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수련 시작 ― 1
* * *
두 달이 흘렀다.
난 그동안 오로지 아카식 레코드 작업과 잡템 구입에만 집중했다.
게임 시간으로 여섯 달.
내가 알기론 어지간한 끈기를 지닌 이들도 게임 시간으로 석 달 이상 그 작업을 하지 못 했다.
하지만 나는 했다.
내가 그들보다 끈기가 더 많은 것일까?
아니다.
내가 끈기가 좀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들도 나만큼의 끈기는 분명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석 달 이상 아카식 레코드 작업을 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첫째, 상당한 양의 녹슨 크로노스 병기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금력이 받쳐줘야 했다.
지금이야 거의 공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싼 가격에 녹슨 크로노스의 옛 병기들을 얻고 있지만 나중에는 이것들도 상당한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그래서 길드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이가 아닌 이상 대 놓고 이 작업만 계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둘째, 너무나 지겨운 반복 수련의 결과물이 생각보다 초라했다.
숨겨진 기술이나 정보를 얻는다?
말로만 들으면 매력적인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이나 정보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대부분 별로 쓸모없는 기술이나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확실한 결과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의미 없는 반복 수련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충분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었고 너무나 싼 값에 재료들을 얻었다. 그뿐인가? 나에겐 확실한 결과물이 존재했다.
이 지겨운 반복 수련 끝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은 나에게 희망이었다.
희망은 결국 나에게 끊임없는 끈기를 가지게 해 주었고 그 결과 나는 무려 여섯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지겹기로 소문난 아카식 레코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미 천서에는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가 가득 차 있었다.
정식으로 플레이했다면 자신이 사냥해서 나온 재료들을 모두 작업에 쏟아부었다고 쳐도 대략 현실 시간으로 삼 년은 플레이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의 정보였다.
그뿐인가?
내 관찰 스킬 숙련도는 무려 94.002였다.
그게 뭐 대단하냐고?
그렇게 묻는 이들을 위해 내가 친절히 ‘ONE’의 스킬 시스템을 얘기해주겠다.
‘ONE’에서 스킬 숙련도는 200이 맥스(MAX)였다.
하지만 말이 200이지 어떤 스킬 숙련도를 200으로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스킬 숙련도가 100이 되면 그 사람은 그 스킬에 관해서는 마스터(Master)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150을 만들면 하이마스터(High Master)가 되었고 200을 만들면 그랜드마스터(Grand Master)가 되었다.
이미 그랜드마스터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는 설정이었다.
스킬 숙련도는 당연히 위로 올라갈수록 잘 오르지 않았다.
간단하게 수치로 얘기해보자.
‘검(일반)사용 능력’이라는 아주 평범한 스킬이 하나 있다. 이 스킬은 패시브(Passive) 타입의 스킬로서 일반적인 형태의 검들을 사용하는 능력을 올려주는 스킬이다.
이 스킬을 올리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형태의 검을 계속 사용해야 했다.
초기에 0~20 정도의 숙련도 수치를 올리기는 무척 쉽다. 그냥 검을 기껏해야 200~400번 정도 휘두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뒤 20~50까지 올릴 때는 대략 1,000번 정도. 그리고 50~70까지 올릴 때는 3,000번 정도만 휘두르면 된다.
여기까지는 정말 무난한 수준이다.
하지만 숙련도가 70이 되면서 익스퍼트(Expert)의 경지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지옥이 시작된다.
그 전까지의 숙련도는 정말 연습일 뿐이었다.
숙련자의 경지라 불리는 익스퍼트의 단계부터는 단지 검을 몇 번 휘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검도 도장에 다녀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검을 많이 휘두른다고 실력이 느는 건 생 초보일 때 얘기였다.
일정 경지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무작정 휘두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얼마나 더 정확하게 그리고 얼마나 더 위력적으로 휘두르느냐가 중요했다.
이것도 비슷했다.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천 번, 이천 번 검을 휘둘러서는 숙련도가 0.001도 오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검을 휘두를지언정 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왜 다시 생을 시작하면서 각종 학원과 도장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익힌 줄 아는가?
그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어떤 검도의 고수는 ‘ONE’에서 상식 밖의 성장을 통해 굉장한 검법을 익혔었다.
물론 검도의 고수가 아니라도 조금만 감각이 있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계속해서 숙련도를 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됐다.
‘ONE’에서 쉬운 건 단 하나.
바로 죽는 것이었다.
익스퍼트부터 이런 지옥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마스터 이후는?
그때부턴 지옥도 아니었다.
그냥…… 속된 말로 뜬구름 잡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이마스터?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직전까지 스킬의 종류를 막론하고 한 스킬이라도 하이마스터를 만든 이가 얼마나 될 거 같은가?
정작 나만 해도 하이마스터가 되도록 익힌 스킬은 단 두 개였다.
하나가 164.239, 나머지 하나가 174.653이었다.
내가 익힌 스킬이 무려 40가지가 넘고 그 스킬들은 모두 게임 시간으로 28년 동안 그것들만 집중적으로 올린 건데 그 정도였다.
당시 정확한 통계는 없었지만 내가 게임을 포기했을 그때 한 개라도 하이마스터가 될 때까지 스킬을 올린 이들의 숫자는 대략 40만 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1억 유저가 게임을 즐겼다.
그런데 40만 명 정도만 단 한 개의 스킬이라도 하이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그랜드마스터?
그건 아예 알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는 탑 랭커들 몇백 명 정도만 오른 경지라는데…… 사실 그것도 제대로 확인된 건 아니었다.
이게 바로 ‘ONE’의 스킬 시스템이었다.
마스터의 단계 후부터는 그 어떤 스킬도 똑같았다.
좀 등급이 떨어지는 스킬이라고 해서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았다
숙련도는 모두 똑같이 적용되었기에 하급 스킬이건 최상급 스킬이건 마스터 단계를 넘어 숙련도가 150이 되면서 하이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이후부터는 모두 같은 거의 같은 속도로 성장을 했다.
그러면 누가 하급 스킬을 올리겠냐? 라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스킬의 등급이 통용되는 건 마스터 단계까지만이다.
어떤 스킬이건 하이마스터의 단계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그 스킬의 등급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랭커는 순수하게 기본스킬만 꾸준히 키워서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중요한 건 스킬의 종류가 아니었다.
물론 가끔 사기스킬이라고 불리는 몇몇 스킬들이 존재했지만 사실상 하이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하급 스킬도 다 사기 스킬처럼 변했다.
내가 지금 계속 말한 이 모든 것은 아직 모든 유저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당장 익스퍼트에 오른 이들도 얼마 되지 않을 게 뻔했다.
아마 익스퍼트에 오르면 신이 나서 내가 최고라고 떠들 사람도 있을 것이다.
“푸훕.”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물 위로 보이는 빙산의 일각을 보고 난 빙산을 모든 것을 보았다고 떠드는 것보다 더 우스운 일이었다.
이제 내가 올린 관찰스킬 수치가 어느 정도의 수치인지 이해가 되는가?
얼마 전에 지금 이 근처 지역에서 좀 잘나간다고 소문난 한 유저가 자신의 주특기로 사용하는 무공(무공과 스킬 단지 명칭만 다를 뿐이다.)의 숙련도를 공개한 적이 있었다.
74.987, 이것이 그의 숙련도였다.
그의 주력무기는 검이었는데 검 숙련도는 더 떨어져 71.786이었다.
단연코 스킬 숙련도로만 따지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오로지 관찰 스킬에 집중을 했기에 남들보다 월등한 스킬 숙련도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관찰 스킬 하나만 올린 건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남들과 이렇게 많은 차이를 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그전에 이 관찰 스킬을 익혔기 때문에?
아쉽게도 전에 난 관찰 스킬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관찰 스킬은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스킬이었지만 전생에서의 나는 그 스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관찰 스킬이 얼마나 대단한 스킬인지 몰랐었다.
물론 확실히 내가 전생에서 확실히 수련했던 스킬이었다면 좀 더 빠르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그렇다고 친다 해도 이 정도의 차이는 너무 심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활성화시키고 있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타이틀 ‘더 로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기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게임을 나만큼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타이틀이 얼마나 사기적인 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더 로드’라는 타이틀을 언급했던 개발자가 등장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던 타이틀이란 말을 했을 정도였다.
개발자마저 공개되지 않아서 다행이란 말을 하게 했던 타이틀 ‘더 로드’
그렇다면 그것의 효과가 무엇이기에 사기라는 말까지 나오는 걸까?
그 효과는 의외로 간단했다.
타이틀 [‘더 로드(The Lord)’]
: 진정 지존이 되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지존의 자격을 갖췄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더욱 정진하라! 더욱 나아가라! 지존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는 법이다.
스킬: 없음
능력치: 없음
특수효과: 타이틀 활성화 시 모든 스킬의 숙련도 상승 수치가 3배로 된다.
등급: S급
오로지 특수효과 하나만 붙어 있다.
하지만 그 특수효과 하나는 어떤 스킬과 능력치도 따라 올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ONE’에서 스킬이 차지하는 비중은 레벨보다 높았다.
그뿐인가? 스킬 숙련도를 올리는 것은 레벨을 올리는 것 따위와 비교 할 수 없는 고된 일이었다.
스킬 숙련도가 얼마나 중요하면 보호스킬이란 시스템이 존재할 정도였다.
‘ONE’에는 보호스킬 시스템이란 게 있었다.
스킬이 워낙 올리기는 어려워도 떨어지는 건 쉬운 존재였기에 자신이 가진 스킬 중 딱 두 가지 스킬만은 보호스킬로 지정할 수 있었다.
보호스킬로 지정되면 그 스킬은 죽었을 때도 그리고 그 스킬을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도 숙련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제도는 스킬이 레벨보다 중요하다는 걸 분명히 증명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만큼 스킬은 ‘ONE’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스킬 숙련도 상승 수치가 3배로 뻥튀기되어 올라간다. 즉, 남들보다 3배의 효율로 스킬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얼핏 단순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그게 뭐? 라며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정말 멍청한 이들의 생각이었다.
이 타이틀 하나만으로 난 남들이 하이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때 이미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0.001의 숙련도를 올리면 0.003의 숙련도가 올라간다.
이 얼마나 위대한 타이틀인가!
당장 등급에 S급이라 쓰여 있는 부분을 SSS급이라고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타이틀이었다. 물론 등급은 SS급까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타이틀만큼은 진짜 SSS급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훗날 모든 ‘ONE’의 유저들 그리고 개발자들까지 인정한 사실이었다.
타이틀에 나와 있는 설명대로 지존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 법. 난 벌써 남들이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걸 손에 넣은 후였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이 짓도 그만해야겠군.”
일이 잘 풀려서 원래 계획보다 한 일주일 정도 이 아카식 레코드 작업을 계속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해야 할 때가 되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이제 내가 할 일은 본격적인 스킬 수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