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5화 (5/250)

005. P V P(Player vs Player) ― 2

* * *

‘ONE’에서 PvP는 매우 중요한 컨텐츠 중 하나였다. 물론 그것을 싫어하는 이들은 충분히 피할 방법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음으로서 얻는 이득이 워낙 많았기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컨텐츠에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이 얘기는 나중 얘기다.

지금은 클로즈베타 서비스.

다 망한 것 같은 ‘ONE’의 세상에서 PvP를 즐기는 유저, 그것도 내가 싸워보지 않은 유저를 찾기란 무척이나 힘들었다.

사실 보상도 문제였다.

정식서비스 이후에는 각종 영지전투, 길드전투, 요새전투 등등 수많은 전투가 이루어져 그에 따른 많은 보상이 있었다.

특히 지금은 없지만 정식 서비스에 추가될 킬 포인트 제도는 수많은 은둔 고수를 PvP의 세계로 이끌었다.

킬 포인트.

말 그대로 다른 유저를 사살하고 승리를 따냈을 때 얻을 수 있는 포인트였다.

이 포인트는 이 포인트는 일종의 지표였다.

예를 들어 이 포인트가 일정 수치가 되면 그에 알맞은 희귀 아이템을 구입할 수도 있었고 희귀한 스킬들을 배울 수도 있었다.

즉, 이 포인트야말로 PvP의 강함을 알려주는 척도였다.

한 마디로 PvP랭킹을 결정짓는 포인트가 바로 킬 포인트였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킬 포인트는 1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와 싸워서 승리할 때마다 포인트는 +됐다.

레벨 차이에 따라 +되는 킬 포인트는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를 잡아서 승리했을 때 얻는 +포인트보다 누군가에게 패배했을 때 빼앗기는 - 포인트가 더 크다는 점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킬 포인트는 0이 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포인트를 빼앗겨 상대방의 킬 포인트를 올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대신 그때부터는 상대방의 킬 포인트를 올려주지는 않아도 자신의 포인트는 계속해서 깎여 나갔다.

즉 -가 된다는 얘기였다.

물론 -로 넘어가면 무조건 한 번 죽을 때마다 킬포인트가 단 1점씩만 깎였고 일정 시간 내에 동일인에게 연속해서 죽을 때는 킬포인트가 깎이지 않는 규칙 때문에 포인트가 줄어드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가 된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일이었다.

킬 포인트가 -가 되면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특정 NPC들과 사이가 안 좋아져 NPC가 유저에게 덤벼들 수도 있었고 중립형 몬스터들이 선공형 몬스터로 바뀔 수도 있었다.

심한 경우 아예 특정 도시에 출입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일까? 한 사람당 한 개의 계정만, 그것도 꽤나 엄격한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ONE’이었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킬 포인트 조작을 시도하지 못했다.

사실 ‘ONE’의 절대 권력, ‘ONE’안에서 만큼은 신(神)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일루젼]에 앞에서 그렇게 간 큰 짓을 할 사람도 없었다.

[일루젼]의 눈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NPC, 모든 몬스터들의 눈이 [일루젼]의 눈이었다.

실제로 [일루젼]의 권능을 우습게 보았던 몇몇 유저들이 엉뚱한 짓을 하다 곧장 ‘ONE’의 세상에서 퇴출당한 적도 많이 있었다.

어쨌든 무척 엄격하다고 할 수 있는 ‘ONE’의 킬 포인트제도.

하지만 이 모든 건 정식 서비스 이후에나 적용되는 것들이었다.

정작 지금 나에겐 아무런 필요도 없는 정보들…….

나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새로운 유저뿐이었다.

클로즈베타 서비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1일.

게임시간으로 3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유저별 플레이어 승수는 5.

하지만 무려 삼 일 전부터 PvP존에는 아무런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그 끈질기던 ‘불꽃칼날’도 안 나타나고 있었다.

진짜로 막바지라서 그런 건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도시에 가도 유저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위기.

하지만 이 위기를 탈출할 마땅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젠장…… 돌아 버리겠네.”

이미 공지도 떴다.

현실 시간으로 내일 저녁 6시에 서버가 닫힌다는 소식이었다.

“후우, 초조해하지 말자.”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던가? 이제 남은 건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띠링, 잠시 후 10분 안에 서버가 닫힙니다.

경고 메시지가 떴다.

하지만 나는 경고 메시지 따위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내 정신은 온통 방금 PvP 존에 등장한 10명의 유저에게 가 있었다.

그들 중 다섯 명은 익히 아는 이들이었다.

‘불꽃칼날’과 그 밖에 나에게 수없이 죽은 네 명.

하지만 중요한 건 나머지 다섯이었다.

그들은 내가 전혀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현재 나에게 남은 유저별 플레이어 승수는 5.

그 숫자와 딱 맞아떨어지는 새로운 유저들 다섯.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제가 그놈을 압니다.”

뿌드득.

불꽃칼날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중얼거렸다.

그가 데리고 온 다섯 명의 유저는 척 보기에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희는 사실 PvP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서…… 일단 클로즈베타 서비스에서는 다른 것들을 실험하느냐고 PvP쪽에 전혀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희가 도움이 될까요?”

걱정스러운 것 같은 말투.

하지만 불꽃칼날은 크게 손을 가로저으며 절대 아니란 표정으로 얘기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성검 님과 그 일행분들의 실력은 제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비록 ‘ONE’에서 PvP를 경험하지 못하셨다지만 이미 다른 게임들에서 이룩해 놓으신 수많은 업적을 제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그 쥐새끼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불꽃칼날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크게 웃고 있었다.

‘성검? 성검…… 성검…… 아주 귀에 익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9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스윽.

나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머릿속으로 가상의 전투를 그렸다.

시간도 부족했고 적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저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

오로지 새로운 승수만 다섯 개 챙기면 되었다.

“어차피 죽는 것에 대한 조건은 여유가 있다.”

죽음에 여유가 있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크크, 이런 마무리도 나쁘지는 않겠군.”

불꽃칼날에게는 대출혈 서비스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머릿속에 대략의 전투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곧장 10명의 유저를 향해 돌격했다.

팟!

스킬발동, 패스트워크(Fast Walk).

연계스킬발동, 윈드붐(Wind Boom)!

두 가지 스킬이 절묘하게 연계되면서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열 명의 유저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완벽한 기습.

당연히 열 명 유저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재빨리 각자의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들이 무기를 뽑는 것보다 내가 난입하는 게 훨씬 빨랐다.

스킬조합, 크로스블레이드+검기난무(劍氣亂舞).

블레이드익스플로젼(Blade Explosion)!

이것은 내가 클로즈베타 서비스에서 조합한 스킬 중 순간 위력이 가장 좋은 기술이었다.

꽝!

“커헉!”

“으악!”

당연히 방심하고 있던 두 명의 유저를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띠링, 플레이어명 [제니스]를 쓰러트렸습니다.

띠링, 플레이어명 [코난]을 쓰러트렸습니다.

띠링, 두 명의 새로운 유저에게 승리했습니다. 총 플레이어 킬 수에 2가 추가되고 신규 유저 승리 횟수에 2가 추가됩니다.

빠르게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하지만 나는 그딴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 쥐, 쥐새끼! 죽여!!”

불꽃칼날이 크게 분노하며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있었고 나머지 유저들도 모두 각자의 병기를 뽑고 있었다.

띠링, 잠시 후 2분 후에 서버가 닫힙니다.

나는 다시 한번 들려온 재수 없는 시스템 메시지는 가뿐히 무시하고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난 동귀어진 기습 작전을 펼쳤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목표한 것을 모두 달성해야 했다.

스킬조합 라이징블레이드(Rising Blade)+속검(速劒(劍)?)

광속검(光速劒(劍)?

연계발동, 더블샷(Double Shot!)

내가 가장 애용했던 조합스킬 중 하나인 광속검을 더블샷으로 나누어 발동시켰다.

파팟!

허공을 가르는 두 줄기의 빛.

“컥!”

“큭!”

그 두 줄기의 빛은 정확히 유저 두 명의 심장을 관통했다.

띠링, 플레이어명……

.

.

또다시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하지만 그딴 메시지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퍼퍼퍽!

‘크으윽!’

등 뒤에 정확히 명중하는 몇 가지 스킬.

분명 불꽃칼날과 그 일행이 황급히 사용한 스킬들일 것이다.

주르륵.

등에 난 큰 상처와 함께 급속히 떨어지는 체력.

얼핏 보아도 치명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질 수 없었다.

아직 남은 게 하나 있었다. 한 명의 신규유저, 아까 불꽃칼날이 성검이라 불렀던 그 남자를 잡아야 했다.

‘힘이…… 힘이 너무 빠지고 있어.’

급속도로 떨어지는 체력과 함께 검을 휘두를 힘까지 빠져나가고 있었다.

‘ONE’의 전투시스템은 무척 현실적이라 체력이 소비되면 전투력도 당연히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무슨 수치로 표시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현실처럼 체력이 없으면 검을 휘두를 힘도 없어졌다.

하필 재수 없게도 이 현실감 있는 전투시스템은 클로즈베타나 정식 서비스나 비슷했다.

덕분에 나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마지막 일격을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안돼 포기할 수 없어!’

나는 마지막 집념을 불태웠다.

그리고 똑바로 성검이라는 그 유저를 노려보았다.

흠칫

성검이라는 유저는 무척이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압도당한 건가?

내 끝없는 집념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 성검의 움직임을 봉쇄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띠링, 체력이 99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최후의 일격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불끈.

잊고 있던 한 개의 스킬이 지금 방금 그 사용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그와 동시에 나의 몸속 깊은 곳에서 한 줄기의 강력한 힘이 쏟아져 나왔다.

“가랏!”

스킬발동, 최후의 일격!

키잉!

퍼퍽!

내 검은 성검의 목을 꿰뚫었다.

“으악!”

쓰러지는 성검.

쓰러지는 나.

나와 성검은 그렇게 동시에 쓰러졌다.

띠링, 플레이어명 [천룡성검]을 쓰러트렸습니다.

띠링, 한 명의 새로운 유저에게 승리했습니다. 총 플레이어 킬 수에 1이 추가 되고 신규 유저 승리 횟수에 1이 추가됩니다.

띠링, 스킬 집념의 속박(A급)을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숨겨진 모든 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띠링, 타이틀 ‘더 로드(The Lord)’를 획득하셨습니다.

털썩.

10, 7, 3, 0.

내 체력이 0이 되었다.

나는 죽었다.

하지만 죽는 순간 나는 분명 들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타이틀 ‘더 로드’, 난 그것을 획득했다.

띠링, 잠시 후 10초 후에 서버가 종료됩니다.

내 죽음과 함께…… 길었다면 긴 클로즈베타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그렇게 나는 지존을 향한 첫 발걸음을 훌륭하게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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