’은 그리 친절한 게임이 아니다. 당연히 던전은 어두웠다.
예외적인 던전들도 많았지만 많은 숫자의 던전과 미궁들이 칠흑 같은 어둠을 품에 안고 있었다.
라이트스톤은 그런 어둠을 밝혀주는 도구였다.
그리 비싸지는 않았지만 싼 것들은 사용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비싸도 넉넉한 시간을 쓸 수 있는 고급형 라이트스톤을 사서 썼다.
난 아예 반영구형 라이트스톤을 사버렸다.
굉장히 비쌌지만 어차피 한두 번 쓸 것이 아니었기에 과감히 사버렸다.
이번에 이리저리 여행 준비를 하며 남겨두었던 돈을 다 써버렸다. 물론 아직 내가 미리 사두었던 저택 몇 채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그것들을 정리하면 됐다. 하지만 난 당장 그것들을 정리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자급자족하며 다시 천천히 돈과 아이템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돈이란 게 없으면 불편한 건 사실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분명 가지고 있는 게 좋았다.
차칵차칵차칵.
라이트스톤을 활성화시키며 주위를 밝히자 요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딱정벌레(Coleoptera)들인가?”
그것은 남부밀림지대의 대표적인 곤충형 몬스터였다. 각각의 개체는 무척 약했지만 워낙 다수로 몰려다녔기에 절대 방심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소리로 봐서는 대형 무리군.”
역시 던 전안이라서 그런지 그 무리의 숫자가 평범해 보이지가 않았다.
“딱정벌레 몰이 사냥이라…… 그렇다면 역시 이 두 가지가 좋겠군.”
난 지존신공과 분심공을 활성화시키며 양손으로 각기 다른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킬조합, 하급화염주술 화염의 인(刃) + 하급화염마법 파이어붐(Fire Boom)
화염폭풍(火焰爆風)!!
스킬조합, 하급뇌전주술 뇌정인(雷情刃) + 하급뇌전마법 쇼크웨이브(Shock Wave)
전격난무(電擊亂舞)!!
두 가지 스킬조합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한꺼번에 네 가지 스킬을 두 개씩 묶어서 발동시켜버리는 나.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건 오로지 나만 되는 것이다.
화르르르륵!
츠츠츠츠츳!
아무리 하급주술과 하급마법들이라지만 동시에 네 가지가 조합이 되어 발동되자 사방을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특히 상성상 불과 뇌전에 약했던 딱정벌레들은 한꺼번에 전기화염 통구이가 되어버렸다.
타타타타타탁!
마치 전자렌지에 팝콘을 튀기듯 사방으로 튕기며 죽는 딱정벌레들…… 이것이 말로 진정한 몰이 사냥이었다.
경험치?
당연히 잘 올랐다.
이것들은 적어도 20레벨 유저 4명 정도가 파티를 하고 몰아서 잡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난 혼자 잡는다.
비록 한 번 사냥할 때마다 마나소비가 커 약간씩 쉬는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그마저 남겨두었던 돈의 대부분을 써서 대량으로 구입해온 고급 마나회복 물약으로 어느 정도 커버하면 됐다.
퐁!
난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서 뚜껑을 땄다.
그것은 바로 고급 마나회복 물약.
물론 ‘ONE’에서 물약의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았고 그 쿨타임도 1분이나 되었기 때문에 무작정 물약만 믿고 돌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이렇게 1분에 한 병씩 고급 마나회복 물약을 마시게 되면 사냥 속도는 월등히 빨라질 것이다.
꿀꺽, 꿀꺽.
깔끔하게 물약을 마셔버렸다.
“캬아~ 이 맛 때문이라도 계속 마시고 싶단 말이야.”
물약은 진짜 시원하고 달콤하면서 개운한 맛을 냈다.
이것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청량음료보다 맛있다고 말했다.
이 맛, 정말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이 맛을 느끼며 난 점점 다크우드 안쪽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