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전직을 위한 수련 ― 1
* * *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현실에서도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게임을 시작한 그는 단 한 가지의 분야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했던 그는 비록 큰 능력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누구보다 다재다능한 캐릭터를 육성시켜 갔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정말 재미있는 직업을 얻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그에게 찾아온 기연 같은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함에 대한 그의 집념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우고.
그 와중에 스킬 숙련도 관리는 정말 엉망이 되었지만 그는 비록 한 가지 스킬 숙련도를 높게 올리지는 못해도 여러 가지 스킬 숙련도를 적당한 수준까지는 계속 유지시켰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다양함이었기에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그는 그렇게 꽤 오랜 세월 동안 계속해서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계속 뭔가를 얻었다.
최종적으로 그가 스스로 밝힌 그의 직업은 전능자(全能者)였다.
그의 이름은 프로이드(Freud).
천무칠성의 일인이자.
가장 유명한 레이드팀 중 하나였던 ‘헬(Hell)’의 팀장이었던 그는 유명 게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비밀로 간직되었던 자신의 직업에 대한 비밀을 밝혔었다.
그는 그 인터뷰에서 진지하게 얘기했다.
내가 얻은 전능자는 분명 이 길의 끝이 아니다.
난 결국 미완성으로 끝을 냈다.
하지만 만약 나와 같은 길을 걷으려는 이가 있다면 부디 그 끝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비록 세월이 많이 흘러 의미가 많이 없어졌겠지만 그래도 아주 큰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전능자 직업을 얻는 방법을 나 스스로 밝힌 이유는 누군가 나의 뒤를 이어 언젠간 이 길의 끝을 밝혀 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게임은 그리 쉽게 엔딩을 볼 수 있는 게임이 아니지 않은가? 도전할 수 있으면 도전하라!
물론 이미 그때는 게임이 서비스되고 8년 가까이 흐른 뒤였기에 그의 그런 발언은 그저 팬서비스 같은 것일 뿐이라고 혹평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발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길을 가려고 새로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으니 그가 완전히 팬서비스 차원에서만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프로이드가 얻은 전능자라는 직업만 해도 상당히 독특한 직업이었다. 그는 그 직업을 얻어 전능자라는 이름처럼 정말 모든 능력에 만능인 존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무척 독특한 능력 몇 가지를 얻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는 독특한 능력을 얻은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포기했을 것이다.
이게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사실 ‘ONE’에서 직업이란 것은 그 사람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직업의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물론 때론 같은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만의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검사(劍士)계열의 직업을 얻기 위해 두 사람이 똑같이 수련했어도 그 둘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직업이 조금씩 다르게 결정되곤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직업에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직업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였다.
아무리 흔해 보이는 직업이라도 그 사람이 잘 활용만 한다면 그 직업은 더없이 강해질 수 있었다.
그 단적인 예가 내가 살았던 전 생애에서 최상위 랭커 100명 중 80명 정도가 그다지 큰 특징이 없는 무척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특이한 직업들, 사람들이 흔히 스페셜클래스 또는 히든클래스라 불리는 직업들이 기본적으로 일반클래스들보다 좀 더 좋은 능력들을 가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능력들이라고 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질 경우 일반 직업들보다 더 안 좋아질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스페셜클래스였다.
실제로 우연히 스페셜클래스를 얻은 수많은 사람 중 대부분이 그 직업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진정한 스페셜클래스의 힘을 얻지 못했었다.
그래서 결국 스페셜클래스를 포기하고 오히려 이해도가 낮아도 쉽게 힘을 얻을 수 있는 일반클래스로 전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ONE’에는 수많은 스페셜클래스가 존재하는 건지 몰랐다.
그건 마치 성난 황소를 다루는 로데오와 비슷했다.
게임 속에 성난 황소는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었다.
단지 그 황소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일 뿐이었다.
프로이드는 그 황소 중 한 마리를 멋지게 조련했다.
그래서 나도 황소를 얻을 것이다. 프로이드의 황소보다 더 크고 사나운 놈으로…… 그런 뒤 그 황소를 확실히 조련할 생각이었다.
내 황소의 이름이 무엇일까?
벌써부터 그게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피나는 수련의 시간이!
* * *
내가 무작위로 익힌 스킬의 종류는 무려 2144가지였다.
사실 ‘ONE’에 존재하는 스킬의 종류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지만 각각 몇 가지씩 거의 다른 종류의 스킬들로만 구하다 보니 구할 수 있는 한계가 이 정도였다.
이것도 경매장을 탈탈 털어서 구한 거였다.
더 구하려면 직접 사냥을 하거나 던전 같은 곳을 탐험해야 했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현재로서는 스킬 수련만으로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난 2,144가지의 스킬을 비슷한 종류별로 구분해보았다.
검법계열.
무투계열.
마법계열.
주술계열.
소환계열.
내공(마나연공)계열.
원거리공격계열.
보조스킬계열.
증폭계열.
보법계열.
신성계열.
봉인계열.
조련계열.
정령계열.
특수계열.
기타계열.
일단 크게 16가지 계열로 나누었다.
세부적으로는 여기서 또 각 계열마다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누었지만 어쨌든 크게는 16가지였다.
먼저 시작할 것은 이 16가지 계열의 모든 스킬을 조금씩 익히며 선별을 해야 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2,144가지의 모든 스킬을 다 올릴 수는 없었다.
버릴 건 버려야 했다.
1차 선별에서 반 정도는 버릴 생각이었다.
그 상성이 너무 지독해 숙련도가 심하게 떨어지거나 내가 생각했던 조합에 어울리지 않는 스킬들을 과감히 버려야 했다.
그렇게 1차 선별을 끝내고 난 후에도 선별이 끝난 건 아니었다.
2차 선별은 스킬을 버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단 우선적으로 올릴 것들을 고르는 선별이었다.
2차 선별을 통해 16가지의 계열 중 각각 2개씩 그 계열을 대표하는 스킬들을 고른다.
총 32개.
난 그 30개를 집중적으로 수련하면서 나머지 버리지 않은 스킬들을 천천히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아마도 전부를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 반만 가지고 갈 수 있어도 큰 성공이었다.
어쨌든 지금의 내 계획은 이랬다.
하지만 늘 변수는 존재하는 법.
이 계획이 어떻게 바뀔지는 나도 몰랐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마침 용들의 호수 근처에는 혼자만 집중해서 스킬 수련을 할 만한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그렇기에 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오로지 스킬 수련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많은 스킬북들을 사들이고도 돈이 남았기에 난 미리 그 돈으로 용들의 호수에 존재하는 저택 몇 개를 사버렸다.
알짜배기 저택들이라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고 유저들이 대거 용들의 호수로 유입되면 엄청난 가격에 되팔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돈을 불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다른 것들은 모두 준비되었다.
이제 남은 건 두 가지.
바로 시간과 집중이었다.
* * *
초반은 순조로웠다.
타이틀 효과와 내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스킬 수련법이 어울리며 빠른 속도로 스킬들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검술, 무투, 보법, 증폭, 내공 계열은 내가 전생에서도 비슷한 스킬들을 올려봤기 때문인지 더 잘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엉뚱하게도 다른 스킬들보다 쉽게 올릴 수 있었던 몇 가지 계열에서 발생했다.
판단 착오였다.
오히려 쉽게 올릴 수 있어 편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었다.
한 번 균형이 깨지자 그것을 바로 잡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올라간 숙련도보다 떨어진 숙련도가 더 높으면 그건 실패였다.
그런데 균형이 깨지자 자꾸 실패했다.
간단한 파이어애로우(Fire Arrow) 한 방에 기껏 열심히 올렸던 검술과 무투, 보법, 내공 스킬이 동시에 떨어지거나 검술을 조금 올렸더니 마법, 주술, 소환, 신성계열이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로 발생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속성이 다른 스킬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없을까? 조화가 불가능하다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계속되는 고민.
그러던 와중 내 눈에 들어온 무공이 두 개 있었다.
분심공과 지존신공.
현재 지존신공의 숙련도는 30이었다.
그리고 분심공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태였다.
숙련도가 30이 된 지존신공에 몇 줄의 무공 능력이 나타나 있었다.
지존신공을 바탕으로 스킬(무공)을 펼칠 수 있습니다. 펼칠 수 있는 종류의 한계는 없습니다. 지존신공은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모든 스킬(무공)을 지배합니다.
지존신공을 바탕으로 다른 스킬을 펼치면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는 아직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더 숙련도를 올려야 나타날 것 같았다.
효과도 나와 있지 않았지만 난 자꾸 지존신공 쪽으로 눈이 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분심공까지…….
왠지 이 두 가지 무공이라면 내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비록 그것이 무모한 도전이라 할지라도 해봐야 했다.
난 그때부터 분심공과 지존신공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분심공을 동대륙에서 얻어야 할 네 가지 중 하나로 선택했던 이유는 스킬 수련을 위해서가 아닌 나중에 스킬 수련이 끝나고 스킬을 조합해서 사용하는 실전 단계에서 아주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랬던 분심공을 스킬 수련에서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어쨌든 난 지존신공을 계속 운용하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분심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분심공은 마음을 나누어 동시에 몇 가지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무공.
난 나누어진 마음으로 일단 몇 가지 기본적인 스킬 수련을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마법의 기초라 할 수 있는 1써클의 라이트(Light)의 수인(手印)을 맺으며 왼손으로는 일반검술기술 중 하나인 올려 베기를 시전했다.
그뿐인가? 양발은 일기보(一氣步)를 걷고 있었고 입으로는 초급주술 중 하나인 화염(火焰)의 술(術)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번쩍! 휘익!
파팟! 화륵!
꽝!
동시에 네 가지 스킬이 활성화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