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40/48)

4.

“3,000원입니다…. 어?”

바코드를 찍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휘둥그레졌다. 차유신은 자신의 입에 집게손가락을 붙였다. 끔뻑거린 아르바이트생이 편의점 내부를 둘러봤다. 냉장고 앞에서 음료수를 고르는 커플, 스낵 진열대 앞에서 고심하는 남학생 등을 일별하고는, 알았다는 양 끄덕였다. 상체를 낮춘 그녀가 속삭였다.

“근데 이 커피 하나 더 가져오셔야 해요.”

“왜?”

“2+1이에요. 두 개 샀으니 하나 증정해 드리는 거예요.”

“음료 회사 부도났대?”

“원래 편의점에서 하는 행사예요. 부도는 안 났어요. 아, 제가 가져올까요?”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 바를 올렸다. 뒤에 있던 우태원이 발을 뺐다. 제가 다녀오죠. 걸어간 그가 캔 커피가 진열된 곳 앞에 섰다. 근처에서 냉장고 문을 닫은 커플이 모자를 눌러쓴 우태원을 힐끔거렸다. 저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들렸다.

“봤어?”

“봤어.”

“사진 찍어 달라 할까? 너 팬이잖아.”

“실례야.”

“근데 진짜 다른 세상 사람 같다. 깜짝 놀랐어.”

어떤 의미에서 다른 세상 사람 같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한동안 동의의 눈짓을 주고받았다. 듣는 둥 마는 둥 캔 커피를 챙긴 우태원이 카운터 앞으로 왔다. 음료를 받아 든 아르바이트생이 바코드를 찍었다. 바로 비닐봉지 안에 넣으려는 걸 차유신이 저지했다.

“학생 거야. 별건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아르바이트생이 해맑게 캔 커피를 밀어 뒀다. 곧 차유신을 보며 방싯거렸다.

“최근 자주 오시네요.”

“귀찮아?”

“설마요. 전 좋아요.”

“편의점 알바는 손님 많으면 고생이라며.”

“의원님은 예외죠. 눈이 호강하잖아요.”

“내 얼굴도 복지였어?”

웃으라고 한 얘기에 아르바이트생이 진지해졌다.

“당연하죠. 모르셨어요?”

편의점을 나와 골목을 걸었다. 봉투를 휘적거린 차유신이 먼 치의 표지판을 봤다. 미도동 457-8. 차유신과 우태원이 사는 사도동에서 차로 20분은 가야 나오는 곳. 건물 곳곳이 캄캄했다. 사람의 온기가 거의 비치지 않았다. 건물만 남기고 사람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동네. 사실상 유령 도시였다.

자욱한 집을 뒤로하고 우태원과 바깥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둘 다 편한 차림을 했다. 우태원은 티셔츠에 캡 모자 차림이었고, 차유신은 후드가 달린 면 재질의 집업을 입었다. 후드를 빼서 올리니 따로 모자를 쓸 필요가 없었다. 우태원은 대학생 같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큰길에 당도하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미도동의 익숙한 주소지를 부른 후 이곳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편의점에 들어갔고, 가볍게 마실 커피 음료를 샀다. 다시 나와서는 산책을 했다. 우태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차유신이 이끄는 것에 따를 뿐이었다.

어두침침한 골목 군데군데서 끄무레한 가로등 빛이 눈처럼 흩어졌다. 초가을인데 겨울 같았다. 제법 빠르게 걸은 탓에 이마가 축축해질 무렵 우태원이 입을 열었다. 질문 비슷한 말이 찾아들었다.

“아르바이트생과 한두 번 본 사이가 아닌 것 같던데요.”

“말의 의도가 뭐야?”

발걸음이 멎었다. 집업 양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우태원을 응시했다. 마주 본 우태원이 쓰고 있던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사위가 묘지처럼 호젓해졌다.

“미도동은 역현구 갑 소속입니다. 선배와 상관없는 동네라는 얘기입니다. S시티 조성 프로젝트가 확정되고 나서는 거주민 대부분이 빠져나가, 특별한 용무가 없는 한 올 일도 없는 곳이 됐고요. 사실상 황무지니까요.”

“그런데.”

“저 아르바이트생과 친하다는 건, 아무것도 없는 이 동네에 선배가 여러 번 왔었다는 얘기가 되죠.”

“그러면 안 되나.”

“안 될 건 없지만, 의아한 건 사실이죠.”

우태원이 눈을 깔았다. 바라보던 차유신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담담한 응수가 나왔다.

“의아할 것 없게 해 줄게. 산책부터 마저 하자.”

차유신이 발꿈치를 들었다. 막 몸을 틀려는 순간, 우태원이 말했다.

“또 있어요.”

차유신의 고개가 돌아갔다.

“또 뭐.”

“아까 너무 살갑게 굴었어요.”

“편의점 얘기야? 대체 어떤 부분이.”

“그냥… 좀 그랬어요.”

우태원의 눈길이 넘어갔다. 먼지처럼 내려앉는 가로등 빛을 지켜보다, 말을 이었다.

“비단 아까의 일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선배는 버릇처럼 사람을 착각에 빠뜨려요.”

“덕분에 너 꼬셨잖아.”

“저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할까. 다 때려치우고 너희 집에 처박혀 내조나 해?”

“그래 주면 좋죠.”

우태원이 허리를 짚었다. 차유신이 윗눈썹을 비뚤었다.

“또 광견병이 도졌구나.”

곤로한 몸이 등을 보였다. 들으라는 양 독언하며 발을 뻗었다.

“접종을 해야겠어.”

서벅거리는 발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따라오는 기척은 비치지 않았다. 차유신은 보이지 않는 목줄을 다잡듯 빈손을 옴지락거렸다. 점점 줄이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맞은편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릴 때까지 두 사람의 틈은 내리 벌어졌다.

“하루 이틀짜리 씨발 새끼가 아니야. 나한테도 정인아트 수금만 해 오면 20% 떼 준다 얘기했다가 나중에 5%로 바꾼 적 있어. 아주 상습범이야.”

“재필이 형님은 대체 왜 그 새끼를 보고만 있는 거야? 좆같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왜긴 왜겠어. 도희범이 그 새끼 존나 아끼니까지. 조직 위에 일장토건 있는 거 몰라? 별 병신 같은 상황이지. 씨발.”

세 명으로 구성된 남자 무리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한 남자가 퉤, 침을 뱉었다. 담배 연기를 뿜은 다른 남자가 실실거렸다.

“됐고, 땀이나 빼러 가자. 운도동 어때.”

“콜.”

“오늘 영업하나 모르겠다. 전화 한번 해 봐.”

남자무리가 대여섯 걸음 수준으로 가까워졌다. 술 냄새가 훅 풍겼다. 차유신은 잠자코 찡그렸다. 남자 하나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취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바닥에 떨어뜨렸다. 핑그르르 구른 핸드폰이 차유신의 발치에 걸렸다. 아이, 씨발. 짜증 낸 남자가 삿대질을 했다.

“거기, 폰 좀 주워 줘요.”

덩치 큰 남자가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차유신은 그저 눈길을 끌어 올렸다. 깜깜한 건물들 틈바구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다소 높은 건물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변변치 않은 외관에, 눈에 띄는 간판도 없다. 흔하디흔한 미도동의 버려진 빌딩.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는 걸 차유신은 안다. 100평짜리 대지를 지닌 저 건물은, 유일하게 S시티에 흡수되지 않았다. 건물주인 도희범의 의지다.

다시 맞은편을 봤다. 간격을 좁혀 오는 남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없다시피 한 동네다 보니 가로등 불을 절반밖에 밝히지 않았다. 워낙 어두워 덩치 정도나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구석이 있다. 불량스러운 걸음걸이, 억지로 불린 게 현현한 몸, 방어적으로 내비치는 살기. 놈은 건달이다. 이 컴컴한 미도동에서 유일하게 불이 들어온 저 건물을 지키는, 매천회 조직원이다.

“왜 답이 없어. 귀먹었어?”

한 치 앞에 다가온 남자가 성을 냈다. 툴툴거린 그가 허리를 굽혀 널브러진 핸드폰을 집었다. 차유신은 기지개를 켜듯 목을 젖혔다. 남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이 다른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빌어먹을 우태원 발소리는 왜 아직도 안 들리는지 모르겠다. 신경이 쓰여 돌아 버릴 지경이다.

“좆같네.”

머리를 턴 차유신이 읊조렸다. 맞은편의 남자가 움칠했다. 험악해지는 눈살이 느껴졌다. 차유신은 개의치 않고 마주 봤다. 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우태원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머리가 벅찼다.

“나한테 했냐?”

남자가 씩씩거렸다. 차유신은 무시하듯 제 어깻죽지를 주물렀다.

“미친 새끼네, 이거.”

희번덕거린 남자가 냅다 팔을 내질렀다. 덜컥 멱살이 잡혔다. 순식간에 조여 오는 목을 느끼며 차유신은 어금니를 씹었다.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데, 목이 갑갑해 더 더러워졌다.

“고개 제대로 쳐들어. 한 방에 끝내 줄 테니.”

남자가 주먹을 들었다. 차유신의 눈동자가 올라갔다. 불끈거리는 남자의 살덩이가 물 방망이처럼 볼품없었다. 차유신이 권태롭게 물었다.

“내 얼굴 보여?”

“보이면 어쩌게.”

“보이냐고.”

“패면 보이겠지.”

지금은 안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래.”

차유신이 고갯짓을 했다. 날숨을 닮은 한마디가 따라붙었다.

“다행이네.”

말이 끝나자마자 손이 올라갔다. 남자의 주먹을 채고, 다리 하나를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 정강이 자리를 유추해 가며 부러뜨릴 기세로 발을 내리꽂았다. 딱딱한 구둣발이 남자의 다리를 찍었다. 우득, 뼈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헉! 단발마를 터뜨린 남자가 휘청거리다 무너졌다.

“뭐야?”

뒤편의 남자들이 뛰어왔다. 널브러진 남자를 걷어찬 차유신이 그들을 일별했다.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왜 사고 치고 다녀요.”

문득 어깨가 잡혔다. 차유신이 볼멘소리를 했다.

“팔 초나 걸렸어.”

“미안해요.”

“네가 안 오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지.”

“관심받고 싶었어요?”

“어.”

우태원이 그만 웃었다.

“귀여워서 못 당하겠네요.”

두 남자가 쓰러진 남자를 부축했다. 헐떡인 남자가 차유신을 가리켰다. 저 새끼 죽여 버려, 아주 또라이 새끼야. 두 남자가 차유신을 쏘아봤다. 우두커니 선 차유신의 귓가에 훈기가 스쳤다.

“그런데 전 사고 치면 안 되는데. 선배가 싫어해서.”

달려오는 두 개의 인영이 재미없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망막에서 번졌다. 차유신이 우태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쳐. 우리 얼굴 안 보인대.”

우태원이 실소했다.

“왜 그렇게 사람이 제멋대로예요? 그러다 벌 받아요.”

*

딱, 소리와 함께 음료 뚜껑이 돌아갔다. 차유신의 손이 옆으로 넘어갔다. 받아 든 우태원이 손짓했다.

“선배 것 줘요.”

“왜.”

“제가 따 줄게요.”

“별걸 다 해 주려 하네. 내가 그렇게 병약해 보여?”

“암 말기여도 선배는 그렇게 보일 일 없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우태원이 몸을 내밀었다. 차유신이 든 커피 병을 억지로 가져가 뚜껑을 돌렸다. 차유신이 포기했다는 양 정면을 봤다. 주변이 온통 폐허였다. 그들이 들어온 곳도 S시티 건립 프로젝트에 따라 입주민이 퇴거한 수많은 건물 중 하나였다. 뻥 뚫린 외벽 너머로 유일하게 빛나는 맞은편 건물이 보였다. 아까 본 그것이었다.

“병원 잘 갔겠지? 그 새끼들.”

차유신이 혼잣말을 했다. 병을 쥐여 준 우태원이 답했다.

“아마도요.”

“한 명 턱 돌아갔어.”

“선배가 잘못 봤겠죠.”

우태원이 벽에다 등을 붙였다. 이어 차유신이 따 준 커피를 입가에 가져갔다. 차유신이 높낮이 없이 수긍했다.

“그래.”

“화 안 내네요.”

“무슨 화.”

“사람을 건드렸잖아요.”

“화낼 게 뭐 있어. 내가 허락한 부분인데.”

“의외였어요.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요.”

“싫어하긴 해. 너 개처럼 날뛰는 거.”

차유신이 병의 입구를 물었다. 이내 천천히 내용물을 삼켰다. 쌉싸름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꿀꺽한 차유신이 마저 말했다.

“그래도 가끔은 풀어야지.”

“변했네요. 저한테 물들었나요?”

“연인 사이에 당연한 일이야.”

멈칫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차유신의 눈이 돌아갔다. 입을 다신 우태원이 커피 병을 내려 두고 있었다. 발가벗겨진 시멘트 바닥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차유신도 커피를 바닥에 뒀다. 모래알 부서지는,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저기 불 들어온 건물 보이지.”

“네.”

“그 옆 건물 1층에 빵집이 있었어.”

“언제 적 일이에요?”

“한… 내가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일 때? 어머니가 가끔 거기서 빵을 사 줬어. 카스텔라. 태어나서 그렇게 부드러운 빵을 먹은 게 처음이라, 지금도 기억이 나.”

“그 추억 때문에 저 몰래 미도동에 그렇게 왔나요?”

“아니, 그건 다른 이유.”

차유신이 앞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까 땀을 뺀 통에 몇몇 가닥이 뭉쳐 있었다. 찬찬히 머리를 정돈했다. 삐죽삐죽 엉켜 있던 머리카락이 자리를 잡았다.

“저 건물과 얽힌 복잡한 문제가 하나 있어. 최근 널 신경 쓰이게 한 이유야.”

“그리고요.”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더 해 주면 안 될까요.”

“내가 말하면, 너도 말할 거야?”

다부진 눈이 우태원을 담았다. 다물린 우태원의 입이 말라 갔다. 눈매를 푼 차유신이 팔을 뻗었다. 울렁이는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쓸었다. 치솟은 뼈대가 낮아져 갔다.

“태원아.”

잔잔하게 불렀다. 우태원이 기꺼이 답했다.

“네.”

“기다려. 다 해결하고 나면, 전부 말해 줄게.”

차유신의 속눈썹이 가지런해졌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다릴 거야.”

흐릿하던 우태원의 눈에 이채가 스몄다. 짙은 눈초리에서 응달이 걷혀 갔다. 양풍처럼 보드라운 음성이 귀를 옭맸다.

“알았어요.”

“그래.”

“저도 빨리 해결하고 얘기해 줄게요.”

“그래.”

“선배.”

우태원을 잡고 있던 차유신의 손이 그러쥐어졌다. 차유신이 갸우뚱했다.

“왜.”

“목 줘요.”

“빨고 싶어?”

“네.”

차유신은 스스럼없이 목을 내줬다. 불안할 때마다 뜬금없는 스킨십을 요구하는 우태원의 습성을 알고 있었다. 보통은 물거나 빨았다. 웃자란 애완동물 같았다.

“자.”

맨목이 우태원의 입술에 닿았다. 우태원의 고개가 기울었다. 후덥지근한 숨결이 살갗을 덮었다. 차유신의 눈살이 옴씰거렸다. 좀 간지러웠다.

“아….”

“물어도 돼요?”

“많이는 안 돼.”

“일단은 이 정도요.”

드러난 이가 가죽에 박혔다. 뻐근한 쾌감이 가슴을 울렸다. 차유신이 할딱였다.

“그 정도… 후으.”

“그리고 이 정도요.”

“이제 됐… 흐읏!”

어깨가 들썩였다. 딱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문 우태원이 살을 질근거렸다. 욱신거리는 통각이 한편으로 야릇했다. 허우적거린 손이 우태원의 팔뚝을 거머쥐었다. 가쁘게 뛰는 맥박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차유신이 바닥에 디딘 무릎을 비비적거렸다.

“하아… 그만. 그만해….”

“머리 쓰다듬어 줘요.”

우태원이 헉헉거렸다. 휘청거린 손이 올라갔다. 익숙한 뒤통수를 잡고, 사분사분 문질렀다.

“착하지… 그만.”

옥죄어 있던 목이 풀려 갔다. 차유신의 어깨가 점차 느슨해졌다. 우태원의 얼굴이 떨어졌다. 은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피 날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리 오래가지 않아요.”

“그래서 아쉬워? 얼마나 가든 나한테 남자 있다는 거 알리기엔 더할 나위 없겠네. 물린 범위로 보건대 여자 것이 아니니.”

차유신이 비식거렸다. 우태원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남은 듯한 그를 눈으로 훑으며 시큰거리는 부위를 주물렀다. 질척한 체액에서 우태원의 냄새가 났다.

“아쉬워요. 그러니 빨리 일 끝내고 또 할게요.”

문득 우태원이 말했다. 차유신의 속눈썹이 치올랐다. 목을 죈 손에서 힘이 빠졌다. 곧 흘러내렸다. 우태원의 냄새가 옅어져 갔다. 울렁인 목에서 다정한 대꾸가 나왔다.

“그래.”

조금은 불안해도 괜찮다. 종종 연인에게 찾아오는 인고의 시간일 뿐이다. 차유신은 오랜만에 서로에게 비밀을 둔 지금이 아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태원은 귀소하듯 차유신을 탐하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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