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현문성의 기인 ― 1
* * *
일주일이 흘렀다.
‘ONE’은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처음 며칠은 정말 한산했다. 그다지 많지 않은 접속자들…… 하지만 그 많지 않은 접속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이런 게임이 있었다니!’
‘이게 정말 그 ‘ONE’이 맞는 건가?!’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가상현실.
아니 감히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게임.
그것이 바로 ‘ONE’이었다.
어쨌든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요 몇 년 사이 제대로 된 대작 게임이 없었기에 많은 게이머는 재미있는 게임에 목말라 있었다.
특히 제대로 된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들려온 ‘ONE’의 소문은 정말 빠르게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또 한 번 드는 생각이지만 과거에 나는 왜 이 소문을 무시했을까?
그땐 내가 정말 잠깐 귀신에라도 홀렸던 것 같다.
여하튼 단 일주일 만에 엄청난 숫자의 신규 유저들이 유입되었다.
덕분에 이제 더 이상 한산하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현문성이 초보들에게 추천되는 지역이 아니었기에 약간이나마 한산한 느낌은 들었지만 이런 현문성에도 꽤 많은 숫자의 초보들이 유입되고 있었다.
‘솔직히 현문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쌩 초보들에겐 별로 좋은 곳이 아닌데…….’
아마도 한꺼번에 몰려든 유저들이 초보들에게 좋다고 소문난 도시에 몰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적한 이곳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초보들에게 좋다고 소문난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 지역에는 초보들을 배려한 몇 가지 안배가 있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처음이라면 당연히 그런 지역을 선택하는 게 유리했다.
물론 나처럼 몇 년을 플레이한 유저라면 그런 배려 따위는 필요 없겠지만 지금 방금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에 나 같은 놈 자체가 존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난 존재 자체가 모순(矛盾)인 존재.
하지만 이런 나였기에 남들은 감히 꿈꾸지도 못하는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었다.
어쨌든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일들 중엔 좋은 일도, 그리고 별로 좋지 않은 일도 있었다.
먼저 나는 최초 목표했던 28가지 최초의 불멸인 퀘스트를 모두 선점하지는 못했다.
25가지.
안타깝게도 3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28가지 중 25가지를 내가 선점했으니 그리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
25가지의 최초의 불멸인 퀘스트를 하고 얻은 아이템은 총 25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큰 착각을 한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직 경매장 시스템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차근차근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니 경매장 시스템은 앞으로 한 달은 있어야 제대로 도입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기본적인 경매장 시스템은 존재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착각을 한 건 내가 전생에서 초기에 ‘ONE’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료 조사를 할 때 초창기의 ‘ONE’에 대해서 열심히 했었지만 그건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예전에 게임을 시작하기 전 자료조사를 했던 것을 이번 생에서 다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큰 착각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의 실수.
하지만 이번 실수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경매장이 안 된다면 직접 팔면 된다.
비록 가격 면에서 손해를 볼 건 분명했지만 적어도 빠르게 현금화를 시킬 수 있다는 장점은 존재했다.
그래서 난 25가지의 아이템을 모두 직접 팔았다.
왜 내가 쓸 수 있는 몇 가지 아이템은 안 챙겼냐고?
당연히 챙길 필요가 없었다.
난 당장 사냥을 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 내 계획에서 레벨 업을 위한 사냥이란 단어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나오는 단어였다.
당연히 사냥을 하지 않을 계획이기에 좋은 장비 따위는 필요 없었다.
‘ONE’에서는 직접 노점상을 개설해서 유저들과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상인계열 직업을 얻으려는 이들은 모두 이러한 노점상을 개설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난 상인이 되기 위해 노점을 개설한 게 아니었다.
순수하게 25개의 아이템을 팔기 위한 노점이었다.
워낙 초반에 좋은 성능을 자랑하는 최초 퀘스트 보상 아이템이어서 팔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 이들이 꽤 있어서 가격도 생각했던 것보다 후하게 받았다.
돈이 생겼다.
다른 이들은 초반에 만져 보지 못할 거금이었다.
‘ONE’에서 화폐 단위는 매우 간단했다.
100쿠퍼는 1실버였고 100실버는 1골드였다.
동대륙(한대륙)에서는 100동이 1은이었고 100은이 1금이었다.
동이나 쿠퍼 그리고 은과 실버, 금과 골드는 같은 의미로 쓰였다.
개발자가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일까? 두 대륙의 화폐들은 그 생김새나 값어치가 정확하게도 똑같았다.
각설하고 어쨌든 맨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모든 유저에게 1실버를 주었다.
그런데 나는 시작하자마자 무려 4골드를 벌었다.
동대륙 표현대로 하자면 4금이었지만 뭐 어차피 같은 의미였고 난 원래 골드라는 표현을 많이 썼기 때문에 4골드라는 말이 더 좋았다.
4골드, 이 돈은 나중에는 그렇게 큰돈이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누가 감히 시작하자마자 이런 거금을 가지고 있겠는가?
난 남들이 다 1실버를 받고 시작할 때 4골드를 받고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남들과는 다른 시작.
이 정도는 되어야 타이틀 ‘더 로드’를 가진 이의 자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에 만족하면 그거야말로 멍청한 것이었다.
만족이란 단어는 앞으로 내 사전에서 지울 필요가 있었다.
난 끊임없이 욕심을 내고 끊임없이 전진해야 했다.
만족?
그건 능력이 없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자기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만들어낸 나약하고 쓸데없는 단어였다.
난 25개의 아이템을 모두 처분해 4골드란 돈을 얻고 난 후 다시 노점을 차렸다.
이번에는 뭔가를 파는 게 아니라 뭔가를 사들이는 노점이었다.
[각종 잡동사니 아이템 삽니다.]
나는 잡동사니 아이템, 흔히 말하는 잡템을 사들였다.
사람들은 처음엔 상점에서도 안 사는 잡텝을 사들이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혹시 잡템에 무슨 숨겨진 기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난 그런 이들의 모든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계속 잡템을 사 모았다.
어차피 그들이 의심하고 미쳤다고 떠들어도 잡템을 파는 이들은 꾸준히 증가했다.
원래 시끄럽게 떠드는 유저들보다 조용히 게임에 집중하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
당연히 내 가상 가방과 가상 창고에는 수많은 잡템이 쌓여갔다.
물론 난 아무 잡템이나 막 사는 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세 가지였다.
첫째가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헌 종잇조각.
둘째가 쓸모를 알 수 없는 돌덩어리들.
셋째가 완전히 못 쓸 정도로 녹슨 각종 장비들.
난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사들였다.
수많은 사람이 이런 나를 보며 의문에 또 의문을 품었지만 그들은 왜 내가 이것들을 사는지 절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그 이유를 알았다면 그건 그들 역시 나처럼 시간을 거스른 이들일 것이다.
굳이 친절하게 그것들의 쓰임새를 설명하자면…… 첫 번째 헌 종잇조각들은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냥 헌 종잇조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각각 짝이 있었다.
짝이 맞는 헌 종잇조각을 100장에서 200장을 모으면 그것들은 한 권의 책이 되었는데 그 책들이 바로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 무공비급이었다.
물론 이건 대략 현실 시간으로 한 달은 더 흘러야 밝혀지는 비밀이었다.
그리고 무공의 급수도 거의 하급이나 중급이 대부분이었고 간간이 상급을 건질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하급이건 중급이건 초반에 무공비급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뿐인가?
만약 상급 무공비급이라도 구하게 되면 그거야말로 대박 중의 대박이었다.
무심코 버리는 헌 종잇조각에 그런 비밀이 숨어 있다는 건 아직 아무도 몰랐다.
당연히 모를 것이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비밀을 최초로 알아낸 이가 동대륙에서 이름을 좀 날렸던 동방갑자라는 유저였는데 그는 당당하게 그 비밀을 알아내자마자 공개해버렸다.
원래 그 동방갑자 유저가 그런 인물이었다.
일명 비밀파괴자라고 불렸던 동방갑자는 늘 남들이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알아내 공개해 버려 많은 일반 유저들에게 인기를 얻은 인물이었다.
나중에 게임 속에서 탑 랭커로 활동하며 수많은 전투와 전쟁이 있는 곳 그리고 다른 여러 비밀스러운 곳을 오고 가며 그 모습을 방송으로 만들어 대박을 터트린 인물이었다.
비밀파괴자 동방갑자.
그런 그도 내가 이렇게 먼저 헌 종잇조각을 모으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현재 내가 얻은 비급은 하급 3개, 중급 5개 그리고 무려 상급 1개였다.
경매장 시스템이 정상으로 되고 동방갑자가 종잇조각의 비밀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비급을 풀지 않을 생각이었다.
괜히 필요 이상으로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만도 너무 과한 관심이었다.
헌 종잇조각이 그렇게 쓰였다면 나머지 두 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그것 중 돌덩어리는 헌 종잇조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돌덩어리는 이미 많은 유저들이 대략 뭔가 비밀이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잘 매입이 되지 않았다.
과거 내 옛 생에서도 이 돌덩어리에 대한 정보는 일찍 밝혀졌었다.
그것도 누가 특별히 공개한 게 아니라 많은 유저들이 스스로 알아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