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다시 시작(Re star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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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저는 남들보다 좀 빨리 상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단한 게 있었죠. 그게 뭐냐 하면…… 제가 제일 처음 찾은 상점은 바로 대장간이었는데, 대장간에 들어서자마자 그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절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그 대장장이가 얘기를 시작하자 갑자기 퀘스트가 발동되었고 그 퀘스트를 수락한 후 얘기를 끝까지 들어 퀘스트 완료를 하자 저에게 무기들을 보여주며 하나를 고르라고 하더군요. 전 당연히 고마워하며 검을 한 자루 골라서 받았었죠. 하지만 그때까지도 전 그 검은 대장간을 찾아오는 유저들에겐 모두 나누어주는 초보용 무기 같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놀랍게도 그 검은 극 초반 레벨에서 최고의 효율을 보여주는 검이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당시 최고가의 액수로 그 검이 거래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더 결정적인 건 그 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최초 그 대장간을 찾은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전 돌발성 퀘스트를 완료한 것이었죠. 그리고 전 나중에 대장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상점에서도 똑같은 돌발성 퀘스트와 보상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만약…… 그 상점의 최초 방문을 혼자서 독식한다면…… 초기에 엄청난 이득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었습니다. 물론 그건 거의 불가능하겠죠. 저만 해도 대장간에서 대장장이의 얘기를 듣기 시작하자 이미 몇몇 유저들이 대장간에 들어왔었고 대장장이의 얘기 자체도 생각보다 길었으니 혼자서 그 돌발성 퀘스트를 독식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만약에 그것을 독식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 초반에 엄청난 부를…….
주절주절 긴 글이었지만 글의 핵심은 하나였다.
전 대륙의 모든 상점에는 최초 방문자 일인에게 돌발성 퀘스트와 보상을 준다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했다.
계속 강조하지만 ‘ONE’에서 최초라는 건 늘 특별했다. 지금 당장은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이들이 ‘ONE’에서 최초라는 것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최초의 퀘스트들을 모두 내가 독점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래 봤자 극 초보일 때 쓸 만한 아이템을 준다는 것뿐이었지만 중요한 건 시점이었다.
분명 그 아이템은 앞으로 몇 주만 지나도 별 것 아닌 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며칠 아니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그것의 가치가 한없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 현실적으로 한 유저가 그 최초 방문자에게 주는 초기 아이템들을 독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가상현실에 적응이 빠르고 재빨리 상점들의 위치를 찾아낸다고 해도 두 가지 아이템 이상 선점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가능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상점들을 최초 방문했을 때 아주 좋은 보상을 주는 돌발성 퀘스트가 발생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현문성, 비록 동대륙에서 큰 성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가장 많은 수의 상점들이 존재하는 곳. 그렇기에 내 초기 시작 지점은 이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현문성을 초기 시작 지점으로 점찍은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 숨겨져 있는 비밀상점들까지 모두 합쳐 스물세 개의 상점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상점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돌발성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건물들이 다섯 개가 더 있었다.
총 스물여덟 개, 아무리 내가 남들에 비해 많은 여유시간을 받았다고 해도 다 돌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의 숫자였다.
하지만 난 스물여덟 개 모두 독식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최대한 짧은 동선을 이미 머릿속에 그려 놓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숨겨져 있는 비밀상점들은 가장 나중에 방문할 생각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금세 내가 생각해 둔 첫 번째 상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문성에 있는 유일한 대장간.
보통 동대륙에서는 무기점과 대장간은 같은 곳이었기에 아마도 몇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는 수많은 초보유저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끼익.
약간은 낡은 건물이었지만 앞으로 이곳을 이용하게 될 유저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지금 내가 여는 이 문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열고 닫힐 것이 분명했다.
땅땅.
대장간은 낡은 건물만큼이나 초라했다.
하지만 이 초라한 대장간 안에서 망치를 두들기는 NPC의 표정과 분위기는 평생 한길만을 고집해온 장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실례합니다.”
‘ONE’에서 NPC란 단순히 같은 말을 반복하는 멍청한 존재가 아니었다.
어떻게 ‘ONE’의 개발자들이 기존의 게임 속에 등장하는 NPC들과 전혀 다른 하나의 인격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뛰어난 인공지능을 지닌 NPC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내가 알기론 아주 많은 이들이 그것을 밝혀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시간을 거스르기 바로 직전까지도 그 비밀을 알아낸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결국 그것은 ‘ONE’이 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자 비밀이었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건 단지 이 NPC들을 대할 때는 유저를 대하듯이 해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땅.
망치 소리가 멈췄다.
망치질을 멈춘 대장장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못 보던 얼굴이군. 여행자인가?”
“네, 불멸의 인(印)을 지닌 크로노스 대륙의 생존자입니다.”
내가 지금 대장장이에게 나 자신을 소개한 이 방법은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 곧 널리 알려질 보편적인 것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대륙의 이름은 레아.
더 정확히 말해서는 둘로 나뉜 레아 대륙 중 동쪽에 위치한 한(韓) 대륙이었다.
동대륙의 이름은 한.
서대륙의 이름은 이오스.
그리고 그 두 대륙을 합쳐서 레아 대륙이라 불렀다.
어쨌든 NPC는 레아대륙의 인물이었고 나는 크로노스 대륙의 인물이다.
이것은 ‘ONE’의 설정부분과 연관이 있었는데, 나를 비롯한 모든 유저들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크로노스 대륙의 생존자들이었다.
불멸의 인을 지녀 영원히 죽지 못하는 존재들.
그것이 유저들의 정체였다.
혹자는 저주받은 이들이라고 했고 혹자는 아직 인간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한 레아 대륙을 위해 신이 직접 데리고 온 전사들이라고 했다.
뭐 이건 전부 설정의 일부분이었지만 어쨌든 난 워낙 ‘ONE’을 오랫동안 플레이 해봤기에 늘 해왔던 방식으로 대장장이에게 대화를 건넸다.
“호오, 진짜 불멸자(不滅者)였군. 가이아 님의 배려로 대륙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다시 태어난 이들이라고 했던가? 정말 신기하군! 아, 이해하게. 내가 불멸자를 처음 보는 거라 말이 많았네. 사실 레아대륙에 수많은 불멸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다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긴 좀 힘들었거든.”
대장장이는 나를, 아니 불멸자를 만난 것이 그렇게나 신기한지 주절주절 계속 떠들었다.
그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나를 진짜 불멸자라고 말할 수 있던 건 그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눈 덕분이었다.
기본적으로 겉모습만 놓고 봤을 때는 레아대륙의 사람들(NPC)과 크로노스 대륙의 사람들이 가지는 차이점은 한 가지도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크로노스 대륙의 사람들, 이제는 크로노스 대륙의 생존자 또는 불멸자라 불리는 그들은 레아대륙의 사람들과 단 한 가지가 달랐다.
눈 안에 존재하는 눈동자.
검디검은 이 눈동자, 불멸자라 불리는 크노로스 대륙의 사람들은 모두 검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레아대륙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든 색의 눈동자를 지녔지만 유일하게 검은색 눈동자는 지니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크로노스 대륙의 생존자들, 즉 유저들은 모두 검은색 눈동자를 지녔다.
서양에서 플레이하는 외국인 유저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자신과 같은 모습의 캐릭터를 생성해도 눈동자는 무조건 검은색으로 통일되었다.
이 눈동자의 색이 불멸자라 불리는 유저들과 레아대륙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NPC를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더 많은 불멸자가 이곳에 찾아올 겁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얘기해주었다.
아마도 이 대장장이는 앞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유저들을 만나리라…… 그리고 결국 레아대륙에서 불멸자들이 어떤 존재로 성장하는지 지켜보리라.
그것이 그가 살아갈 운명이었다.
“그렇겠지…… 처음으로 가이아 님이 전 대륙인에게 동시에 내린 신탁이었으니 분명 그렇게 되겠지.”
대장장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가이아는 레아대륙의 주신이었다.
설정 얘기를 좀 더 하면 크로노스 대륙에는 원래 우라노스라는 주신이 있었는데 워 여차저차한 일로 인해 레아 대륙의 신인 가이아와 크게 다투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어질 것 같은 두 신의 전투는 우라노스의 어이없는 실수로 승패가 결정되었다.
당연히 가이아는 그 실수를 놓치지 않고 우라노스를 완전히 봉인해 버렸고 그 결과 우라노스가 신으로 군림하던 대륙은 신의 지지력을 잃고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덕분에(?) 크로노스대륙의 사람들은 한꺼번에 수장될 위기에 빠졌는데 그때 나선 게 두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가이아였다.
그녀는 크로노스 대륙에 비해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레아대륙을 위해 크로노스 대륙에 존재했던 이들에게 불멸의 인(印)이라는 묘한 저주를 걸고 레아대륙으로 강제 이동시켰다.
자신과 같은 주신이었던 우라노스와 싸우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에게(설정상 앞으로 등록하게 될 모든 유저들) 강력한 저주(?)를 건 가이아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신의 권능을 사용해 결국 긴 침묵기를 가져야 했지만 그래도 이미 레아대륙은 새롭게 유입되는 불멸자들 덕분에 점점 발전하게 되어 있었다.
뭐 중간중간 아주 복잡한 얘기가 더 많았지만 어쨌든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는 얘기였다.
결국 우리 유저(불멸자)들은 몬스터가 넘쳐나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지천에 널린 이 레아대륙에서 열심히 몬스터를 잡아 인간이 살 수 있는 영역을 넓히며 레아대륙을 발전시켜야 했다.
“그래, 첫 번째를 나를 찾아온 불멸자여. 그대는 혹시 우리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얘기를 들어보겠는가?”
띠링, ‘첫 번째 불멸인’ 퀘스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예/아니요)
당연히 내 대답은 ‘예’였다.
“예, 경청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장장이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장장이가 할 얘기는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상이 가능한 얘기라도 정성스럽게 들어주는 것이 좋았다. 자칫 성의 없게 들었다간 퀘스트가 실패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받은 퀘스트, 하지만 이 퀘스트는 시작일 뿐이었다.
지존을 향한 길고도 험한 길.
그 길의 시작은 일단 최초 퀘스트 선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