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화 (2/250)

002. 클로즈베타 서비스 ― 1

* * *

‘ONE’이라는 게임에 대해 현시점에서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심지어 개발자들도 나보다는 모를 수 있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ONE’이 시대를 초월해 엄청난 가상현실게임으로 성장한 건 개발자들의 노력이 아닌 아주 우연한 개발자들의 실수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은 이러했다.

‘ONE’의 메인 AI인 ‘일루젼(illusion)’은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된 특수인공지능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에 DH 소프트는 그 프로그램을 손에 넣었고 그것을 토대로 ‘ONE’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개발자가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일루젼에 당시 치명적인 바이러스라고 소문난 에이션트웜(Ancient Worm)을 감염시키는 말도 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그 결과 난리가 났다.

모든 개발자가 일루젼을 폐기해야 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일루젼과 에이션트웜이 만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에이션트웜을 일루젼이 집어삼키며 놀라운 변신을 했다. 그건 변신이 아니라 진화였다.

일루젼은 그때까지 기술로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던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으로 발전했다.

그때부터는 모든 게 수월하게 풀려갔다.

일루젼은 ‘ONE’을 가상현실 이상의 세계로 새롭게 재탄생시켰고 그 결과 ‘ONE’은 환상 그 자체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소문의 전부였다.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 바로 얼마 전에 DH 소프트에서 퇴사한 한 개발자의 자서전에는 그 소문이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나와 있었다.

물론 DH 소프트는 그 자서전의 내용을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발표했지만 내가 봤을 때 소문은 분명 진실이었다.

어쨌든 소문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ONE’은 분명 엄청난 게임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클로즈베타가 아닌 오픈베타부터였다.

그렇다면 난 왜 클로즈베타 테스터에 당첨되는 것을 원했던 것일까?

그것의 해답은 바로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이 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초기의 ‘ONE’의 접속은 기존에 존재하던 가상인터넷 단말기를 이용한 간단한 방식이었다.

물론 시간이 약간 흐르고 오픈베타를 시작하면서 점점 ‘ONE’의 전용 단말기가 등장해 그 후 반년 만에 ‘ONE’ 전용 캡슐용 접속기기가 등장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한 쌍의 장갑과 한 개의 단순한 헬멧으로 이루어진 가상인터넷 단말기를 이용한 접속 때문일까?

클로즈베타에서의 ‘ONE’은 거의 최악이었다.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 울렁증부터 완전히 가상이라는 게 느껴지는 세계, 그리고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NPC(Non-Player Characters)들은 플레이어들을 전혀 가상현실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하긴 내가 초반 반응만 보고 그토록 치명적인 실수를 할 정도였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실제로 해보니까 왜 내가 그때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ONE’의 초반 평가는 아주 극악 중 극악이었다.

도저히 게임이라고 봐주기 힘들다는 평이 줄을 이었고 사람들은 DH 소프트가 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한 소문 때문에 초기의 DH 소프트는 경영난까지 겪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나는 살짝 ‘차라리 주식을 지금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뭐 어차피 그렇게 차이도 나지 않고 괜히 주식에 신경 쓰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에 계속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주식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 거지 같은 울렁증을 계속 참으며 나는 땅을 파고 또 팠다.

‘ONE’은 자유도가 매우 높은 게임이었다.

특별히 몇 가지 직업이 정해져 그것을 선택하는 그런 게임이 아니었다.

‘ONE’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직업이 존재했고 사람들은 직접 플레이를 하며 특별한 계기나 인연을 통해 그 직업들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어떤 행동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특별한 퀘스트를 깨거나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켜서 남들보다 조금 더 특수한 직업을 얻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경우는 분명 좋은 만큼 큰 패널티가 존재했다.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ONE’의 칠 년 후 상위 통합 랭킹 순위에는 그 특수한 직업은 극소수일 뿐이었다.

오히려 특수하지 않은 여러 직업들이 대부분의 상위 랭킹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난 특수한 직업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아니었다.

나는 매우 특수한, 아주 특이하면서 특별한 직업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특수한 직업이 대성하기 힘들다는 점을 알면서도 아주 특수한 직업 한 가지를 머릿속에 새겨놓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그런 상위 랭커가 아니었다.

일인무적!

일인군단!

나는 진정한 지존이 되길 원했다.

지존이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그 준비를 위해 난 클로즈베타 서비스 기간 동안 잠과 휴식 시간을 최대한 배제하고 한 가지를 얻어야 했다.

스킬?

아니었다.

어차피 스킬은 올리고 싶다고 해서 그리 쉽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스킬 숙련도 같은 건 아주 극악의 상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ONE’에서 한 사람이 배울 수 있는 스킬의 종류 수는 무한대였다.

원한다면 모든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이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마법사 계열 직업을 지녔다고 해도 검술스킬, 격투스킬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

그뿐인가?

각종 모든 생산스킬도 다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운다고 다가 아니었다.

누구나 그 어떤 스킬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스킬의 숙련도를 올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숙련도를 올린다고 모든 게 끝나지는 않았다.

스킬의 숙련도는 한 번 올려놓으면 그 수치가 계속 유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용하지 않는 스킬의 숙련도는 주기적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각 스킬들은 상성이란 것을 가졌기에 A라는 스킬의 숙련도를 올렸을 때 B라는 스킬의 숙련도가 떨어질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들을 예로 들자면 ‘검술 이해’와 ‘마법 이해’라는 기본 스킬들을 꼽을 수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두 스킬 모두 배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검술이해의 스킬 숙련도가 상승하면 마법이해 스킬 숙련도는 하락했다.

반대로 마법이해가 스킬 숙련도가 상승하면 검술이해 스킬 숙련도는 하락했다.

작용과 반작용.

‘ONE’에는 이러한 상성 시스템이 수없이 많이 존재했다.

덕분에 ‘ONE’에서는 만능 캐릭터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단지 누가 얼마나 더 많은 스킬을 조화롭게 익혔느냐가 중요했다.

자신이 가진 직업만큼이나 중요한 스킬의 조합.

그렇기에 ‘ONE’의 유저들은 늘 자신만의 직업과 스킬 조합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었다.

“후후, 직업과 스킬 조합. 많은 사람들이 늘 이 두 개를 놓고 수없이 떠들었었지.”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 가장 큰 ‘ONE’의 커뮤니티 장소가 될 곳에서 늘 시끌시끌했던 게시판이 바로 직업과 스킬조합에 대해 얘기하는 곳이었다.

무엇이 최고다.

어떤 스킬 조합이야말로 궁극의 조합이다.

수많은 토론이 오고 간 그곳.

나 역시 그곳에서 많은 연구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최고의 직업과 스킬 조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물론 예전의 나는 그것을 내 스스로 실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충분히 내가 단지 생각하기만 했던 그 최고의 직업과 스킬 조합을 실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클로즈베타 서비스가 끝나고 이어질 유료서비스에서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클로즈베타 서비스에서 내가 할 일은 오로지 하나.

바로 훗날 모든 유저들에게 진정한 전설의 초 희귀 유니크 타이틀이라 불릴 그것을 따는 것이었다.

‘ONE’에는 수많은 타이틀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타이틀은 무척이나 많은 효과를 지니고 있다.

어떤 타이틀은 특정 능력을 올려주기도 했고 어떤 타이틀은 특별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뿐인가?

어떤 타이틀은 그저 몸을 은은하게 빛나게 해 주었고 또 어떤 타이틀은 특정 몬스터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무궁무진한 종류의 타이틀.

덕분에 ‘ONE’에서 타이틀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내가 이번 클로즈베타에서 얻으려 하는 건 그 타이틀 중 하나였다.

오로지 클로즈베타에서만 등장했던 한 개의 타이틀. 내 그전 게임 인생에서는 그 타이틀을 소유한 이가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저 소문으로만 떠돌았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원래 그 타이틀은 등급상으로는 최상급(S급) 타이틀이었지만 나중에는 최상급 타이틀을 넘어서 진정한 레전드 타이틀(SSS급)이라고 불렸었다.

물론 무조건 희귀해서 SSS급으로 분류된 건만은 아니었다. 그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효과가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했기 때문에 그 타이틀은 SSS급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더 로드(The Lord)]

이것이 그 타이틀의 이름이었다.

예전 생에서도 절대 등장하지 않았던 타이틀.

그와 비슷한 엠페러(Emperor)나 마스터(Master) 같은 타이틀들은 많은 이들이 획득했지만 유일하게 더 로드라는 타이틀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실 그런 타이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알려지게 된 게 우연이었다.

‘ONE’이 오픈하고 오 년이 지났을 때 우연히 개발자 몇 명이 인터뷰하다 실수로 흘린 말 때문에 그 존재가 밝혀진 타이틀 ‘더 로드’.

하지만 그 획득 조건이 클로즈베타 때뿐이었다는 사실은 유저들에게 큰 절망을 안겨 주었다.

오로지 클로즈베타에서만 등록할 수 있는 초 희귀 타이틀, 내가 계속해서 초 희귀라는 말을 괜히 강조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결국 난 아주 희박한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을 얻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얼마나 힘들까?

당연히 굉장히…… 아주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난 꼭 얻고야 만다. 내가 가진 정보들 그리고 내가 가진 감각.

그 두 가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자!

난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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