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현문성의 기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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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일종의 재료였다.
지금은 그저 쓸모없는 돌덩어리로 보이지만 나중에 제련 기술을 익힌 유저들이 가공을 하게 되면 각종 쓸모 있는 재료로 바뀌는 것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NPC 대장장이들은 이 돌에 아무런 관심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벌써 몇몇 유저들이 이미 대장장이들에게 이 돌을 가져다주어 봤지만, 그때마다 NPC들은 이게 무슨 쓸모없는 돌이냐고 말했다.
덕분에 많은 유저들이 정말 쓸모가 없는 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나는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만큼의 돌덩어리들을 사 모을 수 있었다.
이 돌은 무조건 유저들만이 제련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어떤 유저들이 그 이유를 밝혀냈는데 나도 그 이유는 완벽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대충 내가 아는 대로 얘기해보면 이 돌은 원래 크로노스 대륙의 각종 광물들인데 유저들이 불멸인으로 부활하면서 우연히 그 광물들의 기운이 레아대륙의 각종 몬스터들에게 전이(轉移)되었다나 뭐라나?
사실 이 얘기는 단순히 돌덩어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헌 종잇조각이나 뒤에서 말할 녹슨 무기들도 모두 이 전이에 의한 부산물이었다.
설정상 레아대륙의 몬스터들은 그저 몬스터일 뿐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죽으면서 그 무엇도 떨어트리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시체에서 가죽이나 이빨을 얻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난 건 크로노스 대륙이 멸망하고 그 대륙의 사람들이 불멸인으로 레아 대륙에서 다시 태어나면서부터였다.
레아 대륙의 신인 가이아는 단순히 크로노스 대륙에 살고 있던 사람들만 레아 대륙으로 옮겼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신력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같이 옮겨버렸다.
크로노스 대륙에 존재하던 각종 광물은 물론이고 각종 병기들 그리고 기술들.
그 종류와 개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것들이 모두 한꺼번에 옮겨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이(轉移)’라 불렀다.
특이하게 그렇게 전이 된 그 존재들은 모두 레아대륙에 존재하는 각종 몬스터들이나 특수한 존재들에게 스며들었다.
그것도 각각의 존재들이 지닌 힘의 크기만큼 그 존재가 지닌 힘이 크면 그에 알맞을 만큼 힘이 큰 몬스터나 특수한 존재에 전이되었다.
덕분에 레아대륙은 더욱 요상하게 변해버렸다.
‘전이’ 때문일까?
몬스터는 더욱 강하고 흉포해졌고 그동안 잘 나타나지 않던 특수한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 이건 나중 얘기지만 결국 레아 대륙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종족이 나타나고 그 종족에 대한 여러 가지 퀘스트나 사건들도 다 이 ‘전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이미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신은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기에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할 존재는 우리, 즉 불멸인이라 불리는 유저들 밖에 없었다.
단순한 설정이지만 참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 ‘ONE’.
덕분에 나중에 소설로도 만들어져 엄청난 대박을 쳤다.
그 소설 작가 이름이 뭐랬더라? 서진? 뭐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흠흠, 잠시 얘기가 이상한 곳으로 가버렸다.
여하튼 ‘ONE’은 설정 자체가 매우 복잡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 설정 자체를 전부 이해하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내가 마지막으로 세 번째에 언급한 이 녹슨 무기들이야말로 그 ‘전이’의 최대 부산물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병기였다.
그것도 그냥 병기가 아닌 크로노스 대륙에 존재하던 병기였다.
크로노스 대륙은 레아 대륙과 달리 문명이 상당히 발전한 곳이었다.
마법과 무공, 술법, 마나수련법, 진법 등등……, 그뿐인가? 심지어 이것들과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는 있는 각종 과학기술도 발전했었다.
그런 대륙에 존재하던 병기였다.
비록 전이의 여파로 완전히 망가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것들은 망가진 채로 또 쓸모가 있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이것들이 그냥 망가진 무기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들에는 수많은 기술이 숨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완전히 녹이 슬고 형태가 일그러져버린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둥그런 고철덩어리는 사실 알고 보면 크로노스대륙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되던 라이플(Rifle)이란 무기다.
물론 이건 도저히 그 라이플로 복구를 할 수 없는 쓰레기 고철이 맞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의 작업이 추가되면 그것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닌 게 되었다.
약간의(약간이라 말하긴 좀 긴 시간일 수도 있다.) 시간과 정성을 쏟으면 얻을 수 있는 스킬인 [관찰].
나중에 또 언급하겠지만 이 스킬은 엄청 중요하고 쓸모 있는 스킬이었다.
어쨌든 난 이 [관찰] 스킬을 쓰레기 고철이라 불리는 그 쇳덩어리에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앞에서 언급한 작업이었다.
[라이플이란 무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얻은 단 한 줄의 정보.
이 정보는 일명 천서(天書)라 불리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정보, 스킬, 무공, 기술들이 기록되어 있는 가상의 책에 기록된다.
이 천서 또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라 불리는 그 가상의 책은 ‘ONE’의 유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이라 부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라 부를 수도 있는 그것은 사실 ‘ONE’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가이아에게 저주를 받아 레아대륙에서 끝없는 삶을 이어가야 하는 크로노스 대륙의 사람들.
천서는 그들의 신이자 지금은 완벽하게 봉인 당한 우라노스가 불쌍한 자신의 자식들에게 전해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아마 지금 사람들은 이 천서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고 지금 내 상태를 알 수 있는 그런 인터페이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천서는 그런 간단한 인터페이스가 아니었다.
천서에 어떤 정보와 어떤 스킬을 등록하느냐에 따라 게임 속에서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결정된다는 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 알려진 사실이었다.
어떤 이가 있었다.
그 어떤 이가 요리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 사람은 ‘ONE’에 접속해서 늘 요리를 즐겨 했고 아예 직업도 요리사로 선택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은 요리와 관련된 것이었고 스킬 또한 대부분 요리 쪽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게 천서에는 요리와 관련된 수많은 지식과 정보, 스킬들이 쌓여갔다.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나중에 그는 식신(食神)이라고 불리는 희대의 요리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가 직접 공개한 그의 천서에는 정말 방대한 양의 요리에 대한 정보와 스킬이 기록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것들은 그가 스스로 알아낸 것이었지만 놀랍게도 몇몇 특수한 정보들과 스킬들은 어느 순간 천서에 자동으로 기록된 것들이었다.
천서는 수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신의 책이었다.
그곳에는 모든 진리와 모든 진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모든 진리와 모든 진실을 얻는 방법은 천서에게 그 자격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식신이 된 그 요리사는 자격을 얻었기에 천서가 스스로 그에게 필요한 진리와 진실을 공개해주었다.
그런 식이었다.
천서는 우라노스가 남긴 유일무이한 신의 파편이었고 그것은 수많은 불멸인(유저)에게 그들이 갈 길을 안내했다.
아카식 레코드 시스템, 또는 천서신언(天書神言)이라 불리는 이 장치야말로 ‘ONE’의 백미였다.
난 그 천서에 수많은 기록을 남기는 중이었다.
이건 자칫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절대 쓸데없는 짓이 아니었다.
내가 가려는 길은 남들과는 다른 길이었다.
남들은 자신의 행위가 아카식 레코드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고 나중에 자신이 어떤 길을 걸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누가 신의 뜻을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신의 뜻을 알았다. 아니 신이 나에게 어떤 길을 안내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천서를 각종 정보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검을 만들 때 쇠를 접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총이란 무기에 방아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무기의 특수한 구조를 계속 연구한 끝에 마나와 기는 결국 같은 성질이란 것을 알았다.]
[쇠만큼이나 단단한 성질의 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잊힌 대륙의 문자 ‘XXX’를 알았다.]
[잊힌 대륙의 문자 ‘XXXX’를 알았다.]
[합금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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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질 대로 망가진 크로노스 대륙의 병기들은 나에게 수많은 정보를 전해 왔다.
나중에 사람들은 이것을 ‘천서 노가다’ 혹은 ‘아카식 레코드 작업’이라고 불렀다.
무수히 많은 정보를 천서에 가득 채우는 작업. 이 작업을 통해 숨겨진 스킬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상위 랭커들은 다 한 번씩 이런 작업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처럼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이깟 잡템들은 대부분 1~3 쿠퍼에 사들이는 것들이었다. 대량으로 살 땐 더 싸게도 샀다.
4골드는 무려 40,000 쿠퍼였다.
일주일 동안 펑펑 잡템을 샀지만 아직도 2골드가 남아 있었다.
아직 여유가 있었다.
돈이 다 떨어질 것 같으면 그땐 무공비급을 팔면 되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아카식 레코드작업과 잡템 모으기.
난 적어도 이 작업을 두 달은 할 생각이었다.
레벨?
스킬?
그건 두 달 후부터 시작이었다.
물론 남들이 봤을 때 이런 나는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날 현문성의 기인(奇人)이라고 불렀다.
“후후, 기인이라~!”
난 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알까?
지금 당장 레벨을 올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ONE’이란 게임에서는 레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