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브리딩
12.
아파트에 당도했을 때에는 해가 저물어 있었다. 역운회 구건물 자리를 뜨자마자 사도동 의원 사무실에 들러 일필휘지로 업무를 처리한 다음 바로 왔음에도 꽤나 어둑했다. 10월의 해는 9월보다 짧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자신의 집이 아닌 밑층 우태원 집이었다. 현관 키패드를 활성화해 자신의 생일을 누르고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미약한 사람 온기가 느껴졌다. 차유신은 구두를 벗고 거실을 밟았다. 어둠 속에서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 실루엣이 비쳤다.
“국감 끝나고 바로 왔어?”
재킷을 벗은 차유신이 물었다. 우태원은 답하지 않았다.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풍성처럼 그늘을 울렸다. 차유신은 재킷을 내려 두며 시선을 끌어 올렸다. 고개 숙인 우태원이 뒤늦은 대답을 꺼냈다.
“경찰청으로 안 돌아갔어요.”
“일 안 하겠다 이거야? 발언 끝났어도 마지막까지 남아는 있어야지.”
“일하고 싶지 않아요.”
무거운 음성이 설진처럼 흩어졌다. 차유신은 묵묵하게 맞은편의 머리통을 봤다. 숨을 고른 우태원이 입을 열었다.
“일주일 내내 어떻게든 버텨 왔는데, 점심에 선배 만나고 한계를 느꼈어요. 그래서 다 내려놓고 싶어졌어요.”
“점심 이후 계속 여기에 있었어?”
“네.”
“여기서 뭐 했어.”
“생각이요.”
우태원이 얼굴을 보였다. 차유신은 우두커니 그를 맞봤다. 거미에 젖은 낯에서는 그 어떤 색채도 비치지 않았다. 손을 대 톡 건드리기만 하면 알량한 도화지처럼 우그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암연 속에서 그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있겠다는 생각.”
“못 있겠으면 어쩔 건데.”
“선배가 강제로 저를 갖게 해야죠.”
“애원해서?”
“네.”
“방식은.”
“방식이요.”
우태원의 눈망울에 맺힌 이채가 춤을 추듯 줄렁였다. 목 끝까지 숨을 끌어 올린 그가 입을 열었다. 효후를 닮은 한마디가 거실을 흔들었다.
“예전에 했던 것처럼 다리를 부러뜨려 가둬 놓든지, 목에 줄을 걸어 묶어 놓든지. 아니면.”
어깨가 뜰썩였다. 그의 울대뼈가 진동했다.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평생 곁에 두든지…. 제 방식은 그래요. 고작 그따위 것들이죠.”
차유신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짐승의 눈을 오래된 주인처럼 바라봤다. 실낱같은 이성으로 광분을 억눌러 가며 헐떡이는 남자는 너무도 익숙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차유신은 그의 시야 속에서 살았고, 그의 삶을 완성했다.
그 역시 자신에게 그랬다. 그러므로 이 비뚤어진 열망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해 봐. 그러면.”
딱딱한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우태원이 무춤했다. 차유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쏟았다.
“그리해서 네가 편하다면 해. 난 상관없어.”
차유신의 입꼬리가 비뚤었다.
“식물인간이 좋겠네. 가장 확실하잖아.”
이윽고 엄하게 윽박질렀다.
“어서 해. 마음 변하기 전에.”
탕!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이 박차였다. 기립한 몸이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숨 가눌 틈도 없이 덮쳐진 차유신의 상체가 밀려났다. 차가운 바닥에 등짝이 마찰했다. 뜨끔했으나 아프진 않았다. 차유신은 힘껏 눈을 치떴다. 코앞에서 맹수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목전을 향해 왔다. 단숨에 목이 쥐어 잡혔다. 목울대 밑으로 단단한 엄지손가락이 들어왔다. 눈에 핏발을 드리운 우태원이 목을 움켰다. 순식간에 숨통이 조였다. 아. 덜커덕거린 차유신의 고개가 넘어갔다.
급소를 찾는 움직임은 정석에 가까웠고, 덕분에 빠르게 숨구멍이 막혔다. 하얗게 질린 차유신의 면상이 파들거렸다. 목을 죈 손가락이 덩달아 떨렸다. 바닥에 떨어진 차유신의 손이 딸막였다. 가까스로 벌어진 입에서 비아냥거리는 언어가 샜다.
“하아… 아주 죽여 버리게…?”
우태원은 그저 이를 악물었다. 질근질근 어금니를 씹어 대는 턱이 보였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것도 나쁘지 않죠.”
그의 울대뼈가 꿀렁였다.
“그러면 머릿속에서도 날 떠나거나 버리지 못할 테니까.”
짓눌린 목울대 밑이 움푹 팼다. 하. 차유신의 입에서 젖은 신음이 터졌다.
“난 선배 시체와도 기꺼이 살 수 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뇌리에서 짜릿한 섬광이 번득였다. 샘솟은 아드레날린에 온 세포가 녹아 갔다. 차유신은 남은 기력을 다해 등을 전율했다. 풀어진 입매에 느른한 초승달이 고였다. 입술 틈에서 부드러운 명령이 샜다.
“그럼 죽여. 어서.”
우태원의 손등이 움칠거렸다. 차유신의 눈매가 고이 접혔다.
“네 두려움을 나와 함께 죽여, 태원아.”
그의 팔뚝이 터질 듯이 부풀었다. 피 한 방울 통할 틈조차 차단할 기세로 목이 졸렸다.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뇌성처럼 머리를 울렸다. 차유신은 약에 취한 듯 눈을 뒤집었다. 우련한 시야 속에서 금수가 울부짖었다.
뇌우 같은 고성은 야음을 한 바퀴 돈 끝에 그쳤다. 가죽을 꿰뚫을 양 억누른 손가락이 그때 떨어졌다. 목을 빼곡하게 두른 올가미가 느슨해지자, 차유신은 비로소 편안하게 머리를 뉘었다.
온 신경이 적색 등을 올리며 까물거리는 와중에도 차유신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가마득한 여타 감각의 흐름에 역행하며 유독 하나의 감각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후각. 그리웠던 그의 몸내가 만개한 것처럼 전신에 스며들었다. 차유신은 헤엄치듯 그의 냄새를 음미했다. 사람보다 짐승에 가깝고, 낮보다 밤에 가까우며,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내음을 만끽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미안.”
올라간 손이 우태원의 뒤통수를 덮었다. 손안의 머리카락이 흠칫거렸다. 차유신은 은은하게 덧붙였다.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
흘러내린 손가락이 귓등에 다다랐다. 말랑한 귓불을 찰흙처럼 주무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앉은 자세로 그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이고, 입을 열었다. 먹먹한 입 안에 말랑한 입술이 들어왔다. 차유신은 이빨을 내어 가만가만 그의 살을 씹었다.
“착하지.”
눈앞의 미간이 간헐적으로 팼다. 이따금 울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샘 없는 동물의 통곡처럼 마른 울음이었다. 차유신은 몇 번이고 입술을 씹어 주며 그를 달랬다. 우태원은 차유신의 온기를 흡수하듯 맹목적으로 마주 물었다.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서로를 씹은 끝에 차유신이 입을 뗐다. 바로 초조한 기색을 띤 우태원이 성급히 어깨를 안아 왔다. 멀어졌던 얼굴이 그의 목에 찰싹 붙었다. 우태원이 허겁지겁 갈구했다.
“더 해 줘요.”
“난 다른 거 하고 싶은데.”
“섹스요?”
“어떻게 알았어.”
차유신이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우태원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차유신이 갸웃했다.
“싫어?”
“좋아요.”
“그런데 왜 반응이 없어.”
“좋아서요.”
우태원이 서슴거렸다. 원하는 선물을 받고도 펼치기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처럼 뜸을 들이다, 대뜸 고개를 기울여 왔다. 차유신의 귀에 입술을 댄 그가 속삭였다.
“더 안심하고 싶어요.”
“섹스로 부족해?”
“부족해요. 임신시켜도 돼요?”
차유신은 이번에도 놀라지 않았다. 가만히 마주 본 얼굴이 주억거렸다. 말이 안 되는 우태원의 얘기를 듣고 말이 되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허리와 다리 밑으로 각각 팔이 들어왔다. 단번에 안아 든 우태원이 말했다.
“그러죠.”
허공에 뜬 몸이 이동했다. 우태원에게 쉽게도 안긴 꼴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보름 가까이 제대로 먹지 않으며 체중을 줄인 건 자신의 업보였다. 누굴 탓하기도 부질없었다. 다만 침대 위에 내려앉자마자 우태원의 목을 다리로 조이긴 했다. 우태원이 주춤했다. 차유신이 경고했다.
“다음부턴 안아 들 때 허락받고 해.”
“네.”
“바로 자지 넣고.”
“그건 싫은데요.”
“왜.”
거부한 우태원이 상체를 굽혔다. 밑에서 잡힌 차유신의 버클이 풀렸다. 속옷과 바지가 함께 잡혀 내려갔다. 드러난 허벅지에 싸늘한 공기가 스몄다. 옷가지가 발목까지 내려 붙여졌다. 벌거벗은 치부에서 음모가 버스럭거렸다. 우태원이 뇌까렸다.
“선배 냄새 맡아야 해요.”
강퍅한 손이 차유신의 양 허벅지를 움켰다. 그대로 젖히자 훤히 깐 엉덩이가 드러났다. 차유신은 시트에 등을 붙인 채 들어오는 우태원의 어깨를 지르밟았다. 눅눅한 셔츠에 걸린 발가락이 곰지락거렸다.
“밑에 빨 거야?”
“네.”
“그럼 제대로 빨아….”
누기에 젖은 언어가 문드러졌다. 우태원은 흔쾌히 얼굴을 끌어 내렸다.
“녹을 때까지 해 드리죠.”
엉덩이 골이 덥석 물렸다. 탐색하듯 이빨로 지분거리다, 두꺼운 혀를 쑥 뺐다. 둔부 틈을 벌린 살덩이가 회음부를 찾아 문질렀다. 혀의 돌기가 칫솔질을 하듯 맨살을 비비적거렸다. 치모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짙어졌다. 차유신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하아….”
“혀 박아요?”
“빨리….”
“엄청 벌름거리네요.”
고저 없이 희롱하는 우태원의 어깨를 발톱으로 내리찍었다.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은 우태원이 달래 왔다.
“보기 좋다는 얘기였어요.”
우태원의 머리통이 삐뚜름해졌다. 양 허벅지를 주물러 가며 엉덩이 사이를 넓히다, 불쑥 구멍을 향해 혀를 내질렀다. 갈고리처럼 꽂힌 끄트머리가 간을 보듯 꿈적거렸다. 감질나는 농락에 차유신의 턱이 덜컥거렸다. 우태원의 어깨에 걸린 발이 등을 타고 미끄러졌다.
“빨리 해… 흣.”
“더 밝혀 봐요.”
허벅지 사이로 거들뜬 눈매가 비쳤다. 뿜어져 나온 달뜬 숨이 치부를 적셨다.
“창부처럼 졸라 봐요.”
차유신의 송곳니가 빈틈없이 물렸다. 우태원에게 이라도 박아 버릴 양 식식대다, 입을 열었다. 고조된 음성이 튀어나왔다.
“안에다 혀 넣고, 휘젓고.”
목울대가 덜덜거렸다. 꿀꺽한 차유신이 말을 맺었다.
“있는 대로 적셔 놔. 좆 박자마자 끝까지 들어오게.”
우태원이 황홀하게 응수했다.
“네, 선배.”
대답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음모가 빨딱 섰다. 구멍을 뚫고 들어온 혀가 게걸스럽게 배 안의 통로를 헤집어 왔다. 척척한 혀에 휩쓸린 내벽이 잇따라 주름을 부풀리며 굼틀거렸다. 기분 좋은 배앓이가 아랫배를 휘감아 왔다. 차유신의 발이 우태원의 등에 밀착했다. 발에 쓸린 셔츠 밑으로 단단한 등 근육이 느껴졌다. 차유신은 도취된 것처럼 빨래판 같은 등짝을 밟았다.
“으음… 아…!”
“더 밟아요.”
“더 빨기나… 하.”
달아오른 점막이 샅샅이 핥였다. 널름거리는 돌기에 스친 주름이 남김없이 소스라쳤다. 자극에 함락된 차유신이 몸을 비틀었다. 우태원의 등을 짓누른 발이 자국을 낼 기세로 동동거렸다.
“하아… 이제 다른 거….”
“아직 냄새 덜 맡았는데요.”
“말 좀 듣… 읏.”
명령을 했음에도 혀는 못 박힌 양 그대로였다. 오히려 한층 집요하게 내벽을 할짝거렸다. 음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랫배 빼곡히 차오르는 소양감에 차유신의 뱃가죽이 꿀렁거렸다. 흐릿한 망막을 끌어 올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다리 틈에서 우태원이 빤히 눈을 맞춰 왔다.
“좀 풀어 줬다고 또 멋대로 날뛰는구나.”
우태원의 등에서 발이 떨어졌다. 차유신의 몸이 살짝 일으켜졌다. 엉덩이 틈에 얼굴을 묻은 우태원이 힐금했다.
“혼낼 건가요?”
“혼내기도 아까워.”
차유신의 손이 내뻗어졌다. 다리 틈에 파묻힌 우태원의 턱을 움켜쥐고, 확 끌어 올렸다. 축축한 입을 스스로 훔친 우태원이 차분한 눈길을 건넸다. 차유신이 명했다.
“바지 벗어.”
우태원은 순순히 제 바지 버클에 손을 가져갔다. 철컥, 하며 앞섶이 풀렸다. 차유신은 검은색 속옷과 함께 잡혀 내려가는 정장 바지를 주시했다. 미끄러지는 옷가지 위로 딴딴하게 팽창한 음경이 퉁, 튀어 올랐다. 우태원은 옷을 무릎에 걸친 채 차유신을 봤다.
“봤어요?”
차유신은 말없이 검붉은 남근을 쥐었다. 발정기 짐승처럼 울렁이는 살덩이는 제법 큰 손안에서 쉽게도 삐져나왔다. 어루만진 차유신이 말했다.
“버릇이 없어서 멋대로 놀리도록 두면 안 되겠어.”
“어떻게 할 건가요.”
“어떻게 하긴.”
차유신의 상체가 똑바로 섰다. 성난 손이 우태원의 어깨를 잡았다. 꽉 힘을 주자 그의 등이 알아서 밀려났다. 시트에 드러누운 우태원의 면상에 차유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내 안에 가둬 놔야지.”
엉덩이가 그의 치부 위에 올라탔다. 꺼떡거린 우태원의 생식기가 차유신의 구멍을 찾아 고개를 들었다. 차유신은 스스로 엉덩이 틈을 벌리며 몸을 낮췄다. 제대로 드러난 회음부에 불끈한 귀두가 걸렸다. 차유신은 그의 성기를 잡아 흔들며 끄트머리를 입구에 맞췄다. 속삭이는 음성이 나왔다.
“신음할 자격 없으니 닥치고 있고.”
남은 손이 우태원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윽고 하체를 거칠게 내려앉혔다. 벌컥 구멍을 뚫은 남근이 한달음에 깊숙한 내벽에 안착했다. 차유신의 발목이 달달거렸다. 배 안의 살덩이가 감전된 것처럼 요탕을 쳤다.
“후으….”
낯을 벌겋게 물들인 우태원이 고통과 쾌감 속에서 낯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입을 꾹 누른 차유신이 하반신을 들썩였다. 엉덩이가 귀두만 품은 채 위로 떴다. 이내 절구질을 하듯 하강했다. 같은 행위가 반복됐다. 푹, 푹, 성기 들어오는 소리가 쉼 없이 침실을 울렸다.
달아올라 몽롱해진 머리를 가누며 밑을 봤다. 아랫배가 불뚝 튀어나와 있었다. 음경은 어느새 절반 넘게 삽입된 채였다. 차유신은 배 안 가득한 이물질을 내벽으로 씹었다. 조였다 풀 때마다 살덩이가 동탕했다. 희열을 이기지 못한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흐으… 읏….”
“더 조여요.”
문득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알아채지 못한 새 느슨해진 손 밑에서 우태원이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차유신이 쏘아봤다.
“누가 들으면 내가 아주 허벌인 줄 알겠다.”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은 부끄럽지 않나요.”
“너 말고 들을 사람도 없는데, 뭐.”
“다음부턴 영상이라도 찍어야겠네요. 그러면 조금은 부끄러워하겠죠.”
우태원이 제 입에 걸린 차유신의 손가락을 그러쥐었다. 입을 벌려 몇 개를 물고는, 살살 혀로 핥았다. 그의 눈이 풀려 갔다.
“별개로 이 이상은 안 되겠어요. 지금 체위도 좋긴 하지만… 다른 문제예요.”
우태원에 잡힌 손이 시트에 떨구어졌다. 상체를 일으킨 그가 덧붙였다.
“선배는 위에서 할 때 종종 긴장해요. 덕분에 안이 말도 안 되게 조여요. 평소의 저야 선배 몸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래서 더 들어갈 수 없다면 문제가 되죠,”
“더 조이라며.”
“더 조이라 해야 선배가 풀겠죠. 선배는 제 말을 듣지 않으니까요.”
불현듯 차유신의 허리가 뒤에서 감겼다. 몸을 두른 팔뚝이 철근처럼 실팍했다. 숨을 고른 우태원이 말을 이었다.
“선배 몸이 풀려야 제 좆이 끝까지 들어갈 거고, 그래야 선배가 임신을 하겠죠.”
차유신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못마땅한 질문이 나왔다.
“왜 그렇게 임신에 집착하는 거야?”
듣는 둥 마는 둥 한 우태원이 차유신을 안아 들었다. 아까 한 경고가 무색할 정도로 연결된 하체가 가뜬히 들렸다. 본능적으로 우태원의 허리를 감은 다리가 그의 등 뒤에서 교차했다. 차유신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교하게 팔로 받친 우태원이 맥락 없는 말을 했다.
“딸이 좋겠어요.”
차유신은 섟을 냈다.
“내 말 안 듣지? 미친놈아.”
개의치 않은 우태원이 차유신의 등을 침실 벽에 붙였다. 차가운 벽지에 밀착한 뒤통수가 옴씰거렸다. 양팔로 차유신의 등과 골반을 각각 고정한 우태원이 말했다.
“이 자세가 가장 좋더라고요.”
“임신시키기에?”
자포자기한 질문이 나왔다. 우태원이 끄덕였다.
“저에게 이렇게 안겨 있을 때 선배 긴장이 가장 잘 풀려요.”
입을 다문 그가 하반신을 밀어붙였다. 귀두만 걸치고 있던 음경이 다짜고짜 배 안을 파고들었다. 새삼 찌릿한 자극에 차유신의 등줄기가 전율했다. 흠칫거린 손이 우태원의 어깨를 움켰다. 우태원은 기다렸다는 양 몸을 붙여 왔다.
쑤석거리며 들어온 성기가 미끄러지듯 막다른 지점에 다다랐다. 꽉 막힌 벽에 머리를 박고는 안달 난 것처럼 체액을 처발랐다. 진땀 맺힌 피부처럼 내벽이 질척해졌다. 욕망을 감지한 차유신이 눈을 부릅떴다.
“오랜만에 하는 거니 조금 이따가 꺾어.”
“아플까 봐서요?”
“당연하지.”
“싫어요.”
“또 말 안 들어?”
“이번에는 정말로 안 들을래요.”
우태원이 어리광을 피우듯 차유신의 볼을 핥았다. 훈기에 젖은 목덜미가 느른해졌다. 긴장이 풀린 걸 알아본 우태원이 흡족해했다.
“지금 아주 맛있겠어요.”
돌연 배 안의 귀두가 꺾였다. 헉, 소리 낸 차유신이 움츠렸다. 우태원은 말아 드는 몸을 능숙하게 부둥켰다. 그의 등을 감은 다리에서 힘이 빠져 갔다. 녹말 물이 풀어진 것처럼 뇌리가 부옇게 물들고 있었다. 의지와 무관하게 몸 안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살덩이가 막힌 문을 두드렸다. 벌벌거리던 틈이 벌어져 갔다. 우태원의 치골이 우악스럽게 철썩였다. 다물린 내벽이 뻥 뚫렸다. 쇠구슬처럼 딱딱한 귀두가 통로를 가로질렀다. 살덩이가 스친 점막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성을 잃은 차유신이 눈을 홉떴다.
“으응… 흡…!”
“하아… 여기다 쌀게요….”
“아, 안에 너무… 꽉… 흐읏….”
“네, 꽉 차네요. 제 좆물 받고 싶어 환장한 것 같고요.”
씨근덕거린 우태원이 차유신의 몸을 끌어안았다. 거세게 돌진한 남근이 껌껌한 배 안의 내장을 밟아 댔다. 금방이라도 눈이 꺼질 듯한 위기감 속에서 차유신이 머리를 젖혔다. 덜덜거리는 차유신의 옆얼굴을 향해 우태원이 고개를 낮췄다. 화끈한 귓불에 만만치 않게 달아오른 입술이 스쳤다.
“싸 달라고 해 줘요, 형.”
까물거리던 눈이 마법처럼 뜨였다. 눈에 띄게 진동하는 어깨를 눈치채지 못한 듯, 우태원은 그저 또 한 번 제 음경을 들이박았다. 얼얼할 정도로 짓눌린 점막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차유신은 전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허덕였다.
“아… 흐읍… 잠….”
“어서 말해 줘요, 형.”
“잠까안….”
차유신의 다리가 고장 난 채 허우적거렸다. 형언하기 어려운 자극에 사무쳐 머릿속이 종을 울렸다. 숨 막히는 흥분감이 목을 타고 내려와 가슴을 휩쓸고, 치부를 흔들었다. 차유신의 허벅지가 조여들었다. 입에서 까무러치는 외침이 터졌다.
“아, 흐읏…! 태원아….”
커다란 도파에 삼켜진 것처럼 치부가 몸서리쳤다. 사정을 하고도 남을 충격이었으나 설핏 본 자신의 성기는 뻔뻔하리만치 그대로였다. 차유신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곤두선 손가락이 우태원의 어깨를 쥐어짰다.
“하아… 씹….”
“왜 그래요.”
“너 때문이잖아, 개새끼야.”
울분에 찬 욕설에 우태원이 멈칫했다. 영문 모르는 눈초리를 해 보이다, 곧 굵은 침을 삼키며 미간을 좁혔다. 진중해진 눈망울에 옴짝달싹 못 하는 차유신이 담겼다. 헛웃음 친 그가 부쩍 부드럽게 불렀다.
“형.”
“하… 씨발….”
“좋아요?”
“묻지 말고, 좀…. 으응…!”
철썩. 퉁퉁 부은 내벽을 강고한 귀두가 강타했다. 철써덕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차유신을 부러뜨릴 기세로 안은 그가 넋을 놓고 굴신했다. 드릴처럼 들이닥친 살덩이가 팽창한 점막을 마구잡이로 쑤셨다. 차유신의 뱃가죽에 적나라한 윤곽이 떴다. 우태원이 헐떡였다.
“형이라고 부르게 해 줘서 고마워요.”
차유신의 목이 넘어갔다. 불에 덴 양 눈시울이 시큰했다. 또 한 번의 동요가 성기를 옭맸지만, 역시 사정은 하지 않았다. 달달거린 차유신의 어깨가 처졌다. 우태원의 품에서만 찾아오는 무사정 오르가슴이 수치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을 맥 빠지게 하는 건.
“저 봐 줘요, 형.”
차유신의 고개가 미적미적 제자리를 찾았다. 목전에서 소년 같은 눈동자가 일렁였다. 차유신의 입에서 새된 호흡이 샜다. 갈 곳 잃은 손이 우태원의 어깨에 손톱을 찍었다. 당연한 것처럼 피가 났고, 우태원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안에다 싸 줘, 태원아.”
열기에 찬 목소리가 두 사람의 틈을 갈랐다. 우태원은 대답 대신 얼굴을 기울였다. 홧홧한 눈시울에 그의 입술이 겹쳤다. 느릿느릿 혀를 내어 물기를 머금은 그가 물었다.
“왜 울어요?”
차유신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긁었다. 우태원이 웃었다.
“꼴리게.”
차유신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지극히 차분하며 이성적인 언어가 건네졌다.
“꼴려서.”
우태원이 재차 웃었다. 차유신은 잠연히 그 미소를 바라봤다. 짐승보다 사람에 가깝고, 밤보다 낮에 가까우며, 죽음보다 삶에 가까운 웃음을 감상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 자신밖에 없음에.
이 소유의 충만함은 너무도 완전했다. 전에 없던 쾌감과 울음을 자아내고 남을 정도로.
“또 해 봐.”
차유신이 말했다. 알아들은 우태원이 질문했다.
“형이요?”
“어.”
뜸을 들인 차유신이 덧붙였다.
“더 달콤하게.”
그래서 자꾸만 갈구하게 만들었다.
*
밤새 비가 왔다. 가을비였다. 금일은 한로(寒露)와 상강(霜降) 사이에 있었다. 한로는 이슬이, 상강은 서리가 내리는 시기다. 두 절기 사이에서 진정한 가을이 온다. 더 이상 9월을 말할 수 없는 10월이 된다.
차유신을 안아 든 자세로 안에다 사정한 우태원은 침대 위에서 다섯 번 이상의 분출을 연달아 했다. 어떤 사출은 꼭 분수처럼 터져 침대 시트가 온통 젖을 정도였다. 그 냄새가 묘하게 좋아 차유신은 또 싸 달라 했다. 우태원이 지나가는 소리로 물었다.
선배 얼굴에요?
생각한 차유신이 응수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 답에 우태원이 굳었다. 침대에서 그렇게 긴장한 것도 오랜만에 봤다.
시트가 비 맞은 양 축축할 때까지 사정을 하고 나서도 우태원은 차유신의 안에 계속 생식기를 넣고 있었다. 버거웠지만 내버려 뒀다. 빼게 할라치면 오히려 남근이 집요하게 안을 쑤시고 들어왔다. 꼭 첫 경험을 치르고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남학생 같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우태원의 품에 안겨 선잠을 잤다. 자다 깨기를 다섯 번 이상 반복한 끝에 확인한 창밖은 비가 그쳐 있었다. 차유신은 잠시 밑을 봤다. 빈틈없이 엉킨 자신과 우태원의 알몸이 보였다. 하반신이 꼭 맞붙어 있었다. 차유신이 혼잣말을 했다.
“이 정도면 임신은 됐겠네.”
“안 돼요.”
자는 줄 알았던 우태원이 말했다. 드러난 그의 눈망울이 자못 심각했다.
“일전에 열 번 내리 쌌을 때에도 안 됐어요. 오늘은 여덟 번밖에 안 쌌잖아요.”
차유신의 눈매가 찌뿌듯해졌다. 허탈한 대꾸가 나왔다.
“그럼 어디 열 번 채워 보든가.”
우태원이 몸을 일으켰다.
“그럴까요? 아직 출근까지 시간 남았는데.”
차유신이 손을 내저었다.
“됐어. 이미 출근하기 힘들어.”
뒤척인 하반신이 우태원에게서 떨어졌다. 배 안을 빠듯하게 채운 음경이 체액을 흘리며 빠져나왔다. 아. 반사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문 차유신이 시트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우태원이 아쉬워했다.
“넣고 있는 건 상관없잖아요.”
“넣고 있는 새 네가 아홉 번째로 쌀지 모르니 안 돼.”
학을 뗀 차유신이 등을 보였다. 빠르게 시트에서 벗어나, 옷가지를 찾아 둘러봤다. 옷은 구석의 간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다가가 속옷과 바지를 끌어 내린 차유신이 무춤했다. 옷걸이 밑에 둔 쇼핑백 안에 저도 모르게 눈이 갔다. 예사로운 옷이었다면 지나쳤겠지만, 전혀 그게 아니었다. 촘촘한 레이스가 달린 검은색 천은 누가 봐도 여성용이었다.
“이건 뭐야.”
쇼핑백 안에 손을 넣은 차유신이 따졌다. 우태원이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일전에 선배가 얘기했잖아요.”
“뭘.”
빠져나온 천이 손안에서 나풀거렸다. 차유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선배가 입은 걸 풀린 적은 없다고요.”
검은색 브래지어 위에서 손가락이 곤두섰다. 사납게 레이스를 더듬은 차유신이 눈총을 보냈다.
“레이스는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레이스가 달린 것밖에 없었어요.”
“레이스가 달린 것만 보였겠지.”
“그럴지도 모르죠.”
“아무튼 이건 버려. 실격이야.”
차유신이 브래지어를 휘 흔들었다. 그대로 던져 버리려던 찰나, 소리도 없이 다가온 우태원이 허리를 안아 왔다. 잔잔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전 싫은데요, 형.”
차유신의 눈살이 찡그려졌다.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발각당했구나 싶었다. 브래지어를 잡은 손이 본의 아니게 헐거워졌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차유신은 확고한 의사 표현을 했다.
“입고 싶지 않아. 레이스 달렸잖아.”
“안 입어도 돼요. 그냥 위에 걸치고 있는 걸로 충분해요.”
“왜 갑자기 그런 걸 하고 싶어 하는데? 그런 페티시 없었잖아.”
“그냥….”
차유신의 몸이 대뜸 안아 들렸다. 차유신이 발버둥을 쳤다.
“안아 들 때 허락받으랬지.”
“안아도 돼요?”
“순서가 틀렸어. 안고 나서 얘기하는 건 허락받는 게 아니라 농락하는 거야.”
“허락받기 전에 선배가 도망갈까 봐서요.”
우태원이 발을 옮겼다. 차유신이 정색했다.
“사냥하고 뭐가 달라?”
우태원이 주억거렸다.
“비슷하겠네요.”
안긴 몸이 침대로 돌아왔다. 우태원은 젖은 시트에 이불을 깔았다. 마른 표면에 차유신을 눕히고, 브래지어 끄트머리를 입에 물었다. 차유신은 드러누운 채로 머리를 쓸었다.
“브래지어 올려 두고 하고 싶은 게 있었어?”
“네.”
“뭐.”
“가슴 빠는 거요.”
우태원이 상체를 숙였다. 물려 있던 브래지어가 차유신의 가슴을 덮었다. 제대로 올려 둔 그가 차유신의 얼굴 옆을 집었다. 만족스러운 음성이 찾아들었다.
“다행히 어울리네요.”
“왜 굳이? 이거 걸친다고 가슴 커질 일 없어.”
“안 커져도 돼요. 충분히 마음에 드는 사이즈거든요.”
우태원이 브래지어 밑에다 입을 붙였다. 은은한 한마디가 따라붙었다.
“빨면 더 마음에 드는 사이즈가 되고요.”
밀려난 천 쪼가리 밑으로 유두가 드러났다. 벌어진 입이 단박에 젖꼭지를 품었다. 무방비하게 물린 살덩이가 쭉 빨렸다. 차유신의 무릎이 뜰썩였다.
“아…!”
“다음엔 레이스 없는 걸로 찾아와 입힐게요.”
“하아….”
“기분 좋아요?”
미지근한 혀가 유륜을 둥글게 할짝거렸다. 발갛게 단 돌기가 단단해졌다. 시트를 쥐어짠 차유신이 색색거렸다.
“더….”
“커지니까 진짜로 입히고 싶네요. 딱 맞을 것 같아요.”
“지랄하지 말고 빨아.”
“출근하기 곤란할 정도로 해 줘요?”
검은 입이 유두와 유륜을 한꺼번에 덮쳤다. 꽉 물린 살이 세차게 흡입됐다. 알싸한 자극에 심박 수가 높아졌다. 가슴을 연이어 부풀리고 난 차유신이 시트를 찢어 버릴 양 쥐어 댔다. 달막이는 입에서 보대끼는 경고가 나왔다.
“출근은 하게 해야지… 흣. 씹새끼야….”
“밑에 벌써 섰어요, 형.”
태연하게 내려온 손이 성기를 감아 왔다. 봉긋하게 솟은 살덩이가 커다란 손아귀에 갇혀 울렁거렸다. 차유신의 어깨가 경련했다. 딸싹인 입이 벌어졌다. 엄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따위로 나와?”
“네.”
우태원은 그저 고분고분한 반응이었다. 그 천연덕스러움에 차유신의 다리가 뻗어 나갔다. 우태원의 허리를 분연히 감고, 자신 쪽으로 당겼다. 정말로 예기치 못하게 당한 듯 우태원이 고스란히 끌려왔다. 차유신은 그의 머리를 걷어차며 훈계했다.
“지금부터 그만하라 할 때까지 가슴 빨아.”
“출근 안 해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차유신의 고개가 빼딱해졌다.
“그리고 네 출근도 내가 알아서 해.”
우태원의 눈초리가 사물사물 접혔다. 더없이 흡족한 목소리가 찾아들었다.
“저야 늘 원하던 바죠.”
*
오전 회의 두 개를 펑크 내는 바람에 진무원이 난리가 났다. 하나는 상관이 없지만, 다른 하나가 정진원 주재라 그쪽에서 대놓고 불쾌감을 표했다 했다. 차유신은 정진원과 통화한 후 다시 진무원에 연락했다. 해결했다 했더니 어떻게 했냐는 미심쩍은 반응이 돌아왔다. 차유신은 무성의하게 답했다.
“내일 아침 형광펜 칠 건수 미리 보고했어.”
이어서 첨언했다.
“모레 칠 우태원 건도 미리 얘기했고.”
쯧, 하며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진무원이 치를 떨었다.
-참으로 잘났다, 새끼야.
오후 일정은 차질 없이 돌아갔다. 한 개의 행사와 한 개의 간담회에 참석한 후 사도동 의원 사무실에 들러 내일 있을 국감 준비를 마치고 귀가했다. 오후 10시였다. 우태원이 아직 사무실에 있다는 걸 알았으므로 오늘은 바로 자신의 집으로 갔다. 집이 있는 층에 당도해 열린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발을 빼자마자 걸음이 멈칫했다. 현관 앞에서 우태원 의원실 비서관이 대기하고 있었다.
“늦으셨네요.”
몸을 굽은 그가 바닥에 둔 철망 박스를 안아 들었다. 차유신은 멍하니 박스 안을 봤다. 아직 강아지에 가까운 검은 개가 바닥에 배를 깐 채 낑낑대고 있었다.
“뭐야? 이거.”
일단 현관문을 열어젖힌 차유신이 물었다. 들어가는 차유신을 따라온 비서관이 답했다.
“개입니다.”
“그건 알아. 누가 봐도 그렇게 보여.”
“우리 시골집에서 최근 낳았는데, 차 의원님께서 원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누가 그런 얘기를 해?”
“태원이 형님이요.”
“그게 무슨….”
차유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를 본 비서관이 조심스레 바닥에 둔 박스 입구를 열었다. 기다렸다는 양 일어난 개가 뛰어나왔다.
“도로 데려갈까요?”
비서관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마른침을 삼킨 차유신이 시선을 넘겼다. 개는 이미 제집에 온 양 거실을 빨빨거리고 있었다. 차유신이 부쩍 어물거렸다. 언젠가 우태원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에게 차마 말 못 한 어릴 적 소원.
까맣고 큰 개를 키우는 것.
“언제 커?”
개에게 손가락질한 차유신이 질문했다. 비서관의 눈이 둥그레졌다.
“언제 성견이 되냐는 얘기죠?”
“어.”
“한… 일 년 걸리죠. 보통은.”
“저거 몇 개월짜리인데.”
“이제 2개월 됐습니다.”
“10개월은 걸리겠네.”
“혹시 크고 나서 계획한 게 있으신지요?”
비서관이 불안한 낯을 해 보였다. 차유신은 공연히 손을 저었다.
“아냐. 안 먹어.”
비서관이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네.”
뭉그적거린 그가 몸을 틀었다. 현관 쪽에서 구두 신는 소리가 났다.
“그럼 전 내려가서 나머지 용품 좀 가져오겠습니다.”
“용품이 많아?”
“많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필요한 걸 갖춰야 하니까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비서관이 문을 닫고 사라졌다. 탕. 미미한 소음과 함께 차유신과 개 둘만이 거실에 남았다. 차유신은 어색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개는 이곳저곳에 코를 박아 가며 차유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차유신에게 다가갈지 멀어질지를 계산하는 것 같았다.
지잉. 재킷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손을 넣은 차유신이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 우태원의 이름이 떠 있었다. 통화 아이콘을 누른 차유신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한껏 윽박지르는 소리가 터졌다.
“누구 맘대로 개를 여기에 들여?”
-원치 않으면 돌려보내면 됩니다. 돌려보낼 것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비서관 쪽에 당부해 뒀어요.
“그런 문제가….”
여짓거린 차유신이 눈을 굴렸다. 개는 그새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까만 털에 콩처럼 박힌 검은자위가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입을 말아 물고 난 차유신이 다른 얘기를 했다.
“넌 언제 와?”
-자정엔 갑니다. 내일 국감이라서요.
“나도 내일 국감이야.”
-선배는 저보다 일하는 속도가 빠르잖습니까.
“그래도 빨리 와.”
-왜 이렇게 안달이세요. 저 없어서 불안하세요?
우태원이 피식거렸다. 괜히 약 오른 차유신이 인상을 썼다. 뭐라 한마디 하기 위해 입을 연 찰나, 발등이 간질거렸다. 화들짝 내려간 눈길이 아래를 머금었다. 차유신의 발목에 이마를 붙인 채 킁킁거리는 개가 보였다. 스르르 올라간 개의 눈길이 차유신과 맞물렸다. 뭐가 그리 좋은지 개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벌어진 차유신의 입이 서서히 다물렸다. 자못 혼연한 언어가 나왔다.
“어, 불안해.”
건너편에서 움칠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차유신은 단조로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참을게. 지금은 개가 있으니까.”
핸드폰을 타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적지 않게 웃고 난 우태원이 들숨을 삼켰다. 퍽 다정한 음성이 귀를 옭맸다.
-너무 가까워지지는 마시고요.
그가 속삭였다.
-질투 나요.
통화가 끊겼다. 차유신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발꿈치를 뗐다. 개가 깜짝하며 뒷걸음질 쳤다. 말끄러미 관찰하던 차유신이 상체를 굽혔다. 개를 향해 팔을 펼치고, 까딱거리며 손짓했다. 부르는 법을 몰랐으므로 어린애에게 하듯 했다. 다행히 개는 다가왔다.
“이름을 붙여 줘야지.”
발발거리는 개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듯 등을 늘어뜨린 개가 헥헥거렸다. 바라보던 차유신의 눈초리가 나슨해졌다. 은은한 부름이 거실을 울렸다.
“태원아.”
개의 미간을 타고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다정한 혼잣말이 덧붙었다.
“잘 크자.”
때로는 폭풍우 속이고 때로는 폭설 속인 밤중을 겪고도 어떻게든 맞이한 제 연인과의 아침처럼. 이 작고 검은 개 역시도.
“잘 키울게.”
차유신의 목줄 안에서 총천연색의 하루를 입을 것이다. 매일매일.
차유신이 주인이자 차유신의 주인인 그 지독한 동물의 눈물처럼, 행복을 알게 될 것이다.
<독어택 (Dog Attack) 외전: 포인트제로> 완결.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