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내가 얻은 것들 ― 2
* * *
난 이 비급을 무려 400골드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
물론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그 값어치를 훨씬 더 인정받아 거의 사천 골드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무공비급이었지만 어쨌든 400골드란 가격도 지금 당장 팔리는 비급 중엔 단연 최고의 가격이었다.
그나마 물건이 없어 간신히 경매장에 하나 올라온 걸 몇 번의 재입찰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척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무공은 앞으로 내 손에서 더욱 사기적인 무공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었다.
관찰스킬과 분심공.
내가 동대륙에서 얻으려는 네 가지 중 두 가지가 이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제일 최근에 얻었으며 가장 기뻐했던 그 세 번째 물건은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내가 얻으려고 했던 네 가지 중 가장 불확실한 확률을 지니고 있던 물건이었다.
난 사실 이것을 얻지 못할 경우도 충분히 생각했었다.
내가 얻지 못한 마지막 한 가지는 어차피 어디로 도망가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만 충분히 투자하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것은 정해진 시기 안에 얻지 못하면 절대 얻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이것은 매우 희귀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 입수 경로가 알려진 건 오로지 이것 한 개뿐이었다. 나머지 몇 개가 더 존재했다지만 그건 솔직히 어디서 어떻게 등장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분명한 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만 그 입수 경로가 알려졌다는 것이었다. ‘ONE’이 서비스되고 얼마 안 되어 경매장에 등록되었다는 이것.
사실 내가 현문성을 초기 시작지점으로 잡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로 이 물건을 최초 경매장에서 산 유저가 이쪽 지역에서 게임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전에 누가 경매장에 그 물건을 올렸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어쨌든 난 이것을 얻었다.
이것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주 평범한 풍경이 그려져 있는 그림.
아이템 설명해도 그저 그림이라고만 나왔다.
단지 특이한 건 당연히 적혀 있어야 할 아이템 등급 란에 물음표(?)가 찍혀 있다는 것이었다.
얼핏 보기엔 그냥 버그 아이템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그림 한 폭.
하지만 그걸 알아야 한다.
‘ONE’에 버그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루젼은 아주 작은 버그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이 세계의 신이 된 일루젼은 땅바닥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덩이 하나도 완벽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 물음표는 특수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이것과 비슷한 물건들이 여러 종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역시 아이템 등급 란에 물음표가 찍혀 있었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그것들도 얻고 싶지만 사실상 그것들은 내가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쩌면 이미 모두 주인이 정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깔끔하게 포기해야 했다. 어차피 내가 봤을 때 나에게 가장 알맞은 건 이 그림이었다.
계속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하자면…… 지금 당장은 그냥 평범한 그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탁.
난 잡화점에서 사 온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화륵~!
종이와 비슷한 재질의 그림에 불이 닿자 당연히 빠르게 불이 번져나갔다.
그렇다.
나는 지금 내가 기껏 돈을 주고 산 그림을 불태우고 있었다.
화르르륵.
빠르게 불이 붙는 그림.
200골드나 주고 산 그림을 불태우다니…… 미쳤냐고?
당연히 미치지 않았다.
잊지 않았겠지만 난 시간을 거슬렀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다소 황당해 보일지라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림이 타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림은 불이 붙은 그 상태로 몇 분 동안 계속 불타올랐다.
보통의 그림이었다면 이미 재가 되어 없어져야 했을 상황.
하지만 이 그림은 재가 되지 않았다.
그저 계속 타오를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계속 불타던 그림이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던 불이 그림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스으으으~
불이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림이 변해 있었다.
불타기 전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는 그림.
그것은 열기(熱氣)였다.
그림은 놀랍게도 불(火)의 기운을 흡수한 후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단 첫 번째는 완료.”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직 네 가지 작업이 더 남아 있었다.
이 그림의 정체는 천지조화(天地造化) 오행신검(五行神劒)이라고 불리는 절세 신공의 비급이었다.
무려 최상급(S급) 무공.
일반적으로 유저가 필드에서 얻을 수 있는 무공의 한계는 상상(AA) 급까지였다.
그 이후에 존재하는 최상급(S급)이나 초월급(SS급)들은 아주 특별한 퀘스트나 특별한 네임드몬스터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림도 어찌 보면 퀘스트였다.
관찰스킬이 하이마스터(150) 이상에 오르거나 레벨이 500이상이 되면 이 그림에 숨겨져 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다.
그 글자가 바로 이 그림의 비밀을 알려주는 힌트였다.
당연히 지금 이 그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유저들 평균레벨은 50도 되지 못했고 스킬들 또한 종류에 상관없이 빨리 올린 사람이 익스퍼트정도였다.
지금 당장 이것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당연히 글자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난 글자 내용을 다 알고 있었기에 관찰스킬을 올릴 필요도, 레벨을 올릴 필요도 없었다.
사기?
맞다.
이건 사기였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 그림은 정해진 순서대로 다섯 번의 특수한 처리만 해주면 최상급 무공을 토해내게 되어 있었다.
천지조화 오행신검이 보통 무공인가?
언젠가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뛰어난 스킬(무공)들을 뽑아보자는 투표가 있었다.
수많은 유저가 투표에 참가했었는데 오행신검은 검법 부분 2위에 올랐었다.
오행신검 위에 존재하는 무공 한 가지는 SS급 무공이었기에 사실상 SS급을 제외한 검법 중에는 오행신검이 최고라는 뜻이었다.
그런 오행신검을 ‘ONE’이 서비스된 지 대략 3달 만에…… 그것도 레벨1에 얻으려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이건 명백한 사기였다.
난 그림을 불에 태운 후 다음엔 물에 담갔다. 당연히 그림은 물(水)의 기운도 흡수해 또 한 번 변했다.
그리고 다음엔 나무에 붙여놓았고 그다음 쇳가루에 묻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에 묻었다.
매번 그림은 변했다.
목(木)의 기운을 흡수하고, 금(金)의 기운도 흡수했다.
마지막으로 땅(地)의 기운까지 흡수하자 그림은 처음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림에 떠오르는 구결(口訣)들…… 그 첫 번째 문장은 바로 천지조화 오행신검이었다.
비급(秘笈) [천지조화(天地造化) 오행신검(五行神劒)]
:태초부터 존재한 오행의 검은 하늘과 땅을 움직인다. 그대가 원한다면 오행의 힘은 그대에게 무한의 능력을 선사할 것이다. 검을 들어라! 그리고 휘둘러라! 천지조화 오행신검, 이것은 너의 의지를 온 세상에 전할 것이다.
무공(스킬): <오행신검>
능력치: 없음
특수효과: 비급을 익힐 경우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친화도가 각각 +10됩니다.
특이사항: 무공을 익히면 그림은 자동으로 소멸됩니다.
등급: 최상급(S급)
난 이렇게 오행신검을 얻었다.
내 손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는 한 폭의 그림. 이로써 난 내가 원하는 것 중 세 가지를 얻었다.
스킬로는 관찰이 있었고 무공으로는 분심공과 오행신검이 있었다.
모두 아주 뛰어난 것들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난 마지막으로 남은 그 하나를 얻기 위해 조금 멀리~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 * *
당황스럽게도 난 엉뚱한 곳에서 최대 위기를 맞이했었다.
난 마지막 한 가지를 얻기 위해 이동을 해야 했다.
단순한 이동이었지만 그 거리가 꽤 멀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중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내 레벨이 1이란 것이었다.
난 진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만약을 대비해 사둔 최고급 응급처치 약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황당한 곳에서 첫 번째 죽음을 경험했을 것이다.
죽는 건 상관없었다.
자유도가 거의 무한에 가까운 ‘ONE’에서는 당연히 죽음에 대한 패널티가 무지막지하게 컸다. 한 번 죽을 때마다 경험치가 대폭 깎이고 스킬 숙련도도 대폭 하락했다.
그나마 아이템은 PvP 존이나 던전 같은 정해져 있는 특수한 지역에서만 떨어트렸지만 어쨌든 이 두 가지만으로 엄청 큰 페널티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활 대기 시간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려 현실로 3일(게임 시간으로 9일)이었다.
물론 죽음의 유예시간이라는 게 있어 죽은 뒤 5분간은 부활을 받을 수 있었다.
부활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했는데 중요한 건 모든 부활은 전투상태가 아닐 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부활을 받았다고 해도 경험치나 스킬 숙련도는 떨어졌다. 여기서 부활은 그저 다시 살아나는 것일 뿐이었다. 일단 한 번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부활을 받으면 부활 대기 시간(9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사실 5분이란 시간을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특히 치열한 전투 중이라면…… 5분은 정말 금방 지나가 버린다.
다행인 건 레벨5까지는 그러한 죽음의 페널티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부활을 하기 위해서는 유령상태로 영혼이 저장된 영혼석까지 돌아와야 했다.
유령이 되면 다른 나에게는 유저나 몬스터들 NPC들이 전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나를 볼 수 없었다. 결국 유령이 되면 그저 무작정 영혼석이 있는 곳으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내 영혼이 저장되어 있는 곳은 현문성.
만약 내가 이동 중에 죽었다면 다시 현문성으로 돌아와 부활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내가 가야 할 곳이 대략 게임시간으로 일주일은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으니 만약 중간에 죽는다면 그 시간적 손해는 상당했다.
어쨌든 죽으면 무조건 손해였다.
덕분에 난 별짓을 다 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
중간에 죽은 척도 몇 번이 나 했고(덕분에 유저들 사이에서 필살의 탈출기로 불리던 ‘죽은 척하기’ 스킬을 습득했다.) 숨이 멎을 것 같을 때까지 달리는 건 늘 있던 일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큰 위기를 넘기고 결국 나는 내가 원했던 곳에 도착했다.
확실히 ‘ONE’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맞이했던 대위기였다.
여하튼 난 그 위기를 어찌어찌 간신히 넘겼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다.
절경(絶景)!
한 마디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비록 가상현실 안이었지만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말했다.
아직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곳이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이유로 엄청나게 사람들이 몰려들 곳이기도 했다.
일명 천룡벽(千龍壁)이라 불리는 그곳!
천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은 모습이 담겨있는 거대한 절벽이 바로 내가 찾아온 그곳이었다.
“천룡벽! 역시 변함없이 그대로군.”
전생에서도 수없이 바라본 천룡벽이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장엄한 기운은 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수많은 사람이 천룡벽은 무조건 세계 보호 유산으로 정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올 것이다.
그것은 천룡벽이 얼마나 대단한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천룡벽이 더 유명해진 건 그 뒤의 일이었지.”
그렇다.
그 모습만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천룡벽이 동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지형지물이 된 이유는 그 뒤에 생긴 한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이곳의 이름은 바뀐다. 바로 천룡무벽(天龍武壁)으로!”
천룡벽의 이름마저 바꿔놓은 그 사건.
그 사건의 중심에는 바로 천룡겁(千龍怯), 또는 천룡의 난(亂)이라 불리는 대규모 길드전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