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선배.
어깨 주무르는 손길이 느껴졌다. 채 잠을 떨치지 못한 눈이 천천히 뜨였다. 막 이불 안으로 들어온 우태원이 차유신의 목 밑에 팔뚝을 집어넣고 있었다.
“약 먹어요. 밤보다 좀 떨어지긴 했는데, 아직도 체온이 높아요.”
“지금 몇 시야.”
“정오 좀 넘었어요.”
“내가 그렇게 오래 잤어?”
“네.”
끄덕인 우태원이 협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스락거리는 비닐봉투 소리가 났다. 안에서 나온 동그랗고 하얀 만두가 차유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거 먹고 먹어요. 빈속에 약 먹을 순 없는 일이니.”
“뭐야, 이게.”
“시간이 없어서 가까운 식당가서 포장해왔어요. 꽤 맛있는 집이라고 소문난 곳이긴 해요.”
“안에 고수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우태원이 미간을 좁혔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갸웃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너 먹어봐. 있나 보게.”
차유신이 대뜸 만두를 들이밀었다. 우태원이 고분고분 베어 물었다. 골똘히 내용물을 씹고 난 그가 답했다.
“없는 것 같아요.”
“줘 봐.”
차유신이 얼굴을 내밀었다. 삼 분의 일쯤 사라진 만두를 적당히 한입 물었다. 이어 잘근잘근 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낯이 찌푸려졌다. 차유신이 싫어하는 향수 맛 풀냄새가 났다.
“있잖아.”
“고수가 있었어요?”
“너 고수가 뭔지 몰라?”
“글쎄요. 저는 잘….”
머뭇거린 우태원이 말을 이었다.
“정확히 어떤 맛이 고수인지 몰라서요.”
“너 미각 진짜 이상하다.”
“혀가 예민하지 않아요. 그래서 딱히 싫어하는 음식이 없어요. 단 걸 좀 불편하게 여기는 정도.”
만두를 봉투 안에 집어넣은 우태원이 중얼거렸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고요.”
“그냥 약이나 줘. 몸살약은 공복에 먹어도 상관없으니까.”
“조금이라도 먹어요.”
“거기 고수 들어갔잖아.”
“고수 빼고 줄게요.”
차유신을 타이른 우태원이 새 만두를 꺼내 반으로 쪼갰다. 안에 들어간 파란 풀을 피해 고기와 만두피만을 골라 동그랗게 뭉친 후, 차유신의 입 앞까지 갖다줬다. 우태원이 턱짓을 했다.
“아, 해요.”
뚫어져라 보던 차유신이 끝내 입을 열었다. 곧 들어온 음식물을 우물거리며 씹었다. 아까와 달리 화장품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맛있었다.
“먹을 만해요?”
“어.”
“좀 더 줄게요.”
우태원이 다시 고기와 만두피만 뭉친 것을 입에 넣어줬다. 차유신은 모이를 받아먹듯 입을 움직였다. 그런 식으로 만두 한 개 분량을 먹이고 난 우태원이 약과 물을 건넸다. 차유신은 기다렸다는 듯 약을 털어 넣고 냉수를 마셨다. 꽤 개운해졌다.
“궁금한 것 있어요.”
약을 먹자마자 또 곤로해져 누워버린 차유신의 곁에서 우태원이 몸을 뉘었다. 차유신이 고개를 까딱했다.
“뭐.”
“왜 선배는 9월마다 아픈 거예요.”
미적거린 차유신이 눈을 치떴다. 한껏 진지한 우태원의 낯이 시야에 들어왔다. 갈피를 잡지 못한 입술이 더듬거렸다. 젖힌 커튼 틈으로 들어온 가을의 햇살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짙은 매연 틈바구니에서도 햇살만큼은 오롯했다. 빛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차유신이 작게 고개를 떨궜다.
“너 첫 경험 얘기해봐.”
대뜸 던진 말에 우태원이 멈칫했다. 똑바로 쳐다본 차유신이 쏘아붙였다.
“그거 얘기하면 답해줄게.”
“저하고 거래하시는 겁니까.”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너하고 무슨 거래를 해. 시키면 따르는 거지.”
“그렇긴 하죠.”
딱히 반박하지도 않은 우태원이 제 머리를 쓸었다. 지나간 기억을 억지로 반추하듯 관자놀이를 지분거리다, 조심스레 입을 뗐다.
“솔직히 저도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요.”
“대체 얼마나 많이 자고 다닌 거야.”
“그래서라기보다는…. 그냥 딱히 의미를 두고 그런 걸 한 적이 없어서요.”
우태원의 눈동자가 흘러갔다. 재차 생각을 거듭한 그가 말을 이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데이지’ 사장이었던 것 같아요.”
“데이지?”
“사도동에 있는 룸살롱이에요.”
“첫 경험을 룸살롱에서 했어?”
“거기서 한 건 아니고요. 석일태 회장 밑에 있다 보니 그쪽 누나들하고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알고 지내게 됐거든요. 룸살롱을 일부러 간 적은 없어요. 갔다 해도 석일태 회장 찾으러 간 것 정도.”
우태원이 시트를 두드렸다.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차유신의 눈초리가 미동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동시에 상황을 이해했다. 역운회, 그리고 사도동의 여자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자연히 우태원도 어릴 때부터 그쪽 여자들의 샴푸 냄새를 맡으며 자랐을 거다.
“데이지 사장, 말이 사장이지 엄청 젊었어요. 20대 중반 정도.”
“넌 그때 몇 살이었는데.”
“아마도 16세요.”
“너 막 나갔구나.”
“설마요. 운도동에서 저 정도면 모범생이었어요.”
우태원이 들숨을 삼켰다. 그의 어조에 권태로움이 어렸다.
“어릴 때부터 농담 식으로 저 동정 떼어주겠다는 누나가 많았는데, 어차피 장난인 걸 아니까 그냥 넘기곤 했어요. 데이지 누나도 그중 하나였고요. 틈만 나면 동정 떼어주겠다고 장난치는 그런 누나. 어느 날 역운회 사무실에 일이 있어 온 그 누나와 대화하면서 시간 보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창문 너머에서 비치는 햇살이 너무 찬란해서.”
우태원이 눈을 깔았다. 조금조금 그의 기억이 선명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 햇살을 고스란히 담은 누나의 눈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누나보고 아름답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하재?”
“아뇨.”
고개를 저은 우태원이 마저 답했다.
“말도 없이 와서 바지부터 벗겼어요.”
차유신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상상 이상으로 긴박한 전개다. 저번에 자신에게 포르노에서 본 듯한 전개라고 하더니, 따지고 보면 이쪽이 더 가까운 것 아닌가. 돌연 멍해진 차유신을 향해 우태원이 완전히 몸을 틀었다. 곧 고해성사하듯 읊조렸다.
“이후에도 종종 저와 하는 걸 원하는 사도동 누나들이 있었고, 그러면 대체로 했어요. 왠지 해야 할 듯한 의무감이 들었거든요. 그 누나들은 역운회를 싫어했고,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석일태 회장의 아들이나 다름없는 저와 자는 걸 좋아했어요. 그 아슬아슬한 간극을 즐기는 게 누나들의 스트레스 푸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아무하고나 다 잤어?”
“다 잔 건 아니고…. 나름대로의 기준이 몇 가지 있었어요.”
우태원의 톤이 차분해졌다. 동시에 의미심장한 곁눈질이 차유신을 쓸었다.
“우선 눈. 제가 좋아하는 눈이 있어요. 눈동자가 맑아야 해요. 태양을 담아놓은 것처럼 광채가 나는 눈이어야 해요.”
“데이지 누나처럼?”
“네.”
“그리고 또.”
“또 다리가 예쁘고….”
내려간 시선이 샤워가운만 걸친 차유신의 다리를 훑었다. 숨을 고른 우태원이 말을 맺었다.
“욕 잘하는 여자.”
차유신의 턱이 움칠했다.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너 이상성욕자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태원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차유신을 오롯이 담은 그의 눈이 휘었다.
“선배하고 조금이라도 공통점이 없으면, 안 섰어요.”
차유신의 입이 오므라들었다. 새삼 자신을 탐색해오는 눈빛에 숨이 막혔다. 이유 없이 머리가 울렸다. 올라간 손이 애꿎은 이마를 짓눌렀다. 심박 수가 죽어갔다.
“너 진짜 나를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봤구나.”
허탈한 탄식이 나왔다. 우태원은 가만히 눈을 맞춰왔다. 메마른 입 안에서 퍼석한 혀가 굴러갔다. 차유신의 눈동자가 기울었다.
우태원이 성적 취향에 자신이 스며있을 거라는 생각은 언젠가부터 하고 있었다. 희미한 기억이긴 하지만 자신은 여섯 살 때 세 살짜리 우태원을 봤고, 열일곱 살 때 열네 살짜리 우태원을 봤다. 그리고 그때의 인상이 우태원의 뇌리에는 아주 강하게 남은 모양이다. 차유신은 의도치 않게 우태원의 첫사랑이 됐다.
하지만 차유신은 때때로 생각한다. 자신이 누군가의 첫사랑이 될 만한 자격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의문. 그런 걸 몇 번이고 자문한 적이 있다.
‘그렇다’는 대답이 단숨에 돌아온 적은 없다.
“난 고등학생 때 정훈석이 죽은 사건에 대해 지금도 죄책감이 없어.”
또박또박한 언어가 나왔다. 우태원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한껏 그를 주시한 차유신이 덧붙였다.
“열아홉 살 때 내 가짜 부모님이 죽은 걸 방관한 일에 대한 죄책감도, 역시 없어.”
침실이 고요해졌다. 저편에서 째깍거리며 시계 침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우태원은 그저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차유신의 입만 응시하고 있었다. 차유신의 목이 무거워졌다. 덩달아 어조가 묵직해졌다.
“죄책감을 갖고 싶지 않았어. 죄책감을 가지면, 죄인이 되잖아.”
“그러면 선배에게 그 사건들은 아무것도 아닌 건가요.”
“표면적으로는.”
단호하게 답한 차유신이 고개를 돌렸다. 이동한 시선이 창문 너머에 걸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스모그 틈으로 비치는 빗줄기가 이 와중에 따스했다. 미안할 정도로 부드러운 햇살이었다.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그 시기를 아예 묶어둬야 해. 9월, 비오는 날. 그 키워드에 두 과거를 봉인해두고 철저하게 외면하는 거야. 회피하는 거지. 직접적으로 대면할 용기가 없다면 아예 도망치는 게 나은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왜 저에게선 도망치지 않은 거죠?”
우태원이 돌연 상체를 일으켰다. 차유신의 등이 반사적으로 밀려났다.
“나는 선배가 그렇게나 피하고 싶어 하는 과거에 묶인 사람이잖아요.”
우태원이 차유신의 얼굴 옆을 짚었다. 연이어 다른 쪽이 반대편을 짚었다.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음지로 물든 그의 낯에 이따금씩 광채가 스친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찾는 존재. 차유신은 감탄하듯 입을 열었다.
“그게 내가 널 사랑한 이유야.”
우태원의 머리통이 털컥거렸다. 차유신이 얼핏 미소 지었다.
“내가 언젠가 얘기했지. 역치. 모든 현상에는 역치가 존재해. 기존의 욕심을 넘어서는 욕망과 직면하면 결국 굴복하게 돼.”
차유신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나 발버둥을 쳤어. 그런데 생각처럼 안 되더라고. 처음부터 너는 도망칠 수 없는 대상이었으니까. 내 욕심을 넘어서는 유일한 욕망, 너는 변수 그 자체였어.”
차유신의 손이 올라갔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그의 뺨을 쓸고는, 나긋나긋 말했다.
“너 아주 피곤한 사람하고 엮인 거야. 재수 없게도.”
곧 상체를 세웠다. 여전히 부들거리는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은근한 비아냥이 새어 나왔다.
“어때, 잘못 걸렸다 싶지.”
우태원의 입에서 쇳소리 같은 호흡이 터졌다. 홀린 듯 차유신을 힐긋한 그가 답했다. 더없이 견고한 어조였다.
“네. 아주 황홀할 정도로요.”
지잉. 시트에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차유신의 얼굴이 돌아갔다. 액정에 윤재희의 이름이 떠있었다. 손을 내민 차유신이 핸드폰을 쥐었다. 이어 통화버튼을 누른 뒤 귀에 가져갔다. 바로 윤재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차 대기시켰습니다. 슬슬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 내려갈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차유신이 몸을 일으켰다. 긴 숨을 내쉬고는 침실을 둘러봤다. 지난밤 자신이 벗어던진 그대로 널브러진 옷가지가 보였다. 왠지 웃음이 나왔다. 이 지리멸렬한 흔적을 보고 있자니, 어떤 확신이 들었다.
다시 상해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음에 만났을 땐 섹스하자.”
셔츠부터 잡아 올린 차유신이 말했다. 등 뒤의 우태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계산을 하는 것처럼 뜸을 들이고 난 그가 물었다.
“다음, 언제요.”
“글쎄. 그건 네가 알겠지.”
“전 아직 상해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습니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냐. 나하고 상관없는 사항은 일일이 따지지 말자는 주의거든.”
차곡차곡 옷을 다 챙겨 입은 차유신이 허리를 짚었다. 뒤를 돌아보자, 침대에 걸터앉은 채 차유신을 올려다보는 석고상 같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차유신이 빙글거렸다.
“빠른 시일 내 오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아. 일부러 너 쫓아온 것만 봐도 알잖아.”
“명확한 데드라인을 주시면 안 될까요.”
“네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접했을 때.”
“그건 너무 어려운 대답이에요.”
우태원이 정말로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찌푸렸다 차유신은 잠자코 등을 보였다. 그대로 침실 문을 열고 나서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내가 어렵지 않게 만들 거야. 그것까지 놓치면 넌 진짜 버려질 줄 알아.”
정말로 쉽고 간결하게, 우태원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거다.
그때가 이 지난한 여행을 종식하는 순간이다.
*
[대국민당 집권 5년 차, 12월 23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하얗게 쏟아지는 눈송이를 사람들은 신의 선물처럼 반겼다. 꽁꽁 언 화단에 걸터앉은 차유신이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매큼한 연기가 코를 스쳤다.
“담배 참 지독하게 못 끊으시네요.”
바닥을 본 차유신이 뇌까렸다. 맞은편에서 헛헛하게 웃는 소리가 돌아왔다.
“다른 건 다 끊겠는데, 이건 도무지 못 끊겠어.”
“이해합니다.”
“유신이 넌 용케도 끊었네. 나는 네가 내 마지막 내 흡연 동지일 줄 알았는데.”
차유신의 고개가 들렸다. 시시덕거린 박신회가 재차 담배를 물고 있었다. 입술 틈으로 눈보다도 하얀 운무가 번졌다.
“참 신통방통한 일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웃지도 않은 차유신이 어깨를 움츠렸다. 조금 추웠다. 그러면서도 춥지 않았다. 추운 건 차게 식은 공기 때문이고, 춥지 않은 건 이따금씩 뜨거워지는 심장 때문이다.
“곧 출구조사 결과 나옵니다.”
시계를 본 차유신이 중얼거렸다. 오후 5시 40분에 가까워지는 침이 보였다. 박신회는 딱히 반응하지 않고 담배만 빨았다. 여의도 신진화당 당사의 흡연 구역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저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몇몇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치며 말을 주고받았다. 저거 박신회랑 차유신 아니야? 설마. 긴가민가 하면서도 그들은 끝내 부정하는 것에 합의했다. 대권 후보와 그 오른팔이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앞두고 다 보이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마음 같아선 계속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한숨 섞인 연기를 뿜은 박신회가 담배 필터를 만지작거렸다. 조금조금 불투명해지는 그의 눈망울이 빙판처럼 얼었다.
“사람 일이 생각대로 참 안 되는 것 같아.”
“후회하십니까.”
“설마.”
툭, 툭, 재를 떨고 난 박신회가 고개를 젖혔다. 떨어지는 눈송이가 호위병처럼 그를 에워쌌다. 한껏 가라앉은 한 마디가 들렸다.
“한번 후회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그러니 처음부터 안 하는 게 낫지.”
“현명하십니다.”
“유신이 너는 어때.”
박신회의 얼굴이 돌아갔다. 뚫어져라 자신을 향하는 눈길에 가슴이 울렸다. 차유신은 가만히 구둣발을 지르밟았다. 쌓인 눈 더미가 침몰하는 빙산처럼 밀려났다. 고개가 날연히 끄덕여졌다.
“저도 후회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럼 담배는 왜 끊었어.”
박신회가 비식거렸다. 차유신의 눈이 찡그려졌다.
“담배 피운 걸 후회해서 끊은 것 아니야?”
“전혀요.”
“그러면.”
“끊은 건….”
차유신의 눈이 굴러갔다. 새까맣게 말라죽은 화단의 가지들이 보였다. 이파리를 잃은 사체들이 초연히 차유신을 관찰한다. 차유신은 가만히 입을 다셨다. 축 늘어진 끄트머리가 섬찟한 것을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러나 차유신은 저것들이 비로소 포근하다.
무덤이 무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이 서른둘에 신념이 무너지는 걸 경험했다. 그러고 나자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세상이 이락 같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숨 쉴 수 있는 법을 배웠거든요.”
차유신의 입매가 길어졌다. 박신회가 크게 주억거렸다. 꽁초만 남은 담배를 쥔 손가락이 허공에서 너울거렸다.
“참으로 부러운 얘기다.”
당사 위편에서 ‘와’하는 함성이 터졌다. 길을 오가던 몇몇 사람도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박신회와 차유신의 핸드폰이 가쁘게 울려댔다. 차유신의 시선이 내려갔다. 화단에 올려둔 핸드폰 액정에서 갓 들어온 메시지가 비쳤다.
<대선 출구조사 결과>
K
기호 1 김동건(대국민당) 27.4%
기호 2 박신회(신진화당) 54.7%
S
기호 1 김동건(대국민당) 25.9%
기호 2 박신회(신진화당) 58.2%
M
기호 1 김동건(대국민당) 30.1%
기호 2 박신회(신진화당) 52.8%
거리에서 누군가가 박신회를 연호했다. 몇몇 사람들이 따라 했다. 쩌렁쩌렁한 소리에 귀가 뻐근했다. 차유신은 재차 앞을 봤다. 세상이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당사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남은 연기만 흘리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높낮이 없는 축하가 건네졌다. 보지도 않은 박신회가 빙긋 미소 지었다.
“너도 축하한다.”
*
페인트 냄새가 나는 공간에 앉아있었다. 앉은 의자에서 들려오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감상하다 시선을 옮겼다. 데스크 위에 놓인 ‘국회의원 차유신’이라는 명패가 눈에 띄었다. 이어 흘러간 눈길이 적당한 평수의 사무실을 둘러보다, 커튼이 젖혀진 창 너머에 꽂혔다.
하얀 점들이 나풀거리며 잿빛 하늘을 수놓고 있다. 보다 뒤에는 환하게 빛나는 역현 T시티 단지가 있다. 서서히 내려간 고개가 의자 등받이에 묻혔다. 눈보라를 헤매다 지친 사람처럼 눈이 가물거렸다.
정말로 모든 게 끝났다.
따지고 보면 명확한 종착점은 아니다. 애초에 종착점 같은 걸 세워둔 적이 없다. 차유신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부딪치는 대로 살았고 그 과정에서 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그러다 보니 오늘이 왔다. 완전한 끝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쉴 자격이 있다.
간만에 맞이하는 달디 단 휴가다.
삐빅. 알람 소리가 들렸다. 늘어져 있던 고개가 돌아갔다. 데스크 위에 놓인 핸드폰 액정에서 새 메시지가 깜빡였다.
반경 100m 내 진입.
무릎을 덮은 손가락이 꿈지럭거렸다. 성윤일이 개발한 역현구 감시시스템은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심지어 더 업그레이드됐다. 다만 이제는 비공식적으로 가동한다. 감시할 역운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시스템은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돌아간다.
뚜벅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편안했다. 차유신은 꿈을 꾸듯 눈을 감았다. 처음 들어온 사무실, 처음 앉은 의자가 이상할 정도로 안락하다. 무의식에 봉인해두고 외면해 온 온 옛 기억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리라.
여기가 바로 ‘여울’이 있던 자리다.
사도동이 통째로 재개발에 들어가고, 이중 상당수 부지가 T시티 건립에 쓰였다. T시티에 속하지 못한 땅은 기존 소유주가 지원금을 받고 새 건물을 올리는 데 쓰거나 또 다른 개인에게 분양했다. 이에 따라 T시티를 중심으로 새 건물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여울이 있던 건물의 주인 역시 이를 허물고 새 빌딩을 세웠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7층짜리 상업용 건물이었다. 그런데 건물주의 재정적인 사정으로 인해 완공 전 공사가 중단됐다. 주인은 매각을 원했지만, 대로변에서 꽤 떨어진데다가 상업지구도 아닌 애매한 곳에 있어 쉽지 않았다. 빌딩은 삼 년 넘게 유령 건물이 됐다.
차유신은 그 건물을 샀다. 호적상 부모인 차재후와 류민경이 남긴 유산에 그간 모아온 돈을 더해 거의 전 재산에 가까운 자금으로 매입했다. 이후 남은 공사를 치르고, 그중 가장 위층에 자신의 의원사무실을 세팅했다. 아직 분양이 이뤄지지 않아 텅 빈 건물이지만, 일단 의원실사무실은 다음 달에 이곳에 입주한다.
이제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실 문손잡이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곧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실내 안에서도 상대방의 실루엣은 꽤나 뚜렷이 드러났다. 차유신은 소리 없이 웃었다. 참으로 그다운 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찾아왔네.”
차유신이 칭찬했다. 우태원이 심상히 답했다.
“익숙한 주소지였으니까요.”
“부고는 어디서 봤어.”
“상해에 배포되는 한인용 신문을 통해 봤습니다.”
툭. 데스크 위에 신문뭉치가 떨어졌다. 차유신은 잠자코 펼쳐진 페이지의 하단을 훑었다.
[訃告] 故 여울
12월 23일 별세
빈소 서울시 역현구 사도동 13-24
“인터넷 뉴스에도 꽤나 나왔을 텐데, 신문을 봤네.”
차유신이 물끄러미 우태원을 봤다. 우태원은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는 끝까지 악질이에요.”
“그런 사람에게 뭐 하러 왔어.”
차유신이 약을 올렸다. 밭은 숨을 고른 우태원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쑥 찾아든 손이 차유신의 팔뚝을 거머쥐었다. 꽤나 아팠지만, 차유신은 신음하지 않고 눈만 치떴다.
멀리서 비치는 T시티의 섬광이 자신의 개를 비추고 있었다.
“섹스하러 왔어요.”
단호한 대답에 묵묵하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고갯짓을 한 끝에 우태원의 앞까지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유로운 대꾸가 나왔다.
“너 진짜 머릿속에 그딴 생각밖에 없구나.”
우태원이 또박또박 응수했다.
“네. 제 머릿속에는 선배와 자고, 선배를 보고, 선배의 냄새를 맡는 생각밖에 없어요.”
우태원의 머리가 기울었다. 차유신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고 난 그가 탄식했다.
“세 살 때부터 그렇게 살았어요. 그걸 이제 와서 어떻게 바꿔요.”
아. 차유신의 입술이 짧게 떨어졌다. 곁눈질로 본 T시티가 점점 옅어졌다. 곧 어둠이 되고, 흔적도 없이 소거됐다.
T시티가 사라진 자리에서 긴 세월 잊어왔던 것들이 고개를 든다. 여울, 사도동 집창촌, 집창촌의 누나들, 정훈석, 그리고 어머니.
짙은 어둠을 뚫고 노을이 찾아들었다. 어린 시절의 개를 머금은 무연한 잔상이었다. 차유신은 음미하듯 우태원의 목을 끌어안았다. 우태원은 흔쾌히 차유신에게 자신을 내줬다. 아주 오랫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체취를 각인했다.
*
깊디깊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고난한 과거들이 침식했다가, 만개한 연꽃이 되어 떠오를 때까지 차유신은 스스로에 추를 단 채 내려놓았다. 군데군데 흠집 난 자신을 이어붙이고, 거기에 칠을 해 반들반들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하나의 태양이 연소하고, 또 다른 이름의 대지가 떠올랐다.
신선한 햇살 밑에서 떠올랐다. 축축한 몸을 털어가며 맑은 수면을 눈으로 헤아렸다. 물 위에 비친 건 차유신이기도 하고, 여울이기도 했으며. 그간 방관하며 지내 온 이름 잃은 기억들이기도 했다. 어떤 것은 망막을 도려낼 정도로 쓰라린 모습을 지녔지만, 차유신은 그것조차 사랑하기로 했다.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든 차유신은 이제 누군가에게 반드시 찾아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할 자격이 없다 해서 저버릴 자신의 이름은 더 이상 없다.
차유신에게는 그저 차유신으로서 살아가는 일만 남았다.
“선배.”
굼틀거리는 손가락이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차유신의 눈꺼풀이 들렸다. 내려간 시선이 발 쪽에 머물렀다. 몸을 기운 채 불완전한 발가락을 세고 있는 우태원이 보였다. 차유신의 눈이 깜박였다.
“지금 몇 시야.”
“11시요.”
“또 엄청 잤네.”
“많이 피곤한 것처럼 보였어요. 대선 때문에 바쁘셨던 것 같아요.”
“너는 좀 잤어?”
“안 잤어요.”
예사롭게 대꾸한 우태원이 손가락을 펼쳤다. 네 개의 발가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끼우고는 장난을 치듯 주물럭거렸다. 두 사람의 재킷을 겹쳐 덮고 있던 차유신의 알몸이 꿈지럭거렸다. 절로 호흡이 노곤해졌다.
밤 내내 사무실에 있었다. 한참을 끌어안고 있다 보니 알아채지 못한 새 둘 다 성기가 잔뜩 발기한 채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것을 비벼대다가, 옷을 벗은 차유신이 우태원의 위에 먼저 올라탔다. 그리고 오랜만의 섹스를 했다. 처음엔 데스크에 앉아서 했고, 다음에는 소파로 자리를 옮겨서 했다.
살면서 한 정사 중에 가장 길었다. 늦은 저녁에 시작을 했는데 숨 고를 틈도 없이 자정을 넘겼고, 어렴풋한 달빛에 잠긴 새벽을 헤매다가, 희미하게 동이 트는 걸 확인한 후에야 정신을 잃었다. 그 사이 우태원은 세 번인가 네 번 사정했고, 차유신도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사출했다.
“안 졸려?”
차유신이 물었다. 우태원은 도리질을 쳤다.
“하나도요.”
“안 자고 뭐했어.”
“선배 봤어요.”
발을 감싼 우태원의 손아귀가 견고해졌다. 차유신은 가만히 소파에 올린 발목을 까딱거렸다. 우태원이 조금 웃었다.
“전혀 안 질리더라고요.”
“새끼 떨어져 나간 발까지도?”
“네.”
발가락 틈에서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곧 부드럽게 발등을 쓸었다. 기분 좋은 온기에 차유신의 척추가 울렸다. 우태원이 칭찬했다.
“선배는 발가락도 예뻐요.”
“그건 네가 이상성욕자라 그런 거지.”
“틀린 말은 아니네요.”
우태원이 웃지도 않고 수긍했다. 차유신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다리 하나를 뻗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우태원의 앞섶을 보다가, 두꺼운 허벅지에 자신의 발목을 올렸다. 장난기 어린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잠을 안 자도 여기는 평소 사이클 따라가는 모양이네.”
허벅지를 비벼대던 발이 좀 더 나아갔다. 두툼한 검은색 앞섶을 툭, 건드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우태원이 어물거렸다.
“보통은 아침에 서니까요.”
“그렇게 하고서 또 하고 싶어?”
“밤에 많이 해서 괜찮습니다.”
“그래.”
차유신이 예사로이 발끝을 세웠다. 딱딱한 앞섶 윗부분을 꾹, 누르고는 미끄러뜨렸다. 우태원이 자못 괴로워했다.
“선배. 저는 괜찮다고….”
“내가 안 괜찮아.”
차유신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음낭이 있는 곳까지 다다른 발가락이 마사지를 하듯 지분거렸다. 우태원의 미간에 금이 갔다.
“너하고 아침에는 한 적 없잖아.”
“똑같을 텐데요.”
“그래도 난 궁금해. 그리고 궁금한 건 꼭 까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진짜 이러실 겁니까.”
“어. 이럴 거야.”
차유신이 대놓고 이기죽거렸다. 짙은 숨을 고르고 난 우태원이 갑자기 걸터앉은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곧 소파 시트에다 양 무릎을 딛고는, 손을 뻗었다. 차유신의 허리와 허벅지 밑으로 실팍한 팔뚝들이 들어왔다. 속옷 한 장 걸치지 않은 몸이 훅 안아 들렸다. 덮고 있던 두 개의 재킷이 툭, 떨어졌다.
“섹스 많이 좋아하시네요. 아닌 쪽인 줄 알았는데.”
“알고 있던 게 맞아. 원래는 별로 안 좋아했어.”
제 허벅지에 차유신의 엉덩이를 앉히고 난 우태원이 부푼 앞섶을 더듬었다. 빠르게 버클이 풀리고, 지퍼와 속옷이 잇달아 내려갔다. 시뻘겋게 발정한 음경을 드러낸 그가 차유신의 몸을 고쳐 안았다. 곧 시선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좆 넣어줄 테니까, 밤에 했던 것처럼 또 해주면 안 돼요?”
“내가 밤에 뭐 했는데.”
“밑에서 꽉 조이고 못 빼게 했잖아요.”
“그랬어?”
차유신이 능청스럽게 반문했다. 우태원이 한숨을 쉬었다.
“선배가 자주 제멋대로라는 걸 제가 잠시 잊었네요.”
우태원이 손이 차유신의 허벅지 안쪽을 헤집었다. 활짝 벌려 틈을 만들고는, 차유신의 엉덩이를 끌어당겨 가며 제 치부에 밀착시켰다. 거기서 떨어진 손이 이번에는 우태원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불끈한 귀두가 회음부에 마구 문질러졌다. 차유신의 구멍이 움찔거렸다. 입술 틈으로 탄식이 샜다.
“하으으….”
“조일 거예요?”
“몰라.”
차유신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이내 우태원의 목에다 코를 박고는, 살살 비비적거렸다.
“넣어. 빨리.”
우태원이 피식거렸다.
“선배 조를 때 엄청 귀여워요.”
말이 끝나자마자 입구를 콱, 뚫어가며 귀두가 쑤시고 들어왔다. 한달음에 내벽 중간까지 처박힌 남근이 뱃가죽을 울려가며 꿈틀거렸다. 차유신이 발가락을 오므렸다.
“으음….”
“고개 들고 나 봐야죠.”
“보고 있…. 으응….”
“아니에요. 그냥 보지 마요.”
다가온 우태원의 입술이 차유신의 귓불을 깨물었다. 차유신의 속눈썹이 하늘거렸다.
“눈 마주치는 순간 쌀지도 몰라요. 지금 선배 얼굴 심하게 색정적이거든요.”
은근한 희롱에 차유신의 목덜미가 경련했다. 뻐근해져 오는 아랫배 때문에 의지와 무관하게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우태원의 남근에 착 달라붙은 구멍이 뻐끔거렸다. 우태원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아…. 조금만 힘 빼요.”
“조이라며….”
“지금은 안 돼요. 이렇게 하면 들어가고 싶은 데까지 못 들어가잖아요.”
“어디까지 넣을 건데.”
차유신이 멀거니 눈을 맞췄다. 굵은 침을 삼킨 우태원이 답했다.
“당연히 끝까지요.”
우태원의 손이 차유신의 복부를 덮었다. 경직된 복근을 달래듯 주물러오는 손길에 괜한 소름이 일었다. 울렁이던 뱃가죽에서 일순간 긴장이 가셨다. 틈을 놓치지 않은 우태원이 훅 치골을 밀어붙였다. 순식간에 내벽 끄트머리에 다다른 귀두에 지난밤 부르튼 점막이 움푹 팼다. 차유신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으응…!”
“더 넣을게요.”
“여기까지만 해. 하아…. 지금 좀 아파.”
“싫어요.”
단호하게 거절한 우태원이 내벽에 꽂힌 귀두를 빙글 틀었다. 자극당한 점막이 거세게 쿨렁이고, 혈류가 알싸해졌다. 자지러지게 턱을 덜컥이고 난 차유신이 우태원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동시에 꺾이며 들어온 생식기가 적잖게 혹사당한 점막을 꾹꾹 짓밟았다. 차유신의 탄성이 커졌다.
“아아…. 하으으…!”
“어제 싼 게 꽤 남아있어요. 깊숙이 들어간 건 못 빼거든요.”
“으읏…. 하아.”
“선배가 임신할 수 있는 몸이었다면 분명히 어젯밤에 제 애를 뱄을 거예요.”
“말이 되는 소리를 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도 싸둘게요.”
상냥하게 속삭인 우태원이 허리를 튕겼다. 잠시 빠졌던 음경이 사뭇 사납게 들이닥쳤다. 아. 비명을 내지른 차유신이 우태원의 목에 손톱을 박았다. 우태원의 어조가 진중해졌다.
“백 번쯤 싸면, 한 번쯤은 진짜 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흐늘거리던 점막이 우태원의 성기를 쫀쫀하게 감았다. 숨을 들이켠 우태원이 능숙한 허릿짓을 시작했다. 우태원의 성기 모양에 맞게 길들여진 길을 따라 파고든 음경이 곧 휘어지며 컴컴한 내벽을 찔러댔다. 열두 시간 가까이 담금질 당하다 끝내 물크러진 점막에 열꽃이 피었다.
소변 마려운 사람처럼 벌벌거리고 난 차유신이 우태원의 목을 긁어댔다. 손톱에 진득한 핏물이 맺혔다. 익숙한 듯 감내한 우태원이 굴신을 이어갔다. 철썩이는 마찰음이 반복될 때마다 우태원의 허벅지와 차유신의 엉덩이가 발갛게 물들었다. 배 안에서 내장기관이 발작하듯 뒤틀렸다. 차유신의 숨이 가빠졌다.
“아, 좀…. 흐읍…!”
“이제 조여도 돼요.”
우태원이 말했다. 불현듯 차유신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틈만 나면 제 페이스에 자신을 몰아넣는 우태원이 갑자기 괘씸히 여겨졌다. 이를 질근거리다 허리를 확 쳐올렸다. 동시에 힘이 들어간 허벅지가 꽉 조였다. 우태원이 낮게 신음했다.
“하아…. 선배.”
“이러면 돼?”
“되긴 하는데….”
“하는데, 뭐.”
“아…. 좀.”
난처한 듯 제 얼굴을 쓸고 난 우태원이 차유신의 어깨에 이마를 붙였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등을 타고 미끄러졌다. 우태원이 헐떡였다.
“좋아서… 기절할 것 같아요.”
“그렇게 좋아?”
“네.”
우태원의 눈이 조금 감겼다. 축축한 한 마디가 덧붙었다.
“선배 안에 완전히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 미칠 정도로 좋아요.”
문득 테이블 위에 둔 핸드폰이 울려댔다. 힐긋 확인한 차유신이 사색이 됐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고는, 서둘러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은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절도 있는 한 마디가 나왔다.
“네. 박신회 선배.”
-그래, 오늘 연차라며. 국회에 갔더니 안 보이더구나.
“그렇게 됐습니다.”
-몸 잘 챙기고. 거사 끝났으니 한동안은 너무 무리하지 마라.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어. 주말에 박현래하고 비공식 오찬을 잡았는데, 아무래도 네가 동석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박신회의 말이 줄줄 이어졌다. 차유신은 허리를 곧추세운 채 경청했다. 다행히 어려운 지시가 아니었다. 현 대통령인 박현래와 주말에 청와대에서 비공식 오찬을 진행할 예정이고, 주요 인수인계와 관련한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갈 텐데 차유신이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해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자료 대부분이 제 의원실 안에 이미 있는 것들입니다. 우선 우리 보좌진 시켜서….”
사무적으로 답변하던 차유신의 눈이 굴러갔다. 여전히 차유신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숨을 몰아쉬는 우태원이 보였다. 벗은 그의 등에 새겨진 발톱 모양 문신이 낮아졌다 높아졌다를 반복했다. 가만히 바라보던 눈망울이 갑자기 움칠했다. 어느새 눈이 마주친 우태원이 얼핏 웃고 있었다. 소리 없는 애원이 찾아들었다.
이제 싸고 싶어요. 선배.
차유신의 입이 더듬거렸다. 눈에 띄게 입을 다시고는, 한껏 제대로 핸드폰을 쥐었다. 빠릿빠릿한 대꾸가 나왔다.
“내일 오전 중 확인할 수 있도록 해드릴 테니, 관련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배.”
-그래. 고맙다.
“그럼 저는 이만….”
-아. 그리고 백진재는 왜 네 의원실에서 나간다니? 나한테 아침에 문자 왔더라.
대뜸 박신회가 물었다. 차유신의 턱이 멎었다. 약간의 생각을 거듭하다가, 한껏 가라앉힌 답을 꺼냈다.
“늦은 나이에 로스쿨에 가고 싶다 하기에, 제가 도와줄 테니 그리하라 했습니다.”
-그래?
“대체할 보좌관은 빠른 시일 안에 들일 겁니다.”
-그래. 일도 많은 놈이…. 가능하면 의원실은 비워두지 말아라.
“명심하겠습니다.”
-이만 푹 쉬렴. 주말에 보자.
“예. 선배.”
통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지고 난 차유신이 정면을 봤다. 고개를 든 우태원의 입꼬리가 길어졌다.
“저에게 벌을 줄 의도였다면, 아주 탁월했어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모로 가도 목표는 달성했으니 상관없겠지.”
빙글거린 차유신이 무릎 하나를 올렸다. 굼틀거리는 우태원의 복근을 가지고 놀듯 비벼대다가,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
“착하게 기다렸으니 싸게 해줄게. 하고 싶은 대로 해.”
“안에다 싸도 돼요?”
“어.”
끄덕임이 멎자마자 차유신의 몸을 두른 팔뚝이 강고해졌다. 벌떡 몸을 일으킨 우태원이 차유신의 등을 벽에다 붙였다. 허공에 뜬 채로 안긴 차유신이 양다리로 우태원의 허리를 감았다. 우태원이 목소리를 깔았다.
“소파 시트 버릴 것 같아서요.”
입을 다문 우태원이 다짜고짜 생식기를 올려붙였다. 착,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맨살이 달라붙었다. 이어 치솟은 음경이 굴곡진 내벽을 가뿐히 넘어 안쪽에 안착했다. 곧 점막을 터뜨릴 기세로 귀두를 꼴아박아댔다.
허릿짓이 반복될 때마다 몸이 통째로 흔들렸다. 허우적거리던 손이 간신히 우태원의 어깨를 부둥켰다. 우태원은 기꺼이 차유신을 품에 넣어가며 중심을 잡아줬다.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열매처럼 우태원을 붙든 채로, 차유신은 배 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경험을 했다.
피어오른 불씨에 덴 점막이 홧홧하게 달아오르고, 고통과 쾌감을 동시에 머금은 면상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흠칫거리던 속눈썹이 한계까지 들리는가 싶더니 눈이 흰자위만 드러낸 채 까뒤집혔다. 민망함을 잃은 입에서 야릇한 신음이 번졌다.
“으응…. 아, 흐으…! 거기, 거기다 싸….”
“하아…. 이렇게 깊은 데다가 싸요?”
“어, 어어…. 흣, 아…!”
“나 봐요. 보고 얘기해줘요. 싸달라고.”
대뜸 차유신의 목덜미를 챈 우태원이 똑바로 눈을 맞춰왔다. 반강제로 우태원을 머금은 눈망울이 초점을 잃은 채 일렁였다. 달싹이던 입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혀를 타고 끈적한 애원이 샜다.
“내 안에다 싸…. 태원아.”
누기 속에서 우태원이 희미하게 주억거렸다. 곧 퉁퉁 부어오른 점막을 꾹 귀두로 눌러가며, 조곤조곤 말했다.
“네.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싸줄게요.”
배 안에서 줄기찬 분수가 터졌다. 끓는점에 다다른 차유신의 성기에서도 부연 물이 분출했다. 눈을 질끈 감은 차유신이 온 힘을 다해 우태원을 안았다. 순순히 이끌린 몸이 차유신과 밀착했다. 맞닿은 서로의 맨살에 녹진하며 후끈한 액체가 빗물처럼 스몄다.
“이제 상해 안 갈 거지. 너.”
긴 사정을 마치고, 넋을 잃은 사람처럼 숨만 고르던 차유신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잠자코 마주 본 우태원이 답했다.
“네. 남역회는 이제 서재길 실장이 책임지고 관리할 예정이거든요.”
“그럼 다음 주부터 내 의원실로 출근해.”
“뭐로 출근할까요.”
“백진재가 있던 정무보좌관 자리로.”
“전직 국회의원인 저를 선배의 보좌관으로 쓰시겠다는 건가요.”
우태원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차유신은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지극히 담담한 대꾸가 건네졌다.
“아니. 실상은 내 애인으로 쓸 거야.”
우태원의 낯에서 미소가 가셨다. 자못 무표정으로 변한 그가 크게 끄덕였다. 이내 만족스럽게 답했다.
“좋아요. 선배.”
차유신의 시선이 기울었다. 널따란 우태원의 등 너머로 잔잔한 눈발에 휩싸인 역현구가 보였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적한 풍경은 긴 전쟁을 종식한 후의 평화협정도시를 연상케 했다. 차유신의 인생에서 가장 지독했던 종전(終戰)이었다.
이동한 눈길이 사무실 벽에 붙은 빳빳한 캘린더에 머물렀다. 오늘의 날짜가…. 초점 잃은 눈으로 주시하던 차유신의 입이 살짝 떨어졌다. 혼잣말을 닮은 음성이 나왔다.
“또 할 말 있어. 우태원.”
“뭔가요.”
고개를 튼 우태원이 재차 눈을 맞춰왔다. 곁눈질로 바라본 차유신이 인사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우태원이 소리 내어 웃었다. 곧 누그러진 대꾸를 건넸다.
“그래요. 메리 크리스마스.”
태어나 처음으로 진짜 ‘메리 크리스마스’를 얘기할 수 있었던 성탄절 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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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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