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서대륙을 향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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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걸어서 폭풍해안에 도착한 나는 근처 마을에서 생각해뒀던 것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천룡벽이 폭풍해안과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만약 멀었다면?
난 아마 엄청 고생했을 것이다.
폭풍해안 근처 마을에서 약간의 돈을 주고 영혼석에 영혼까지 각인시킨 나는 그동안 낚아 올렸던 대어들을 다시 풀어 놓기 시작했다.
이제야 게임에 대해 좀 알게 된 유저들은 내가 싼값이 사들였던 그 물건들을 다시 비싼 값에 사 가기 시작했다.
거의 바닥을 보이던 내 재산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대어들은 경매장에 올라가기만 하면 무섭게 경쟁이 붙어서 서로 사려고 난리였다.
특히나 몇몇 물건들은 경매연장을 신청하면서까지 서로 사려고 했다.
경매금액으로 봐서는 대형 길드들까지 나선 게 분명했다.
어차피 나야 가명으로 물건들을 풀고 있었으니 그들이 어떤 경쟁을 펼치던 별로 상관없었다.
난 그렇게 차근차근 물건을 풀면서 내가 생각해뒀던 몇 가지 특이한 물건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마침 마을엔 솜씨 좋은 NPC 대장장이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대장장이 유저들을 찾지 않아도 충분했다.
재료를 사고 물건을 만들고…… 그뿐인가? 여긴 해안가 마을이었기 때문에 작은 배 같은 것도 팔았다.
난 그 배도 계속 대량으로 사들였다.
돈은 많았다.
내가 미리 선점했던 물건들을 팔기 시작하자 돈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쌓이고 있었다.
당연히 물건을 만들고 배를 사도 돈은 남았다. 난 남는 돈으로 경매장에 올라온 다양한 종류의 스킬(무공)서적을 사들였다.
이유는?
당연히 모두 배우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지금 당장 숙련도를 올릴 생각은 없었다. 단지 일단 배워 두기 위한 것이었다.
배울 수 있는 스킬의 숫자 제한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난 동대륙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스킬들을 다 배워나갔다.
특수한 물건을 만들고, 배를 사고, 수많은 종류의 스킬을 배우고…….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궁금한가?
눈치가 빠른 이들이라면 이미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서대륙으로 갈 생각이었다.
‘미쳤어!’라고 방금 외친 사람, 알고 있다.
나도 지금 내가 하려는 짓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오랫동안 검토까지 한 일이다.
가능성?
있다.
비록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분명히 있었다.
죽음의 산맥 쪽에는 절대 가능성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 거기를 통과한 이라고 해봤자 지금으로부터 한 8개월…… 게임시간으로 2년은 더 있어야 한 명 나올 것이다.
최상위권 유저들로 만들어진 2개의 파티연합(14명)이 오랜 준비 끝에 도전했는데 끝까지 살아서 죽음의 산맥을 넘은 건 오로지 한 명.
나중에 그들은 스스로 지금 이 산맥을 넘는 선택을 한 건 잘못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피해를 많이 입고 산맥을 넘었건만 이득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맥을 넘어온 유저도 호기 좋게 넘어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동안 같이 호흡을 맞췄던 동료들이 전혀 없는 동대륙에서는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래서 그는 죽음의 패널티를 감내하고 다시 서대륙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유령으로…….
사실상 죽음의 산맥을 통한 왕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건 현실 시간으로 대략 1년하고도 6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그제야 유저들 스스로가 죽음의 산맥을 가로지르는 긴 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산맥과 비견되는 폭풍해류는?
딱 잘라 말해서 내가 게임을 그만두는 그날까지도 폭풍해류를 정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찍이 해양 쪽에 관심을 뒀던 많은 사람들도 폭풍해류는 다 포기했다.
서대륙에서 더 서쪽에 존재하는 아이스랜드(Ice Land)나 동대륙에서 더 동쪽에 존재하는 흑사도(黑死島)같은 수많은 유명한 섬을 전부 개척한 그들도 절대 폭풍해류는 넘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모두가 절대 넘을 수 없다고 포기한 폭풍해류.
하지만 늘 그렇듯 꼭 안 된다고 하면 미친 듯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단조(魔單朝)라는 유저가 있었다.
그녀는 여성 유저로서는 특이하게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삶을 살아갔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살아가는 목표였고 살아가는 이유였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오지를 탐험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는 모험가였던 그녀는 게임에서도 결국 그와 비슷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룡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른다거나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소문난 만장애(萬丈崖)의 끝을 찾겠다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내려가곤 했다.
그녀는 그밖에도 많은 일을 저질렀지만 단연코 그중의 백미는 폭풍해류를 건너겠다고 나섰을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 넘을 수 없다고 선언했었던 폭풍해류.
하지만 마단조는 세상일에 절대는 없다고 주장하며 계속해서 폭풍해류에 도전했다.
이미 그 당시에는 끝없는 도전가라는 별칭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그녀였다.
그때 당시만 해도 그녀는 몇몇 게임방송에 자신만의 고정 방송프로그램까지 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 실제로 그녀는 스폰서까지 두고 있는 프로게이머였다.
이미 많은 지원을 받고 있던 그녀의 도전은 체계적이면서 끈질겼다.
일류 조선(造船) 기술자들과 많은 종류의 특수한 배를 만들어서 도전하거나 특수한 무공을 입수해 직접 건너가 보려고 하기도 했다.
실패는 계속되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많이 흐르고 많은 사람이 떠났다. 스폰서도 떠나고 그녀를 응원하던 팬들도 떠났다.
당연히 방송국도 관심을 끊었다.
어찌 보면 완벽하게 실패라고 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써가면서도 그녀는 계속 도전했다.
몇몇 팬들은 그런 그녀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고 다른 도전과제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시기에 그녀는 오로지 고집만 남아 있었을지 몰랐다.
그렇게 또 시간이 좀 많이 흘렀었다.
모두가 잊었다. 그나마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던 이들마저 모두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짧은 글 한 줄을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겼다.
“난 드디어 폭풍해류를 건넜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게임에서 보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그런 그녀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거짓말이란 수단으로 마지막을 장식했을 뿐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녀를 믿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녀가 진짜 폭풍해류를 건넜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조사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레벨이 적지 않게 높아 레벨랭킹 1위부터 10,000까지 나오는 랭킹표에서 중간쯤 속해 있던 그녀의 이름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캐릭터를 삭제해도 랭킹표에서는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요상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추리하기를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몇 명의 사람들은 더 집요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사 끝에 그들은 그녀가 진짜 폭풍해류를 건넜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들은 철저히 비주류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의견은 무시당했고 사람들은 그들의 조사를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했다.
나도 당시에는 그들의 조사를 믿지 않았다.
폭풍해류를 건넌 그녀가 왜 사라졌겠는가? 난 전부 거짓말이니까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딱 한 달 전, 유명 게임방송에 정말 오랜만에 얼굴을 비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끝없는 도전가 마단조였다.
그녀는 당당하게 방송에 출연해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얘기들을 하나하나 해명했다.
그리고 진짜 폭풍해류를 건넌 증거와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모든 건 진실이었다.
그녀는 정말 폭풍해류를 건넜고 그 방법은 단순무식하면서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물론 그 대가와 성공확률이 무시무시했기에 그녀 이후에 아무도 똑같은 방법으로 폭풍해류를 건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음의 산맥을 이용하면 편하게 건널 수 있었기에 당연히 그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르며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하튼 그녀는 다시 끝없는 도전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난 지금 그런 그녀가 시도했던 방법으로 폭풍해류를 건너려 하고 있다.
내가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건 작은 나룻배와 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물통이다.
그녀는 나룻배를 타고 폭풍해류가 요동치는 바다 근처까지 간 후 이 물통에 들어가 물통을 완벽하게 밀봉하고 그 안에서 몸을 굴려 폭풍해류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그 뒤는 무조건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고 오로지 물통 안에서 버티기만 했던 그녀.
하지만 그녀는 이 방법으로 분명 폭풍해류를 건넜다.
그런 그녀 때문에 건널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난 커다란 창고를 하나 대여해서 거기에 나룻배와 물통을 사 모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돈은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액수의 돈이 나에게 배달되고 있었다. 오히려 이대로라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의 돈이 남을 것 같았다.
마단조는 대략 314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러면서 자신은 재수가 좋았다고 말했다. 즉, 재수가 나쁘면 얼마나 더 시도해야 할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난 대략 천 번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난 그녀처럼 죽고 나서 며칠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동 불가능한 지역에서 사망할 경우 자동으로 마을로 워프가 되기 때문에 난 바로바로 부활할 수 있었다.
내가 레벨 업을 안 한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레벨 다운도 없었고 스킬 숙련도 다운도 없었다. 아~, 내가 열심히 올렸던 관찰 스킬?
그건 어차피 보호스킬로 지정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관찰스킬을 보호스킬로 등록하면 죽음이 전혀 무섭지 않은 완전한 캐릭터가 되었다.
죽음에 대한 페널티도 무섭지 않고 부활도 바로바로였다.
남은 건?
당연히 미친 듯이 들이박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