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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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서재길 실장 잠시 귀국한대요.”

테이블 맞은편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윤재희가 말했다. 포크를 내려놓은 차유신이 소리를 쳤다.

“여길 어떻게 들어와. 국내에서 수배 상태 아니야?”

“위조 여권 쓰면 되죠. 중국에서 미세 먼지만큼 널린 게 남의 여권인데. 조폭에게 그거 구하는 게 어려운 일일까요.”

“너 어떻게 그런 걸 그리도 잘 아냐.”

“서 실장이 알려줬으니 알죠.”

윤재희가 셰이크 잔을 들며 대꾸했다. 스트로를 문 그가 쭙, 소리 나게 내용물을 빨아들였다. 면상을 구긴 차유신이 대뜸 테이블 가장자리를 잡아 들췄다. 유리로 된 상단이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화들짝한 윤재희가 스트로를 뱉었다.

“왜 성질을 내요? 자꾸 폭력적으로 굴면 인권위에 신고할 겁니다.”

“신고해. 내가 조폭 새끼랑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지.”

“저 서 실장한테 문서 받아 번역 알바 하는 거 아시잖아요.”

“하지 말라면 하지 마. 그리고 갑자기 귀국은 왜 한다는 거야?”

차유신이 쏘아 댔다. 윤재희가 애꿎은 스트로를 휘적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건 저도 모르죠. 서 실장 사생활이니.”

“혹시 우태원 만나러 오는 거 아니야? 한번 알아봐.”

“가까이 지내지 말라면서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하여간 제멋대로세요.”

윤재희가 진저리를 쳤다. 흘겨본 차유신이 포크를 들었다.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찍어 입에 넣고, 씹었다. 미디엄으로 구워진 고기가 기름기와 핏기를 쏟아 냈다. 오늘 첫 식사였다. 아침 일찍 두 개의 티타임을 치르고 바로 국회에서 열리는 오전 토론회에 참석했다. 기자 간담회와 함께 진행한 오찬은 기자들의 질문에 내리 대답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식사에는 손도 못 댔다.

이후 지역구에서 열리는 시민 행사에 참석했고, 끝난 후 시계를 보니 오후 4시였다. 뒤늦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허기를 느꼈다. 운전하는 윤재희를 시켜 눈에 띄는 베이커리 앞에 차를 세웠다. 간단하게 빵이나 사 먹을 요량이었는데, 들어가서 메뉴를 보니 브런치 카페였다. 빵은 없었고 스테이크샐러드가 인기 메뉴라기에 그걸 주문했다.

내부가 만석이었으므로 바깥에 하나 있는 테라스석에 앉았다. 식사를 하는 내내 지나가던 몇몇 사람이 눈질을 했지만, 긴가민가하다 지나치는 분위기였다. 설마 차유신이 대낮에 훤히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할까 싶은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는지, 일부가 몰래 사진을 찍었다.

차유신은 무심하게 식사에 집중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고기구이는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면 없는 쪽이지만, 그냥 먹었다. 언젠가부터 차유신은 음식에 대한 맛을 따지기보다 영양분과 열량을 채우는 데 의의를 두기 시작했다. 맛까지 고려해 가며 식사할 정도로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차유신의 세계는 사시사철 폭풍우가 부는 대지와 같아서, 널브러진 돌멩이 따위에 신경을 쏟고 있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덕분에 늘 긴장한 채였고, 늘 예민한 채였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건강을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 직업을 택해선 안 됐다. 이제는 습관이 된 직업을 입고 매일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운 하루하루를 반복했다. 진무원은 차유신의 예상 수명을 50으로 불렀다. 차유신은 많이 쳐줘서 고맙다 했다.

“궁금한 것 있어요.”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다 내려 둔 윤재희가 운을 뗐다. 차유신은 마지막 스테이크 조각에 포크를 꽂으며 응수했다.

“뭐.”

“왜 그렇게 서재길 실장을 싫어해요?”

“사람 자체는 싫어하지 않아.”

“그럼 뭐가 문제예요.”

“역운회잖아. 난 그 역운회와 악연을 겪은 사이고. 굳이 말해 줘야 알아?”

“하지만 이제 끝났잖아요. 무엇보다 형님이 아끼는 우태원 의원과 서 실장은 매우 밀접한 관계고.”

“바로 그게 문제야.”

포크 쥔 손이 풀렸다. 딱, 소리를 내며 쇠붙이가 떨어졌다.

“서재길이 우태원에게 바람이라도 넣어 놈이 다시 역운회에 눈 돌리는 날이 올지 어떻게 알아? 혹시 모를 일은 미리 차단해야지.”

“그럴 일은 없을걸요. 형님 말이라면 자다가도 납작 엎드리는 게 우 의원인데. 형님이 싫어하는 걸 알잖아요. 그런 걸 굳이 할까요?”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건에 대해서는 긴장을 풀지 말자는 게 내 신조야.”

“생각보다 여유가 있으시네요. 긴장은 의정 활동에 다 쏟으신 줄 알았는데.”

“뭐 착각하나 본데, 내 우선순위는 의정이 아니라 그쪽이야.”

말을 맺은 차유신이 포크를 들었다. 윤재희의 머리가 갸우뚱거렸다. 방금 들은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한 투였다. 차유신은 아무렇지 않게 입 안에 넣은 고기를 씹었다. 조금 마른 고기에서는 피비린내가 났다. 한때 우태원과 있으며 질리도록 맡은 어떤 냄새가 떠올랐다. 갓 죽은 동물에서 풍기는 피 냄새. 도륙한 건 우태원이었다.

꿀꺽, 고깃덩어리가 삼켜졌다. 목구멍을 타고 짓이겨진 살덩이가 미끄러졌다. 차유신은 피 냄새가 꺼질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우태원의 눈에 자신만 담기게끔 마주 보고 또 마주 보던 과거의 한 나날처럼, 필사적으로 지긋지긋한 냄새를 삭였다.

그때로 돌아가는 건 질색이었다. 차유신은 우태원에게 자신 이외의 집을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차유신 의원님?”

문득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차유신의 얼굴이 돌아갔다. 테라스 바깥쪽에서 한 여성이 뿔테 안경을 추어올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아주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화장기를 싹 지운 민얼굴에, 수수한 티셔츠 및 청바지 차림이었다. 차유신은 반사적으로 꾸벅했다. 일반 시민이라 생각한 것이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웬일이야. 뭘 정중하게 굴고 그러세요? 저 아시잖아요.”

깔깔거린 여성이 뿔테 안경을 벗었다.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될 법한 눈망울이 확 드러났다. 차유신의 눈 밑이 옴짝거렸다. 윤재희가 나지막이 감탄했다. 겁나게 미인이시네.

“이름이 예영이었나.”

“맞아요. 본명은 아니지만.”

그제야 알아본 차유신을 향해 여성이 샐샐거렸다. 차유신이 허망하게 뇌까렸다.

“가게 때하고 전혀 달라서 못 알아봤어.”

“거기서는 엄청 공들여 화장하니까요. 평소에는 민얼굴로 다녀요. 귀찮거든요.”

“여기 살아?”

“네. 저기 건너편이 저 사는 빌라촌이에요.”

“엄청 후진 데 사는구나.”

“여기 의원님 지역구인 건 알고 말하시는 거죠?”

여성이 어이없어했다. 차유신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가 봐. 다음에 그쪽 갈 일 있으면 또 보고.”

“아. 실은 저 의원님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나중에 하면 안 되나. 지금 좀 정신이 없어서.”

차유신이 슬쩍 여성의 어깨를 밀었다. 넘어간 눈길이 저편에 멈춰선 흰색 차의 운전석에 걸렸다. 살짝 내린 차창 너머로 까만색 렌즈가 비쳤다. 차유신의 입에서 고단한 숨이 샜다. 기자인지, 정보 요원인지, 누군가가 섭외한 사설탐정인지. 어느 쪽이 됐든 눈치를 챈 이상 꼬투리 잡힐 일은 한 가닥도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장난질이라면 이미 질릴 정도로 겪었다.

“네, 그래 보이시네요.”

역시 흰색 차를 본 여성이 이해했다는 양 발을 뻗었다. 부쩍 둔하게 걸어가다, 주머니에서 영수증과 펜을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이내 영수증을 공처럼 뭉쳐 휙 던졌다. 테이블에 올라온 그것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차유신은 여성의 뒤통수를 보며 종잇조각을 잡았다.

“아, 네. 무원이 형… 네. 지금 같이 있죠. 네… 네?”

돌연 맞은편에서 새된 음성이 들렸다. 잔뜩 격양돼 전화를 받는 윤재희가 보였다. 종잇조각을 주머니에 넣은 차유신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 무원이 형, 일단 끊어요. 바로 보고할게요.”

부리나케 내려간 윤재희의 손이 통화 종료 아이콘을 눌렀다. 곧 급하게 눈길을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좀 곤란한 일이 발생했는데요, 형님.”

“뭔데.”

“어떤 사회단체에서 형님 이름 내걸어 가며 꽤 큰 규모의 후원 행사를 개최했대요. 우리 의원실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곳인데, 그쪽 영역에서는 꽤 알려진 곳이라나 봐요. 아무튼 무원이 형 지금 길길이 날뛰고 있어요. 어디 감히 차유신 이름을 함부로 쓰냐면서.”

“어딘데 그래.”

“중소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아이 씨, 들었는데 잊어버렸네. 사회단체는 워낙 이름들이 고만고만해서. 아무튼 단체장 이름이.”

툴툴거린 윤재희가 목을 곧추세웠다. 사뭇 정연한 언어가 건네졌다.

“정해신이요.”

차유신의 낯이 확 일그러졌다. 테이블을 짚은 손이 사납게 뭉쳤다. 유리를 으깨 버릴 기세로 짓누르다 입을 뗐다. 냉한 지시가 나왔다.

“차 대기시켜.”

*

‘중소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모임’ 사무실은 광화문의 한 고층 빌딩에 있었다. 입구 앞에 서자마자 절로 미간이 좁혀 들었다. 붙어 있는 명패만 다섯 개였다. 건전한 법인 문화 형성을 위한 모임, 안전한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한 모임 따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정해신이 대표로 있는 곳이었다. 죄다 한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오셨어요? 의원님.”

안에 들어서자마자 비서로 보이는 여직원이 다가오며 눈웃음을 쳤다. 무성의하게 본 차유신이 대꾸했다.

“정해신 대표는요.”

“안에서 대기 중입니다. 지금 통화 중이세요.”

여직원이 생긋거렸다. 차유신은 속으로 비웃었다. 통화 중은 개뿔. 이딴 식으로 기 싸움을 하겠다는 거다.

내실로 들어가는 대신 내부를 둘러봤다. 십여 명의 직원이 데스크에 앉아 업무 중이었다. 대체 무슨 업무를 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하나같이 바빠 보였다. 날숨을 뱉은 차유신이 입을 열었다.

“잠깐 다들 자리 좀 비워 주시죠.”

“네?”

한 직원이 얼떨떨한 반응을 했다. 차유신이 확고히 말했다.

“정 대표와 아주 중요한 얘기를 나눠야 하는데, 혹여나 바깥으로 들릴지 모르니 보안 유지 차원에서 잠시 피해 달라는 얘기입니다.”

여직원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뒤를 확인했다. 당황한 직원들이 바쁘게 눈길을 주고받았다. 개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직원이 미적미적 일어섰다. 곧 직원들에 휘적휘적 손짓했다.

“다들 바람이나 쐬러 갑시다.”

약간의 뜸을 들인 끝에 곳곳에서 의자 밀려나는 소리가 났다. 남자를 필두로 한 직원 무리가 우르르 바깥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나선 여직원이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찰칵, 하며 실내가 조용해졌다. 윤재희가 차유신을 살폈다.

“오버하시네요.”

“뭐가 오버야.”

“그야 정해신 붙들고 닦달하다 보면 고성이 나겠죠. 그렇다고 일하던 직원을 전부 나가게 하는 건 좀….”

“너무 자리에서 일만 하는 것도 안 좋아. 가끔은 쉬어야지.”

논점과 무관한 말을 한 차유신이 돌아섰다. 뚜벅뚜벅 걸어 내실 앞에 섰다. 문손잡이를 잡은 뒤 돌려 젖혔다.

“아. 네, 네…. 그야 당연하죠. 제 선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회장님.”

데스크 의자에 앉은 정해신은 간신배처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차유신을 힐끗한 그가 입에 호선을 걸었다. 예의 바른 음성이 따라붙었다.

“중요한 손님이 와 이만 끊겠습니다. 네, 회장님. 살펴 가십시오.”

수화기가 내려왔다. 우뚝 선 차유신이 허리를 죽 폈다. 일어난 정해신이 걸어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귀한 분께서 이리 누추한 곳에… 일단 앉으시죠. 너무 서 계시면 다리 상합니다.”

“여기 월세 얼마입니까.”

안여한 질문이 나왔다. 서너 걸음을 남기고 멈춰 선 정해신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글쎄요. 한 1,000만 원 되지요.”

“가격이 꽤 있네요.”

“싸진 않습니다.”

차유신의 눈매가 휘었다. 만족스러운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방음 잘 되겠네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손이 나갔다. 정해신의 뒤통수를 움켜잡고는, 냅다 바닥에 내리꽂았다. 마르지도 육중하지도 않은 몸이 바로 픽 고꾸라졌다. 차유신은 쓰러지는 그의 가슴팍을 박찼다. 밀려난 몸이 쿵,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혔다. 버둥거린 정해신이 앓는 소리를 냈다.

“허억… 의원님. 의원님, 잠시만….”

아랑곳 않고 다가간 차유신이 구둣발을 올렸다. 복부를 파열할 기세로 앞코를 내리찍었다. 비명을 터뜨린 정해신이 배를 감쌌다. 죽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 잠깐…. 얘기를 좀 듣고… 제가 일부러 그런 게.”

무시하고 구둣발을 고쳐 가눴다. 재차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흐악! 정해신이 자지러졌다. 차유신은 연신 발길질을 했다.

“내가 씨발 진짜.”

퍽.

“엄청나게 참아 드렸잖아요.”

퍽.

“그러면 눈치껏 거슬리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퍽.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인도적으로 대해 드렸으면 인간처럼 굴어야 할 것 아니야, 어?”

빡! 쇠공 같은 구둣발이 정해신의 옆구리를 찼다. 잘못했습니다! 퍼렇게 질린 정해신이 벌벌거렸다. 천장을 보며 씩씩거린 차유신이 고개를 돌렸다. 입구 앞에 선 윤재희가 멀거니 방금 전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인도적으로…. 차유신이 손가락질을 했다.

“내려가서 약 사 와.”

“뭐 사 올까요.”

“맞은 거에 좋은 건 다.”

“그게 정확히 뭔지 제가 알아야….”

“직접 알게 해 줘?”

“아니요. 즉각 다녀오겠습니다.”

윤재희가 갑자기 공손해졌다. 발을 뺀 그가 후다닥 내실에서 벗어났다. 탁한 숨을 뿜은 차유신이 눈을 내리떴다. 정해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헐떡대고 있었다.

“어디 변명을 해 보시죠.”

차유신이 몸을 낮췄다. 푸들거리는 머리통을 탁, 치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정해신이 우물쭈물 얼굴을 보였다. 한쪽 눈에 피가 고여 있었다.

“그래도 된다고 하기에….”

“내가 언제 그래도 된다고 했습니까. 어떤 정신 나간 국회의원이 그깟 허접한 행사에 본인 이름 팔리는 걸 허락해요, 네?”

“의원님께서 직접 그랬다는 게 아니고.”

정해신이 더듬거렸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도… 도희범 대표가…. 의원님께 허락받았다 해서….”

차유신의 미간이 움푹 팼다. 질근거리던 위아래 이빨이 떨어졌다. 엄한 반문이 튀어나왔다.

“도 대표가 그딴 말을 했다?”

“네… 쿨럭.”

“그럼 어제 그 거지 같은 선물은. 그것도 그 새끼가 된다 해서 보냈나?”

차유신이 조롱했다. 정해신의 면상이 벙해졌다. 넋을 놓고 올려다보던 그가 우물거렸다.

“선물은… 아직 따로 보낸 적이 없는데요.”

떼꾼한 낯에서 난색이 비쳤다. 정해신이 머무적거렸다.

“정장 하나 해 드리려 하긴 했지만… 이탈리아 주문 제작이라 아직 국내에 도착을 안 해서.”

차유신의 고개가 삐뚜름해졌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멍청한 표정은 진심이었다. 눈을 굴린 차유신이 헛헛한 숨을 흘렸다.

정해신 이 새끼가 아니란 말이지.

*

5년여 만에 찾은 역현호는 홀로 격동의 시기라도 겪은 것처럼 크게 달라져 있었다. 시의 대대적인 개발 프로젝트를 거쳐 가족적이며 화려한 분위기의 호수공원이 됐다. 이렇게 됐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으나, 기회가 생기지 않아 실제 방문한 일이 없었다.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무슨 놀이공원인 줄 알았네.”

형형색색 빛나는 조명등을 보며 차유신이 혼잣말을 했다. 옆에 선 우태원이 물었다.

“처음 와 보십니까. 생긴 지 2년이 넘었는데.”

“올 기회가 없었어.”

“개관식 행사 때 서울시장이며 의원들 많이 참석했잖아요. 저도 참석했고.”

“경찰청 합동으로 역운회 소탕 작전하느라 한창 바빴을 때일 거야. 한가하게 공원 개관식 따위를 올 때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

“그랬군요.”

우태원이 걸음을 옮겼다. 함께 걷던 차유신의 눈길이 먼 치에 걸렸다. 호수에 간판 빛을 드리운 장어집의 번듯한 건물이 보였다. 본래 허름하며 작은 곳이었는데, 호수에 공원을 조성하며 저곳도 리모델링을 한 모양이었다. 앞에 주차된 차가 많은 걸 보니 장사가 잘되는 듯해 다행이었다.

“바로 식사하러 갈 거죠?”

돌아본 우태원이 물었다. 차유신은 도리질을 쳤다. 더 둘러보고 싶었다. 공원을 걷기 위해 일부러 차를 입구 주차장에 세운 터였다. 무엇보다 어둑한 시간대라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어디 앉아 있다 가자.”

“허기지지 않으세요?”

“별로. 넌.”

“저야 늘 선배 뜻과 같죠.”

우태원이 흔쾌히 발길을 돌렸다. 근처에 빈 벤치가 있었다. 먼저 다가간 우태원이 재킷을 벗었다. 한쪽에 옷을 덮고, 자신은 그 옆에 앉았다.

“앉아요.”

“옷 버린다.”

“그럼 영광이죠.”

우태원이 다리를 꼬았다. 선선한 바람에 그의 셔츠 칼라가 팔랑였다. 느리게 가서 착석한 차유신이 그의 팔을 쥐었다. 터질 것 같은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춥겠는데.”

“그래 보여요?”

“그냥 한 말이야.”

“정말 걱정해 주는 줄 알고 기쁠 뻔했네요.”

“몸에 근육 좀 빼면 고려해 보지.”

차유신이 손을 풀었다.

“지금은 바람에 부딪혀도 바람을 걱정해야 할 판이야.”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요.”

“해 봐. 재미있겠네.”

“그냥 안 할래요.”

“왜.”

우태원이 웃음기 없이 대꾸했다.

“그럼 선배 들고 섹스하는 거 못 하잖아요.”

차유신이 무덤덤하게 받아쳤다.

“그 체위가 가끔 좆같아서 빼라고 한 거였는데.”

정면을 봤다. 잔잔한 수면 위에서 갖가지 조명이 나부꼈다. 둥근 호수를 끼고 가족이며 친구, 연인이 무리 지어 산책을 하고 있었다. 파스텔로 그린 수채화처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것이 역현구의 일부라는 게 새삼 와 닿지 않았다. 차유신은 자신이 일군 역현구의 변화가 때때로 환영 같았다.

현실은 ‘이 역현구’에 있지만, 눈을 감으면 ‘그 역현구’가 떠올랐다.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잔상이었다.

“데이트 같네요, 꼭.”

문득 읊조림이 들렸다. 차유신의 눈길이 돌아갔다. 호수에 눈을 건 우태원이 말을 이었다.

“신기해요.”

“뭐가.”

“선배와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게요.”

“기회 있을 때 실컷 누리고 기억해 둬. 흔한 경험이 아니잖아. 너나 나나 바빠 여유가 없으니.”

다시 수면을 본 차유신이 뇌까렸다.

“나도 기억 중이야.”

옆얼굴에 우태원의 눈빛이 스쳤다.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죠.”

긴 숨을 내쉰 차유신이 다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바스락거리며 풀 밟히는 소리가 났다. 우태원도 똑같이 다리를 뻗었다. 대각선 수풀에 같은 자세를 한 두 사람의 조영이 드리웠다. 크기와 위치만 다른 데칼코마니 같았다.

불현듯 밑에서 헥헥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선을 떨어뜨린 차유신이 화들짝했다. 하얀 털을 뒤집어쓴 강아지가 혀를 내민 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목에 줄을 맨 걸 보니 주인이 있는 강아지였다. 차유신은 어이가 없었다. 또 개인가 싶었다.

“주인한테 가. 여기 있지 말고.”

차유신이 일부러 발소리를 냈다. 저리 가라는 뜻이었다. 개는 눈치도 없이 더 다가왔다. 꼬리의 흔들림이 맹렬해졌다.

“선배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우태원이 턱을 괴었다.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않는 개를 지켜보다 차유신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개가 발라당 드러누웠다. 그렇게 학습한 모양이었다.

“네가 쫓아. 나는 뭔 짓을 해도 다 좋다네.”

차유신이 부추겼다. 우태원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곤란한데요.”

“왜.”

“개 알레르기가 있어요.”

“가까이 가는 것도 안 돼?”

“할 수는 있죠. 하지만….”

눈을 굴린 우태원이 덧붙였다.

“개와 가까워지면 선배와 멀어지잖아요.”

차유신의 눈매가 찌그러 들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싶었다.

“흰둥아!”

돌연 어린아이가 목소리가 났다. 헐레벌떡 뛰어온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의 남학생이 근처에 섰다. 헉헉거린 남학생이 강아지를 안았다. 버둥거린 강아지가 주인을 알아보고 유순해졌다.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학생이 꾸벅했다. 봐 준 적이 없는데. 독언하는 우태원의 입을 차유신이 막았다. 곧 남학생에게 훈계했다.

“줄 잘 잡고 다녀. 나쁜 마음 먹은 사람이 데리고 갔으면 어쩌려 그랬어?”

“네, 죄송해요.”

고분고분 답한 남학생이 고개를 바로 했다. 곧 눈을 키웠다. 차유신과 우태원을 번갈아 본 아이가 뭉그적거렸다. 초조한 물음이 다가왔다.

“국회의원인가요?”

“아니.”

거짓말을 했다. 쉬는 시간에 상대해 주기 귀찮아서였다.

“금배지가 있잖아요.”

남학생이 차유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재킷 칼라에 단 배지를 정확하게 지목하고 있었다. 차유신은 목을 젖혔다. 애니메이션 보기에도 바쁠 애가 이게 국회의원 것인 건 어찌 알까 싶었다.

“그래, 맞아. 하지만 우리 본 걸 어디 가서 얘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다시 남학생을 응시한 차유신이 말했다. 아이가 의아해했다.

“왜요? 우리 부모님이 두 분 엄청 좋아하는데. 얘기하면 반드시 보러 올 거예요.”

“부모님이랑 왔어?”

“네, 저쪽 카페에 있어요.”

아이가 뒤편을 가리켰다. 도보로 일이 분 떨어진 곳에서 작은 카페가 간판을 빛내고 있었다. 차유신은 상체를 기울였다.

“나하고 이 사람 본 건 너만 알고 있어.”

“이유 알려 주면 안 돼요?”

“이유?”

차유신의 낯이 찌뿌듯해졌다. 얼핏 확인한 우태원은 구경하듯 턱만 괴고 있었다. 산들거리는 연풍이 우태원을 지나쳐 차유신의 목을 휘감아 왔다. 어깨가 느슨해졌다. 자못 침착한 눈길이 남학생을 향했다.

“여기에 온 거 국가 기밀이거든.”

“기밀이요?”

남학생의 눈이 빛났다. 품에 안긴 강아지가 낑낑거렸다. 강아지를 내려놓은 남학생이 눈에 띄게 허둥거렸다. 열심히 끔뻑거리고 난 아이가 말했다.

“비밀 지킬게요.”

“고마워.”

“대신 뭐 하나 부탁해도 돼요?”

“뭔데.”

“악수해 줘요.”

남학생이 팔을 내뻗었다. 작은 손이 차유신의 앞에서 흔들거렸다. 차유신은 가만히 손을 올렸다. 아이의 것을 잡고 가붓하게 흔들어 줬다. 남학생이 배시시 웃었다.

적당히 악수해 주고 난 차유신이 손을 놓았다. 아이가 옆을 봤다. 자신 차례라는 걸 알면서도 우태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턱을 괸 채 아이와 차유신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구겨진 윗눈썹이 아주 심각해 보였다. 차유신이 비꼬았다.

“빨리하지 그래. 왜, 애 알레르기도 있어?”

우태원이 어물쩍 괸 턱을 풀었다. 마지못해 나간 손이 아이를 잡았다. 나지막한 한탄이 들렸다.

“있지만 어쩔 수 없죠. 안 하면 주인에게 미움받을 테니.”

*

“의원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장어집에 들어서자마자 사장이 쩌렁쩌렁하게 반겼다. 덕분에 식당 내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과 우태원 쪽으로 쏠리는 걸 느꼈다. 차유신은 속으로 끙, 소리를 냈다. 애에게 당부한 의미가 없군.

“안으로 드시죠. 가장 전망 좋은 룸이 마침 막 비었습니다. 아이고, 그나저나 격조한 사이에 또 훤칠해지셨습니다.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으시니 이걸 불공평하다 해야 할지… 허허. 거기, 수경 씨! 제일 좋은 걸로 이 인분 빨리.”

사장이 발 빠르게 차유신과 우태원을 안내했다. 뒤에서 찰칵거리며 사진 찍는 소리가 났다. 차유신은 찬찬히 걸으며 각종 사진과 신문 기사 스크랩이 붙은 복도 벽을 봤다. 자신의 신문 기사 사진을 걸어 놓고 ‘단골손님 차유신 의원’이라고 적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같은 걸 본 우태원이 중얼거렸다. 다음부턴 안 오실지 모르겠네요. 차유신은 말없이 이마를 짚었다.

“끝내주지요? 역현호가 한눈에 보이는 방입니다.”

룸은 꽤나 넓었다. 사장 말마따나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잔잔하게 출렁이는 역현호가 비쳤다. 방금 전까지 질리도록 본 것이라 별 감흥은 없었다. 테이블과 자질구레한 그림 따위가 배치된 내부에서는 일반음식점 단독 방 특유의 조잡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차유신은 차라리 이런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식사해야 밥 먹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소주 하나 줘요.”

“네, 장어도 바로 내드리겠습니다.”

크게 수그리고 난 사장이 물러났다. 문이 닫히자마자 맞은편의 우태원이 팔짱을 꼈다.

“내일 오전 여섯 시에 VIP 티타임 있는 것 아시죠.”

“알아. 한두 병 정도는 괜찮잖아.”

“딱 두 병까지로 해요. 세 병은 안 돼요.”

“왜.”

“취하면 웃음이 많아지잖아요. 그 상태로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선배 웃는 거 볼 거고.”

우태원이 태식했다.

“그러면 제가 아주 불쾌해지겠죠.”

이제는 황당해할 기운도 없다는 투로 차유신이 쏘아붙였다.

“미친놈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생물 장어와 소주병을 들고 사장이 들어왔다. 아깐 보이지 않던 깨끗한 앞치마를 두른 그가 미리 달궈 둔 불판에 장어를 올렸다. 칙, 소리를 내며 고기가 쪼그라들었다.

“제가 할 테니 이리 주고 일 보시죠.”

우태원이 손사래를 쳤다. 사장이 기겁했다.

“아니요, 이거 손이 좀 가는 일이라… 그리고 의원님께 어떻게 이런 걸.”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차유신을 힐긋한 우태원이 덧붙였다.

“저분 비서로 있을 때 질릴 정도로 해서요.”

눈치를 본 사장이 조심스레 집게를 놓았다. 받아 든 우태원이 가 보라는 눈짓을 했다. 사장의 발이 머무적머무적 빠졌다. 문지방 너머를 딛고는, 문을 닫았다. 정적 속에서 타닥, 타닥, 고기 익어 가는 소리만 남았다.

“누가 들으면 내가 너 되게 부려 먹은 줄 알겠다.”

장어의 열을 맞추는 우태원을 보며 차유신이 말했다. 손을 휘저어 치솟는 연기를 자신 쪽으로 내몬 우태원이 답했다.

“그래도 저에겐 늘 부족했죠.”

“더 부려 먹히고 싶었어?”

“당연히요.”

“변태 새끼.”

야유한 차유신의 눈이 넘어갔다. 잔물진 빛을 머금은 역현호가 바로 망막에 걸렸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은 다소 줄었지만, 드물어진 인적만큼 수면의 광채가 찬란해졌다. 차유신은 내심 경탄했다. 이 물이 이렇게나 빛날 수 있다는 걸 과거에는 꿈에도 몰랐다. 항상 음습하고 냄새나는 적수인 줄로만 알았다.

어린 시절, 그 물을 굳이 보겠다고 어머니를 이끈 적이 있었다.

“어릴 때 여기 많이 와 봤지?”

차유신이 물었다. 끄무레한 연기 속에서 우태원이 시선을 끌어 올렸다. 과거를 복기하듯 굴러가는 눈동자가 보였다. 그가 곧 끄덕였다.

“많이는 아니지만, 종종 왔습니다.”

“석일태 회장하고?”

“석 회장보다는 그 밑에서 일하는 비서 형과 주로 왔죠. 역현구에는 아이가 놀 만한 곳이 없습니다. 놀 거리를 찾으려면 다른 지역으로 나가야 하죠. 그나마 역현호가 만만하긴 합니다. 정신없고 지저분하지만, 일단은 물이 있으니까요. 애들은 물만 봐도 좋아하는 법이잖아요.”

“난 어릴 때 딱 한 번 왔어.”

“어머니가 바쁘면 그럴 수 있죠.”

“바쁜 것도 있고, 애당초 어머니가 여길 별로 안 좋아했어.”

차유신이 재차 호수를 봤다. 높낮이 없는 언어가 이어졌다.

“본인이 여기에 빠질 걸 안 모양이지.”

툭. 갑자기 조용해진 가운데 장어 한 점이 불판에서 떨어졌다. 테이블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살점을 침착하게 집어 원위치 한 우태원이 집게를 내려놓았다. 이어 소주병을 가져와 뚜껑을 열고, 빈 소주잔을 찾아 위에다 병목을 기울였다. 조르르, 소리와 함께 찬 잔이 차유신의 앞으로 왔다. 차유신은 잔에 손가락을 두르며 제 잔을 채우는 우태원을 봤다. 고심 섞인 질문이 찾아들었다.

“그 한 번은 언제였는데요.”

“어머니가 어느 날 물어보더라고. 소원이 있냐고. 뭐가 됐든 자기가 다 들어주겠다면서.”

“그래서 역현호에 가자 했어요?”

“어. 항상 생각한 소원은 다른 것이었지만, 당시엔 그걸 얘기해야 할 것 같았어. 어머니와 역현호에 가는 건 태어나 최초로 겪는 일이잖아. 하나의 역사잖아. 그걸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정확한 이유는 가물가물하지만….”

차유신이 입가에 잔을 가져갔다. 우태원이 마주 잔을 들었다. 차유신의 고개가 젖혀졌다. 잔 안의 액체가 목구멍을 달구며 미끄러졌다. 아랫배까지 쌉싸름해졌다. 차유신은 빈 잔을 내려놓았다.

“조만간 어머니가 사라질 것 같다고 느꼈어. 어린 나이에 뭔가를 예감한 모양이야.”

날연한 음성이 이어졌다.

“어머니가 역현호에 빠질 걸 알았던 것처럼.”

문득 테이블 중앙에서 딱, 숯불이 튀었다. 다시 집게를 든 우태원이 잘 익은 장어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노릇노릇한 살점이 차유신의 앞 접시에 놓였다.

“원래 원한 건 뭐였어요?”

우태원이 다른 걸 물었다. 차유신은 손가락에 끼운 젓가락을 공연히 휘적거렸다. 머릿속 깊숙한 구석에 잠식된 기억을 끄집어 혀 위에 걸었다. 조금은 멋쩍은 목소리가 나왔다.

“개 키우는 거.”

“그 나이대 애들은 보통 개를 좋아하죠.”

“원래는 좋아하지 않았어. 그러다 동네에서 나만 따라다니는 들개 하나를 잃고 속상해한 게 응어리로 남은 모양이야. 어느 순간 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맹렬하게 들더라고. 까맣고 큰 개.”

“난감하네요. 지금이나마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도… 제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선배 집에 개를 두면 갈 때마다 저는 심호흡이라도 해야 할 겁니다.”

“이제는 괜찮아. 어릴 때 개를 제대로 못 키워 본 게 한이긴 하지만, 더 이상 그때처럼 개에 대한 열망이 간절하지 않고.”

벌어진 젓가락이 장어 조각을 사이에 끼웠다. 들어 올린 차유신이 우태원의 면전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입술을 스치며 젓가락이 멈췄다.

“이미 하나 키우고 있고.”

차유신이 턱짓을 했다. 우태원은 잘 훈련받은 야수처럼 입을 열었다. 검은 입 안으로 살점이 쑥 들어갔다. 턱까지 닫아 준 차유신이 몸을 바로 했다.

“한 집에 개가 둘이면 시끄럽지.”

음식물을 우물거린 우태원이 조각난 장어를 차례차례 뒤집었다. 짙어지는 연무 속에서 의미심장하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였다. 우태원이 혼잣말을 했다.

“갑자기 생각이 바뀔 것 같네요.”

“무슨 생각.”

“개를 들이는 문제 말이에요. 두 마리로 늘어난 축생에 시달릴 선배를 상상하니 좀 귀여워서요.”

“알레르기로 실컷 앓고 싶으면 어디 해 봐. 난 책임 안 져.”

차유신이 약을 올렸다. 우태원이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한 얘기였다. 키득거리는 차유신의 곁에서 미닫이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차유신와 우태원의 얼굴이 동시에 돌아갔다. 확인하자마자 절로 동공이 커졌다. 불쑥 나타난 도희범이 뻔뻔하게 양팔을 펼쳤다. 과장된 반색이 룸을 울렸다.

“아이고, 차 의원님! 우 의원님! 이런 곳에서 다 뵙습니다.”

도희범이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찌푸린 차유신이 우태원을 바라봤다. 야음에 물든 그의 눈언저리가 보였다.

“퇴근하다 바람이나 쐴까 해 역현호에 들렀는데, 이 근방 사람들이 엄청나게 술렁이더군요. 귀한 지역구 의원님이 두 분이나 오셨다고.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어 인사나 할 겸 들렀습니다. 결례가 됐다면 송구합니다.”

마지막 말이 무색할 정도로 태평한 손길이 빈 의자를 끌어당겼다. 차유신과 우태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테이블 모서리에 의자를 위치시키고, 털썩 착석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본 그가 느물거렸다.

“오 분 정도는 괜찮지요?”

차유신은 잠자코 팔을 뻗었다. 우태원 근처의 소주병을 끌어와 자신의 잔을 채웠다. 이어 냅다 빈속에 술을 들이부었다. 맞은편의 우태원이 미간을 좁혔다. 탁,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은 차유신이 입을 훔쳤다.

“잘됐네. 마침 나도 할 얘기가 있었는데.”

차유신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정해신이 왜 그깟 짓거리를 하도록 사주했는지 이해 가게 설명해 봐.”

도희범이 호탕하게 웃었다. 예상했다는 투였다. 부쩍 차유신 쪽으로 상체를 기운 그가 숙덕거렸다.

“이제 한배를 탄 사이잖습니까. 정해신 대표, 차 의원님. 그리고 저. 서로가 그런 관계라는 걸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는 알려야죠. 우리가 비밀 친구도 아니고 그런 걸 굳이 숨겨야 하겠습니까.”

“난 좀 숨기고 싶은데.”

차유신이 비식거렸다. 그르렁거리는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이런 관계라는 게 아주 좆같거든.”

도희범이 실실거렸다.

“서운하게 왜 이러실까요? 의원님께서 이렇게 나오면 제 마음이 안 좋습니다.”

어깨를 으쓱거린 도희범이 우태원 쪽으로 몸을 틀었다. 우태원이 무미건조한 숨을 흘렸다. 테이블을 탁, 친 도희범이 수선을 떨었다.

“그나저나 태원이는 아주 오랜만이다. 나 기억 못 하지? 형은 너 어릴 때가 아주 생생한데.”

연극하는 것처럼 요란한 몸짓이었다. 우태원은 동요하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했다.

“우종진 아저씨가 우리 사이에서 아주 인기인이었어. 잘생겼지, 성격 좋지, 잘 놀아 주지. 덕분에 나하고 석재경이가 틈만 나면 네 아버지에게 달라붙었어. 우리가 너하고도 많이 놀아 줬는데.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겠다. 너는 고작 두 살, 세 살 무렵이었으니. 너 어릴 때 무진장 귀여웠었어. 그런데 이제 와 보니 그때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네 아버지와 판박이처럼 닮은 얼굴만 남았네. 유전자가 무섭긴 해. 안 그래?”

도희범이 박수를 쳤다. 우태원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무심코 내려간 차유신의 눈이 흠칫했다. 테이블을 타고 기척도 없이 움직이는 우태원의 손이 보였다. 차유신 쪽 소주병이 슬그머니 쥐어 잡혔다. 차유신의 속눈썹이 곤두섰다. 상황을 모르는 도희범은 계속 지껄였다. 열중한 것처럼 인상까지 썼다.

“그런 옛정이 있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사람을 왜 붙였어? 형이 무슨 짓을 했다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리고 그래. 어?”

도희범이 하소연했다. 우태원은 말없이 어금니를 물었다. 무거운 입술이 서서히 떨어졌다. 뇌성 같은 목소리가 툭, 내뱉어졌다.

“말은 바로 하지 그래.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린 건 그쪽이야. 내가 그쪽을 건드린 것보다, 그쪽이 날 건드린 게 먼저야.”

차유신의 입이 달싹였다. 우태원의 이마에 잡힌 주름이 선명했다. 차유신은 어질한 머릿속을 억지로 가눴다. 방금 들은 말의 의미를 서둘러 헤아렸다.

도희범이 우태원을 건드렸다 했다. 차유신에 거슬린 걸 한 적은 있는데, 우태원에게도 뭔가를 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원하는 게 뭔지 말해. 시간 없어.”

우태원이 따졌다. 도희범이 사뭇 입매에 미소를 걸었다. 비껴 난 시선이 차유신을 스쳤다. 이상할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눈빛이었다. 눈 밑을 떤 차유신이 마른침을 삼켰다. 도희범이 단조로이 뇌까렸다.

“불행.”

그의 어조가 은연해졌다.

“가끔 주제넘게 행복한 사람이 있어. 그게 참 마음에 안 들더라고. 그래서 내가 칼자루를 쥔 거야. 이걸로 충분한 설명이 됐길 바란다, 태원아.”

느긋하게 말을 맺은 도희범이 일어섰다. 소주병을 쥔 우태원의 손아귀에 핏대가 섰다. 기겁한 차유신이 테이블 밑 구둣발을 밀어붙였다. 우태원의 구두를 밟고, 저지하듯 지분거렸다. 말라붙은 뒷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사고를 칠 땐 치더라도 여기서는 곤란했다. 바깥에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 차 의원님.”

도희범이 부쩍 정중하게 사죄했다. 우태원을 말리는 데 정신이 팔려 그저 눈살만 찡그리는 차유신을 향해 그가 상체를 낮췄다. 돌연 손목이 잡혔다. 얼떨결에 내준 차유신의 낯에서 불쾌감이 현현해졌다. 소리도 없이 손등에 입을 맞춘 도희범이 얼굴을 들고 있었다. 즐거운 양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애인 분과 좋은 시간 마저 보내시기 바랍니다.”

차유신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도희범이 상냥하게 못을 박았다.

“선물은 제대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사숙고한 제 정성이니, 부디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쨍그랑. 불현듯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차유신의 눈길이 넘어갔다. 작살난 병 조각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있었다. 뚝 떨어진 병목을 쥔 우태원의 손에서 핏물이 줄줄 떨어졌다. 그의 눈초리가 살기를 머금고 빛났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룸을 메웠다.

“나가. 살고 싶으면.”

도희범의 어깨가 뜰썩였다. 미세하게 긴장한 등줄기가 보였다. 큼, 소리 낸 도희범이 뒷걸음질 쳤다. 미닫이문을 연 그가 슬쩍 몸을 뺐다. 꼬리를 내렸지만, 일말의 여유는 잊지 않았다.

“또 봅시다, 의원님들.”

탁, 소리를 남기며 문이 닫혔다. 진 빠진 차유신의 발이 우태원의 구두에서 떨어졌다.

“손 줘. 좀 보자.”

“저 잘했나요?”

지혈부터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차유신에 대고 우태원이 난데없는 질문을 했다. 잠시 멈춘 끝에 의미를 파악한 차유신이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늘 갖고 다니는 손수건이 나왔다.

“반반.”

우태원의 앞으로 가 생채기 그득한 손을 살폈다. 혹여나 조각이 박혔는지 확인하고,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낸 후에야 손수건을 덮었다. 비릿하게 젖어 가는 천이 커다란 손을 꽁꽁 동여맸다. 차유신이 정정했다.

“실은 나도 잘 몰라.”

“뭘 몰라요.”

“원칙적으로 너는 사고를 쳐선 안 되지만.”

차유신이 숨을 골랐다. 착잡한 눈길이 굳게 닫힌 입구에 걸렸다. 도희범이 남기고 간 언어를 곱씹다, 다시 우태원의 손을 내려다봤다. 유독 피를 뿜는 부위를 조여 가며 손수건을 당긴 차유신이 중얼거렸다.

“방금 전은 나도 헷갈렸으니까.”

“그냥 죽여 버릴 걸 그랬나 봐요.”

“그건 진짜로 안 돼.”

손등 위에서 군데군데 붉은 천이 매듭을 지었다. 차유신은 불퉁하게 덧붙였다.

“너 감옥 가면 나는 밤마다 외로워서 안 돼.”

머리맡에서 얼핏 웃는 소리가 났다. 완성한 매듭을 두어 번 당겨 보고 난 차유신이 고개를 들었다. 마주 본 우태원이 나른한 숨을 흘렸다.

“선배.”

“어.”

“저에게 묻고 싶은 것 많죠.”

“어.”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에도 답할 수 없어요.”

우태원의 눈에서 검은자위가 공고해졌다. 사포에 쓸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거든요. 아직은.”

차유신의 목이 울렁였다. 피비린내 나는 손등을 덮은 손이 달막였다. 피가 묻어 축축한 제 손가락을 곰지락거리며, 차유신은 눈을 내리깔았다. 호수처럼 잔물진 대답이 나왔다.

“그래. 다 해결하고 얘기하자.”

젖은 손을 주물럭거린 손안이 풀어졌다. 느릿느릿 손을 거두는 차유신의 귓가가 문득 들끓었다. 쾅! 멀찍이서 뭔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문 너머의 손님들이 소란을 떨었다. 사고 났어? 누구 차야? 화염처럼 솟아오른 소요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누구 차야.”

말끄러미 우태원을 본 차유신이 바깥의 손님과 같은 걸 물었다. 미동도 없이 시선을 맞물린 우태원이 되물었다.

“알면서 물어요?”

“어느 정도로 박았어.”

“전치 4주 이상은 안 나와요.”

“그래.”

차유신이 노곤한 숨을 뿜었다. 조금은 체념한 혼잣말이 나왔다.

“살았으면 됐지.”

아직은 밤마다 외로울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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