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P V P(Player vs Player) ― 1
* * *
스킬발동, 크로스블레이드!
촤아악!
“크억!”
내가 가진 두 자루의 검은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남자의 가슴에 멋진 십자 흉터를 만들어 주었다.
“시, 시팔…… 개자식…… 내…… 내가 언젠간 죽……인다.”
털썩.
쓰러지는 남자.
띠링, 플레이어 [불꽃칼날]을 쓰러트렸습니다.
띠링, 342번째 중복 승리입니다. 총 플레이어 킬 수에 1이 추가됩니다.
“삼백사십이 번째라…… 징그러운 놈.”
나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342번을 죽인 나도 징그럽지만 342번을 죽은 저 녀석은 정말 대단한 끈기를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 그를 죽였을 때 그의 이름이 불꽃칼날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랐었다.
왜냐하면 불꽃칼날은 예전 생애에서도 꽤 유명한 랭커였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PvP 쪽에서는 무척 이름 높은 이였다.
저돌적인 검술과 과감한 전략으로 그가 길드마스터로 있던 길드는 ‘ONE’에서 굉장히 상위권에 속하는 길드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342번이나 죽었다.
사실상 현재 ‘ONE’에서 나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레벨?
스킬?
아이템?
그 무엇도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불꽃칼날도 나에게 한 100번쯤 죽었을 때 그것을 깨달았는지 그 뒤부터는 무리를 지어 덤볐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좀 많이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최후에 서 있는 것은 늘 나였다.
그들은 내 관점에서 보면 아직 초보였다.
가지고 있는 스킬을 조합하지도 못했고 연계시키지도 못했다. 그뿐인가? 어떤 아이템이 진짜 좋은 아이템인지 잘 알지도 못했다.
‘ONE’에서는 무조건 등급이 높은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 아니었다. 등급도 등급이지만 자신이 어떻게 사용할지를 잘 판단해서 그 성향에 맞는 아이템을 골라야 했다.
그뿐인가?
그들은 나처럼 제대로 레벨 업을 하지도 못했다.
체계적인 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뒤지는 그들, 하지만 무리를 지어 덤볐기에 나도 아찔한 상황이 몇 번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들의 전략 따위는 이미 줄줄 꿰고 있는 나에게 그들이 이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도 ‘불꽃칼날’ 이놈의 근성은 정말 알아줘야 했다. 이놈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많이 중복 승리한 유저가 나에게 104번 죽은 것을 보면 이 녀석이 얼마나 근성 있게 나한테 덤볐는지 알 수 있었다.
근성의 불꽃칼날.
나는 그 녀석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이제 근성검이라 부를까? 후후훗.”
나는 쓰러진 불꽃칼날 일행들이 떨어트린 아이템을 주우며 웃었다. 그들의 아이템 따위는 나에게 쓰레기나 다름없었지만 이렇게 아이템을 주워서 없애야 조금이나마 나를 안 귀찮게 했기에 이 작업은 꼭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솔직히 지금 웃을 여유도 그리고 이 녀석들과 싸울 여유도 없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유저.
나와 싸워보지 않은 그런 유저였다.
“젠장! 미치겠군.”
답답해졌다.
난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클로즈베타 서비스가 시작되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현재 ‘ONE’의 클로즈베타 서비스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대로 클로즈베타 서비스가 막바지에 다다른 ‘ONE’의 평가는 최악 중 최악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유명 게임평가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베타 플레이어의 글을 인용해보면…….
[34232] 모든 게 최악,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게임 ‘ONE’.
[34233] 가상현실? 현재 기술력으론 역시 무리였다.
[34234] 이 게임을 다시 할 바엔 십 년 전에 접은 ‘워 소드(War Sword)’를 다시 한다.
[34235] 휴, 한숨만 나오는 게임.
[34236] 최고의 게임입니다. (단, 여기서 최고의 뜻은 알아서 해석하시길 바랍니다.)
[34237] 젠장 나 DH 소프트 주식 가지고 있는데…… 망했다. 망했어.
[34238] DH주식? 흐흐, 역시 내가 맞았어. 전 ‘ONE’ 나오기 전에 눈치 까고 싹 다 팔아버렸습니다. 하하하하.
수많은 글, 이 글들만 읽어보아도 지금의 ‘ONE’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서비스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필드에서 플레이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직 클로즈베타 서비스 기간이라 월드맵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략 그 크기가 현실에서의 한 도시의 면적과 비슷했다.
후에 정식서비스가 열리면 월드맵의 크기가 엄청나게 늘어나 한반도의 78배 정도의 면적, 굳이 나라를 들어 비교하자면 현재 중국의 국토면적과 비슷한 크기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단 현재는 기껏해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여하튼 어느 정도 넓다면 넓을 수 있는 그 공간 안에 유저들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줄어버렸으니 내가 사냥을 하는 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이제 더 이상 잡을 몬스터를 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백만 마리가 넘는 양의 몬스터를 잡았다.
종(種)수로 따지면 정확히 1,114종.
그 중 네임드 몬스터만 103마리였다.
내가 딴 타이틀의 수많은 타이틀의 개수만 세어도 무려 1217개.
‘ONE’에 아무리 40만 개에 가까운 타이틀이 존재한다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많은 수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딴 타이틀들은 별 의미가 없었다.
제일 중요한 타이틀을 아직 따지 못했기에 현재 가지고 있는 1,217개의 타이틀은 나에게 조금의 감흥도 주지 못했다.
몬스터 사냥은 끝났다.
하지만 아직 ‘더 로드’ 타이틀은 따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했다.
아직 타이틀 획득 조건을 다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왜 만족시키지 못한 것일까?
필드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를 학살했고 그밖에 조건들이었던 퀘스트를 천 가지 이상 클리어하기나 A급 이상 스킬 10개 이상 발견해 내기 같은 것들도 모두 만족시켰다.
그뿐인가?
모든 조건을 클리어할 때까지 10번 이상 사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현재 3번 죽은 걸로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밖에 수많은 자질구레한 조건도 당연히 다 만족시켰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남은 것일까?
남은 건 오로지 하나였다.
흔히 PvP라 말하는, 다른 플레이어와의 대결. 그것이 바로 마지막 관문이었다.
내가 넘어야 하는 마지막 난관, 처음부터 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부분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각기 다른 천 명의 플레이어와의 대결에서의 승리와 총 플레이어 킬 수 4천 이상.
‘ONE’의 클로즈베타에 참여한 테스터가 총 일만 명이었으니 그중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유저들과 싸워서 이겨야 했다.
하지만 말이 십 분의 일이지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하자마자 접은 사람들이 거의 삼 분의 일이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조금씩 게임을 그만두어 현재는 천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의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물론 이런 걸 예상하고 틈틈이 PvP 존을 오가며 다른 유저들과 전투를 치렀지만 아직까지 나의 유저별 플레이어 승리 숫자는 978에 머물고 있었다.
총 플레이어 킬 수는 거의 5천에 육박했지만 PvP라는 컨텐츠가 워낙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인지라 PvP 존에서 만나는 놈들이 그놈이 그놈일 때가 많았다. 그 망할 놈의 ‘불꽃칼날’처럼…….
총 플레이어 킬 수 4천은 채우고도 남았으니 이제 남은 건 유저별 플레이어 승수 22였다.
22…… 클로즈베타 서비스가 아직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 게임 시간으로는 21일이 남았기에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남아돌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가뜩이나 많은 유저들이 떠난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새로운 유저가 PvP 존에 등장하는 경우가 너무나 드물었다.
실제로 지금 며칠째 새로운 유저와 만나지 못한 것만 보아도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었다.
“계산 착오야…… 이럴 줄 알았으면 사냥보다 먼저 플레이어와의 대결에 집중 했어야 했거늘…….”
너무 안일한 생각이 가져온 큰 실수였다.
내가 가고자 생각하는 길은 내가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런데 그걸 잊고 잠시 방심을 했다.
그 결과 방심은 실수로 이어져 버렸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는다.”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 22이란 숫자와 21일이란 시간.
난 무조건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마지막 조건을 만족시키고 말 것이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제외했을 때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 그것이 바로 포기를 모르는 집념과 그 집념을 바탕으로 한 끝없는 집중력이었다.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고.”
다시 한번 투지를 불사른 나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새로운 유저를 찾아 PvP 존을 헤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