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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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자에게서는 사람의 말초 신경을 곤두세우는 냄새가 났다. 나는 그가 가게에 들어왔음을 굳이 누군가로부터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내는 방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 보면 종종 그의 냄새를 맡았다. 정확하게 형용하기 어려운 체취였는데, 나는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잔혹하지만 그리운 냄새였다. 죽은 검은 개의 것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날도 그의 등장을 후각이 먼저 인지했다. 나는 읽고 있던 신문을 덮고 시선을 끌어 올렸다. 불쑥 방 안에 들어선 남자가 검은색 봉투를 내려놓았다. 곁에서 담배를 피우던 누나들이 손뼉을 쳤다. 그들은 모두 남자를 좋아했다.

“우 이사님은 역시 센스가 넘쳐. 잘 먹을게요.”

아이스크림 먹으라는 얘기는 나를 보며 한 것이었지만, 아이스크림을 가져간 건 누나들이었다. 나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이스크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라면 모두 아이스크림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나는 그 판단이 내심 한심했다. 그렇다 해 우 이사가 한심하단 얘기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잠깐 외출했어요.”

바지를 털며 일어섰다. 앉았던 자리에서 자그마한 개미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가게에 바퀴벌레는 없었으나 희한하게 개미가 많았다. 누나들은 바퀴벌레보다 낫다고 했지만, 나는 개미도 싫었다. 살그머니 발을 들어 개미 위에 올렸다. 막 밟으려던 찰나 발이 멈칫했다. 불쑥 나를 안아 든 우 이사가 신문을 발로 밀어 개미를 덮었다.

“벌써부터 뭐 죽이는 버릇을 들이면 안 돼.”

“여긴 제 방이에요. 개미는 무단으로 주거 침입을 했고요.”

“그런 말도 알아? 아무튼 개미도 살고 싶어 왔을 테니 한 번은 봐주자.”

떽떽거리는 나를 우 이사가 달랬다. 팔뚝을 움직여 내 엉덩이를 안정적으로 받친 그가 방 밖으로 빠졌다. 우 이사님, 잘 가요. 아이스크림을 먹던 누나들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스크림을 안 좋아하는구나.”

뚜벅뚜벅 걷던 우 이사가 말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안에 어떤 게 있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잖니.”

“맞아요. 단거 안 좋아해요.”

“우리 태원이하고 같네. 태원이도 단걸 안 좋아한단다.”

“오늘 태원이도 왔나요?”

“오늘은 안 왔어. 병원에 갔거든.”

“어디 아파요?”

“특별히 아파서는 아니고, 원래 아이는 병원에 갈 일이 많아.”

“성가시네요.”

나는 퉁명스레 우 이사의 팔에 걸친 다리를 흔들었다. 실소한 우 이사가 내 등을 토닥였다.

“울이도 아이잖아.”

“전 병원에 안 가요. 유치도 혼자서 뽑았어요.”

“대단하네. 나중에 울이가 태원이 형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

“꼭 해야 하나요? 귀찮은데.”

“해 주면 좋지. 태원이도 좋아할 거야.”

우 이사는 나를 안은 채 길지 않은 가게 복도를 반복해 오갔다. 꼭 비행기를 태워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좋지 않은 척 다리만 흔들대면서도 딱히 내려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른 남자에 안겨 이렇게 높이 올라와 본 게 처음이었다. 한 번도 타 본 적 없는 놀이 기구에 오른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머, 우 이사. 웬일이야?”

문득 가게 문이 열렸다. 들어온 어머니가 재킷을 탁탁 털었다. 자주색 천 곳곳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밖에 비가 오는 모양이었다.

“석 사장님 쪽에서 보내온 선물이 있어서요.”

우 이사가 몸을 숙였다. 허공에 떠 있던 내 발이 바닥을 디뎠다. 내심 아쉬웠으나, 티를 내지는 않았다. 안기는 걸 좋아하는 건 어린애나 하는 거였다.

“여기요.”

우 이사가 구석에 뒀던 쇼핑백을 집어 들었다. C 모양을 두 개 겹친 커다란 로고가 겉면에 찍혀 있었다. 우 이사가 ‘석 사장 심부름’ 명목으로 들고 온 쇼핑백 중에는 그 로고를 단 것이 많았다. 누나들은 그런 쇼핑백에 담긴 물건은 아주 비싸다 했다.

“석 사장이 따로 얘기한 적 없는데.”

건네받은 어머니가 갸우뚱했다. 우 이사가 차분하게 답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하더군요.”

“오락가락하네. 벌써 그럴 나이가 아니지 않나.”

“내일은 중대한 날이니, 예고 없는 선물이 올 수도 있죠.”

우 이사가 자못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날’이거든요.”

멍해진 어머니가 쇼핑백 쥔 손을 내려뜨렸다. 한동안 허공을 보던 그녀가 전에 없이 쇼핑백을 소중하게 안았다. 이내 천천히 발을 떨어뜨리고, 우 이사를 지나쳐 안쪽 방을 향해 걷다 손짓했다.

“잠깐 차나 마시고 가.”

주억거린 우 이사가 어머니를 따라 발을 옮겼다. 막 어머니가 들어간 입구 앞에 선 그가 잠시 나를 돌아봤다.

“이따가 보자, 울아.”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않은 채 멀뚱히 닫혀 가는 문을 봤다. 완전히 그의 인영이 사라질 때까지 못 박힌 듯 눈길만 겨눴다. 그러다 더 이상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일순, 가슴이 시큰해져 오는 걸 느꼈다.

그건 외로움이었다. 당연한 듯 머무르던 온기가 사라졌을 때 차오르는 상실감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있던 사람이 증발하면 슬퍼진다는 걸. 짧든 길든 이별을 겪으면 가슴이 송곳에 찔린 양 욱신거린다는 걸.

감기에 걸린 것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왔다. 어느덧 누나들도 사라져 텅 빈 공간에서 담요를 두르고 누웠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 뭐라도 덮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코앞에서 개미 한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뻗은 손이 곧 거둬졌다. 마른입으로 우 이사가 한 말을 흉내 냈다. 뭐 죽이는 버릇을 들이면 안 돼.

피로한 옆머리를 맨바닥에 뉘었다. 점점 머리가 달아 왔다. 정체 모를 오한 탓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을 거다. 나는 혼자 유치도 뺐으니까. 많은 것들을 홀로 해결할 줄 안다. 지금의 오한을 해소하는 법도 안다. 우 이사가 어머니와의 대화를 마치고 방에서 나오면 된다. 아까의 온기를 찾으면, 나는 더 이상 춥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이별의 고통은 순간이지만 만남의 충만함은 길다. 심지어 우 이사와의 만남은 앞으로 길어지면 길어졌지 짧아질 턱이 없다. 그의 호적에 아들로서 올라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니까.

이 통증은 찰나에 그칠 것이다.

그 안심을 끝으로 나는 잠이 들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몽중에서 헤매다, 동면에서 깬 동물처럼 어느 순간 눈을 떴다. 눈앞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눈언저리에 라벤더 이파리처럼 새파란 아이섀도를 칠했다. 어머니는 종종 짙은 화장을 했지만, 그토록 진한 분묵은 처음 봤다.

“우 이사는 갔나요?”

나는 아쉽지 않은 척 아쉬운 소리를 했다. 자는 바람에 우 이사를 놓쳐 조금 속상했다. 어머니는 내 말에 답하는 대신 다른 얘기를 했다.

“울아, 뭐 원하는 것 있니?”

말투는 가벼웠지만 거대한 이파리처럼 내려다보는 아이섀도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모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새 열 내린 머리가 갑자기 핑글핑글 돌았다. 처음 보는 눈 화장이 망막을 엄습할 때마다 괜한 멀미가 났다. 신문에 적힌 어려운 한자를 읽을 때처럼 나는 자꾸만 눈이며 코를 찡긋거렸다.

가장 원하는 건 호적에 오르는 일이지만, 그건 어머니의 몫이 아니다. 우 이사가 해결해 줄 부분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모두 뭔가를 ‘갖는 것’이었다. 일전에 죽은 검은 개를 닮은 개, 혹은 펜촉을 갈아 끼우는 만년필, 혹은 정훈석이 신고 다니는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저 라벤더 이파리가 너무도 강렬해서. 태어나 본 모든 식물 중 가장 화려해서.

꼭 죽기 직전 가장 아름답게 만개한 꽃잎 같아, 그걸 간직해야 한다는 의무감뿐이 들지 않았다.

“같이 역현호에 가요, 어머니.”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어머니의 고개가 비스듬해졌다.

“역현호는 왜.”

“한 번도 안 가 봤어요.”

“그런 걸 좋아했구나.”

“딱히 좋아하는 건….”

“넌 항상 좋아하면서 좋지 않은 척을 하지.”

어머니의 눈길이 떨어졌다. 보라색 매니큐어를 칠한 그녀의 발톱 앞에서 개미 한 마리가 발발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혼연히 손을 내밀었다. 침침한 그림자가 개미 위에 드리웠다.

“사람 앞에서 어느 정도 너를 숨기는 건 좋은 방어 방식이지만, 너무 익숙해지면 안 돼.”

“왜요.”

“그러다 정말 좋아하는 것 앞에서도 똑같이 하면 어떻게 하니. 정말 좋을 때에는 좋다고 말을 해야 한단다.”

어머니의 엄지에 짓눌린 개미가 바스러졌다. 작게 화들짝한 내가 움츠렸다.

“우 이사가 뭐 죽이는 버릇 들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뭐?”

바닥에서 손을 뗀 어머니가 개웃했다. 기죽은 나를 주시하던 그녀가 재미있다는 양 깔깔거렸다. 이어 자조적인 혼잣말을 흘렸다.

“너도 나하고 취향이 같구나. 우 이사 같은 남자한테 홀리고.”

어머니가 손을 털었다. 찌부러진 개미가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먼지 같은 사체를 손가락으로 튕긴 그녀가 태식했다.

“그러다 크게 고생한다. 저만 보는 짐승에는 맥을 못 추는 제 팔자지, 뭐.”

*

공항 건물에서 걸어 나오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보였다. 뒤따라 나온 열 명가량의 남자 무리가 주변을 경계하듯 둘러봤다. 체격 좋은 남자들이 모여 있으니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에 띄었다. 차유신은 차창을 살짝 내린 채 지켜봤다. 탁한 불평이 나왔다.

“아주 귀국했다고 홍보를 하지 그래.”

가장 앞에 선 남자에게 익숙한 실루엣이 다가갔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 남자가 다가온 남자와 함께 무리에서 빠졌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그가 잠시 뒤를 향해 손짓했다. 무리 진 남자들이 하나둘 꾸벅거렸다. 이내 먼 치에서 대기 중인 승합차 쪽으로 걸어갔다.

차 안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막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선 서재길이 화들짝했다. 차유신은 뒷좌석에 앉힌 몸을 늘어뜨리며 무성의한 눈인사를 했다. 얼떨떨한 서재길의 눈길이 운전석으로 넘어갔다. 갓 착석한 윤재희가 능청스레 말했다.

“같이 식사하자고만 했지, 추가 멤버가 없다는 얘기는 안 했잖아요.”

“이것 참.”

서재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바깥을 살피며 문을 닫았다. 역시 문을 닫은 윤재희가 시동을 걸었다. 세단이 미끄러지듯 자리에서 벗어났다.

“차 의원님 있다는 얘기 정도는 하시지 그랬어요. 이건 뭐 서프라이즈도 아니고.”

“서 실장에게 깜짝 파티 해 줄 생각 없어. 그저 역운회 무리에 나와 직접 접촉했다는 사실을 흘리고 싶지 않을 뿐이야. 혹여나 누가 그 정보를 악용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철저하시네요. 하지만 이미 의원님 세단이 노출된 시점에서 끝난 것 아닙니까.”

“이거 내 차 아니야. 아는 사기업 임원 차야.”

차유신이 딱 부러지는 답을 했다. 서재길이 졌다는 양 뇌까렸다.

“어련하시겠습니까.”

“식사는 내가 살게. 그간 먹고 싶었던 것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

“정말 편하게 얘기해도 됩니까.”

“그렇다고 아주 편하게 하진 말고. 나 공무원이야.”

“공무원이었군요. 귀족인 줄 알았는데.”

서재길이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한동안 고심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중국집 어떻습니까. 짜장면 먹고 싶은데.”

막 빨간색이 된 신호등 앞에서 윤재희가 끽, 소리 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황망한 그의 시선이 서재길에 쏠렸다.

“왜 짜장면이에요? 상해에서 왔잖아요.”

“거긴 짜장면 없어요.”

그의 눈길이 차유신 쪽으로 넘어왔다. 담담한 언어가 찾아들었다.

“중국집으로 하시죠.”

윤재희 못지않게 찌푸린 차유신이 목을 젖혔다. 시트 등받이에 뒤통수를 기대고, 긴 숨을 뿜었다. 허탈한 혼잣말이 나왔다. 상해엔 짜장면이 없구나.

*

도착한 곳은 광화문의 특급 호텔 중식당이었다. 룸으로 들어와 테이블에 착석한 윤재희가 한탄했다. 어제도, 그제도 여기 왔는데. 맞은편에 앉은 차유신이 비아냥거렸다. 거길 누구하고 왔을까? 윤재희는 울적하게 입을 다물었다.

서재길의 주문에 따라 짜장면이며 짬뽕, 탕수육과 양장피 따위를 시켜 놓고 이제는 남역회가 된 역운회의 근황을 들었다. 명실상부한 상해 최대 조직이 됐다고 했다. 필리핀이나 홍콩을 거치는 역운회 때 마약 거래 라인을 그대로 들고 온 게 컸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그래서 어느 정도의 조직이 된 것인지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으므로, 차유신은 수치적인 걸 따졌다.

“그래서 지금 조직원이 몇 명인데.”

서재길이 지체 없이 답했다.

“상해 통틀어 2,000명 정도 됩니다.”

윤재희의 눈이 커졌다. 차유신은 영혼 없이 뇌까렸다.

“이젠 별걸 다 수출하는구나.”

룸 문이 열렸다. 트레이를 밀고 두 명의 직원이 들어왔다. 요리부터 세팅한 후 짜장면 두 개와 짬뽕 하나를 어떻게 놓을지 물었다. 차유신과 윤재희는 동시에 서재길을 가리켰다. 둘 다 삼 일 연속으로 하는 이 식당 식사에 질려 있었다.

“태원이 형님 때문이죠?”

짜장면 그릇에 젓가락을 꽂은 서재길이 물었다. 차유신의 어깨가 미동했다. 서재길은 면 타래를 큼지막하게 집어 후루룩, 입 안에 넣었다. 그릇의 절반가량이 순식간에 비었다. 냅킨으로 입을 훔친 그가 차유신을 응시했다.

“애초에 저를 찾을 일이 태원이 형님 관련 아니면 없잖습니까.”

“우태원도 이거 알아?”

“차 의원님이 지금 저를 만난다는 사실 말입니까.”

“어.”

“아직은 모릅니다.”

“계속 모르게 해.”

차유신이 엄포를 놓았다. 서재길은 말없이 남은 짜장면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비우고, 하얘진 그릇을 치우며 뇌까렸다.

“그리하겠습니다.”

“그 답은 의외네. 우태원만 죽어라 따르는 놈이라 싫다 할 줄 알았는데.”

“태원이 형님이 차 의원님을 따르니까요.”

젓가락을 고쳐 쥔 서재길이 말을 이었다.

“그럼 저도 차 의원님을 따라야죠.”

“주종 관계가 희한하게 세습되는구나.”

“깡패고 중졸이라 단순한 탓이니 이해하십시오.”

그의 젓가락이 짬뽕 그릇 안으로 들어갔다. 차유신이 허, 소리를 냈다. 중졸이라 했던 걸 아직도 기억하나 싶었다.

“한국에는 왜 온 거야?”

차유신이 팔짱을 꼈다. 짬뽕 면발을 헤적거린 서재길이 대꾸했다.

“숨기지 않겠습니다. 태원이 형님 호출이 있었습니다. 마침 저도 한국에 들러야 하겠다 생각한 차라, 겸사겸사 온 겁니다.”

“호출의 이유는?”

“그건 정말로 모릅니다. 태원이 형님은 예전부터 이유를 말하지 않고 호출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이 그러시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호출이 떨어지면 즉각 따르는 편입니다. 심지어 상해에 있는 사람을 갑자기 부를 정도면, 제법 위중한 건이라는 얘기죠.”

“그래.”

차유신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조용해진 차유신으로부터 눈을 거둔 서재길이 짬뽕 면발을 들어 올렸다. 짜장면을 먹을 때처럼 커다란 뭉치를 한꺼번에 물고, 흡수하듯 빨아들였다.

차유신은 삼 분도 되지 않아 면이 사라진 짬뽕 그릇을 마술 쇼 관람객처럼 넋 놓고 봤다.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짓다, 유도 선수처럼 굵직한 서재길의 팔뚝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해해 버렸다. 애초에 저 몸을 유지하는 게 쉬울까 싶었다. 우태원도 티가 안 나 그렇지 식사 때마다 밥 세 공기는 거뜬히 먹는다.

차유신도 근육질의 탄탄한 몸을 자랑하지만, 실전으로 다져진 역운회 조직원의 장대한 몸에는 감히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걸 안다. 단순히 불리는 데 집중한 몸도 있지만, 우태원이나 서재길처럼 날렵하게 거동할 것을 고려해 근육으로 압축한 몸이 대부분이다. 만드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쉬울 턱이 없다.

인상적인 몸의 형태는 때때로 잘 만들어진 얼굴보다도 강렬한 감흥을 남긴다. 커서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우종진 이사의 몸은 지금의 우태원과 아주 흡사했다. 종종 가게에 온 석일태며 도명진, 배민기도 그만큼은 아니나 제법 건장했다. 여성 중심의 집창촌에서 생활한 탓에 접하는 남자가 역운회뿐이었던지라, 한때 성인 남자는 다 그런 몸을 지닌 줄로만 알았다.

그 웅건한 남자 중 일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치열한 자리다툼의 결과였다. 고삐 풀린 맹수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은 끝에 우종진, 도명진, 배민기가 사망했다. 남은 석일태는 원하던 왕관을 썼으나, 거기서 솟은 가시에 찔려 훗날 죽었다.

“도명진 말이야. 석일태, 배민기하고 같이 역운회 창립한.”

차유신이 운을 뗐다. 짬뽕 국물을 죽 들이켜고 난 서재길이 그릇을 내려놓았다. 설거지라도 한 것처럼 깨끗한 표면이 반질거렸다. 물컵을 들어 입을 축인 서재길이 눈길을 건넸다.

“네.”

“정확히 어쩌다 제거된 거지?”

“과거에 벌어진 역운회 통합 사태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석일태가 전부 때려잡았잖아. 우종진, 도명진, 배민기. 그 과정이 대략 어땠냐는 거지.”

“그게 순서가… 저도 전해 들은 거라 정확하지 않지만.”

올라간 서재길의 손이 관자놀이를 짚었다. 두어 번 긁적거린 그가 입을 열었다.

“시작은 석일태였죠. 홍콩 조직을 시켜 도명진과 배민기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종진이 거기에 석일태까지 추가로 담글 계획을 품고 도명진과 배민기에 해당 정보를 흘렸습니다. 셋이서 치고받다 자멸하는 그림을 그린 거죠.”

“그건 알아.”

“이후 홍콩 조직이 국내에 상륙하고, 문제의 디데이가 왔습니다. 석일태는 우종진 작전을 진작 눈치챘으나 내색하지 않고 홍콩 조직 통해 도명진과 배민기를 담그는 계획에 집중했다 해요. 도명진과 배민기는 당할 걸 알았음에도 쉽게 무너졌습니다. 두 사람과 휘하 조직원을 상대하는 홍콩 조직이 총으로 무장한 상태였거든요. 배민기는 자리에서 즉사했고, 도명진은 어찌어찌 도망쳤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석일태가 우종진을 시켜 도명진을 잡아 오도록 했거든요.”

“본인을 죽이려 한 사람을 시켜 도명진을 잡았다?”

“네. 도명진은 자택에서 잡혔습니다. 하나 있는 아들과 아내를 이끌고 도피하려던 찰나 우종진에게 폭행당하고 기절해 끌려갔죠.”

“아들이 상황을 봤겠네.”

“아마도요.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고갯짓한 서재길이 마저 설명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역운회 사무실로 끌려간 도명진을 석일태가 총으로 쏴 죽였고, 다음엔 바로 우종진 이사를.”

“똑같이 쏴서 죽였다?”

“네.”

차유신의 입 안에서 혀가 굴러갔다. 돌기 틈틈이 쓴 침이 고였다. 모조리 삼키고, 날숨을 뱉었다. 머릿속에서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배민기가 가장 먼저 사망. 이후 우종진이 도망간 도명진을 납치. 끌려온 도명진은 석일태에 사망. 그리고 우종진도 사망.

여러 전후 관계가 존재하지만 도명진의 아들인 도희범이 기억하는 건 ‘도명진의 납치’까지다. ‘좋아하는 아저씨’인 우종진이 제 아버지를 폭행해 끌고 가는 걸 확실하게 봤다. 최종적으로 제 아버지를 죽인 건 석일태라는 것도, 납치한 우종진은 죽었다는 것도 모를 턱이 없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는 영상은 우종진이 범인인 시점에서 끝나 있다.

상상은 실제 눈으로 본 것을 이기지 못하고, 어떤 강렬한 영상은 진실보다 뼈저리게 뇌리에 각인된다. 도희범이 가장 증오하는 게 우종진일 수밖에 없는 건 자연적이다.

그것이 도희범이 우태원에 경고한 ‘불행’의 사유다. 죽은 우종진에게는 복수할 수 없으니 그 아들에게 같은 걸 하려는 것이다. 과거엔 그게 어려웠다. 역운회가 워낙 장성한 때였고, 우태원은 그곳의 실질적인 2인자였다. 감히 건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역운회가 해체해 상해로 넘어갔고, 우태원은 더 이상 거대 조직을 배후에 두고 있지 않다. 금배지 단 국회의원으로서 과거에 비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나 도희범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일개 사람은 미쳐 날뛰는 들짐승을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정확한 방식이 아무리 생각해도 안갯속이다. 칼을 품은 건 알았는데, 그 칼이 어떤 형태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다.

“도희범이라고 알아?”

차유신이 질문을 꺼냈다. 탕수육을 집어 먹던 서재길이 주춤했다. 담담한 응답이 찾아들었다.

“알긴 하죠. 도명진 아들.”

“역운회와 가까웠어?”

“반대인 걸로 압니다. 제 아버지 죽인 조직이라고 이 갈 듯합니다. 애초에 이쪽에 적(籍)을 두지 않았죠. 일찍이 아버지 유산 가지고 건설업체를 차렸잖습니까. 꽤 잘 나간다 들었는데.”

“지금은 매천회와 결탁했어. 거길 제2의 역운회로 키우려 하는 중이야.”

“그래요? 큰맘 먹은 건 확실하네요.”

“뭐가 큰맘이야.”

젓가락을 내려놓은 서재길이 곁눈질을 보냈다. 갈바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셨나 보네요. 매천회도 결국 역운회입니다. 초기 역운회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와 부산에다 차린 조직이에요. 초대 우두머리가 도명진 숙청을 거든 석일태 오른팔이고요. 그렇게 제 아버지 죽인 조직 증오하더니, 결국 그 조직에 흡수된 격이죠, 뭐.”

서재길이 혀를 내둘렀다. 멍하니 보던 차유신의 입이 벌어졌다. 허무한 독언이 나왔다.

“그 정도로 우태원 싫어하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네.”

*

-우태원 의원! 명확한 증거 자료를 제출하세요. 김영호 소방청장 사위가 해당 납품 업체의 실질적 운영자다, 이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우 의원뿐 아니라 지금 말 얹는 문지찬 의원이나 박경배 의원이나 다 같은 인간들이야. 국정감사가 장난도 아니고 어디 심증만으로 한 정부 기관의 장(長)을 음해하고….

TV에서 따발총처럼 쏘아 대는 남자 음성이 들렸다. 차유신은 귓등으로 소란을 정청하며 응접용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위에 올라온 페이퍼였다.

증인출석요구서.

수신 도희범 일장토건 대표.

발신 대한민국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탁. 등 뒤에서 내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성큼성큼 걸어온 진무원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여전히 페이퍼만 보는 차유신을 관찰하다, 입을 열었다.

“조은진 위원장 쪽에서 연락 왔다.”

-남재후 의원! 남 의원! 착석하세요.

“추가 출석 요청할 증인이나 참고인이 있으면 더 늦추지 말고 오늘 오후 3시까지….”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요? 우태원 의원 말고는 말하지 말라니까!

“아이씨. 확.”

진무원이 짜증스럽게 몸을 틀었다. 리모컨을 채 화면을 끄려 하는 걸 본 차유신이 저지했다.

“끄지 마.”

“시끄러워 죽겠다. 진짜.”

“우태원 발언 시간 끝나면 꺼.”

“저 새끼 국감에서 깽판 치는 게 ASMR이야? 켜 놓고 일하게.”

진무원이 열을 냈다. 아랑곳하지 않은 차유신이 눈앞의 페이퍼 뭉치를 챙겨 들었다. 진무원의 품에 안겨 주고는, 턱짓을 했다.

“이거 그대로 조은진 선배 방에 올려.”

“뭐가 갑자기 이렇게….”

멀뚱히 페이퍼를 본 진무원이 깜짝했다.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그의 이마가 보였다.

“일장토건은 갑자기 왜.”

“이유가 있으니 부르지.”

“하지만 너 일장토건하고는….”

부리나케 말하던 진무원이 무춤했다. 마주 본 차유신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입에서 헛헛한 웃음이 터졌다. 테이블 위로 올라간 손이 탕, 소리 나게 표면을 내리쳤다. 쩌렁쩌렁한 외침이 내실을 울렸다.

“윤재희 들어와!”

오 초도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렸다. 나타난 윤재희가 토끼 눈을 하고 머무적거렸다. 차유신이 차가운 손가락질을 했다.

“너 입이 엄청나게 가볍다.”

“제가 무슨….”

“무원이 형한테 내가 최근 일장토건 도희범하고 엮여 있다는 말 했어, 안 했어.”

“아니, 그거는.”

어쩔 줄 몰라 하던 윤재희가 진무원 쪽에 원망스러운 낯을 해 보였다. 그걸 티를 내면 어떻게 하냐는 투였다. 진무원은 입을 싹 닫고 모른 척했다. 차유신이 닦달했다.

“진짜 너 못 써먹겠다. 보안 몰라? 보안. 그렇게 있는 비밀 없는 비밀 다 떠벌리고 다니면….”

“그만해라. 재희 저 새끼도 걱정돼서 그런 것 아니야. 네가 아주 위험한 회사하고 얽힌 것 같아, 혹여나 안전이 우려된다며 나 붙들고 말한 거야. 너무 그러지 마.”

진무원이 그제야 윤재희 편을 들었다. 차유신의 입에서 탐탁지 않은 호흡이 샜다. 윤재희를 머금은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겸사겸사 네 안전도?”

천진한 윤재희는 숨기지 않았다.

“네. 안전이 제일이죠.”

차유신이 이를 갈았다.

“나가.”

윤재희는 모범생처럼 구십 도 각도로 허리를 굽혔다.

“네, 형님.”

슥 빠진 윤재희가 문을 닫았다. 조용해진 실내에서 다시 웅성거리는 소방청 국정감사 현장 소리가 들렸다. 소요 속에서도 유독 정연한 우태원의 언어가 차유신의 귀를 스쳤다.

-김영호 소방청장의 사위가 소방청으로부터 특혜를 얻은 납품 업체 ‘반도스’의 실질 소유주라는 증거물은 금일 오후 따로 공개하겠습니다. 본래 제출하려 한 증거 자료에 제보자의 신변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존재해, 이를 삭제하고 의원실에서 재작업 중입니다.

-증거 있는 건 확실합니까. 증거를 만드는 것 아니고?

-증거를 만드는 건 남재후 선배님 전문이지요.

삿대질하는 남재후에 대고 우태원이 뇌까렸다. 피로한 음성이 국감장을 메웠다.

-지난 국감 때 경찰청 외사국 예산 편성 숫자 가지고 장난질하다가 크게 망신당하셨잖습니까. 본인이 조작한다 해 모든 의원이 조작한다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국감장이 일순 고요해졌다. 우태원 옆자리의 문지찬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존경합니다, 남 선배님. 조롱당한 남재후가 확 안면을 구겼다. 큼, 소리 낸 행정안전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서로 실례되는 발언은 삼갑시다. 우 의원은 마저 발언하세요.

“궁금한 것 있어.”

진무원의 질문이 들렸다. 차유신은 고개를 들었다.

“뭐.”

“도희범 뒤통수는 갑자기 왜 치려는 건데?”

차유신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깜빡인 눈망울이 이동했다. 진무원의 어깨 너머로 환하게 빛나는 TV 화면이 비쳤다. 손에 깍지를 낀 우태원이 엄숙하게 발언하고 있었다. 지인 업체와 결탁한 정부 기관 고위직의 내부 납품 비리는 반드시 근절돼야 할 문제이며…. 구구절절 옳은 말을 쏟아 대는 그를 감상하며 차유신이 턱을 괴었다. 몽롱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안전하고 싶어서.”

우태원이 위험한 섬으로 돌아가지 않게끔, 자신의 육지에 묶어 두고 싶어서.

그러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날아드는 칼에 무작정 베이기보단 똑같이 칼로 맞서는 게 맞았다. 차유신은 늘 그렇듯 우태원 때문에 보는 피가 물보다 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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