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장. 목줄 (35/48)

10.5장. 목줄

34.

[신진화당 집권 1년 차, 6월.]

“확실히 이번에 발의한 ‘한국형 CVC 특별법’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모범적인 대안 제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자금을 들여 공동으로 기관을 설립하고, 여기서 공개 심사를 통해 기업들을 지원한다면 기존 CVC 도입과 관련한 각종 논란을 충분히 불식할 수 있을 겁니다.” (*CVC: 기업형 벤처캐피털)

예정한 인터뷰 시간인 한 시간을 거의 채웠을 때, 맞은편의 중년남성이 웃으며 메모하던 수첩을 거뒀다. 대민일보 정치부장이었다. 옆에서 타이핑을 하던 어린 기자가 동의한다는 듯 주억거렸다. 다만 차유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서 100% 정답이라고 보긴 어렵고요. 추가적으로 보완을 해야죠. 업계 반응도 면밀히 따져보고요. 이론적으로 절충안이 안전해 보이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세상이란 게 중립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건 결코 아니잖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그래도 확실히 차 의원님은 센스가 있어요. 세상에 최선이라는 게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차선만큼은 기가 막히게 찾아온 게 차 의원님 아니십니까.”

정치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박신회 대통령을 신진화당에 끌어들여 당선시킨 것도 그렇고요.”

“과찬이십니다.”

“제가 너무 시간을 뺏었죠? 이제 슬슬 정리할까요.”

“예. 그러시죠.”

정치부장이 몸을 일으켰다. 맞은편의 차유신도 일어섰다. 곁에 있던 기자가 주섬주섬 노트북과 짐을 챙겼다. 재킷을 걸쳐 입은 정치부장이 의원실 내실을 휘 둘러봤다. 흘러가던 시선이 열린 문 너머의 바깥쪽 사무실에 걸렸다. 업무 중인 보좌진들을 일별한 그가 말했다.

“우태원 의원… 아니, 우태원 보좌관은 안 보이네요.”

“외근 때문에 잠깐 나가 있습니다.”

“기자들 눈에 안 띄게 하려고 숨긴 것 아니고요?”

정치부장이 허를 찔러왔다. 차유신은 억지로 입매를 끌어올렸다. 바지를 툭툭 턴 정치부장이 빙글거렸다.

“슬슬 얘기 나오던데요. 청와대에서 우 의원 꽂을 자리 준비하고 있다고. 대국민당에서 ‘어둠의 대통령’으로도 불리던 인물에게 보좌관이 웬 말입니까. 아무리 차 의원 밑이어도 그렇지.”

“글쎄요.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VIP 최측근인 차 의원이 모르면 그걸 누가 알아요? 농담도 참.”

허허실실 웃은 정치부장이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곧 살짝 몸을 굽히고 난 끝에 말을 이었다.

“우 의원 좀 그만 숨기십시오. 누가 보면 둘이 애인 사이인 줄 알겠어.”

차유신은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손사래를 친 끝에 짧은 농담을 건넬 뿐이었다.

“진짜 애인이면 어쩌려고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까.”

*

국회 근처에서 오찬 겸 회의를 마친 후 다시 의원회관으로 이동했다. 윤재희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걸어가던 차유신의 곁에서 까만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안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맣게 선팅한 차창을 힐끔거리던 윤재희가 주춤했다. 곧 차유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님. 저 차 혹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운전석 문이 열렸다. 한달음에 달려온 키 큰 남자가 차유신의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 이준경입니다.”

“압니다.”

차유신이 심드렁히 받아쳤다. 박신회가 가장 아끼는 경호실 직원으로, 그의 곁에서 종종 마주친 적이 있다. 선택받은 이유가 단순했다. 잘생기고 말을 잘하며 체력이 좋다고 했다. 그게 다인가요? 차유신의 질문에 박신회가 흔쾌히 답했다. 어, 그게 다야. 그거면 된 것 아니야? 너도 그렇고. 차유신은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잠깐 타시죠.”

남자가 뒷좌석 쪽으로 차유신을 안내했다. 손수 문을 열어준 그가 진중하게 주변을 엄호했다. 안에 누가 있을지는 뻔한 일이다. 차유신은 기꺼이 몸을 들였다. 착석하자마자 바로 문이 닫혔다.

“경호 좀 신경 쓰고 다니세요. 아무리 개인 일정이어도 그렇지.”

차유신이 대뜸 투덜거렸다. 옆에 있던 박신회가 피식거렸다.

“나 지켜줄 사람 여기 많잖아. 준경이도 있고, 유신이 너도 있고.”

“고작 둘 가지고 무슨….”

“저기 앞에 하나 더 있고.”

박신회가 돌연 조수석을 가리켰다. 뒤늦게 앞을 확인한 차유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살짝 고개를 튼 우태원이 난처한 고갯짓을 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선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일단 가서 얘기하자고. 준경이는 운전부터 해라.”

“예. 이동하겠습니다.”

남자가 핸들을 잡았다. 스르르 미끄러진 차가 서강대교로 빠졌다. 6월의 나른한 햇살이 감도는 도로를 안정적으로 질주했다. 박신회는 내내 창 너머의 세상만 바라봤다. 박신회가 말이 없었으므로 차유신도 입을 다물었고, 차유신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우태원도 말을 하지 않았다.

삼십 분 넘게 이동한 끝에 다다른 건 서울 외곽의 한 단독주택이었다. 작지만 섬세하게 꾸민 안락한 건물이었다. 평범한 가정집이라기보다는 적당한 중산층의 별장에 가깝다는 인상을 줬다.

“도착했습니다.”

대문 안쪽에 딱 한 대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박신회 쪽 문부터 열어줬다. 박신회가 내리는 걸 본 차유신과 우태원이 잇따라 문을 열고 나섰다. 우태원과 눈이 마주친 차유신이 턱짓을 했다. 박 선배 챙겨. 입 모양만 보고 알아챈 우태원이 가장 앞으로 나서며 박신회를 보좌했다. 차유신은 주변을 살피다 뒤편을 지키며 걸었다.

주택 안은 텅 비어있었다.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공간인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기적으로 관리는 되고 있는 듯 먼지 하나 비치지 않았다. 익숙하게 거실에 다다른 박신회가 털썩 소파에 앉았다. 그 맞은편 자리에 차유신이 앉았고, 차유신의 옆에는 우태원이 앉았다. 경호를 맡은 직원은 바깥으로 나가 대기했다.

“유신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박신회가 한 대를 빼 입에 물었다. 연이어 꺼내든 지포 라이터의 커버를 튕긴 그가 담배 끝에 붙을 붙였다. 알싸한 매연이 거실을 메웠다. 차유신은 심상히 고개를 들었다.

“네. 선배.”

“태원이가 그렇게 소중하니?”

의미심장한 질문에 차유신이 마른 침을 삼켰다. 정확히 어떤 의도로 올린 화두인지를 따지는 일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박신회는 겉보기엔 무르지만 속이 대단히 치밀한 사람이다. 자연히 대화할 때마다 서너 가지 경우의 수를 기본적으로 따져가며 답을 하는 일이 잦았다.

“제 의원실에서 키운 친구니, 소중한 게 당연한….”

“여의도에서 그렇게들 얘기하더라고. 차유신 의원이 우태원 전 의원을 너무나도 아낀다. 그래서 제 의원실에 꽁꽁 숨겨두고 밖에 나돌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훅, 연기를 뿜은 박신회의 입매가 호가 걸렸다. 옆에서 우태원이 움칠하는 게 느껴졌다. 차유신의 눈살이 미동했다.

설마 알아챘나.

“그간 신진화당이나 청와대 차원에서 태원이에게 많은 제안을 건넸어. 아예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것, 혹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 몸담는 것, 이외에도 신진화당 내 위원회라든지 연구소에 속하는 것…. 정말로 많은 오퍼가 갔거든. 솔직히 보좌관으로만 두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인재잖아. 그런데 유신이 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전부 컷을 했지. 우태원은 지속적으로 제 의원실에 있어야 하는 놈이라고.”

“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그만큼 차유신이 우태원을 많이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여의도 사람들은 해석을 하고 있는데. 내 눈에는 전혀 그게 아닌 것처럼 보여.”

박신회에 손가락에 걸린 담배가 내려갔다. 재떨이에 대고 연달아 재를 털고 난 그가 턱을 괴었다. 고저 없는 질문이 건네졌다.

“유신이 너, 태원이 자리를 어디까지 올려줘야 밖에 내놓을 거니?”

거실이 조용해졌다. 우태원의 얼굴이 휙 차유신을 향해 돌아갔다. 박신회가 있어 대놓고 티 내지는 못하지만, 꽤나 놀란 기색이었다. 차유신은 말없이 입만 축였다. 입 안에서 질근질근 점막이 씹혔다. 희미한 한숨이 나왔다.

하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박신회를 속인다는 건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얘기지.

“하반기에 신설하는 총리실 산하 민생정책위원회.”

차유신의 입에서 올곧은 한 마디가 떨어졌다. 박신회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개의치 않은 차유신이 못을 박았다.

“거기 위원장 자리 주시죠.”

“차유신.”

“그 정도 급 아니면, 우태원 못 내놓습니다.”

박신회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한층 고요해진 거실 안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곁에 있던 우태원이 버겁게 제 얼굴을 쓸었다.

툭. 박신회의 담배 끝에서 커다란 잿덩이가 떨어졌다. 유독 긴 연기를 흘리고 난 박신회가 고개를 젖혔다. 새하얀 천장을 감상하듯 올려다보다가, 문득 헛웃음을 쳤다. 굳어있던 이마가 풀어지고, 곧 평소의 안온한 인상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그 정도면 되겠네.”

갑작스러울 정도로 태연한 반응에 차유신은 가만가만 끄덕였다. 이내 거들 듯 말했다.

“네. 우태원이라면 그 정도는 돼야 합니다.”

박신회가 재차 비식거렸다. 짧게 혀를 찬 그가 곁눈질로 차유신을 봤다.

“꼬리가 아홉 개는 달린 여우 새끼 같으니라고. 내가 아주 너는 못 당하겠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차유신이 응수했다.

“선배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끌끌거린 박신회가 팔꿈치를 등받이에 올렸다. 손가락에 걸린 담배를 까딱거린 그가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태원이 위원장 올린 후에도 네가 지속적으로 케어는 해. 의정 활동을 일 년 넘게 쉬면, 아무리 똑똑한 놈이어도 바로 감 잡기 어렵다.”

“그야 당연한 일이죠.”

차유신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더없이 단조로운 대꾸가 나왔다.

“제 사람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너무 갑작스러워?”

박신회의 별장에서 나온 뒤 윤재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역현구 사도동에 있는 의원사무실로 이동했다. 보좌진들이 각자의 일정 때문에 자리를 비운 터라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조금 쌀쌀한 내실 안에서 우태원이 소파에 몸을 앉혔다. 차유신은 맞은편에 선 채 그를 내려다봤다. 텁지근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 아주 많이요.”

“어차피 넌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없는 운명이야. 고기를 한번 먹어본 놈이 어떻게 풀을 먹으면서 살아? 하반기에 민생정책위원회 위원장하다가, 내년 총선 때 역현구 갑으로 재출마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고, 혹여나 안 될 것 같아도 내가 되게 할 거야. 거기서 다시 배지 생활 시작해.”

“전 싫습니다.”

한껏 단호한 대답이었다. 차유신의 눈이 찡그려졌다. 내내 바닥만 보던 우태원이 얼굴을 들었다.

“선배 곁에서 떨어지는 거잖습니까. 싫습니다.”

“너 나하고 사실상 같이 살잖아. 집에 오면 만날 볼 텐데 대체 뭘 떨어진다는 거야?”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우태원의 낯이 험악해졌다. 오랜만에 보는 냉랭한 표정이었다.

“선배 의원실에서 선배 사람으로 사는 것과, 독립된 의원실에서 독립된 사람으로서 사는 건 명백히 다릅니다. 전 그러고 싶지 않고요.”

“우태원 너 대체 몇 살이야?”

대뜸 다그치는 말이 나왔다. 우태원은 대놓고 무시했다. 뚜벅뚜벅 다가간 차유신이 한숨을 쉰 뒤 몸을 낮췄다. 외면한 우태원을 뚫어져라 주시하다, 손을 올려 뺨을 덮어줬다. 꽤 긴 서슴거림 끝에 흘러간 우태원의 눈이 차유신을 담았다. 차유신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이건 내 명령이야.”

“선배.”

“역현구 갑 지역구에는 아직 과제가 남아있어. 역운회가 철수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 땅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조직폭력배와 불법 금융업자가 판을 쳐. 이거, 네가 해결해야 해.”

우태원의 볼을 타고 미끄러진 손이 그의 목덜미를 감았다. 부드럽게 타이르는 한 마디가 나왔다.

“너 아니면 이거 할 수 있는 사람 없어. 나하고 네가 가장 잘 아는 얘기잖아.”

우태원의 눈이 흐릿해졌다. 새까만 동공이 무거운 바위처럼 굴러갔다. 곧 흘러내린 눈꺼풀에 눈동자가 검은 반달 모양으로 접혔다. 마지못해 주억거린 우태원이 운을 뗐다.

“그러면 선배.”

“응.”

“키스해줘요.”

“키스해주면 내 말 들을 거야?”

“네.”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 순종적인 반응이었다. 엷게 웃은 차유신이 고개를 기울였다. 건조한 우태원의 입술에 제 것을 붙이고는, 살살 표피를 지분거렸다. 스르르 나온 혀가 그의 입술을 축이듯 핥았다. 우태원이 간간이 숨을 몰아쉬었다. 싸늘하던 내실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습기가 아찔해 차유신은 저도 모르게 목을 떨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짜릿한 순간이다.

“선배 말에 따를게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키스 끝에 떨어져 나가는 차유신의 턱을 대뜸 옭매 쥐며 우태원이 말했다. 차유신의 눈매가 휘었다.

“왜 그렇게 말을 잘 들어?”

우태원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렇게 훈련됐거든요.”

차유신이 조금 웃었다. 이어 부드럽게 우태원의 목을 안아줬다. 우태원은 기다렸다는 듯 차유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차유신도 버릇처럼 우태원의 이마에 얼굴을 비볐다. 낙원을 닮은 온풍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 달콤함에 도취된 것처럼, 그들은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개 냄새 나….”

냄새를 맡던 차유신이 잠꼬대 같은 소리를 냈다. 우태원이 들릴 듯 말 듯 피식거렸다. 차유신의 어깨를 감싼 손아귀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듣기 좋은 저음이 귀를 울렸다.

“잘 기억해둬요. 선배 거니까.”

차유신은 흔쾌히 눈을 감았다. 어둑해진 세상 속의 유일한 구원인 양 이 냄새를 음미했다. 맡으면 맡을수록 산소처럼 갈구하게 되는 신비한 냄새였다.

사랑하는 남자가 쥐여 준 황홀한 목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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