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7화 (17/250)

017. 서대륙을 향해! ― 2

* * *

너무 쉽게 생각했다.

마단조는 어떻게 이걸 314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걸까?

이번만큼은 천운(天運)같은 건 내가 아닌 그녀에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벌써 무려 2,181번째 시도를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죽고 부활하고 다시 몸을 던지고 또 죽고 부활하고…… 이걸 무한반복 하는 중이다.

대략 하루에 50번 정도를 시도할 수 있었다.

난 현실 시간으로 이 주 동안 이 짓만 계속하고 있었다.

사실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아무리 넘어갈 수 있다는 확신으로 무장한 대단한 끈기를 가진 나라고 해도 2,180번 죽고 부활하고를 반복하는 건 견디기 힘든 고역이었다.

그동안 사들인 물통과 나룻배도 엄청났다.

얼마나 그것들을 사들였으면 나와 마을의 대장장이와 조선소 상인의 친밀도가 거의 맥스(MAX)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들은 이제 나를 거의 친구처럼 대한다.

늘 반갑게 인사하는 그들…… 하지만 난 진짜 이제 더 이상 그들과 인사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

폭풍해류에 휘말려 죽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도대체 마단조라는 여자는 어떻게 이것을 버텼는지 궁금했다.

난 그녀의 근성을 인정 안 할 수가 없었다.

“휴우~ 여자도 한 걸 내가 못 할 리 없다!”

근성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포기 할 수 없었다.

멀리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폭풍해류가 보인다. 징글징글한 광경…… 이제는 배에 올라서 눈을 감고 몰아도 폭풍해류 근처까지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드득.

난 아주 잠깐 폭풍해류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아마도 만약 내가 이 폭풍해류를 건넌다면 한동안 이쪽으로는 침도 뱉지 않을 것 같았다.

털컹!

난 준비해온 물통에 기어들어 간 후 안쪽에서 물통의 뚜껑을 단단히 밀봉(密封)했다.

그리고 폭풍해류 쪽으로 힘차게 몸을 굴렸다.

풍덩!

바다에 빠지는 물통.

바다에 빠진 물통은 빠르게 폭풍해류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드드드드!

심하게 요동치는 물통.

난 몸을 물통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버텼다.

‘제발! 이번에는 제발!!’

그동안 날 잘만 도와주는 하늘이 이번만큼은 왜 이렇게 안 도와주는지 모르겠다.

2천 번이 넘은 지도 좀 되었다.

이젠 좀…… 넘어갈 때도 되지 않았나?

“제발!!!!”

그게 내가 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외친 한 마디였다.

* * *

끼익.

꽝!

난 힘차게 뚜껑을 발로 차버렸다.

아주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았는데 가상현실시계를 보니 무려 하루가 지나 있었다.

“허억…… 여기가 어디지?”

물통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변이었다.

동대륙의 그것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헛!”

난 깜짝 놀랐다.

이곳은 분명 동대륙이 아니었다. 아주 익숙한 풍경은 아니지만 이 분위기는 대충 기억이 났다.

이곳은 틀림없는 서대륙이었다!

“서, 성공인가?”

드디어 그 지긋지긋하던 물통과 안녕이었다.

난 재빨리 물통에서 뛰쳐나와 해변에 상륙(?)했다.

“대충 용들의 호수 근처인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풍경이 왠지 용들의 호수(Dragon Lake) 근처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그 특유의 향기.

좀 짐승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난 확실히 지역마다 각각의 특색 있는 향기를 기억하고 있다.

“재수는 좋았군.”

확실히 재수는 좋았다.

용들의 호수라면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다. 고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한 마리의 드래곤이 잠자고 있는 호수와 그 근처 지역을 용들의 호수 지역이라 불렀다.

잠들었다고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인건가?

이 호수 근처에는 크게 위험한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 근처에서 몇몇 큰 던전이 발견되겠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일단 마을로 가자!”

여기서 이렇게 경치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시가 바빴다.

일단 한시라도 빨리 영혼석에 영혼을 저장해야 했다. 자칫 실수로 죽기라도 한다면? 그 뒤는 생각하기도 싫다

“가만있자…… 이 근처에 마을이 하나 있을 텐데.”

이 지역의 지형을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충 이 근처에 마을이 하나 있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곳에 위험한 몬스터는 거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이곳은 일종의 PvP 존이라 몬스터들이 마구 등장하는 지역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이곳을 점령한 이들이 없을 테니 내가 PvP 모드만 활성화시키지 않으면 끝이었다.

난 재빨리 기억을 더듬으며 마을을 찾아갔다.

기억력이 너무 좋은 걸까?

솔직히 요즘은 나도 나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져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렇게 똑똑해 졌었지?

시간을 거슬러 올랐을 때부터? 그때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특히나 게임에 관련된 것들은 너무나 잘 기억이 났다. 내 집념이 만들어낸 기적일까?

뭐가 어쨌든 확실히 여러 가지를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마을이었다.

비교적 큰 규모의 마을.

마을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 정도 크기의 마을은 대략Town[자치시] 급 정도였다.

마을은 그 크기의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었는데 최초 Hamlet[촌락]을 시작으로 다음이 Village[중형마을]이었다.

그리고 다음이 Town이었고 그 위로 City[도시]가 있었다.

이 네 가지 분류를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 특수한 분류가 존재했지만 어쨌든 이 네 가지가 가장 대표적인 마을의 분류였다.

더 자세하게 분류하자면 각 등급마다 또 세부적인 등급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일단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Town급 마을이라서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다른 허술한 마을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특히 동대륙과 서대륙은 그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마을의 초입부터 확 느낄 수가 있었다.

철컥!

두 자루의 장창을 교차시키며 나를 막는 경비병들.

그들은 마을의 자치대 소속 NPC였다.

“멈춰라.”

“누구냐?”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말을 하며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차피 난 이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용들의 호수는 시작 지점들 중 하나가 아니었고 서대륙에서도 무척 오지에 속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유저들의 방문이 뜸할 수밖에 없었다.

유저들의 방문이 뜸하다는 건 그들의 영향력이 작다는 것이고 그렇다는 건 아직 여긴 NPC들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런 자치 경비대의 NPC들은 낯선 이방인에 대해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걱정할 건 하나도 없었다.

이럴 땐 그저 가장 좋은 인사법이 하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불멸의 인(印)을 지닌 체 이오스대륙을 떠도는 여행자입니다. 은혜로운 주신 가이아의 부름으로 이곳까지 온 저에게 마을로 들어갈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오래된 속담이 하나 있다.

그리고 ‘ONE’에서는 진짜 그 속담처럼 말만 잘해도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상대가 NPC라고 함부로 말하는 작자들?

그들은 멍청하고 한심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띠링, <훌륭한 언변, 용들의 호수 자치 경비대원들은 당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NPC들과의 친밀도가 상승했습니다.>

“흐음, 요즘 자네 같은 여행자들이 종종 찾아오더군. 하지만 자네처럼 정중한 사람은 처음 보네. 자네야말로 우리 마을 같은 품위 있는 곳에 딱 어울리는 여행자일세.”

단 한 마디의 말이었지만 그걸로 난 경비대원들과의 친밀도를 상당히 높였다.

이게 바로 말의 힘이었다.

실제로 이 말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유저들도 다수 존재했었다.

비록 내가 그들처럼 전문적으로 말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흉내는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흉내는 종종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감사합니다. 두 분 같은 훌륭한 기사분들이 마을을 지켜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 이 마을에서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치 경비대원들한테 기사라는 호칭을 붙인 건 분명 과한 찬사였지만 뭐 어떤가?

말 한번 해 주는데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몇 마디의 말로 경비대원들의 큰 환심을 산 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몇 가지 소소한 정보를 말해 준 경비대원들을 뒤로하고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은 무슨 술집에 술이 맛있고 어떤 여관을 숙소로 정하는 게 좋고 마을에 특산품이 뭔지 주절주절 얘기해주었다.

말 그대로 소소한 정보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정보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가끔은 이런 정보들 속에 아주 대단한 정보가 숨겨진 경우도 있어 난 끝까지 그 정보들을 다 머릿속에 넣은 후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마을 안에서 영혼석의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영혼석은 대부분 마을 중앙에 위치해 중앙을 향해 가면 끝이었다.

그렇게 손쉽게 영혼석을 찾는 난 무려 50골드라는 거액을 주고 영혼을 등록시켰다.

그나마 내가 레벨이 1이니까 50골드밖에 안 들어간 것이지 레벨이 조금이라도 높았으면 그 액수가 천문학적으로 들어갔을지 모른다.

원래 영혼석에 영혼을 등록시키는 건 내가 그전에 등록했던 영혼석과 지금 등록하려는 영혼석의 거리에 따라 그 액수가 달라졌는데 동대륙과 서대륙의 영혼석 거리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비록 50골드라는 거금을 썼지만 난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서대륙에 완벽하게 정착했다.

이제 남은 건 직업을 얻는 것뿐이었다.

물론 직업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난 대략 게임시간으로 14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을 사용했다.

현실 시간으로는 5개월이 좀 안 되는 상황.

만약 죽자고 레벨을 올렸으면 거의 100을 넘어 120 정도까지는 갔을 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내가 알고 있는 최상위 랭커들이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 게 이쯤부터였다.

여기까지는 거의 어중이떠중이가 설치는 단계였다면 지금부터는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골수 게임폐인들이 본격적으로 달리는 단계였다.

나도 달릴 생각이었다.

물론 레벨로 달릴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달릴 생각인가?

그것의 대답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난 지금 동대륙에서 가져온 넉넉한 여유자금으로 경매장을 털고 있었다.

내가 사들이는 것들은 바로 스킬북.

동대륙에서 그랬듯이 난 서대륙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스킬북들을 다 사들이고 있었다.

무슨 목적인가?

왜 난 레벨1에 서대륙과 동대륙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스킬을 배우려고 하는 건가?

이것은 내 직업과 관련된 일이었다.

레벨로 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난 분명 달린다.

무엇으로?

바로 스킬 숙련도로 달린다.

내가 하려는 짓은 일명 ‘숙련도 작업’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물론 이 짓을 레벨 1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더라도 몇 개의 스킬만 가지고 할 뿐이었다.

앞서도 얘기했었지만 스킬 숙련도라는 건 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작정 아무 스킬들이나 다 같이 수련한다고 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당연히 그런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잘 아는 내가 왜 엄청난 종류의 스킬들을 모두 배운 것일까?

설마 이것들을 전부 올리려고 하는 건가?

맞다.

난 이것들을 다 올릴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계속 수정을 해서 최종적으로는 딱 20가지 정도를 고를 생각이다.

그것도 그 분류가 전혀 다른 20가지로.

미친 짓일지 몰랐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해야 했다.

그리고 할 수 있었다.

나에겐 사기 타이틀이라 불리는 ‘더 로드’가 있었다. 그리고 난 그 누구보다 스킬 숙련도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친 짓으로만 보이는 이 작업에 가능성이란 게 생겼다.

내가 원하는 직업.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 작업이 분명 필요했다.

사실 난 그 직업의 이름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 직업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 기억 속 한구석에 남아 있던 한 가지 정보…… 그 정보는 분명 그 직업의 존재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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