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4화 (14/250)

014. 마지막 한 가지 ― 1

* * *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한 가지 발표와 동시에 동대륙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수많은 길드가 한꺼번에 이곳 천룡벽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들은 천룡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몇몇 장소를 장악하고 다른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었다.

당연히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왜 다수의 길드가 갑자기 천룡벽의 소유권을 주장한 것일까?

이 분쟁의 시작은 앞에서도 한 번 얘기했던 비밀파괴자 동방갑자 때문이었다.

동방갑자는 대략 ‘ONE’이 서비스되고 현실로 3년 정도가 지났을 때 엄청난 발표를 한다.

“천룡벽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곳은 살아 있는 무(武)의 보고이자 무의 스승이다. 그곳에 숨겨져 있는 무공은 수백, 아니 수천…… 수만 가지? 사실 나도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무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 역시 그곳에서 몇 가지 무공을 습득했고 지금 그 무공들은 내가 주로 사용하는 주력 무공들이라는 사실이다. 난…… 비밀파괴자로서 이 비밀을 좀 더 일찍 공개했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용서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이라도 많은 유저가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기를 빌 뿐이다.”

간단하고 짧은 발표였지만 그것은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왔다.

많은 사람이 천룡벽으로 몰려들었다.

심지어 서대륙에서 게임을 즐기던 유저들은 왜! 서대륙에는 천룡벽 같은 것이 없냐고 거세게 항의까지 했다.

그 뒤 대형길드들이 천룡벽의 소유권을 두고 전쟁을 벌이고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천룡벽은 대형길드들의 행태에 불만을 느낀 엄청난 수의 일반 유저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결국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었다.

그 뒤 천룡벽은 천룡무벽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무공을 얻었다.

재미있는 건 그곳에서 무공을 얻은 이 중 같은 무공을 얻었다고 알려진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최초 동방갑자의 발표가 있고 나서 사람들은 아무나 무조건 무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천룡벽은 의외로 깐깐했다.

깨달음이란 다소 뭐라 정의하기 모호한 단계를 거친 이들에게만 무공을 내주었다.

그것도 전부 다른 종류의 무공들이었다.

등급도 달랐고 그 성질도 달랐다.

공통점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무공들…… 어떤 이는 하급의 검법을 얻었고 어떤 이는 상급의 내공심법을 얻었다.

무엇이 진정 천룡벽의 무공인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 모든 것이 천룡벽의 무공이라 말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천룡벽의 무공이 아니라고 말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천룡벽에는 심오한 무공의 구결이 숨겨져 있었고 그 구결은 무한에 가까운 변화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전생에서 나는 천룡벽의 무공을 얻지 못했다.

이유는 모른다.

내가 무엇인 부족했는지…… 천룡벽은 나에게 무공을 내어주지 않았다.

천룡벽의 무공은 오로지 연자(緣者)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전생에서의 나는 연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연자가 될 것이다.

어떤 자격을 얻어야 연자가 되는지 솔직히 알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미래를 알고 있는 나라도 답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노력이었다.

“여기쯤이 좋겠군.”

난 천룡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 간단한 움막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충분히 준비해 왔다.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하나, 바로 천룡벽을 내려다보며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 * *

최초 내가 최대한으로 설정한 시간은 게임시간으로 두 달이었다.

이미 게임 시간으로 9개월 이상을 소비했기에 앞으로 동대륙에서의 여유시간은 3개월 정도밖에 없었다.

게임시간으로 1년, 이게 내가 얻어야 하는 네 가지를 위해 할당한 시간이었다.

너무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정보 부족으로 초기의 ‘ONE’은 발전 속도가 무척 더디겠지만 그래도 너무 늦어지면 내가 미리 선점하려고 했던 것들을 남들에게 빼앗길 위험이 있었다.

난 두 달이란 시간 동안 천룡벽에서 나에게 맞는 무공을 얻을 생각이었다.

난 이미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단학(丹學)을 공부하며 참선에 익숙해져 있었다.

천룡벽을 염두에 두고 배웠던 단학.

그것이 어떤 도움을 줄지는 솔직히 몰랐지만 어쨌든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참선하며 관찰스킬을 최대한 이용해 천룡벽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흔히 지루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단연코 확신하건대 천룡벽을 바라보며 참선을 하는 것만큼 지겨운 것은 없을 것이다.

난 두 달 동안 참선을 하며 천룡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무공을 얻지 못했다. 최초 두 달이란 시간을 한계로 보았기 때문에 나는 사실 여기서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아쉬웠다.

전생에서도 얻지 못했던 천룡벽의 무공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기회를 얻고도 또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위안이라면 관찰스킬이 무척 잘 오르고 있다는 것 하나?

어느새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관찰스킬은 벌써 104.020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찰 스킬은 스킬 숙련도만 잘 오를 뿐 천룡벽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난 근본적인 부분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왜 난 깨달음을 얻지 못하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

‘무엇을 원하는가?’

‘난 왜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서까지 게임에 집착하는가?’

‘지난 생이 후회스러운가?’

‘겨우 게임일 뿐인데…… 왜 그토록 목을 매는가?’

‘결국 내가 원하는 건 한 줄의 무공뿐인가?’

수많은 의문…… 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했다.

난 그렇게 점점 무아(無我)의 경지로 빠져들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잊었다.

환각일지 몰라도…… 난 나 자신이 게임에 접속해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게임 접속을 잠시 해지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원래 현실 시간으로 이틀이 지나면 위험경고가 뜨면 자동으로 게임의 접속이 해지 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것조차 잊어버렸다.

며칠이 지난 건가?

한계 접속 시간인 이틀을 훌쩍 넘겼지만 접속은 해지 되지 않았다.

이유는 나도 몰랐다.

이미 난 내가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잊었기에 그런 것을 고민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질문과 답.

그것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결국 나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넌 지금 행복한가?’

그리고 대답했다.

‘……행복…… 그래 지금 난 행복하다.’

난 행복했다.

후회스럽던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居卑而後 知登高之爲危(거비이후 지등고지위위)

處晦而後 知向明之太露(처회이후 지향명지태로)

守靜而後 知好動之過勞(수정이후 지호동지과로)

養默而後 知多言之爲躁(양묵이후 지다언지위조)

낮은 곳에 있어 본 뒤에야

높은 곳에 올라감이 위험한 줄을 알게 되고

어두운 곳에 처해 본 뒤에야

빛을 향함이 눈부심을 알게 된다.

고요한 것을 간직해 본 뒤에야

움직이기 좋아함이 지나치게 수고로운 것임을 알게 되고

침묵하는 것을 길러 본 뒤에야

말 많음이 시끄러운 것임을 알게 되리라.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본 너에겐 분명 자격이 있다!]

머릿속에 각인되듯 새겨지는 진언(眞言).

그리고 마치 서로를 끌어당기듯 하나가 되어 가는 두 명의 나. 그렇게 두 명의 내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순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번쩍!

그건 빛이었다.

나는 나와 하나가 되며 거대한 빛무리에 빨려 들어갔다.

띠링, 천룡벽의 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띠링, 당신에 의한, 당신이 원하는, 당신을 위한 무공 ‘지존신공(至尊神功)을 얻었습니다.’

띠링, 천룡벽의 축복으로 당신의 체질이 천룡신체(天龍身體)로 변화합니다.

띠링, 공복도가 너무 내려갔습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몇 번의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메시지에 신경 쓸 틈도 없었다. 난 빠르게 현실로 돌아와 천룡벽 앞에서 좌선하고 있던 내 몸속에 거칠게 자리 잡았다.

“컥!”

약간의 충격.

그것은 시스템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 같은 것이었다.

띠이! 위험합니다. 당신은 한계 접속시간을 넘겼습니다.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접속을 강제로 해제합니다.

푸슛!

강제적으로 접속이 해제되며 가상현실캡슐의 뚜껑이 자동으로 열렸다.

“허억!”

그제야 확실히 정신이 현실로 돌아온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캡슐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천룡벽에서 무공을 얻었다.

“이건 도대체…….”

시간을 확인했다.

무려 4일이 지나 있었다. 아무리 캡슐에 최소한의 생명유지 장치가 탑재되어 있다지만 무려 4일간 게임 속에 있었다니…… 이건 정말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하긴…… 난 이미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었지.”

왜 갑자기 그때 그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떠오른 걸까? 확실히 난 이미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진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런 일쯤이야…….

“후우~ 배고프군.”

배가 고팠다.

당연할지 몰랐다. 캡슐의 생명유지 장치는 말 그대로 몇 가지 필수 영양분을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 시켜주는 장치였다.

그렇기에 4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는 당연히 배가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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