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外. 9월
[신진화당 집권 1년 차, 9월.]
“둘 다 애인이 없지?”
끼긱, 하며 나이프가 접시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국무총리 한윤태와 차유신의 눈길이 동시에 돌아갔다. 막 나이프를 내려놓은 우태원이 정중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곧 손을 옮겨 물 잔을 집어 들려 했지만, 안이 비어있었다. 유심히 보던 차유신이 자신의 물 잔을 우태원 쪽으로 밀어줬다. 우태원이 꾸벅했다.
“감사합니다.”
차유신이 작게 따졌다.
“정신 차려. 무슨 일 있어?”
우태원이 낮게 답했다.
“애인이 있다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거든요.”
이내 말없이 제 목을 주물렀다. 차유신은 한탄하듯 제 눈가를 짚었다.
“어이구. 사이도 좋네.”
영문도 모르는 한윤태가 껄껄거렸다. 빠르게 자세를 고친 차유신이 그를 마주봤다. 곧 침착하게 말했다.
“없습니다. 태원이도 없는 걸로 알고요.”
“둘 다 한창 나이지 않아?”
“제가 올해로 서른셋이고, 태원이는 서른이죠.”
“차 의원이 더 형이네. 그러니 차 의원에게 제안을 해야지.”
한윤태가 옆 좌석에 둔 봉투를 집어 올렸다.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고는, 선심 쓰듯 차유신에게 건넸다. 대충 상황을 파악한 차유신은 영혼 없는 손으로 받았다. 사진에 담긴 여성을 일별하고는, 기계적으로 예의를 차렸다.
“미인이네요.”
“올해로 스물여덟. 진선그룹 3세. 진석동 회장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집안 막내야. 덕분에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자랐다더군. 바이올린이며 첼로며, 악기를 다섯 개씩 다루고. 발레나 미술에도 재능이 있어. 다음 달에 국내 귀국하는데, 진선패션에 과장급 자리 줘서 그쪽에서부터 올라갈 수 있도록 하려는 모양이야. 진 회장하고 지난주에 식사했는데, 넌지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정치권 사위를 하나쯤 얻었으면 하는데, 차 의원이나 우 위원장 정도면 참 좋겠다. 기회 있을 때 한번 물어봐 달라.”
“저에게는 지나치게 과분합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유신이 에둘러 거부 의사를 표했다. 허탈한 웃음을 짓고 난 한윤태가 이번에는 우태원을 봤다. 은근한 음성이 건네졌다.
“그럼 우 위원장은.”
“저도 당연히….”
깊이 생각지도 않고 꺼내는 말이 들렸다. 홱 고개를 튼 차유신이 테이블 밑으로 팔을 뻗었다. 저지당한 우태원이 차유신을 힐끔했다. 차유신의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곤란하다. 자신이야 여의도 생활을 한 지가 어느 정도 됐고, 한윤태와는 적잖은 친분도 있어 거부해도 상관이 없다. 다만 우태원은 얘기가 다르다. 바로 지난달 총리실 산하 민생정책위원회의 위원장이 된 입장이고, 아직은 총리인 한윤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이렇게 단칼에 끊어버리면 한윤태 쪽이 불쾌해할 수 있다.
물론 우태원 당사자가 그런 걸 신경 쓸 리 없다. 그러므로 차유신 선에서 해결을 봐야 했다.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연락처 주시면 만나보겠습니다.”
사뭇 부드러운 한 마디가 나왔다. 한윤태가 씩 웃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달라졌어?”
“막상 우 위원장에게 기회가 갈 걸 생각하니, 질투가 나서요.”
차유신이 능숙하게 받아쳤다. 한윤태가 대소했다.
“그렇지. 확실히 아까운 처자지. 잘 생각했어. 연락처는 내가 잠시 후에 보내줄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배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럼 계속 식사하자고.”
한윤태가 포크를 들었다. 차유신도 식사에 집중했다. 옆얼굴을 통해 다소 심각해진 우태원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
“진짜 만날 거예요?”
식사를 마치고, 차유신의 차 뒷좌석에 함께 착석하자마자 우태원은 그것부터 물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김운열이 룸미러로 뒤를 살폈다. 한숨 쉰 차유신이 그를 향해 손짓했다.
“운열아. 십 분만 자리 비우자.”
“네. 형님.”
김운열이 신속하게 운전석 문을 열고 나섰다. 탁. 조용해진 차 안에서 차유신이 다리를 꼬았다. 우태원이 미간을 좁혔다.
“제가 물었잖아요. 선배.”
“별 의미 없는 것 알잖아. 어차피 너나 나 둘 중 하나는 한 선배 맞춰줘야 하는 입장이었어. 넌 전혀 그럴 의사가 없을 테니, 내가 한 거고.”
“그런 소모적인 제안을 굳이 받아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선배들하고 원활하게 관계 유지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지. 넌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인 듯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이해를 하기 싫은 겁니다. 저는.”
우태원의 교근이 딱딱해졌다.
“안 했으면 좋겠어요. 선배.”
“한 시간 동안 눈 마주치면서 밥 먹는 게 다야. 당연한 얘기지만 이후로 연락할 생각 없고.”
“전 그것도 싫어요.”
다가온 손이 차유신의 팔뚝을 감았다. 자못 힘이 들어간 손길에 차유신의 눈이 찡그려졌다. 우태원이 목소리를 깔았다.
“어쨌거나 상대방은 한 시간 동안 마음껏 선배를 볼 것 아니에요. 그거, 싫습니다.”
“진짜 왜 이래? 유치하게.”
“이게 왜 유치한 거죠?”
우태원이 탄식했다.
“이건 정당한 거예요. 선배와 나 사이에.”
지잉. 문득 시트에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확인한 차유신의 낯이 굳었다. 박신회의 내선 번호. 무조건 받아야 하는 전화다. 같은 걸 본 우태원이 먼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챘다. 그대로 자신의 등 뒤에다 숨긴 뒤, 얼굴을 기울였다.
“안 하겠다고 대답해요. 선배.”
“우태원. 핸드폰 내놔.”
“싫다면요.”
“너 진짜 이럴 거야?”
차유신이 버럭 했다. 핸드폰의 진동음은 연신 이어지고 있었다. 차유신의 목덜미에 진땀이 맺혔다. 생각해보니 상상 이상으로 급한 전화일 수 있었다. 오전에 김희석을 비롯한 신진화당 일부 의원이 정진원, 차유신 등 신진화당 주류 의원들을 언급하며 대통령 박신회가 ‘편향적 당내 정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親) 박신회 성향이 강한 정진원 라인이 청와대 특혜를 누리며 ‘황제 군림’을 한다는 자극적인 얘기까지 덧붙였다.
박신회 입장에서는 능력 좋고 자신과 합이 잘 맞는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당연한 일이다. 다만 비주류로 밀려난 일부 신진화당 의원들은 그게 탐탁지 않을 것이고, 갖은 떼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몫을 지켜야 할 터다. 실제와 전혀 다른 주장에는 기가 차지만, 그 의도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제가 이러면 왜 안 되죠?”
좀처럼 끝나지 않는 진동음 틈새로 우태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유신의 속눈썹이 곤두섰다. 이를 질끈 문 우태원이 덧붙였다.
“나하고 선배는 일반적인 정치권 선후배 관계가 아니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유신의 손이 나아갔다. 우태원의 목덜미를 세차게 잡아당기고는, 다가오는 얼굴을 향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두 사람의 입술이 밀착했다. 우태원의 동공이 자못 커졌다.
지잉, 지잉, 지잉. 쉼 없이 울려대는 진동음을 들으며 우태원의 입술을 빨았다. 추웁, 하며 흡입하는 소리에서 단내가 났다. 손 안에서 그의 단단한 목 근육이 울렁였다. 더운 숨을 뱉은 우태원이 턱을 불끈거렸다.
“하아….”
“말 듣자. 응?”
다정하게 타이르고 난 차유신이 우태원의 손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조금 힘이 풀어진 손아귀 안에서 핸드폰을 빼,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갔다. 가볍게 우태원의 아랫입술을 핥고 난 차유신이 고개를 거뒀다. 우태원이 제 얼굴을 덮으며 목을 젖혔다.
“네, 선배.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
안정적인 인사가 나왔다. 개의치 않은 박신회가 본론부터 꺼냈다.
-정진원 선배한테 연락 받았어?
“특별히는요.”
-곧 연락 갈 거야. 저녁에 새로 발탁한 청와대 대변인과 정 선배, 신인대, 너를 포함한 신진화당 일부 의원이 식사자리 진행하는 건 알지?
“네. 서주연 대변인 환영회 말씀이시죠.”
차유신이 빠릿빠릿하게 답했다. 박신회가 바로 수긍했다.
-그래. 본래 의도는 환영회였는데, 다른 목적이 더 커지게 생겼어. 오늘 오전에 정진원 라인을 공개 저격한 김희석 라인과 관련해 대응책을 세워야 할 테니까.
“그건 그렇겠지요. 그나저나 김희석 선배는 왜 그랬답니까.”
-곪은 게 터진 거지. 국토위 시절부터 그랬지만, 워낙 뒤로 이것저것 해 먹으면서 선심성 정책 내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양반이야. 굳이 밀어줄 이유가 없어 밀어주지 않았는데, 본인 딴에는 많이 서운했나 봐. 그러다 이번에 서주연이를 대변인으로 올리면서 폭발했고.
“김희석 선배가 본인과 친분 있는 신문사 편집국장 출신을 대변인으로 추천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뭐, 나쁜 후보는 아니지만 임팩트가 부족하더라고. 여러 측면에서 서주연이가 훨씬 더 나아. 무엇보다 앵커 출신이라 비디오, 오디오가 둘 다 되고. 대변인은 이미지가 중요하잖아. 많은 걸 고려해서 선택한 건데, 김희석은 자신이 또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특히 너를 굉장히 질투하더라고. 어린놈이 벌써부터 VIP 등에 이고 기고만장한다고.
“억울하네요. 겸손한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저인데.”
차유신이 손을 뻗었다. 잘 훈련된 개처럼 기다리는 우태원의 볼에 엄지손가락을 대고는, 살살 문질렀다. 달래는 입 모양이 건네졌다. 10초. 우태원은 차분히 주억거렸다.
-아무튼 조심해. 마음만 먹으면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감행할 놈이야. 8년 전에 자기네 당 대표였던 최선영이 끌어내리겠다고 당시 중학생이던 최선영 딸내미 학교폭력 사실까지 가져와 아득바득 이슈화시킨 전적이 있어.
“네. 기억납니다.”
-당분간 빌미 잡힐 거리 만들지 말고, 얌전히 주어진 일만 해. 김희석 정리는 정진원 선배가 알아서 할 예정이니 괜히 나서지 말고. 사공이 많아지면 될 일도 안 돼.
“알겠습니다.”
-이만 끊지. 일해.
“네. 들어가십시오.”
통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대충 시트에 던진 차유신이 눈동자를 끌어올렸다. 여전히 차유신에게 얼굴을 잡힌 우태원이 빤히 시선을 건네 오고 있었다.
“아직 화 안 풀렸지?”
“네.”
“그래서 계속 안 풀 거야?”
“풀어야죠.”
우태원이 가까스로 숨을 삭였다. 차유신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봐준다는 식으로 얘기하네.”
“봐주는 것 맞아요. 아까 선배가 키스 안 했으면, 계속 유치하게 굴었을 겁니다.”
“의례상 선보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나오는 거야? 너답지 않게.”
“저다운 게 뭔지 모르겠네요. 선배가 연루된 일에 있어, 제 태도는 늘 유치할 뿐이었는데.”
내용에 비해 하염없이 정연한 말투였다. 차유신이 갸웃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유치할 셈이야?”
“당연하죠.”
차유신을 머금은 우태원의 망막이 뚜렷해졌다. 고저 없는 한 마디가 이어졌다.
“연인이잖아요. 우리.”
툭. 돌연 밀려난 차유신의 손에 핸드폰이 떨어졌다. 태연히 등을 굽은 우태원이 굴러다니는 핸드폰을 주워 액정을 살폈다. 깨지지는 않았네요. 뇌까리는 말이 좀처럼 귀에 각인되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질근거린 차유신이 살짝 눈을 비꼈다. 괜히 목 뒤가 뜨거웠다.
연인이라고.
오랜만에 들으니, 참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워지는 말이다.
*
신임 대변인 서주연 환영회는 안국동에 있는 한정식집의 한 룸에서 진행됐다. 서주연은 새파란 원피스를 입고 왔는데,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무채색 정장 차림이다 보니 자연히 눈에 띄었다. 생긋거리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녀로부터 제법 떨어진 곳에 차유신이 앉았다. 역시 초대받은 우태원은 차유신의 옆자리에 앉았다.
바로 술자리가 시작됐다. 정진원 라인 주요 인물이 간만에 다 같이 모인 자리였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정진원도 오늘만큼은 적잖게 먹었다.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불콰해진 이들이 시시콜콜한 화제들을 꺼냈다. 차유신은 꾸준하게 술을 마시며 경청했다.
우태원도 옆에서 마시긴 했지만, 열심히 음주를 하지는 않았다.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자마자 실시간으로 분해되는 체질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자연히 아무리 마셔도 취할 턱이 없고, 우태원으로서는 이 자리가 심히 재미없을 것이다.
“재미없지?”
자리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을 넘어섰을 때, 차유신이 은근히 그런 걸 물었다. 우태원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해.”
막 잔을 비우고 난 차유신이 테이블에 대고 턱을 괴었다. 빤히 차유신을 내려다보던 우태원이 입을 다셨다. 자못 진중한 질문이 나왔다.
“진짜 솔직하게 얘기해도 됩니까.”
“어.”
“집에 가고 싶어요.”
우태원이 느릿느릿 고개를 숙였다. 차유신의 옆얼굴에 살짝 머리를 기대고는, 조곤조곤 속삭였다.
“집에 가서 선배랑 섹스하고 싶어요.”
차유신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우태원은 웃지도 않고 지켜봤다. 천천히 끄덕인 차유신이 고개를 돌렸다. 저 앞에서 건배사를 제안하는 문지찬이 보였다. 제가 ‘정진원’하면 ‘충성’ 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의원이 타박했다. 적당히 빨아라, 새끼야. 몇몇 이들이 웃으며 동조했다. 정진원은 느긋하게 앉아만 있었다.
테이블을 짓누른 차유신의 손가락이 빙글빙글 맴을 돌았다. 분위기가 제법 달아오른 영향인지 이날 모임의 또 다른 목적인 김희석 관련 대응책 얘기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그 논의가 끝나야 자리를 뜰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누구 하나가 총대를 메고 운을 떼야 하지만, 분위기가 워낙 흥겹다 보니 너도나도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저기.”
차유신의 입이 떨어졌다. 테이블을 둘러싼 삼십여 명이 일제히 차유신을 봤다. 차유신이 단조롭게 말을 이었다.
“분위기 망쳐서 죄송하지만, 정진원 선배께서 이쯤 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걸로 압니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해 얘기 드리는 것입니다.”
룸이 고요해졌다. 정진원의 얼굴이 돌아갔다. 차유신이 천연덕스레 눈을 맞췄다. 큼, 소리를 낸 정진원이 못 당하겠다는 투로 고개를 가눴다. 곧 자리의 이들을 죽 훑어보며 입을 뗐다.
“그래. 좋은 분위기 망쳐서 미안하지만, 오늘 오전 있었던 상황과 관련해 간단한 대책 회의 좀 하도록 하지.”
새삼 근엄한 어조였다. 착석한 이들이 부쩍 허리를 곧추세웠다.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린 정진원이 말을 꺼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희석이는 본래 내가 애지중지 키워온 놈이야. 달변인 데다가 머리회전이 빨라 일찍부터 신진화당 대변인 자리 줘서 대중에 노출시켰지. 그때 이미지가 워낙 좋았던 까닭에 사사로운 말실수나 구설수가 있었음에도 3선이 가능했던 거고. 문제는 김희석 욕심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하면서야. 수시로 당 지도부의 뜻을 거스르고, 지도부와 협의되지 않은 사항을 본인 어필용으로 내세우고. 무엇보다, 국토위 시절 몇몇 건설사 대상으로 지나치게 많은 로비자금을 챙겼어. 그게 바로 내가 김희석이를 내 라인에서 내친 이유야.”
정진원이 팔짱을 꼈다. 그의 미간이 시름하듯 꿈틀거렸다.
“나중에라도 정신 차리고 무릎이라도 꿇어오면 받아줄 생각이었는데, 아주 기다렸다는 것처럼 본인 라인 결성해서 날 잡아먹을 준비부터 하더군. 박신회 당선 후에는 아예 대놓고 당 안에 반(反)박신회 파벌을 만든 뒤 본인이 수장 자리를 꿰찼지. 아나운서 출신으로 언변 자체가 뛰어난 데다가 이미지 메이킹도 잘하는 편이라, 일부 대중은 김희석이 정의라고 믿어. 내가 키웠지만, 만만한 상대는 아니야.”
몇몇 의원이 동의한다는 듯 고갯짓을 했다. 손깍지를 낀 정진원이 투둑, 소리를 냈다.
“신진화당 안에 라인은 많아. 나는 상당수의 라인을 존중해. 나와 뜻을 달리한다 해도 뚜렷한 대의명분만 지니고 있다면, 얼마든지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얘기야.”
정진원의 목 안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다만 그런 명분 없이, 그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네거티브 공작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나는 기꺼이 상대방을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야.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실내가 한층 더 고적해졌다. 몸을 바로 한 그가 다시금 차유신을 봤다. 차유신은 가만히 입을 오므렸다. 꼿꼿한 정진원의 손가락이 차유신을 가리켰다.
“일단 유신이는 이번 김희석 처분 문제에서 빠진다. 일체 손 얹지 마.”
차유신이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상황이 파악이 안 돼? 김희석이 이렇게까지 날뛰는 기폭제가 된 게 바로 너야. 김희석은 지금 자신보다 어리고 경력도 짧은 네가 월권을 행사한다고 생각해.”
정진원이 이마를 구겼다.
“서주연이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올린 게 너잖아. 차유신.”
차유신의 턱이 굳었다. 의원들의 눈길이 재차 차유신 쪽에 쏠렸다. 일부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차유신은 잠자코 어금니를 씹었다. 가능하면 이 사실은 노출되지 않았으면 했다. 지나치게 눈에 띄는 돌부리는 제거되기 마련이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김희석에게 약점이나 잡히지 마. 지금 김희석 입장에서 1순위 사냥감이 너야.”
말을 맺은 정진원이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이어 룸 안의 이들을 휘 둘러보며 호흡을 가라앉혔다.
“갑자기 분위기 험악하게 해 미안합니다. 일단 좀 더 마시고 이어서 얘기합시다.”
의원들이 머뭇거리며 잔을 들어 올렸다. 곳곳에서 잔 부딪치는 소리가 났지만, 아까와 같은 흥겨움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차유신은 내리 술을 마셨다. 대상이 불분명한 시위였다.
*
“많이 취했어요?”
눈앞에서 촛불처럼 까만 실루엣이 일렁였다. 차유신은 벽에 기댄 채 도리질만 쳤다. 머리를 흔들어가며 너울거리는 정신을 다잡아보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괜히 실루엣의 파동만 짙어졌다. 맥을 잃은 차유신의 몸이 흘러내렸다. 맞은편의 우태원이 서둘러 차유신의 허리를 안았다.
“슬슬 들어가시죠.”
우태원이 차유신의 볼을 주무르며 말했다. 차유신은 또 한 번의 도리질을 쳤다. 그건 싫다. 이렇게 취할 때까지 자리에 남은 이유가 있었다. 정진원에게 한마디 꼭 하고 싶었다. 안달이 날 정도로 그걸 하고 싶었다.
그냥 자신에게 책임의 기회를 달라는 말이 하고 싶었다.
“정 선배가….”
흐늘거리며 읊조리던 차유신이 비틀거렸다. 우태원은 능숙하게 차유신의 허리를 고쳐 안으며 지탱했다. 우태원의 가슴팍에 밀착한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 와중에 아주 커다란 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조금 안정이 됐다.
“그냥 집에 가면 안 돼요?”
고개를 낮춘 우태원이 차유신을 달랬다. 몽롱함에 젖은 차유신의 눈동자가 끌어올려졌다. 희끄무레한 시야 속에서 걱정스러운 우태원의 낯이 비눗방울처럼 터졌다. 차유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투정과도 같은 질문이 나왔다.
“집에 가면 너는 뭐 해줄 건데?”
“선배가 원하는 것 다 해줄게요.”
“그냥 넌 나한테 좆이 박고 싶은 거잖아.”
“그 정도로 발정하지 않았어요.”
“그럼 나한테 발정 안 해?”
차유신이 갑자기 화를 냈다. 잠시 멍하던 우태원이 곧 웃음을 터뜨렸다. 난감하다는 양 제 얼굴을 쓸고는, 보다 차유신의 몸을 당겨오며 뺨을 다독여줬다. 손가락에 스친 볼이 간질거렸다. 우태원의 톤이 낮아졌다.
“지금 했어요. 발정.”
“갑자기?”
“네.”
우태원의 입매에 기다란 호가 걸렸다.
“취한 선배가 너무 귀여워서요.”
들려온 말이 뇌리에서 깨진 퍼즐처럼 흩어졌다. 워낙 취한 탓에 우태원의 말을 온전히 알아듣는 게 힘들었다. 다만 마지막에 말한 ‘귀여워서요’는 확실히 인지했다. 차유신이 불만스럽게 우태원의 복부를 팔꿈치로 찍었다. 아프라고 한 것이지만, 우태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새끼가…. 건방지게.”
으름장을 놓은 차유신이 고개를 떨궜다. 우태원은 흐느적거리는 차유신을 꼭 안고만 있었다. 은은하게 불어온 가을바람이 목덜미를 시원하게 적셨다. 희미하게 찾아든 낙엽 냄새가 우태원의 냄새와 섞여, 꽤 포근한 내음을 자아냈다. 차유신의 눈이 깜박였다.
갑자기 기분이 나아졌다.
“여기서 담배 피워도 돼요?”
문득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우태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채 취기를 떨치지 못한 차유신은 한 템포 늦게 확인했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서주연이 담배 끝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우태원과 차유신을 번갈아 본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둘이 사이가 엄청 좋나 봐. 혹시 내가 방해했나?”
우태원은 솔직하게 답했다.
“조금요.”
훅, 연기를 뿜은 서주연이 재미있다는 양 깔깔거렸다. 곧 차유신을 향해 부드러운 언어를 건넸다.
“고마워요, 차 의원. 내가 인사를 제대로 못 했네.”
“뭐 별거라고요.”
차유신은 예의상의 고갯짓만 했다. 일부러 말을 길게 하지는 않았다. 취한 게 티가 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솔직히 우리 세 번 정도밖에 안 만났던 사이잖아요. 그런데 선뜻 이런 자리에 나를 추천해주고…. 나를 받아들이겠다 결정한 VIP도 대단하지만, 내 가능성을 알아보고 추진력 있게 자리에 올려준 차 의원이 내 입장에선 너무나도 대단해 보여요. 차 의원이 나보다 나이는 다섯 살 어리지만, 내심 존경하고 있어요.”
서주연이 빙글거렸다. 차유신의 말꼬리가 늘어졌다.
“과찬이십니다….”
“많이 취했나 봐? 평소하고 달라서 귀엽네.”
서주연이 입을 가려가며 웃었다. 찌푸린 우태원이 차유신을 살짝 숨겼다. 이내 경고하듯 말했다.
“지금 차 선배가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으니, 너무 말붙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보이네. 방해해서 미안해요. 난 이만 가볼게.”
서주연이 흔쾌히 발을 뺐다. 반쯤 몸을 틀었다가,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우태원을 주시했다. 우태원이 의아한 듯 윗눈썹을 비뚤었다. 서주연이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우 위원장은 시간될 때 나한테 개인적으로 연락 하나 줘요.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우태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듣고만 있던 차유신의 귓바퀴가 굼틀거렸다. 극심한 술기운 속에서도 서주연의 마지막 말만큼은 명확히 인지했고, 묘한 의문까지 떠올렸다.
우태원에게 서주연이 왜.
*
“차 선배.”
누군가가 어깨를 툭,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기울어있던 차유신의 고개가 덜컥 들렸다. 옆자리의 민아영이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물었다.
“어제 술 많이 드셨어요?”
“티 많이 나?”
“엄청 피곤해 보이세요.”
민아영이 진심으로 걱정했다. 올라간 차유신의 손이 머리를 쥐어짰다. 지독한 숙취 때문에 최소한의 시야확보조차 버거운 수준이다. 일정이고 뭐고 다 때려 친 뒤 어디 가서 찬물 세례나 흠뻑 맞고 싶었다. 그러면 이 깨질 듯한 머리통이 좀 나아질 지도 몰랐다.
어제 어떻게 됐었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지난밤을 떠올렸다. 산산이 조각난 유리파편 수준이라 조합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어리광 더 부려줘요.’
그나마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우태원이 했던 말은 떠오른다. 우태원의 비서가 운전을 하고 있었고, 자신은 우태원의 무릎에 누운 채 뒷좌석에 늘어져 있었다. 우태원은 종종 차유신의 얼굴이나 머리카락을 건드리며 뭔가를 속삭였는데, 취한 차유신 입장에서는 상당수가 환청처럼 다가왔다.
‘무슨 어리광.’
취중임에도 갑자기 괘씸한 기분이 들어 차유신이 따졌다. 우태원의 고개가 삐뚜름해졌다.
‘선배가 하는 모든 게 어리광이에요.’
‘웃기지 마.’
‘그것도 어리광이에요.’
‘맞아야 정신 차릴 거야?’
‘그것도요.’
‘때려 치자….’
끝내 포기한 차유신이 목을 늘어뜨렸다. 더 이상 싸울 기운도 없었다. 피식거린 우태원이 돌연 얼굴을 가까이했다.
‘어리광 부리는 김에 이것도 해주면 안 돼요?’
코를 타고 익숙한 내음이 스몄다. 차유신의 눈이 흔들렸다. 우태원이 들릴 듯 말 듯한 언어를 흘렸다.
‘…해주세요.’
딱. 버릇처럼 데스크를 짚어대던 펜대가 수직으로 곤두섰다. 차유신의 낯이 찡그려졌다. 분명히 그때 들었는데, 밤을 보내고 나니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걸 전하는 우태원의 어조가 상당히 진중했었다는 것 정도.
그런데 뭐였더라.
“아…. 이 정신 나간 새끼.”
도통 돌아오지 않는 기억을 갈구하다 차유신이 나직이 욕을 했다. 그 정도까지 술을 먹은 자신이 한심해서 기가 찼다. 지켜보던 민아영이 토끼눈을 해가며 흠칫거렸다. 차유신이 그녀를 힐금했다.
“나한테 한 거야. 네가 왜 놀라?”
“선배 욕하는 것 처음 봤어요.”
“다른 것도 해줘?”
“그건 나중에 들을게요.”
민아영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투로 정면을 봤다. 차유신도 같은 곳을 봤다. 단상 위에 올라온 김희석이 인자한 표정으로 발언을 하고 있었다. 위에 드리운 현수막에는 ‘올바른 벤처기업 규제 적용을 위한 공청회’라고 적혀있었다. 주한경이 이끄는 한국IT벤처협회에서 개최한 것으로, 규제 탓에 사업이 막힌 벤처기업 상당수가 참석하는 토론회였다.
차유신은 초년 때부터 이런 류의 공청회에 닳도록 드나들었고, 지난 5월 소속 상임위가 벤처기업을 깊숙이 다루는 산자중기위로 바뀌며 더욱 그럴 일이 많아졌다. 민아영도 차유신과 같은 청년사업가 출신이라 역시 이 분야를 잘 안다. 하지만 이 공청회에 참석한 모든 국회의원이 그런 건 아니었다.
마이크 앞에서 쉼 없이 떠벌대는 김희석을 보다가 차유신이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벤처기업에 대한 이해도, 규제 관련 법적 지식도 없는 그가 이 공청회에 참석한 이유는 하나다. 주목받기 좋기 때문이다. 이번 공청회에는 유니콘으로 평가받는 스타트업 CEO가 네 명이나 참여했다. 웬만한 언론사는 전부 다 취재를 왔다. 어떤 국회의원이 와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 주요 뉴스와 신문에서 낱낱이 다뤄질 거다.
“하여간 안 빠지는 데가 없지.”
빈정거린 차유신이 구둣발을 소리 없이 탁탁거렸다. 하여간 여우 같은 놈이다. 정진원의 단물이란 단물은 다 빼먹고 버려질 것 같으니 선제적으로 본인 라인 구축에 나선 것도 그렇고, 새치 같은 혀로 언론과 대중을 잘도 선동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에게 득이 될 만한 공청회는 귀신같이 따져가며 불쑥불쑥 면상을 들이미는 것도 그렇고.
저 비열한 놈을 자신의 손으로 작업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이상입니다. 말을 마친 김희석이 반듯하게 꾸벅했다. 좌석 쪽에서 박수가 터졌다. 의기양양하게 단상에서 내려온 김희석이 차유신의 근처로 걸어왔다. 무미건조하게 눈을 굴리던 차유신과 그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김희석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꾸물거렸다. 그의 입에서 탐탁지 않은 호흡이 번졌다. 곧 차유신을 지나쳐가며 혼잣말을 했다.
“안 빠지는 데가 없구만. 여우같은 새끼 같으니라고.”
차유신의 손에 잡힌 페이퍼가 지익, 소리를 내며 찢겨 나갔다. 바로 헛헛한 웃음이 터졌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김희석에서 그런 취급을 받은 것에는 진심으로 열이 받았다.
“진짜 별 개 씨팔 새끼를 다 보겠네.”
어금니를 짓이긴 차유신이 저도 모르게 뇌까렸다. 눈치를 보던 민아영이 화들짝 어물거렸다. 곧 받아들이겠다는 양 끄덕였다.
“잘 들었습니다. 선배.”
*
공청회를 마치고, 국회에 있는 자신의 의원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다소 수런거리는 보좌진들이 보였다. 발을 내디딘 차유신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형님. 이거 봐요. 진짜 깜짝 놀랐어.”
딱히 관심을 두지 않고 내실부터 향하는 차유신을 윤재희가 졸졸 따라 들어왔다. 막 자리에 앉은 차유신의 앞으로 윤재희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확인한 차유신의 눈초리가 미동했다. 화면에서 아주 익숙한 얼굴들이 비쳤다.
「우태원·서주연 ‘자동차 데이트’…첫 단추부터 스캔들 일으킨 청와대 대변인 내정자」
“우태원 위원장하고 서주연 대변인 내정자 스캔들 났어요. 둘이 지난 새벽에 한 시간 동안 같이 차에 있었대요. 우태원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지난번에는 민아영이랑 나고, 이번에는 무려 서주연이고.”
“부러워?”
차유신이 삐딱하게 물었다. 윤재희가 크게 수긍했다.
“네. 저 서주연 팬이거든요. 한때 서주연 싫어하는 남자가 없을 정도로 인기 많았잖아요. 인기 아역배우 출신 앵커가 어디 흔해요?”
무시한 차유신이 길게 고개를 젖혔다. 간신히 가라앉힌 머릿속이 또 요동을 쳤다. 침침한 지난밤 기억을 억지로 헤집어가며 뭐라도 떠올려보기 위해 노력했다. 정진원 라인 술자리가 자정을 좀 넘긴 끝에 파한 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태원과 함께 차를 차고 귀가했는데, 대체 언제 저런 일이 일어났던 거지. 그리고, 그 사이 자신은 어디에 있었던 거지.
우태원과 서주연이 한 시간 동안 눈 마주치면서 대화 나눌 동안, 자신은 대체 뭘 한 거지.
“좆같네. 씨발.”
투박한 욕설이 나왔다. 윤재희가 이해한다는 양 주억거렸다.
“솔직히 좆같죠. 상대가 서주연인데.”
“시끄러우니까 좀 나가. 새끼야.”
홧김에 내뻗은 손이 데스크 위의 펜 하나를 집어 던졌다. 가볍게 피한 윤재희가 볼멘소리를 냈다.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에요? 아무리 질투가 나도 그렇지.”
막 데스크를 짚은 손가락이 곤두섰다. 차유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질투를 한다고, 내가.
“네가 뭘 안다고 따박따박….”
“선배. 잠깐 시간 되십니까.”
갑자기 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벌어진 틈새로 내내 생각하던 인물이 불쑥 나타났다. 입을 삐죽거린 윤재희가 그를 스쳐지나가며 고자질을 했다.
“우리 형님 좀 달래주세요. 화가 엄청나게 났어요.”
차유신의 표정이 보다 언짢아졌다. 이게 감히 누굴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드나 싶었다.
차유신은 살면서 질투 같은 걸 해본 일이 없다. 그런 유치하고 소모적인 감정에 함몰될 정도로, 자신은 어리석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
윤재희가 나간 문을 닫으며 우태원이 다가왔다. 차유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 것 아니야. 너는 무슨 일인데.”
“드릴 말씀이 있어서.”
데스크 맞은편으로 다가온 우태원이 뜸을 들였다. 차유신은 뚫어져라 눈길을 건넸다.
“뭐.”
“방금 전에 매체에서 터진 스캔들, 그거.”
“어. 알아. 별일 아닌 거.”
차유신이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우태원이 움칠했다. 외면한 차유신이 질문했다.
“고작 그것 때문에 온 거야?”
“고작….”
차유신의 말을 되새김질 하던 우태원의 머무적거렸다. 곧 미세하게 표정을 굳혔다.
“네. 고작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신경 쓸 것 없어. 나도 신경 안 쓰거든.”
“신경 안 쓰셔서 다행이네요.”
단출한 차유신의 대꾸에 우태원도 담백하게 반응했다. 저편의 벽에 눈을 둔 차유신이 입을 다물었다. 내실이 조용해졌다.
똑똑. 침묵 속에서 문 두드려지는 소리가 났다. 입구 쪽이 살짝 열렸다. 고개를 들이민 인턴이 말을 걸었다.
“의원님. 집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일 하시는 분한테서?”
“네.”
“뭔데.”
“저번에 주문한 침대가 도착했는데, 어디에 둬야 하냐고….”
“원래 침대 있던 자리에 두면 된다고 해.”
“기존 침대보다 새 것이 다소 커서, 창문을 살짝 가릴 것 같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어.”
“알겠습니다.”
인턴이 도로 문을 닫았다. 우태원이 물었다.
“무슨 침대요.”
“새 침대 주문했어. 기존 것을 못 쓰게 돼서.”
“기존 게 왜….”
“그야 네가 지난주에 섹스하다 기둥을 부숴 먹…!”
분연히 쏟아지던 말이 멎었다. 우태원이 주춤했다.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긴 숨을 내쉰 차유신이 제 얼굴을 감쌌다.
“아무튼 지금 좀 정신없으니까 이만 나가.”
“이렇게요?”
“뭘 이렇게야.”
차유신이 인상을 썼다. 마주 본 우태원이 굵은 침을 삼켰다. 곧 그만두자는 양 몸을 틀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리가 내실을 울렸다. 나아간 우태원의 손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가볍게 표면을 어루만진 그가 뇌까렸다.
“실은 약간의 기대를 했거든요.”
“무슨 기대.”
차유신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입을 다신 우태원이 손을 당겼다. 끼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아닙니다.”
기이한 한기만 남긴 채 문이 닫혔다.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있던 차유신이 불만족스럽게 발을 꺼떡거렸다. 괜히 심통이 났다.
왜 우태원이 석연치 않다는 투로 나오는지 모르겠다. 정작 언짢은 건 자신인데.
*
이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이한 오후가 흘러갔다. 새롭게 구성된 역현T시티 입주자협의회 사람들과 오찬을 가졌고, 이어서 두 개의 회의를 치렀으며, 퇴근을 앞두고 정진원의 호출에 따라 개인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내용은 단순했다. 최근 차유신이 역현T시티의 몇몇 입주기업 대표로부터 후원받은 것을 두고 김희석이 꼬투리를 잡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후원이야 받을 수 있지. 그런데 그것이 특정 회사에 대한 특혜로 이어졌다는 식의 논란으로 귀결되면 아주 피곤해져.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해당 기업 대표들과는 사전에 입을 맞춰두도록 해라.’
차유신은 그것 자체가 진짜 빌미가 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 후원자는 역현T시티에 입주한 후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꾸준히 활용하며 회사를 키워온 이들로, 전혀 로비성 후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정진원은 ‘네가 그렇지, 뭐’라며 혀만 찼다.
“우태원 위원장이 원래 되게 무서운 사람이었었나 봐요.”
정진원과의 면담을 마치고, 의원회관 1층의 카페에서 윤재희와 짧은 티타임을 가졌다. 커피를 홀짝거리던 윤재희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차유신은 그게 무슨 얘기냐는 양 그를 응시했다. 잔을 내려둔 윤재희가 매우 중요한 얘기를 해주는 것처럼 몸을 낮췄다.
“상해에 있는 서재길 실장이 그랬어요.”
“너 서 실장하고 연락해?”
“네. 가끔 문서 번역 작업 같은 것 해줘요. 이메일 통해 받은 걸 제가 번역해서 돌려주면, 서 실장이 수고비를 입금해줘요,”
“누구 맘대로 깡패 새끼한테 돈 받아가면서 알바를 해?”
차유신이 탕, 소리 나게 테이블을 쳤다. 움츠려든 윤재희가 우물거렸다.
“그럼 월급을 많이 주던가요….”
“그 월급 내가 줘? 급여가 불만이면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던가.”
“동의 수가 3000개도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찬성을 보좌진밖에 안 해서.”
시큰둥하게 받아친 윤재희가 재차 차유신을 봤다. 곧 조심조심 말했다.
“예전에 운도동에 있던 다른 조직 우두머리가 우 위원장과 친해지고 싶다며 동의도 없이 악수를 했는데, 우 위원장이 그걸 엄청 불쾌해했대요.”
“그래서.”
“그 사람 손 잘랐대요.”
“그 사람이 거슬리는 짓을 했겠지.”
“뭐, 거슬린다면 거슬리는 짓을 했죠. 감히 우 위원장 손을 만졌으니까.”
윤재희가 심드렁하게 말을 맺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준이긴 하지만.”
차유신의 낯이 식었다. 잠잠해진 눈이 카페 안의 사람들을 휘 훑었다. 정처 없이 흘러가던 시선이 문득 어느 한곳에서 멎었다. 바쁘게 걸어가는 서주연이 보였다. 의원회관에 일이 있나. 의아해하며 그녀의 뒷모습을 쫓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걸어가는 또 한명이 보였다.
우태원.
“애초에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그 새끼는 원래 그런 놈인데. 너도 대충은 알고 있잖아.”
차유신이 대뜸 불평을 했다. 윤재희가 잠자코 제 얼굴을 긁적였다. 이내 사분사분 대꾸했다.
“뭐, 확실히 예전에는 그렇다고도 생각했지만. 최근 모습은 그때가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잖아요. 그러니 하는 얘기죠.”
“최근 모습이 어떤데.”
“되게 일반사람 같은 느낌이에요. 특히 선배하고 같이 있을 때는 더.”
차유신의 눈꺼풀이 달싹였다. 잔을 쥐어 빙글빙글 가지고 놀던 윤재희가 덧붙였다.
“그런 것 보면 참 신기해요.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지?”
테이블을 덮은 차유신의 손이 느릿느릿 미끄러졌다. 사뭇 냉해진 눈빛으로 방금 전 봤던 곳을 확인했다. 서주연과 우태원 둘 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탄 것 같지는 않고, 1층에 있는 어느 회의실을 간 듯한데.
“근데 형님은 뭘 보시는 거예요?”
윤재희가 새삼 물어왔다. 차유신은 말없이 바닥에다 구두 굽을 한번 부딪쳤다. 딱, 하는 명쾌한 소리가 뇌리를 가로질렀다. 엉망진창으로 뒤섞여있던 의문과 욕망들이 심해에 가라앉듯 사그라졌다. 자못 맑아진 머리를 바로 하며 차유신은 테이블에서 손을 거뒀다.
신경 쓰이는 건 신경 쓰이는 거다. 그리고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게 고통스러울 지경이라면, 스스로를 지독하게 속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질투를 모르던 차유신은 지금 질투를 하고 있었다.
“나 잠깐 어디 좀 들를게. 너 먼저 올라가.”
자리에서 일어난 차유신이 윤재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눈을 키운 윤재희가 작게 ‘네’ 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차유신이 성큼성큼 발을 뻗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힐금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차유신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그러고 있는지를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모든 사고가 한 가지 목적만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윤재희의 말이 맞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는 게.
*
복도 곳곳을 돌아다닌 끝에 비어있는 2소회의실을 발견했다. 열린 문틈으로 비친 건, 등을 보인 채 홀로 선 우태원이었다.
“우태원.”
반쯤 열린 문을 젖혀가며 다짜고짜 불렀다. 뒤돌아본 우태원이 놀란 표정을 해보였다.
“선배.”
“잠깐 얘기 좀 해.”
“지금은 좀….”
전에 없이 난색을 내비치는 우태원을 무시하며 저벅저벅 나아갔다. 앞에 다다르자마자 그의 턱을 거머쥔 차유신이 쏘아붙였다.
“네게 있어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없죠. 하지만….”
“그럼 됐어.”
말을 마치자마자 훅 얼굴을 끌어올렸다. 곧 집어삼킬 듯 우태원의 입술을 덮쳤다. 순식간에 목을 붉힌 우태원이 턱을 떨었다. 그 와중에 뭔가를 탐색하듯 꿈틀거리는 그의 윗눈썹이 보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유신은 개의치 않고 있는 힘껏 그의 입술만 빨았다. 목을 경련한 우태원이 무더운 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너 나한테 할 말이 있을 텐데.”
“맞아요. 그리고 선배도 저한테 할 말이 있을 거고요.”
헐떡인 우태원이 차유신과 눈을 맞췄다. 차유신은 그를 꼿꼿이 주시하며 혀를 움직였다. 젖은 혀에 스친 우태원의 입술이 꿈적거렸다. 우태원의 숨결이 다소 거칠어졌다. 그의 눈초리가 조금씩 풀려갔다.
“하지만….”
돌연 등 뒤로 들어온 우태원의 팔뚝이 꽉 허리를 안아왔다. 힘차게 차유신의 몸 방향을 틀고는, 벽에다 밀어붙였다. 딱 아프지 않을 정도로 벽에다 등을 부딪힌 차유신이 낯을 찌푸렸다. 그 새 차유신으로부터 떨어진 우태원의 입매가 길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참는 걸로 하죠. 응?”
우태원이 어린 애 타이르듯 차유신의 볼에다 입을 맞췄다. 영문 모르는 차유신이 언성을 높였다.
“그게 무슨…!”
끼익.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회의실문이 활짝 열렸다. 들어온 서주연이 반색했다.
“어머. 나하고 볼 때마다 둘은 붙어있네.”
막 얼굴을 거둔 우태원이 그녀를 힐긋했다.
“붙어있을 때마다 서 대변인님을 보는 거겠죠.”
생글거린 서주연이 옆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실루엣이 심히 익숙했다. 차유신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희석 선배.”
터덜터덜 걸어온 김희석의 면상이 잔뜩 그늘져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문을 닫은 서주연이 우태원에게 눈짓을 보였다. 차유신으로부터 몸을 떨어뜨린 우태원이 허리를 짚었다. 곧 느른하게 물었다.
“제가 보낸 문서는 잘 보셨고요?”
김희석은 말없이 시근덕거리기만 했다. 제 넥타이를 어루만진 우태원이 중얼거렸다.
“해당 문서는 제 협박 등으로 작성된 게 아닙니다. 김 선배께 그간 로비자금 상납을 강요받은 건설사 임원 6명이 모두 공론화하는 데 동의했고, 그중 총대를 멘 진화건설 서대규 부사장이 직접 작성한 겁니다. 김희석 의원의 강요에 따라 총 28억 2000만 원을 강제 상납했다는 내용이죠. 제가 신호를 보내면, 해당 문서는 전 언론사에 배포됩니다.”
“우태원.”
“다만.”
우태원의 손가락을 타고 죽 미끄러진 파란 천이 늘어졌다. 우태원의 목소리가 노곤해졌다.
“정진원 선배께서는 아끼던 선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한 번쯤 기회를 주자 하셨습니다. 선배의 선택에 따라 공론화는 보류될 수 있습니다.”
김희석의 머리가 부들거렸다. 우태원이 목소리를 깔았다.
“차유신 의원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시죠. 단지 거슬린다는 이유로 주제넘게 차 선배를 작업하려 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는 명명백백하게 치르셔야죠.”
김희석이 끄응, 소리를 냈다. 게슴츠레하게 드러난 눈망울이 차유신을 담았다. 차유신은 무표정으로 그를 마주 봤다. 턱에 꽉 힘을 준 그가 다리를 풀기 시작했다. 곧 서서히 몸을 구부렸다.
싸늘한 공기가 실내를 감돌았다.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은 김희석이 체념한 것처럼 머리를 숙였다. 경련하던 그의 입술이 열렸다. 힘없는 한 마디가 회의실을 울렸다.
“내가 실수했네. 차 의원.”
차유신은 반응하는 대신 우태원을 올려다봤다. 곁눈질을 한 우태원이 눈매를 접었다. 저편에 서 있던 서주연이 좋은 구경을 했다는 양 등을 보였다.
*
“서주연 대변인의 삼촌이 해당 문건 작성한 진화건설의 서대규 부사장입니다. 서대규 쪽이 본가하고 의절한 채로 지내는지라, 정재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죠. 다만 서주연은 어린 시절 서대규의 집에서 몇 년 산 적도 있어 삼촌과 굉장히 사이가 좋다 하더라고요.”
차유신의 집으로 함께 들어오자마자 재킷을 벗은 우태원이 말했다. 차유신은 자신의 재킷을 벗으며 거실을 걸었다. 뒤에서 우태원이 또 말했다.
“서주연 대변인 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정진원 선배가 김희석 처분 작업을 제게 일임한 걸 알고, 자신이 도움을 주겠다 하더라고요. 서주연은 따로 날을 잡자고 했는데, 저는 시간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잠깐 선배를 차에서 재운 다음 서주연의 차에서 만나….”
“샤워할래?”
우태원의 말을 끊은 차유신이 물었다. 막 넥타이를 풀고 난 우태원이 움찔했다. 그와 마주 본 차유신이 먼저 셔츠를 벗어 던졌다. 이어 버클 풀린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내려 붙여 빼고는, 욕실로 향했다.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같이 씻는 것 싫어하시잖아요.”
“그랬어?”
“저번에 제가 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셨습니다.”
“기억 안 나.”
능청스레 답한 차유신이 욕실에 우뚝 선 몸을 틀었다. 고스란히 비치는 알몸을 본 우태원이 숨을 죽였다. 차유신이 고개를 까딱했다.
“나 씻겨줘.”
“명령이죠?”
“조금 다른데.”
샤워기 앞으로 간 차유신이 밸브를 열었다. 쏴, 하며 물줄기가 쏟아졌다. 스스로 몸을 축인 차유신이 읊조렸다.
“어리광.”
등 너머에서 비식거리는 소리가 났다. 차유신의 눈이 돌아갔다. 어느새 모든 옷가지를 몸에서 떨군 우태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른셋이 이렇게 귀여우면 안 되는데.”
차유신의 허리를 뒤에서 감아온 우태원이 혼잣말을 했다. 차유신이 그를 노려봤다.
“귀엽다는 말은 하지 마.”
“그럼 뭐라고 할까요.”
선반에서 타월을 챙긴 우태원이 위에다 하얀색 바디 워시를 올렸다. 물을 머금어 거품을 내자, 코코넛 향이 물씬 풍겼다. 그대로 차유신의 목에 가져간 우태원이 섬세하게 거품을 묻혔다. 양 손을 내린 채 지켜보던 차유신이 답했다.
“사랑한다고 해봐.”
막 차유신의 배에다 거품을 묻히고 난 손이 멎었다. 굴러간 우태원의 눈이 차유신을 머금었다. 차유신이 재촉했다.
“해봐.”
“그것도 싫다 하셨습니다. 닭살 돋는다고.”
“기억 안 나.”
“선배는 확실히 표현하는 걸 민망해하시죠.”
우태원이 생각하듯 마저 손을 움직였다. 배에서 미끄러진 타월이 허벅지와 종아리를 쓸어내렸다가, 반대쪽 종아리와 허벅지를 쓸며 올라온 뒤 엉덩이에 다다랐다. 살살 문지르고 난 우태원이 차유신의 어깨를 잡았다. 차유신의 몸을 틀어 벽을 보게 하고는, 자신 쪽으로 당겨 제 가슴팍에 어깨를 붙였다. 우태원의 목소리가 녹아갔다.
“그런 것 보면 참 신기해요.”
올라온 타월이 차유신의 가슴을 비볐다. 일부러 남겨뒀는지, 말끔하기만 하던 살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몽글몽글한 거품이 간지러운 그림을 그렸다. 차유신이 그의 어깨에 뒤통수를 기댔다.
“뭐가.”
“사람이 변한다는 게요.”
“나도 신기하다고 생각해.”
“아까 소회의실에서는 왜 키스했어요?”
“그냥 하고 싶어서….”
차유신이 말 꼬리를 흐렸다. 볼이 조금 붉어졌다. 완전히 솔직해지는 게 아직은 힘들다.
“그랬군요.”
주억거린 우태원이 차유신의 유두를 꼬집듯 타월로 비비적거렸다. 순간적으로 솟구친 소름에 꼭지가 곤두섰다. 넘어간 차유신의 머리통이 우태원의 어깨와 찰싹 붙었다.
“으음….”
“정말로 그뿐이었어요?”
스멀거리며 이동한 타월이 반대쪽 유두를 건드렸다. 중심을 톡, 톡, 찔러대다가 유륜을 달팽이처럼 기어 다녔다. 스친 부위가 빠르게 오싹거렸다. 차유신의 등줄기가 길게 울렸다. 숨소리가 가빠졌다.
“하으…. 읏….”
“기회 줄 테니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지그시 유두를 누르고 난 타월이 흘러내렸다. 복부를 스치며 내려와서는, 역시나 맨살인 치부를 덮었다. 하얀 피부에다 치덕치덕 거품을 처발라가며 우태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선배 저한테 서운한 것 있잖아요. 실토하면 선물 줄게요.”
“안 하면.”
차유신이 따졌다. 우태원이 고저 없이 대꾸했다.
“그럼 오늘은 안 하는 거죠.”
성기 주변을 하얗게 만들고 난 타월이 차유신의 중심부에 닿았다. 꽤나 발기한 살덩이를 미끄러운 타월이 주물럭거렸다. 쥐었다 폈다 하는 손길이 송연해 차유신의 어깨가 들썩였다. 한층 야릇한 신음이 나왔다.
“으응….”
“하고 싶죠.”
“하아…. 하고 싶은 건 너겠지.”
“그것도 맞아요. 하지만 오늘은 참을 수 있어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왜 웃기는 소리예요.”
키득거린 우태원이 차유신의 귓불을 뒤에서 깨물었다. 춥, 소리 나게 살을 빨아들인 그가 속삭였다.
“혼자 달아올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선배 보는 것도 전 좋거든요.”
차유신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저 건방진 새끼가. 욕이라도 쏟기 위해 막 떨어졌던 입술이 멈칫했다. 차유신의 귀두를 감싼 타월이 새빨개진 부위를 꽉꽉 조여 대고 있었다. 후끈 달아오른 치부에서 찌릿찌릿한 전류가 번졌다. 차유신의 머리가 바로 덜커덕거렸다.
“잠깐…. 아, 읏…. 개새끼야….”
“빨리 얘기해 봐요. 아까 키스 왜 했는지.”
우태원이 짓궂게 독촉했다. 차유신은 분한 듯 눈을 치떴다. 엉덩이 틈에서 회음부가 움칠거리는 게 느껴졌다. 우태원과 셀 수 없을 정도의 정사를 하면서 길들여진 몸이 벌써부터 안달하고 있다. 숨을 몰아쉰 차유신이 이를 갈았다. 돌겠다. 진짜.
우태원의 괘씸죄와 무관하게 입이 더듬거렸다. 본능이 이성을 억누르고 있었다.
“질투했….”
살살 귀두를 간지럽히던 손이 무뎌져갔다. 차유신은 의아해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스캔들 난 것…. 하아. 솔직히 신경 쓰였어. 서주연 자체를 질투했다기 보다는, 그 상황이 벌어진 내내 나는 뭐하고 있었나 싶어서…. 그게 열이 받아서….”
올라간 차유신의 손이 제 얼굴을 덮었다.
“네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어. 그것도 일종의 질투지.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분개하는 감정을 가졌으니.”
툭. 밑에서 타월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차유신의 얼굴이 돌아갔다. 눈에 띄게 멍해진 우태원이 보였다. 차유신이 닦달했다.
“솔직하게 얘기했잖아. 뭐 문제 있어?”
“있어요.”
들숨을 삼킨 우태원이 갑자기 차유신의 등을 떠밀었다. 물이 쏟아지는 위치에 차유신을 두고는, 맨손으로 거품을 씻기기 시작했다. 연신 옮겨 다니는 손이 목을 매만지고 어깨를 문지른 뒤 가슴을 비벼댔다. 엄지손가락에 스친 젖꼭지가 유독 아려 차유신의 목이 울렸다. 또 신음이 나왔다.
“아읏….”
“전 선배가 김희석 작업을 저 혼자 맡고 있는 것에 화가 나 그런 줄 알았어요.”
차유신의 정신이 번쩍 들렸다. 우태원이 차유신의 배에 묻은 거품을 털어내며 말했다.
“질투해서 그랬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는데….”
차유신의 턱이 덜컥거렸다. 미지근한 물 안에서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달아올랐다. 함께 물을 맞던 우태원이 슬쩍 눈을 맞추며 웃었다.
“엄청 황홀하네요.”
차유신이 치를 떨었다. 괜히 진 것 같았다.
왜 쓸 데 없는 얘기를 해서.
“잠깐만. 나는….”
“얘기 끝났어요. 이리 와요.”
차유신의 거품을 모두 씻어낸 우태원이 팔을 당겨왔다. 단숨에 이끌려간 몸이 세면대에 붙은 대형 거울 앞에 섰다. 차유신의 상체를 거울 쪽으로 기운 우태원이 입을 뗐다.
“질투해줬으니, 상을 줄게요.”
척척한 우태원의 맨 치골이 차유신의 엉덩이와 붙었다. 능숙하게 허리를 움직여가며 성기를 엉덩이 틈에 묻은 우태원이 한 손을 내렸다. 제 밑동을 쥐어 불끈한 끄트머리를 세우고는, 살짝 풀어진 회음부의 주름을 문지르며 구멍을 열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거울을 짚은 차유신이 허리를 전율했다.
“아…! 이렇게 하면 불편….”
“안 불편해요. 제가 안 불편하게 할게요.”
차유신의 배에 올라온 우태원의 팔뚝이 견고한 안전 바를 만들었다. 곧 밑동을 쥔 손을 옮겨 찰싹, 소리 나게 엉덩이를 때렸다. 흠칫한 차유신의 엉덩이가 봉긋 솟아오르고, 빠끔거리던 구멍에서 힘이 빠졌다. 놓치지 않은 우태원이 허리를 밀어붙였다. 정확하게 입구를 꿰뚫은 귀두가 쑥 안을 파고들었다. 젖은 바닥 위에서 차유신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아, 하으읏…!”
“아직도 불편하면 얘기해요.”
우태원이 달콤하게 소곤거렸다. 차유신은 대답 대신 거울에다 손톱을 박았다. 주르르 미끄러진 손가락이 표면에 기다란 자국을 남겼다. 할퀸 것처럼 새겨진 손자국 위로 꽤나 벌건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만족스럽게 제 치부를 붙여오는 우태원도 함께 비쳤다. 반쯤 음경을 밀어 넣은 그가 거칠게 하반신을 튕겼다. 착, 하며 살과 살이 철썩이는 소리가 났다. 바로 차유신의 허리가 자지러졌다.
“아읏…! 좀….”
“왜 이렇게 힘들어해요? 평소답지 않게.”
우태원이 조롱했다. 차유신의 눈동자가 분한 듯 끌어올려졌다. 거울 곳곳에 서려있던 김이 빠지고 있었다. 조금조금 깨끗해져 가는 거울 안에서 목 밑까지 달아오른 자신이 오롯해졌다. 차유신이 차마 힘들다는 양 눈을 깔았다. 이상할 정도로 속이 메스꺼웠다.
우태원에게 박히는 스스로를 여과 없이 확인하는 건 처음이다. 상상 이상으로 색정적인 본인이 자신이 알던 자신과 너무도 달라, 도무지 마주 볼 용기가 없다.
젖어있는 차유신의 볼을 스치며 우태원의 손가락이 내려갔다. 곧 울렁이는 가슴을 덮고는, 유두를 중심으로 살살 문질러왔다. 동시에 살짝 뺐던 하반신을 들이밀어 보다 깊숙한 곳에 제 분신을 꽂았다. 죽 미끄러진 생식기를 감싼 내벽이 옴짝거리며 부풀었다. 배 안이 바로 더부룩해졌다. 본능적으로 아랫배를 감싼 차유신이 할딱였다.
“으음…!”
“왜 제대로 안 봐요.”
“닥….”
“부끄러워요?”
어조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참다못한 차유신이 살짝 몸을 틀어 주먹을 내질렀다. 명치를 노리고 뻗어나간 팔을 가뿐하게 붙든 우태원이 그대로 차유신의 등 뒤에서 날개꺾기를 했다. 차유신의 입에서 악, 소리가 났다.
“아…! 흐읏….”
“섹스하고 있는데 사람을 죽이려 하면 어떻게 해요.”
“내가 언, 흐읍…. 팔 풀어….”
“글쎄요.”
아까처럼 거울을 향해 차유신의 상체를 내려붙인 우태원이 슬그머니 제 성기를 밑동 근처까지 박아 넣었다. 갑작스레 내벽이 확장되는 느낌에 놀란 차유신이 허리를 비틀었다. 팔이 붙들려 얼마 움직이지는 못했다.
허둥대는 차유신을 힐긋한 우태원이 제 하반신을 치대며 담금질을 시작했다. 들어온 남근이 푹, 푹, 내벽을 찔러가며 소스라치는 점막을 희롱했다. 발정 나 쿨렁이던 점막들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우태원의 생식기를 쫀득하게 안았다. 차유신의 입에서 녹진한 탄성이 샜다.
“으응…! 하아….”
“기분 좋아요?”
“팔 풀면 더 기분 좋을 것 같…. 흐읏!”
“그럼 거울 볼 거예요?”
“우태원 너 진짜….”
차유신이 눈을 부라렸다. 피식거린 우태원은 쉽사리 팔을 풀지 않았다. 대신 딱 아프지 않게끔 힘만 뺀 채, 다른 손을 내밀어 차유신의 턱을 쥐었다. 확 들린 얼굴이 한 치 앞에서 거울을 마주했다.
“제 좆,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잘 봐요.”
지시한 우태원이 반쯤 뺐던 음경을 올려붙였다. 평평하던 아랫배가 불룩거리며 융기하기 시작했다. 차유신의 입에서 아, 소리가 났다. 뒷덜미에 닿는 우태원의 숨결이 투박해졌다. 차유신의 옆얼굴을 향해 기우는 우태원의 낯이 거울을 통해 뚜렷이 비쳤다. 그의 목소리가 녹녹해졌다.
“일단 수직으로 넣으면 여기까지예요.”
가마득한 곳까지 들어간 귀두가 쿡, 점막을 찍었다. 으음. 순간적으로 넋을 놓은 차유신이 목을 전율했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배꼽을 넘어서는 지점까지 치솟은 윤곽이 보였다. 그 상태로 우태원이 허리를 튕겼다. 배 안에서 파도가 치듯 통각이 출렁였다. 섬뜩한 고통이 척추를 울렸다가, 곧 기기묘묘한 소름으로 바뀌어갔다.
“아으응….”
차유신의 오금이 녹아갔다. 우태원이 흘러내리는 차유신의 허리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턱을 옥죄는 손도, 팔을 붙드는 손도 더 이상 없었지만 차유신은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다. 좀이 쑤셔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신의 표정이 흐릿한 망막을 통해서도 제법 선명히 보였다. 다만 그 뒤에 있는 우태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개까지 숙인 채라 더 그렇다. 발가락이 간헐적으로 꼼지락거렸다. 차유신이 나직이 말했다.
“안에 가서 해….”
막 고개를 가눈 우태원이 이마를 구겼다. 차유신이 제 배를 감싸며 호소했다.
“하아…. 침실로 가서하라고….”
“왜요.”
우태원이 진중히 물었다. 차유신은 대답 대신 허리를 틀었다. 이어 다짜고짜 우태원의 목을 채고는, 이를 갈며 명령했다.
“네 얼굴 잘 안 보이니까 침대 가서 하자고. 이 씨발 새끼야.”
순간적으로 미적인 우태원의 입에서 실소가 터졌다.
“쌀 뻔했네요. 제안이 너무 섹시해서.”
여전히 제 것을 넣은 몸을 받쳐 올린 우태원이 차유신에게 세면대를 짚게 했다. 우태원의 지시와 손길에 따라 움직이자 사뿐하게 몸이 반 바퀴 돌았고, 자연스럽게 마주 보는 자세가 됐다. 마지막으로 다리를 제 허리에 감게 한 우태원이 차유신의 몸을 안정적으로 안아 들었다.
욕실에서 벗어나 침실로 향하는 내내 배 안에서 두근대는 우태원의 음경을 느꼈다. 특히나 현현하게 박동하는 귀두가 더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듯 꾸물거렸다. 그 거대한 살덩이를 배 안의 점막들이 있는 힘껏 조여 대며 못지않게 꿈틀거렸다. 차유신은 양팔로 그의 목을 꽉 안았다.
“아까 굉장히 귀여웠어요.”
새 침대에는 시트와 이불이 곱게 깔려있었다. 위에다 차유신의 등을 눕힌 우태원이 중얼거렸다. 차유신이 바로 쏘아붙였다.
“귀엽다는 얘기 하지 말랬지.”
“미안해요.”
우태원의 목을 두른 차유신의 팔이 늘어졌다. 누그러진 차유신이 고갯짓을 했다.
“언제를 얘기하는 거야. 내가 침대 가서 하자고 할 때?”
우태원이 도리질을 쳤다.
“선배가 질투했었다고 고백할 때요.”
“그게 그렇게 좋았어?”
“네. 선배는 기억 못 하겠지만, 제가 지난밤에 취한 선배께 주문한 게 있었거든요.”
“뭔데.”
차유신이 갸웃거렸다. 우태원이 그때를 반추하듯 픽, 웃었다.
“새로운 얼굴 많이 보여 달라고요. 어젯밤에 술 취해서 어리광부릴 때처럼.”
차유신의 아랫입술이 살짝 깨물렸다. 차유신의 귀에 제 입술을 가져간 우태원이 나긋이 말했다.
“전 선배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지만, 때때로 보이는 새로운 모습을 유독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우태원의 목을 잡은 손가락이 달싹였다. 차유신은 재차 입술을 짓씹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그런 말을 한 자신이나 그때의 얘기를 들으며 옴짝달싹 못하는 자신이 본인 같지 않아서.
그 생소한 간극이 진저리 날 정도로 짜릿했다.
“안에 더 넣어.”
여전히 불뚝한 아랫배를 일별한 차유신이 지시했다. 우태원이 빙글거렸다.
“꺾이는 데까지요?”
차유신이 끄덕였다.
“응. 여기보다 깊숙한 데까지.”
부드럽게 다가온 우태원의 입술이 차유신의 볼에 축축한 훈기를 새겼다.
“따를게요. 선배.”
*
열린 창문 틈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뒤척인 차유신이 고개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자신에게 팔베개를 해준 채 옆에 누운 우태원의 얼굴이 꽤나 잘 보였다. 달빛이 이상할 정도로 그만 비추고 있었다.
이동하던 시선이 침대 모서리에 걸렸다. 절로 쯧, 소리가 나왔다. 또 침대 기둥이 박살 났다. 심지어 산 지 하루도 안 돼서. 괜히 열이 받은 차유신이 우태원의 귀를 꼬집었다. 낯을 일그러뜨린 우태원이 눈을 떴다.
“왜요. 선배.”
“짜증 나서.”
“침대 부숴서 그렇죠?”
“어떻게 알았어.”
“그 정도는 알아채죠.”
우태원이 가까이 오라는 양 팔을 뻗었다. 탐탁지 않게 보던 차유신이 못 이기는 척 그를 향해 몸을 끌어내렸다. 차유신의 이마가 우태원의 목에 파묻히고, 기꺼이 올라온 우태원의 팔뚝이 차유신의 허리와 등을 꽉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완전히 접착한 자세가 됐다.
“한윤태 선배가 얘기한 진선그룹 딸 선 자리, 안 나간다 했어.”
차유신이 뇌까렸다. 우태원이 조금 놀랐다.
“예의 중시하는 선배가 별일이네요.”
“그러게.”
차유신이 꼬집었던 우태원의 귀를 살살 어루만졌다. 하아. 우태원이 기분 좋은 신음을 냈다. 귓불까지 섬세하게 주무르고 난 차유신이 말했다.
“앞으로도 종종 네 앞에서 ‘별일’을 보여줄 생각이야.”
“왜요?”
“그런 걸 볼 때마다 놀라는 태원이 네가.”
차유신이 가만히 눈을 맞췄다.
“꽤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거든.”
우태원의 눈매가 휘었다.
“이런 말을 하는 선배도 별일이네요.”
긍정도 부정도 생략한 차유신이 그의 목에다 이마를 비볐다. 조금은 비릿하지만 따스한 살 내음이 났고, 차유신은 그것에 취한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렸다. 점점 녹아가는 두 사람의 몸 위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내려앉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최적의 기온과 기류 속에서 차유신은 비로소 머물 자리를 찾은 사람처럼 흡족히 눈을 감았다.
15년 만에 찾아온, 무탈한 9월 밤이었다.
<독어택 (Dog Attack)>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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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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