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11화 (11/250)

011. 수련 시작 ― 2

* * *

“후후, 이제 그릇을 만들 재료를 전부 준비했으니…… 그 재료로 세상에서 가장 큰 대기(大器)를 만들면 되나?”

난 스스로 대기가 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대기가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지금까지가 그 대기가 되기 위한 준비였다면 이제부터는 대기가 되기 위한 수련이었다.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대기! 난 그런 큰 그릇이 되는 거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지존은 한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존이 되려면 일단 지존이 될 자격을 갖춰야 했다.

비록 레벨은 아직도 1이었지만 지금 내가 스스로 완성 시켜가고 있는 건 레벨 같은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지존의 자격.

일단 그 시작은 큰 그릇(大器)부터였다.

* * *

난 아카식 레코드 작업을 끝내고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팔아 치웠다.

무공비급도, 이제는 제법 값어치가 나가게 된 돌덩어리들도 모두 팔았다.

파는 건 쉬웠다.

사고자 하는 이들이 줄을 섰기 때문에 아주 훌륭한 가격에 모든 물건이 팔려나갔다.

돈이 쌓였다.

슬슬 등장하고 있는 대형길드들, 동대륙 식으로 따지면 각종 문파나 연합들이나 가질 법한 돈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지금 당장 그것을 현금화해도 난 꽤 오랫동안 풍족하게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슬슬 내가 사둔 DH 소프트 주식이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는 지금 나에게 현실에서의 돈 따위는 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돈이 좀 부족하면 주식 몇 주를 팔아 게임 속의 골드로 바꾸면 바꿨지 그 반대는 절대 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게임 속에서도 돈은 충분해서 굳이 흔히 말하는 현질을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자금이 준비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할 일은 하나.

매입(買入)

즉, 사들이는 것이었다.

경매장 시스템이 완벽하게 복구되어 있었다. ‘ONE’에서 경매장 시스템은 매우 편리하면서 효율적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각각의 도시별로 경매장 시스템이 나뉘고 이 시스템이 다시 지역별로 뭉쳐졌다.

그리고 그 지역별로 뭉쳐진 시스템이 다시 뭉쳐져 대륙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거대한 경매장 시스템이 되었다.

나뉜 두 대륙을 연결하지는 않았지만 각각의 대륙별로 거대한 경매장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A라는 아이템을 얻어 그것을 마을 경매장에 올리면 일단 최우선적으로 그 마을과 근처 마을들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공개된다.

판매자는 즉시구매 가격과 경매시작 가격을 동시에 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렇게 공개된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구입하거나 경매에 입찰할 수 있었다.

즉시구매 가격은 적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경매장 수수료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아이템을 배달하는 배달비용이 빠지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어지간한 아이템은 근처에 있는 유저에게 파는 게 가장 좋았다.

운이 나쁘면 배달비용이 아이템의 가격보다 비싼 경우도 나올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템을 누군가 즉시 구입해 가면 거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즉시

구입하지 않고 또 입찰도 되지 않았다면 몇 시간 후 대도시의 경매장에 자동으로 등록되었다.

그 뒤로는 똑같은 수순이었다.

대도시에서 다시 한번 똑같은 과정을 거친 후 하루가 지나면 다시 지역 경매장에 등록되었다.

그 대기 시간만 다를 뿐 과정은 같았다.

지역 경매장에서 대륙 경매장으로 이동하는 것도 대기 시간만 하루에서 일주일로 늘어날 뿐이었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경매장 시스템.

덕분에 많은 이들이 이 경매장 시스템을 이용했다. 나중에는 전문적으로 경매장에서 장사하는 직업을 가진 유저들도 다수 등장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노하우로 굉장한 이익을 만들어내며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

지금은 그런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있었다. 경매장의 달인들이라 불리는 그들의 노하우를 어설프게라도 알고 있는 내가 있었다.

“경매장 메뉴 오픈.”

나는 마을 안에 존재하던 경매장 게시판에 손을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굳이 손을 대지 않고 게시판 근처에서 메뉴 오픈을 외쳐도 되었지만 이건 그냥 습관 같은 것이었다.

띠링.

작은 기계음과 함께 내 눈앞에 수많은 정보 창이 떠올랐다.

처음 접하는 이들은 뭐가 뭔지 잘 모를 정도로 복잡한 정보 창들.

하지만 나는 아주 능숙한 손동작으로 그것들을 간단히 정리해버렸다.

스스슥.

지금 내가 필요한 창은 오로지 검색창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조건별 전체 검색 메뉴가 내가 사용할 유일한 창이었다.

“흐음, 일단 무공비급 쪽부터 시작해 볼까?”

낚시를 즐기는 이들은 흔히 대어(大魚)를 낚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인내는 필요 없었다.

난 이미 대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고 그 대어를 낚는 방법마저 알고 있었다.

경매장 곳곳에 존재하는 대어들…… 그건 모두 내 차지가 될 예정이었다.

일주일이 흘렀다.

예상대로 경매장은 물 반, 고기 반의 어장(漁場)이었다. 그것도 그냥 고기가 아닌 아주 큰 대어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책 같은 경우였다.

제목은 철혈무정로(鐵血無情路).

사실 이 책은 비급이 아니라 일반 소설책이었다.

‘ONE’에는 수없이 많은 책이 존재했다. 단순한 소설책부터 백과사전 수준의 잡학 서적까지…… 수많은 책이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종류의 책들을 만들어냈냐며 감탄했지만 뭐 어쨌든 다 일루젼의 경악할만한 능력이라고 치부하면 끝이었다.

여하튼 그 책들은 그냥 읽어도 재미있는 것들이었지만 때론 상당한 비밀이 숨겨진 경우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철혈무정로라는 소설책이다.

이 책은 그다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 구하기 힘든 책도 아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쓸데없는 책들을 무공비급이 아니란 이유 하나만으로 다 상점에 팔아버리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밝혀지자 너도나도 눈에 불을 켜고 이 책을 찾았다.

이 책의 비밀은 간단했다.

딱 백 번.

백 번만 이 책을 정독하면(게임 주제에 책갈피 기능도 있었다.) 책이 재로 변하면서 허공에 철혈도(鐵血刀)라는 훌륭한 상급 도법의 무공구결이 떠오르게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열심히 백 번만 소설을 읽으면 상급 도법 무공을 얻는다는 소리였다.

철혈도는 상급 도법들 중에서도 아주 위력적인 도법으로 이름을 날린 무공이었다.

덕분에 나중에 철혈무정로라는 소설은 상당한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다.

내가 단돈 1실버를 주고 산 이 책이 최소 40골드는 줘야 구 할 수 있는 비급으로 바뀐다는 게 믿겨지는가?

믿어라!

내가 다 직접 경험한 일이다.

어쨌든 경매장에는 이런 책이 수두룩했다.

난 그런 종류의 모든 책을 사들였다. 책뿐인가? 각종 예술품 속에도 많은 비밀이 숨어 있었다.

볼품없는 나무 불상에 숨어 있는 상급 내공심법, 허름한 지팡이 안에 숨겨져 있던 고급 검 한 자루, 삼류 시집에 숨겨져 있던 상급 경공구결 등등.

난 아주 많은 대어를 너무나 쉽게 낚아 올렸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결국 그런 것들은 내가 가진 재산을 불리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재산은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건 아직 걸리지 않았다.

돈 같은 건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에서 가볍게(?) 얻는 서비스 같은 것이었다.

난 경매장에서 두 가지를 찾아야 했다.

한 가지는 희귀하기는 했지만 돈만 좀 많이 주면 구할 수 있는 것이기에 반드시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한 가지가 문제였다.

분명 게임 속에서 누군가는 이미 발견했을 그 한 가지.

내 예상대로라면 그건 틀림없이 경매장에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계속 대어를 쓸어 담아서 그런 걸까?

경매장에 더 이상 큰 건수는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잔챙이들뿐이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구했다.

상상(上上)급 무공비급이라 상당한 값을 치렀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구했다는 게 중요했다.

한 가지를 구했지만 나는 경매장 검색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남은 한 가지.

그것은 분명 경매장에 올라올 것이다.

이건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내가 알고 있기론 그 유저도 이 물건을 처음엔 경매장에서 우연히 실수로 구입했다고 했었다.

그 유저는 실수로 구입한 후 창고에 넣어두고 신경을 껐었다고 했다. 나중에 우연히 그 물건으로 인해 대박을 터트렸던 그 유저는 한 게임전문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분명 최초 구입은 경매장에서 했다고 했었다.

그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지금쯤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난 그 유저가 실수로 그것을 구입하기 전에 먼저 내가 구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난 계속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경매장 검색만 하는 것이었다.

“떠라…… 떠라…….”

나는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계속 중얼거리며 경매장 검색을 했다.

남들이 보면 도박판에서 마지막 히든카드에 최고의 패라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일 모습이었다.

벌써 보름간 경매장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었건만 아직까지 그 물건이 등장하지 않아 난 약간은 불안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그 물건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도 이미 생각해뒀다.

비록 많이 아쉽겠지만 그렇게 해도 아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앞으로 딱 일주일.

어차피 아직까지 간간이 대어들이 낚이는 경매장이었기에 일주일만 더 경매장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볼 생각이었다.

대충 일주일이 더 흐르면 유저들도 슬슬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반적인 물건들 속에 뭔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만한 시기였기에 앞으로 일주일이란 시간을 정할 수 있었다.

“뜬다. 분명히 뜬다. 나에게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쉬 패를 만들어 줄 그건 분명히 뜬다!”

난 나에게 최고의 패가 뜰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다시 사 일이 흘렀다.

스르르륵.

검색창을 내리던 내 오른손이 갑자기 멈췄다.

“떠, 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20일을 기다린 끝에 그것이 내 눈앞에 등장했다.

볼 것도 없었다.

즉시 구매!

비록 일반아이템치고는 비싼 가격에 올라왔지만 그래 봤자 나에겐 푼돈이었다.

“하하하하, 하늘은 나를 돕고 있다.”

정말 시간을 거스른 그때 이후로 하늘은 나를 돕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내가 동대륙에서 얻어야 할 네 가지 중 하나를 또 얻었다.

앞서 얻은 두 개와 지금 얻은 한 개.

이제 한 개만 더 얻으면 내가 만들려고 했던 대기(大器)의 반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