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네가 올해로 몇 살이지?”
뜬금없는 질문이 다가왔다. 차유신은 곁눈으로 테이블 위 신문을 읽었다. 노란색 형광펜을 친 제목 하나가 보였다. 일장토건서 뇌물수수… 차유신發 일정3구역 게이트에 국토부 ‘발칵’.
“서른넷입니다.”
신문을 치운 차유신이 답했다. 맞은편의 정진원이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서른넷밖에 안 된 놈이 벌써 오락가락해?”
“뭐가 오락가락입니까. 안 될 놈 돌잡이에 힘 빼지 말고 호적 말소시키자 한 것뿐인데.”
“그럼 애초에 공천 후보에 올리자는 말을 말았어야지, 자식아!”
정진원이 탕, 테이블을 쳤다. 막 문을 연 여자 보좌진이 화들짝했다. 엄마야, 의원님 무슨 일이세요! 눈을 부라린 정진원이 씩씩거렸다. 차유신은 태평하게 문 쪽을 가리켰다.
“일단 보고받으시죠.”
“무슨 일이야?”
정진원이 입구에 외쳤다. 슬쩍 발을 뺀 보좌진이 답했다.
“권헌 의원 방문했습니다.”
“기다리라 해. 차유신이하고 얘기 좀 해야 하니.”
“그냥 들이시죠. 권 의원도 바쁩니다. 제가 삼 분 안에 선배님 설득시키고 나가겠습니다.”
차유신이 자세를 고쳤다. 숨을 몰아쉰 정진원이 언짢은 손을 휘적거렸다. 단출한 지시가 건네졌다.
“권헌 안으로 들여.”
“네, 의원님.”
끽, 하며 열린 문틈으로 옅은 바람이 밀려들었다. 뚜벅거리며 걸어온 권헌이 허리를 굽혔다.
“실례하겠습니다, 선배님.”
“잠깐 차유신 옆에 앉아.”
“예.”
권헌의 그림자가 가까워졌다. 옆에 착석하는 걸 본척만척한 차유신이 고개를 가눴다. 사뭇 신중한 언어가 나왔다.
“제 불찰이 있었습니다. 송구합니다.”
“정해신을 좋게 보고 공천 후보로 추천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이거야?”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런 상황입니다.”
“상황은 알겠다만 내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그런다.”
정진원이 손을 올렸다. 뻗어 나간 집게손가락이 차유신을 가리켰다. 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내가 알기로 차유신이라는 놈은 이런 식의 실수를 하지 않아. 남에게 사기를 쳤으면 쳤지 당할 놈이 아니야. 정해신의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됐는지는 차치하고, 네가 특정 인물에 대한 검증 오류를 저질렀다는 걸 나는 인정할 수가 없어.”
“제가 처음부터 안 될 인물을 두고 선배님을 속여 넘기기라도 하려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해 빠르네. 그 말 맞아.”
정진원은 의중을 숨기지 않았다. 과연 직언이 습관인 인물다웠다. 끄덕인 차유신이 옷매무새를 추슬렀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후준 같은 능구렁이였으면 쓸데없이 대화만 길어졌다.
“우선 한 가지 약조 드립니다. 올해 끝날 때까지 제 이름 위에 이러한 형광펜이 스무 개는 더 쳐지도록 하겠습니다.”
차유신의 손이 아까의 신문을 짚었다. 손가락 틈으로 노란 펜 자국이 묻은 자신의 이름이 비쳤다. 정진원은 매일 아침 여덟 개의 신문을 읽었다. 보좌진을 시켜 주요 기사만 스크랩해 훑을 수도 있지만, 굳이 스스로 정독하는 걸 고집했다. 출신이 교수라 고지식했다. 그리고 항상 답을 내야 했다. 매일 읽은 기사 중 꼭 하나의 제목에 형광펜을 쳤다. 가장 인상적인 기사라는 의미였다. 동시에 나름의 인정을 부여한 행위였다.
“그러니 한순간의 제 어리석음은 잊어 주십시오. 젊은 나이에 욕심이 앞서 그릇된 일을 저질렀습니다.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과오의 대가를 그 이상의 성과로 치르겠으니 아둔한 후배가 실수했다 생각하시고….”
“됐어. 그만.”
돌연 날카로운 저지가 들렸다. 멈칫한 차유신이 입을 다물었다. 이를 질근거린 정진원이 눈을 치떴다. 엄숙한 훈계가 찾아들었다.
“후배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 말조심해.”
“송구합니다.”
“그리고 욕심은 부릴 수 있다. 실제 행동으로 연결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정진원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차유신은 침착하게 맞은편을 살폈다. 그새 차분해진 정진원이 입을 뗐다.
“최소한 차유신은 그런 걸 하는 놈이 아니지. 내가 알지. 방금 전의 네가 그걸 증명했고. 그걸로 됐다. 얘기 끝났어. 가 봐.”
차유신의 구둣발이 간닥거렸다. 식은 숨을 뿜다가 고개를 숙이며 몸을 일으켰다. 죽 허리를 펴 발을 옮기려다, 정진원을 보며 미소 지었다.
“저 너무 편애하지 마십시오.”
“시끄러워. 그리고 요즘 왜 이렇게 웃고 다녀? 어제 간담회에서도 그렇고. 사내새끼가 지나치게 웃어 대면 헤프단 소리 듣는다.”
“이미지는 중요하니까요. 너무 그러지 마시죠.”
“적당한 건 좋아. 최근 도를 넘어 하는 얘기야.”
팔짱을 낀 정진원이 물었다.
“뭐 좋은 일 있어?”
차유신은 답을 하지 못했다. 정진원이 지나가듯 덧붙였다.
“혹은 나쁜 일이 있거나.”
차유신은 더욱 답을 하지 못했다. 여짓거리던 몸이 말도 없이 돌아섰다. 그대로 문으로 가 손잡이를 잡았다. 돌려 열어젖히려던 찰나, 따가움을 느낀 머리통이 돌아갔다. 묵묵하게 쳐다보는 권헌이 보였다.
*
“드시죠.”
테이블 위에 주황색 케이크 하나가 올라왔다. 차유신은 멀뚱히 내려다봤다. 맞은편에 앉은 권헌이 양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차유신은 케이크에 손을 대는 대신 주변을 둘러봤다. 의원 회관 카페테리아를 오가는 사람 중 우태원은 없었다. 그 의원실 보좌진도 없었다. 하긴, 우태원은 오늘 지역구에 방문한다 했다.
“너 나하고 둘이 있는 거 누구에게 보이면 큰일 난다.”
포크를 만지작거린 차유신이 말했다. 권헌이 넌지시 물어 왔다.
“우태원 선배님 말씀이십니까.”
“알면서 물어?”
“원론적으로는 큰일이 나겠지만, 결국은 안 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
“차 의원님께서 그걸 싫어하시잖습니까.”
권헌이 읊조렸다. 포크 쥔 손이 흠칫했다. 차유신은 잠자코 입을 다셨다. 말라붙은 혼잣말이 나왔다.
“잘 아네.”
포크가 케이크를 파고들었다. 폭신한 표면이 갈라졌다. 적당히 조각내 입가로 가져왔다. 단 내 나는 빵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보들보들하게 구워진 밀가루 덩어리는 딱히 씹지 않았음에도 혀 위에서 녹았다. 당근케이크였다. 그리 달지 않아 차유신이 유일하게 잘 먹는 빵이었다.
“살 빠지셨죠?”
문득 질문이 들렸다. 케이크를 마저 조각낸 차유신이 반문했다.
“신문에 났어?”
“그냥 그렇게 보입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얘기하지 마. 넘겨짚는 얘기 싫어해.”
“넘겨짚고 하는 얘기 아닙니다.”
권헌의 눈이 내리깔렸다. 망설이다 꺼내는 듯한 한마디가 따라붙었다.
“최근 사흘간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 드셨다 들었습니다. 의원님 방 사람으로부터.”
차유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울렁인 뇌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대체 누가 흘렸을까 싶었다. 진무원, 한수현, 윤재희…. 무작정 곱씹던 차유신의 입에서 쯧, 소리가 났다. 생각해 보니 무려 절반이 후보다. 권헌이 차유신 의원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있던 멤버들이다. 지금도 권헌과 절근하게 지내는 걸로 안다. 차유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권헌 쪽에 흘러가는 건 애당초 일도 아니었다.
“별것 아니야. 요즘 소화가 잘 안 돼서 그래.”
“컨디션이 그리도 안 좋은데, 카메라 앞에서는 상당히 잘 웃으시더군요.”
“그러면 안 돼? 일은 해야 할 것 아니야.”
“보기에는 좋지만 위험해 보입니다.”
권헌이 숨을 골랐다. 느릿느릿 이동한 시선이 차유신을 중심으로 배회했다. 또 한 번 케이크를 문 차유신이 제 입을 훔쳤다. 마른 부스러기가 손등을 타고 미끄러졌다.
“고장 난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고 계시니.”
차유신의 입이 부쩍 말랐다. 미끄덩한 케이크 덩어리가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달지 않은 건 물론이고, 부드럽지도 않았다. 그저 퍽퍽하고 느끼하기만 했다. 남은 빵 조각을 어금니로 짓이긴 차유신이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갑갑해 왔다. 더 갑갑한 건, 바위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어떤 강박이었다. 이걸 티 내선 안 된다는 습관적 의무감이었다.
10월이 찾아오고 일주일이 흘렀다. 차유신은 여전히 9월에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도 몰랐다. 모든 게 괜찮은 줄 알았다. 9월의 마지막 날, 우태원의 품에 안겨 단잠을 자고 새로운 달을 맞이했다. 사지가 개운하고 가벼웠다. 올해 9월도 무탈하게 보냈다는 안도감에 뇌리마저 깃털 같았다. 내년도, 내후년도 이럴 것이라는 예감이 확고해졌다.
10월 1일 차. 특이점은 없었다. 세 개의 회의와 한 개의 간담회, 한 개의 미팅을 소화했다. 점심은 제대로 먹었지만 저녁이 입에 맞지 않아 반도 먹지 못했다. 밤에 우태원에게 전화를 했다. 사무실에서 철야 중이라는 답을 들었다. 밤에 혼자서 잠을 잤다.
10월 2일 차. 역시 특이점이 없었다. 두 개의 회의와 두 개의 미팅, 한 개의 행사를 참석했다. 저녁을 아예 먹지 못했다. 목이 텁텁해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았다. 밤에 우태원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오늘도 철야라는 문자를 받았다. 혼자서 잠을 잤다.
10월 3일 차. 유독 바쁜 날이었다. 경기도 국정감사가 있어 해당 도청에 내려가 10시간 내내 현장에 배석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먹자마자 체할 것 같아 국과 물만 먹었다. 저녁에는 물도 못 먹었다. 밤에 우태원에게 전화를 했다. 꺼져 있었다.
10월 4일 차. 오전 간담회에서 발언하다 땅이 흔들리는 걸 경험했다. 오후에 병원에 들렀다. 저혈압과 영양실조가 있다고 했다. 수액을 맞았더니 좀 나았다. 이날도 우태원과 연락하지 못했다.
10월 5일 차, 6일 차, 7일 차.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차유신은 식사 대신 수액에 의존했다. 먹은 것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그것 이외의 방법이 없었다. 우태원과는 사실상 연락이 두절됐다. 그쪽 보좌진은 ‘자신들도 잘 모른다’고 했다. 정말 필요한 일정이 아니면 두문불출한 채 보낸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지라 다들 익숙해하는 분위기였다.
몸이 고되고 마음이 초조할수록 차유신은 ‘멀쩡함’을 연기했다. 회의나 간담회에서 주어진 질문에 모범적으로 답하고, 행사에서 마주친 시민들의 환호에 흔쾌히 응대했다. 그리고 많이 웃었다. 웃는다는 건 그럴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의미였다. 이보다 훌륭한 방어 기제가 없었다.
불안함을 숨기는 대가로 웃음 정도면 값이 쌌다. 자신이 왜 우태원 없는 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지, 왜 잠적한 우태원에 섣불리 연락하지 못하는지, 왜 이 모든 상황의 근원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지. 그걸 외면하기 위해 차유신은 많이도 웃었다.
자신은 괜찮아야 했다. 달라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어야 했다. 그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듣더라도, 우태원을 담는 눈과 귀는 늘 그대로여야 했다.
그래서 10월 같은 9월을 살았다.
“별일 없어.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마.”
한참 후에야 나온 목소리는 끄트머리가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권헌은 느리게 주억거렸다. 환자의 안전에 억지 동의하는 주치의 같은 태도였다. 그것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차유신은 굳이 꼬집지 않았다. 그 행위가 누구에게 손해일지를 빠르게 판별한 결과였다.
“저는 의원님의 강인함에 반한 사람입니다.”
권헌이 뇌까렸다. 차유신은 포크와 접시를 옆으로 치웠다. 물기가 싹 가신 케이크는 벽돌처럼 퍼석했다. 차유신은 그게 음식 같지 않아 어딘가에 처박아 버리고 싶었다. 더 처박아 버리고 싶은 건, 고작 그런 욕구로 점철된 자신의 일주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하기보다 편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권헌의 모은 손이 견고해졌다. 진심 어린 눈빛이 차유신의 낯을 쓸었다.
“의원님께서 어서 안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입을 다문 그가 몸을 일으켰다. 절도 있게 상체를 숙였다 세우고, 등을 보였다. 차유신은 멀어지는 등짝을 멀건 눈으로 봤다. 자꾸만 부옇게 물드는 망막이 김 서린 거울 같아 거슬렸다. 피로한 손이 눈을 비볐다. 한참 후에야 눈을 떴지만, 시야는 여전히 오련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형님. 하, 공청회 더럽게 안 끝나더라고요.”
저편에서 윤재희가 뛰어왔다. 급하게 오느라 고생했다는 걸 어필하듯 학학거린 끝에 맞은편에 앉았다. 차유신은 무덤덤하게 물었다.
“어땠어? 공청회.”
“그냥 생각보다 별거 없….”
막 운을 뗀 윤재희가 멈칫했다. 내려간 시선이 테이블 위에서 울려 대는 핸드폰에 걸렸다. 차유신도 같은 곳을 봤다. 확인하자마자 동공이 커졌다. 왜 지금 여기에 뜰까 싶은 이름과 번호가 보였다. 서재길 실장.
“나 참. 낮에 전화하지 말라니까.”
윤재희가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잡았다. 그대로 ‘거절’ 아이콘을 누르려는 걸 차유신이 저지했다. 매서운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거 서재길 실장 국내 번호 아니야?”
“맞아요.”
“이게 왜 여기에 떠?”
“왜긴요. 아직 한국에 있으니까죠.”
윤재희가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차유신의 눈이 일그러졌다. 성급하게 나간 손이 진동하는 핸드폰을 챘다. 통화 아이콘을 누르고, 귀에 댔다. 바로 서재길의 음성이 들렸다.
-윤 비서님, 급하게 문의 하나 드리겠습니다. 서울에 쉰 명가량 편하게 묵을 수 있는 비즈니스호텔….
“서재길 실장, 왜 아직 출국을 안 했지?”
착 깔린 질문이 나왔다. 반대편에서 주춤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차유신이 닦달했다.
“왜 답이 없어?”
“죄송합니다. 그게….”
서재길이 크게 어물거렸다. 곧 체념 섞인 목소리를 냈다.
“태원이 형님께서… 적당한 시점에 출국한 척을 하라 하셔서.”
“요즘 우태원하고 같이 다녀?”
서재길은 또 답이 없었다. 차유신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흐리멍덩한 시야가 지진 난 것처럼 출렁였다. 물안개 같던 머릿속에서 갑자기 폭풍우가 일었다. 차유신은 눈을 치떴다.
진실을 외면할지언정, 이 이상 제 것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우태원 어디에 있어. 당장 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