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들이닥친 경찰이 석일태와 역운회 조직원들을 체포해간 후, 차유신은 우태원의 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갔다. 역운회에서 알음알음 이용하는 전용 의사라고 했다. 차유신을 시트에 앉혀둔 의사가 서둘러 수술에 들어갔다. 우태원은 곁에서 지켜만 봤다.
“새끼발가락이라 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종종 불편할 일은 있을 겁니다. 특히 중심 잡을 때 힘드실 거예요. 나중에 실리콘 발가락이라도 하나 하십시오.”
“그건 좀 그러네요.”
봉합을 이어가던 의사의 말에 차유신이 심드렁히 대꾸했다. 의사가 의아한 낯을 해 보였다. 차유신이 고개를 까딱했다.
“없어 보이잖아요. 인조 발가락은.”
“그러시다면 뭐….”
얼버무린 의사가 매듭짓던 수술용 실을 쭉 뺐다. 괜히 방황하던 그의 눈길이 차유신의 다리에 걸렸다. 급하게 오느라 차유신은 우태원의 재킷만 걸친 채였다. 종아리와 허벅지, 사타구니를 눈으로 훑고 난 그가 중얼거렸다.
“다리가 상당히 매끈하십니다.”
의도가 불분명한 말에 차유신이 눈을 찌푸렸다. 불현듯 곁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수술대 위에 있던 주사기를 쥔 우태원이 다짜고짜 바늘을 의사의 눈에 겨눴다. 힉, 소리를 낸 그가 움츠렸다. 우태원이 경고했다.
“발만 봐. 쓸데없이 눈알 옮기지 말고.”
“네…. 네. 의원님.”
“다 봉합되기까지 얼마나 남았어.”
“거의 다 됐습니다.”
“최대한 빨리해.”
“네.”
덜덜 떨리는 손이 황급히 움직였다. 두어 번 들락날락하던 실이 비로소 매듭을 완성했다. 차유신은 말없이 발을 꼼지락거렸다. 마취를 해 큰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적잖게 뻐근하긴 했다.
“끝났어?”
“네. 끝났습니다.”
봉합한 부위에 거즈를 붙이고 난 의사가 말했다. 우태원이 고갯짓을 했다.
“그럼 나가.”
의사가 마른 침을 삼켰다. 멍청하게 올려다보기만 하는 그에게 우태원이 쐐기를 박았다.
“병원 문 내리고 나가 있어. 그리고 내가 따로 지시하기 전까지는 들어오지 마.”
“알겠습니다.”
신속히 몸을 세운 그가 허리를 굽었다. 이내 허겁지겁 수술실을 나섰다. 사뭇 조용해진 공간에서 차유신은 가물가물한 눈을 깜빡였다. 우태원이 팔을 뻗었다. 안정적으로 차유신의 몸을 안아 들고는, 발을 옮겼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비어있는 회복실을 찾은 그가 발로 문을 밀었다. 흔들림 없이 침대 쪽에 다다라 시트 위에 차유신을 내려놓았다. 그대로 널브러진 차유신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옅어지는 마취감에 새삼 현기증이 일었다. 동시에 기묘한 간지러움이 온몸을 기어 다녔다. 아랫입술이 꾹 짓이겨졌다.
“편히 쉬십시오. 저는 바깥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이불을 덮어준 우태원이 등을 보였다. 반사적으로 나아간 손이 우태원의 소매를 잡았다.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차유신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할게.”
우태원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차유신이 사분사분 덧붙였다.
“역운회 작업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처음엔 확실히 그럴 계획이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생각이 바뀌어서…. 아무튼, 이렇게까지 된 건 내 불찰이 맞아. 미안하게 생각해. 해결할 방도를 찾아볼 테니….”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우태원이 살짝 다가왔다. 땀에 젖은 차유신의 머리카락을 쓴 그가 눈을 깔았다. 단조로운 언어가 시트에 내려앉았다.
“역운회의 모든 것은 이제 제 소관입니다. 선배는 그쪽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책임감을 느낄 이유도 없습니다. 전부 다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이마에 다다른 손가락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간지러움이 진해졌다. 차유신의 턱이 덜커덕거렸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오금이 저려왔다. 다리가 배배 꼬였다. 차유신은 세게 이를 물며 폭주하는 야릇한 감각을 참았다.
“선배가 한 건 뭐든지 다 옳아요. 그러니 저는 그냥 받아들일 겁니다.”
뇌까린 우태원이 허리를 세웠다. 도로 몸을 트는 그를 향해 다시금 손이 나아갔다. 낚아채듯 팔뚝을 쥔 차유신이 상체를 일으켰다. 빳빳한 손가락이 파고들 기세로 우태원의 가죽을 짓눌렀다. 절로 호흡이 거칠어졌다.
“계속 여기에 있어.”
“어디 안 좋으십니까.”
“그런 게…. 하아.”
고개가 맥없이 떨구어졌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유리 파편 깨지는 환영이 번졌다. 몸 안의 어떤 세포들이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별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감각이 흐트러지고, 짐승과 가까운 본능만이 남아 태연하게 춤을 춘다. 차유신의 눈이 질끈 감겼다.
씨발. 그 좆같은 약물.
약물 자체가 처음이라 아무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투여한 양이 워낙 많아서인지 빠르게 내성을 다지고 본연의 사이클을 완성했다. 거기에 아까 의사가 넣은 마취제 기운까지 섞여 희한한 화학반응을 자아낸 모양이었다.
본능의 축제였다. 몸 곳곳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름이 번지고,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오한이 인다. 감전된 양 흠칫거리던 눈꺼풀이 점점 들렸다. 다소 난처한 낯의 우태원이 보였다. 차유신의 혀가 곤두섰다.
“바지 벗어.”
“지금요?”
우태원이 주춤했다. 고개를 든 차유신이 이를 갈았다.
“벗으라면 벗어.”
무연한 사막 속 유일한 생존자처럼 일렁이는 오아시스가 얘기한다. 이건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해소할 수 있는 충돌사고가 아니라고.
차유신은 지금 어린 시절의 검은 개가 필요했다.
“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면,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우태원이 타이르듯 차유신의 어깨를 감쌌다. 그대로 내친 차유신이 우태원의 목을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조를 양 손가락에 힘을 싣고는, 제 성대를 쥐어짰다.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헐떡이던 입에서 힘이 빠졌다.
“씨발…. 미칠 것 같다고. 지금.”
솔직히 말하자면 죽을 것 같았다.
“박아. 빨리.”
온몸이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우태원이라는 남자에게 위로받는 일을.
손아귀에 감긴 우태원의 목이 불끈해졌다. 굵직한 핏줄이 터질 듯 부풀었다. 곧 사그라지는 풍선처럼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 열기를 품은 숨결이 앞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차유신이 위를 힐긋했다.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한 우태원이 보였다.
“이마 좀 볼게요.”
뜬금없이 다가온 손이 이마를 덮었다. 닿은 부위가 부드러운 사포에 스친 듯 간질거렸다. 차유신의 속눈썹이 하늘거렸다. 우태원이 호흡을 삭였다.
“많이 뜨겁네요.”
“지금 장난해?”
“장난하는 게 아니라…. 아까 역운회가 뭐 투약했습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석일태가 필리핀 칵테일 어쩌고 한 것밖에 기억 안 나.”
“필리핀 칵테일 약물…. 확실히 성적인 흥분감을 끌어내는 용도로도 쓰이는 건 맞지만.”
우태원이 뜸을 들였다. 신경질적으로 올라간 손이 이마를 덮은 손을 쳤다. 우태원의 멱살을 잡은 차유신이 안달했다.
“됐고. 할 거야, 말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
“갑자기 고자라도 됐어? 왜 말을 안 들어.”
차유신이 으름장을 놓았다. 우태원의 입에서 달뜬 숨이 샜다. 몸을 낮춘 그가 차유신과 눈을 맞췄다. 진중한 음성이 찾아들었다.
“제가 절제가 안 될 거 같아 그렇습니다.”
차유신의 목 근처를 배회하던 손이 가슴을 감쌌다. 유두를 비비며 미끄러지는 손길에 차유신이 움찔거렸다. 개의치 않은 우태원이 허리를 쓸다가 허벅지를 짚었다. 사타구니까지 들어온 손이 여린 살을 매만졌다. 성기를 만질 듯 말 듯 한 위치에서 손가락이 꿈지럭거렸다. 차유신이 욕설을 삼켰다.
“씨발…. 장난하나.”
“아파도 괜찮아요?”
“언제는 안 아팠어?”
차유신이 어이가 없다는 양 따졌다. 우태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래요.”
그의 어조가 눅눅해졌다.
“선배는 제 섹스가 별로라고 했던 게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전 그간 계속 선배를 아프게 한 게 신경이 쓰여서.”
곧 조금 무거워졌다.
“이번에도 아프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그러면 선배가 다시는 이런 걸 원치 않을 것 같아서.”
정적이 흘렀다. 차유신의 눈매가 언짢게 찡그려졌다. 투박한 한 마디가 나왔다.
“지랄하네.”
돌연 나아간 손이 우태원의 앞섶을 부여잡았다.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버클을 풀고는,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내린 뒤 옷가지를 당겼다. 멈칫한 우태원이 제 얼굴을 감쌌다. 툭 튀어나온 음경이 꺼떡거리며 차유신의 뺨을 때렸다.
우태원의 망설임 따위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은 듯, 벌써부터 딱딱한 남근이었다. 게다가 차유신 얼굴의 반은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팽창해있었다. 두드러진 귀두가 안달하듯 꿈틀거렸다. 차유신이 한탄하듯 입을 뗐다.
“난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섹스 취향이 제멋대로야.”
벌어진 입이 단숨에 귀두를 물었다. 헉, 소리를 낸 우태원이 차유신의 어깨를 잡았다. 쭉 미끄러진 입술이 우툴두툴한 주름을 지분거렸다. 우태원의 손에서 진동이 심해졌다. 음경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차유신의 눈가를 후끈하게 달궜다. 차유신의 눈이 감겼다.
어둠 속에서 우태원의 냄새를 쫓았다. 살살 이로 긁어가며 표피를 자극하다가, 목구멍까지 귀두를 박아 넣었다. 그래봤자 입 안은 그 거대한 살덩이의 반도 채 담지 못했다. 틀어 막힌 숨통을 가까스로 틔운 차유신이 곱씹듯 성기를 우물거렸다. 우태원의 숨소리가 질어졌다.
“후으…. 선배.”
“나는 나만 기분 좋으면 돼.”
“아….”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기분 좋아야 하고.”
입 안에 가득 찬 생식기 때문에 불완전한 언어였지만, 알아들은 듯 차유신의 어깨를 긁어대는 우태원의 손톱이 느껴졌다. 차유신의 눈꺼풀이 가지런히 들렸다. 저 위로 두툼한 음낭이 보였다. 슬그머니 고개를 뺐다. 입에서 성기를 뱉고, 혀를 내밀어 물컹한 살주머니를 살살 핥았다. 우태원이 고개를 젖혔다.
“하아….”
“불알 빨아주는 거 좋아해?”
“아마도요.”
“그건 나하고 같네.”
차유신이 희미하게 웃었다. 비스듬해진 얼굴이 우태원의 밑동에 묻혔다. 무성한 체모가 코를 스쳤다. 곤두선 혀끝이 음낭을 꾹꾹 눌러댔다. 열기 섞인 정액 냄새가 물씬 풍겼다. 발정한 수캐의 내음이었다. 차유신의 동공이 느슨해졌다.
더듬거린 손이 우태원의 셔츠 안으로 들어갔다. 탄탄한 복근에다 지탱하듯 손을 디딘 채, 굶주린 배를 채우듯 음낭을 삼켰다. 경사진 뺨 위에서 음경이 부드득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맞닿은 가죽의 온도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후으으…. 선배.”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차유신의 눈동자가 올라갔다. 음낭을 문 채 눈길만 끌어올리는 게 조금 버거웠다. 덕분에 우태원의 낯이 제한적으로 보였다.
“얼굴 만지고 싶어요.”
차유신은 흔쾌히 답했다.
“만져.”
말이 끝나자마자 우태원의 손이 가까워졌다. 다물리다시피 한 차유신의 눈꺼풀에 손가락을 댄 그가 장난감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만지작거렸다. 버스럭거리며 속눈썹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차유신은 나른하게 눈을 깔았다.
다시 귀두에 입을 가져갔다. 아까보다 힘 있게 빨아들이며 치골을 향해 코를 박았다. 축축한 살덩이가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입 안을 가로질렀다. 다시 목구멍에 박힌 귀두가 거세게 꿀렁였다. 숨을 몰아쉰 차유신이 조금씩 식도를 열었다. 울컥거린 귀두가 구멍을 빼곡하게 메웠다. 쿨럭. 차유신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떨궜다. 입술을 타고 타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 선배. 잠시만요.”
절박한 한 마디가 귀를 스쳤다. 다짜고짜 차유신의 머리통을 쥔 우태원이 고개를 강제로 젖혔다. 차유신의 입에서 음경이 쑥 빠졌다. 젖은 입술을 훔친 차유신이 위를 확인했다. 적잖게 상기된 우태원이 눈에 들어왔다.
“뭐.”
“박게 해줘요.”
“아프게 할까 봐 싫다며.”
차유신이 빈정거렸다. 입을 꾹 다문 우태원이 허리를 숙였다. 단숨에 차유신의 몸을 안아 들고는, 시트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의 발에서 흘러내린 구두가 바닥에 떨어졌다. 차유신의 얼굴에 어둑한 응달이 졌다. 위에 올라탄 채 눈을 맞춘 우태원이 말했다.
“무섭지만 그냥 할래요.”
올라간 그의 손이 조금 젖어있는 제 셔츠의 첫 단추를 잡았다. 뜸 들일 틈도 없이 밑까지 풀어헤치고는, 뒤로 젖혔다. 팔뚝 밑으로 빼낸 셔츠를 휙 던진 우태원이 숨을 몰아쉬었다.
“제가 못 참겠어요.”
차유신의 허벅지 밑으로 우태원의 팔뚝이 들어왔다. 강고한 팔 힘이 차유신의 다리를 끌어올렸다. 널따란 어깨에 걸쳐진 양 다리가 축 늘어졌다. 견고한 복근을 새긴 배가 부쩍 다가왔다. 죽 뻗은 차유신의 허벅지가 딱딱한 가슴팍에 밀착했다. 허벅지를 타고 우태원의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밑에 직접 여는 거 보여줘요.”
차유신의 손목이 당겨졌다. 엉덩이 틈까지 가져간 우태원이 차유신의 손가락 하나를 세워 직접 회음부를 만지게 했다. 스르르 쓸려나간 부위에 토독, 토독, 소름이 일었다. 차유신의 등줄기가 전율했다.
“하으으….”
손가락은 점점 멋대로 움직였다. 뻑뻑한 구멍에 맞춰진 중지와 검지가 우태원의 손길에 따라 확 쑤셔 박혔다. 이내 안에서 마구 휘저어졌다. 점막을 갈고리처럼 긁어대는 감각이 송연해 손목이 부들거렸다. 차유신의 어금니가 깨물렸다.
“아으… 읏….”
“기분 어때요.”
“좆같아….”
돌연 차유신이 손목이 뇌호해졌다. 우태원의 손길과 무관하게 훅 들어간 손가락이 끝까지 처박혔다. 스스로의 손가락질에 쓸린 점막이 부어올랐다. 파들거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빳빳한 눈길이 우태원에게 꽂혔다. 자못 긴장한 듯 꿀꺽거리는 그가 보였다. 차유신이 경고했다.
“혼자 하는 거 안 좋아해.”
“그런데 이렇게 야하게 반응해요?”
“지금은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누가 관음해주는 게 좋은가 보네요.”
“조금은.”
“생각보다 변태적이네요. 몰랐어요.”
“마음에 안 들어?”
차유신이 약을 올렸다. 우태원은 가만히 차유신의 손목을 잡았다. 확 끌어당기자 찌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손가락이 빠졌다. 차유신의 손을 배 위에 올려둔 우태원이 제 밑동을 고쳐 잡았다. 까딱거리는 음경이 금방이라도 사정할 기세로 불끈거렸다. 우태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더 보여줘요. 변태처럼 구는 거.”
벌름거리던 구멍이 돌연 홧홧해졌다. 단숨에 귀두를 집어넣고 난 우태원이 서서히 허리를 밀어붙였다. 차유신의 침으로 범벅이 된 살덩이가 스멀거리며 내벽을 파고들었다. 차유신의 턱이 덜컥 들렸다. 입술이 감전된 듯 달싹였다.
“아…. 으, 으읏….”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더 야해지는 거 보여줘요.”
“하아…. 더, 흐읏… 더 넣어….”
“어디까지 넣어요? 할 수만 있다면 불알까지 다 처박고 싶은데.”
“씨발… 말이 되는 소리, 르을… 아… 흐읍!”
콱, 틀어박힌 귀두에 내벽이 움푹 팼다. 빳빳한 뱃가죽이 불규칙하게 융기했다. 뻑적지근한 배 안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충만했다. 음경의 주름에 비벼진 점막 곳곳에서 꽃처럼 열감이 피어올랐다. 차유신이 힘겹게 배를 감쌌다. 튀어나온 생식기의 윤곽이 손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우태원이 몸을 낮췄다. 차유신의 어깨 뒤에 팔을 집어넣어 꽉 끌어안고는, 발정기의 수캐처럼 굴신을 이어갔다. 철썩이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와 치골이 연달아 마찰했다. 차유신이 발작하듯 허리를 비틀었다. 헐떡인 우태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소곤거리는 음성이 귀를 울렸다.
“너무 움직이면 빠져요.”
“흐읍…. 아….”
“더 넣어도 돼요?”
“넣… 어…. 후으….”
“꺾이는 데까지 넣어도 돼요?”
“으응….”
몽롱한 대답에 우태원이 호흡이 거칠어졌다. 차유신의 귓불을 살짝 깨문 그가 재차 속삭였다.
“나에게 명령해요.”
“박아…. 흐읏….”
“더 제대로.”
“씹…. 좆 제대로 박아…. 시간 끌지 말고, 읏….”
되는대로 지껄인 답에 우태원의 눈이 풀렸다. 쇳덩이처럼 실팍해진 음경이 내벽을 수직으로 파고들었다. 꽉 다물린 부위까지 귀두를 꽂아 넣고는, 연거푸 점막을 두드려댔다. 멀미가 날 정도로 시트가 흔들렸다. 끝내 끼익, 소리를 내며 침대가 통째로 밀렸다.
우태원의 얼굴이 차유신의 목에 묻혔다. 대뜸 이빨을 박고는 떼를 쓰는 것처럼 잘근거렸다. 동시에 한계까지 치달은 귀두가 울렁이다 방향을 틀었다. 점막이 질어질 정도로 쿠퍼액을 처바르던 남근이 차유신의 내벽을 부풀렸다. 손아귀에 들어찬 윤곽이 두툼해졌다. 춥춥거리며 목을 빨아대는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차유신의 잇새로 탄성이 번졌다.
“하으…. 으응…!”
“살면서 본 포르노 중에 선배가 가장 야해요.”
달뜬 숨을 고른 우태원이 입을 옮겼다. 쿨렁이는 가슴에 얼굴을 붙이고는, 이를 내어 유두를 씹었다. 차유신이 절박하게 시트를 움켜쥐었다. 곤두선 치아가 젖꼭지를 깨물어대다가, 도톰한 유륜까지 한꺼번에 흡입해왔다. 빨린 부위 너머로 심장이 요동쳤다. 우태원의 어깨에 걸쳐진 다리가 버둥거렸다.
“아, 그거…. 으음…!”
“빨 때마다 젖 나올 것처럼 꼭지 부푸는 거, 보기 좋아요.”
“아윽…. 변태 새끼야…. 흐으으….”
“정말 나오면 좋을 텐데. 안 그래요?”
우태원이 입을 거뒀다. 쉴 틈도 없이 다른 쪽 젖꼭지를 문 그가 쭉, 소리 나게 빨아들였다. 그러면서 끄트머리가 미사일처럼 꼿꼿한 반대쪽 유두를 마구 꼬집어댔다. 차유신의 목이 자지러졌다. 상체를 에워싼 오싹거림에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흐읏…. 아, 죽을 것 같….”
심박 수가 배로 높아졌다. 젖꼭지가 떨어져 나갈 듯 화끈거렸다. 참기 어려운 열감에 차유신의 허벅지가 움츠러들었다. 사타구니 틈에서 발기한 채 휘청거리는 제 성기가 보였다. 태연하게 마저 유두를 널름거린 우태원이 고개를 들었다. 이어 땀에 젖은 차유신의 볼에 혀를 가져가, 살살 핥아댔다. 갈증 난 차유신이 목을 떨었다.
“아아….”
“더 넣을래요.”
“들어갈 데 없어….”
“들어갈 데가 왜 없어요.”
뇌까린 우태원이 분연한 허릿짓을 했다. 잠시 빠졌던 생식기가 매섭게 내벽을 횡단하고, 그대로 꺾여 한참이나 들어갔다. 살짝살짝 길이 든 점막을 넘어선 곳까지 박아 넣은 그가 대뜸 성기를 비틀어댔다. 살면서 한 번도 인지한 적 없던 깜깜한 내장기관이 소스라치며 두근거렸다. 차유신의 눈이 확 커졌다.
“아, 잠깐…!”
무시한 우태원이 생소한 부위에다 마구잡이로 귀두를 찍었다. 쿡, 쿡, 쑤셔질 때마다 알싸한 자극이 아랫배를 뒤흔들었다. 차유신의 눈이 까뒤집혔다. 아득한 시야에 제대로 고개를 처든 제 성기가 보였다. 차유신이 악을 썼다.
“아, 됐…. 흣, 이제 됐…!”
말이 차마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폭풍우 같은 울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온몸을 덮쳐왔다. 전율에 휘감긴 귀두가 눈에 띄게 뻐끔거렸다. 차유신의 이가 악물렸다. 발가락이 절박하게 오므라들었다. 사정을 하기 위해 치부에 힘을 줬다. 딱 거기까지였다. 사출은 이뤄지지 않았고, 성기는 빳빳하게 기립한 채로만 남아있었다. 본능적인 욕설이 터졌다.
“씨발…. 읏.”
“안 싸져요?”
“하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 후으….”
가슴 너머에서 뭔가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얼얼한 자극이 부푼 젖꼭지를 에워싸고, 굼틀거리는 아랫배를 스쳤다가 치부에서 뭉쳤다. 차유신의 발가락이 옴짝달싹 못 한 채 곤두섰다. 온 맥박이 울부짖듯 춤을 췄다. 역시 거기서 끝이었다. 정액은 나오지 않았고, 성기만 발정한 채로 남았다. 차유신의 머리가 멍해졌다.
명백한 오르가즘이 두 번이나 왔는데, 사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답답하고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절망에 빠진 차유신이 흐느꼈다.
“아…. 진짜, 하아…. 씨발, 이게 뭐….”
“이리 와요.”
갑자기 우태원이 차유신을 안아 들었다. 허공에 들린 등이 벽에 붙었다. 양 허벅지 밑으로 들어온 우태원의 팔뚝이 차유신의 등 부근에서 손깍지를 만들었다. 영문 모르는 차유신이 눈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안 싸고 싶어요?”
“싸고 싶어.”
“싸게 해달라고해 봐요.”
“방법 알아?”
“네.”
우태원이 주억거렸다. 미심쩍은 듯 보던 차유신이 결국 얼굴을 내밀었다. 사실 깊이 생각할 문제도 아니었다. 차유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차유신의 몸을 가장 잘 아는 건 이제 눈앞의 남자였다.
“태원아.”
나직한 부름에 우태원이 움칠했다. 똑바로 눈을 맞춘 차유신이 읊조렸다.
“나 싸게 해줘….”
우태원이 입을 다셨다. 고분고분한 답이 돌아왔다.
“네. 선배.”
대답과 함께 밑에서 철썩, 소리가 났다. 다시금 부풀어 오르는 내벽을 느끼며 차유신은 어깨를 떨었다. 내벽의 끄트머리에 닿는 것과 동시에 방향을 전환한 귀두가 조붓한 안쪽에 틀어박혔다. 이내 점막을 사분사분 밟아가며 몸을 키웠다.
몸살이 난 듯 부들거린 차유신이 고개를 떨궜다. 힘껏 차유신을 끌어안은 우태원이 위를 향해 음경을 들썩였다. 쿵, 소리를 내며 차유신의 뒤통수가 벽에 부딪혔다. 황급히 빠진 우태원의 손 하나가 차유신의 머리를 감쌌다.
흐트러져있던 내장기관이 우태원의 생식기와 엉겨 재조합되는 것만 같았다. 연이어 빠졌다 솟아오른 남근이 차유신조차 모르는 내벽을 벌리고, 점막을 꽉꽉 눌러가며 액을 칠한다. 우태원의 성기 모양새를 따라 팬 주름들이 해방을 갈구하며 꿀렁였다. 우태원의 머리카락에서 뚝 떨어진 땀방울이 차유신의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유신의 입에서 신음이 쥐어 짜였다.
“으응…. 하아, 더어….”
“여기서 더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더 해…. 읏.”
차유신의 눈이 흐려졌다. 야시시한 목소리가 시트에 내려앉았다.
“기분 좋아….”
우태원의 턱이 불끈해졌다. 포효하듯 숨을 쏟은 그가 차유신과 완전히 밀착한 채 하반신을 움직였다. 새삼 빠른 템포로 솟구친 성기가 보다 깊숙한 곳에다 머리를 처박았다. 차유신의 숨이 가빠졌다. 또다시 눈이 뒤집히고, 오감이 까무러진다. 늘어진 탄성이 실내를 메웠다.
“하아, 더어…. 거기, 더 넣어….”
“후으…. 왜 이렇게, 제 좆을 좋아해요. 선배….”
“몰, 흐읍…. 모르겠고, 씹…. 박아…!”
불현듯 튕긴 남근이 가마득한 배 안에 귀두를 꽂아버렸다. 툭, 툭, 세포 터지는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차유신의 턱이 덜덜거렸다. 핏줄이 곤두선 차유신의 성기가 두어 번 꺼떡거린 끝에 뜨거운 액을 쏟았다. 사방팔방 튄 액이 빗물처럼 흩어졌다. 차유신과 우태원의 몸은 물론이고 벽이며 시트까지 온통 정액 범벅이 됐다.
차유신의 얼굴이 우태원의 어깨에 묻혔다. 사정감에 사로잡힌 몸이 발작하듯 꾸물거렸다. 몸의 전율이 끊이지 않아 중심을 잡는 게 힘들었다. 그 와중에 귀두는 쉬지도 않고 사출을 이어갔다. 스프링클러를 틀어놓은 것처럼 힘차게 쏟아지는 액을 보던 우태원이 손을 내밀었다. 파들거리는 성기를 부드럽게 훑고는, 액을 훔쳐 제 입에 가져갔다. 살짝 맛을 본 그가 읊조렸다.
“선배 맛이 나요.”
“후읏…. 아아….”
“더 싸줘요.”
“지랄…. 마, 흣….”
“얼굴 보여줘요.”
차유신의 고개가 강제로 들렸다. 우태원과 맞춰진 눈이 미동했다. 우태원이 미소 지었다.
“역시 아름답네요. 선배.”
차유신의 배 안에서 강렬한 파동이 번졌다. 차유신이 싸지른 액과 같은 온도의 액체가 내벽에 들어찼다. 차유신의 무릎이 흠칫거렸다. 부쩍 맥이 풀린 차유신의 성기에서 남은 액이 줄줄 흘렀다.
배 안에서 우태원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주르르 미끄러진 정액이 벌름거리는 구멍을 타고 떨어졌다. 발개진 얼굴이 벽에 기댄 채 기울었다. 우태원이 가만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잔잔한 언어가 귀를 옭맸다.
“선배.”
차유신의 눈이 돌아갔다. 우태원이 작게 덧붙였다.
“칭찬해줘요.”
늘어져 있던 손이 느릿느릿 들렸다. 정액 묻은 손가락이 우태원의 뒤통수에 다다랐다. 부드럽게 쓸어내린 차유신이 눈을 깔았다. 조곤조곤한 한 마디가 건네졌다.
“그래. 착해.”
“선배 말 잘 들어서요?”
“아니.”
차유신의 입매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한층 날연한 대꾸가 나왔다.
“섹스 잘해서.”
우태원이 말을 잘 듣고, 섹스를 잘해서.
차유신은 지금 이 순간 꽤 행복했다.
*
눈을 떴을 때 차유신은 익숙한 침대 위에 있었다. 커튼 너머로 반짝이는 별 무리에 기시감이 들었다. 집에 왔구나. 나른한 머리를 베개에 묻은 채 차유신은 숨을 골랐다. 그런 차유신의 목 밑으로 굵다란 팔이 들어왔다. 견고한 팔베개를 만든 우태원이 머리를 숙였다. 밤보다 밤을 닮은 체향이 코를 스쳤다. 차유신의 눈꺼풀이 들렸다.
“내 집 비밀번호 어떻게 알았어?”
“안 바뀌었잖아요. 그때하고.”
우태원이 예사로이 속삭였다. 멀거니 멈춰있던 차유신이 끝내 끄덕였다. 그래, 바꾸지 않았다. 이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꿀 법도 한데, 결국 바꾸지 않았다.
번호를 바꾸면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궁금한 것 있어요.”
차유신의 뒷목에 다다른 우태원의 손이 벗은 등줄기를 타고 미끄러졌다. 딱딱한 무릎이 차유신의 종아리를 스쳤다. 새끼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발끝이 꼼지락거렸다. 차유신이 응수했다.
“응. 얘기해.”
“선배 첫 섹스가 궁금해요.”
“갑자기?”
“네.”
시야에 들어온 낯이 꽤나 진지했다. 덕분에 차유신은 웃으려던 것도 잊었다. 완연한 무표정으로 우태원을 응시하던 얼굴이 기울었다. 희미한 별빛으로 점철한 창밖을 주시하다, 서서히 입을 뗐다.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같은 학교 여학생이었어요?”
“아니. 과외 선생.”
차유신의 눈이 반쯤 감겼다. 잊다시피 한 기억이 뇌리에서 회전목마처럼 돌아간다. 정말로 까마득한 구석에 묻어둔 기록이다. 딱히 되새길 이유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됐다. 따져보면 대다수의 기억이 으레 그랬다.
기억이 기억으로 남기 위해서는 이름표가 필요하다. 꾸준히 회고하기 위한 책갈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억은 한낱 종이 쪼가리와 같아 마땅한 이름을 찾기도 전에 소거되곤 했다. 차유신은 삶의 구 할을 난지도에 버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아깝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남은 일 할을 곱씹으며 살아가기에도 삶은 충분히 짧았다.
“나보다 열 살은 많은 누나였는데 목소리가 예뻤어.”
“좋아했어요?”
“좋아하지 않았어. 그런 것과 별개로, 목소리가 예쁘다고 생각했어.”
차유신의 눈이 깜박였다. 머릿속 책장 한구석에 처박혀있던 17세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차유신은 집 거실에 앉아있었고, 테이블 맞은편에 과외선생이 있었다.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안일을 돕는 아주머니가 하나 있었으나 장을 봐야 한다며 집을 비웠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이 가까이 왔는데, 나도 모르게 목을 살짝 만졌어.”
“선생은 뭐라고 했어요.”
“그냥 뭐…. 나보고 특이하다며 웃었어.”
눈꺼풀이 좀 더 내려앉았다. 기억은 점점 무성한 갈대밭을 헤맨다. 분명히 거기 어딘가에 기록이 남아있을 텐데, 워낙 비슷비슷한 갈대밭 속이라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다. 차유신은 가까스로 입을 뗐다.
“왜 만졌냐고 묻기에 목소리가 예뻐서 그랬다고 했어. 그런 목소리를 내는 목은 어떤지 궁금해서 만졌다고. 그랬더니 나보고 너는 손이 예쁘다고, 만져 봐도 되냐고 했어. 나는 그러라고 했고.”
“그래서요?”
“선생이 자리를 옮겨서 내 옆에 앉았고, 그다음에 손을 만졌어.”
“좋았어요?”
“간지러웠어.”
차유신의 입에서 탁한 숨이 번졌다. 속눈썹이 축 늘어졌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을 하는 듯하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얼기설기 엉긴 언어가 내뱉어졌다.
“그러다 아마…. 선생이 내 손을 본인 블라우스 안에 집어넣었는데, 안에서 느껴지는 촉감이 굉장히 부드러워서. 살면서 그런 걸 처음 만져봤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발정한 것 같아.”
“다음에는요.”
“선생이 나보고 섰냐고 물어봐서 솔직하게 섰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쪽에서 해도 된다고 해서…. 했어.”
“기분 좋았어요?”
“모르겠어.”
차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그건 모르겠다. 안에 넣었고, 한참을 하다가 뺀 것까지는 기억을 하는데. 그것이 좋았는지, 좋았다면 무엇 때문에 좋았고, 얼마나 좋았는지를 잊어버렸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의미가 있는 에피소드였다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리 없지. 굴러가던 혀가 심드렁한 혼잣말을 꺼냈다.
“그냥 그런 얘기야. 재미없지?”
“포르노 같아요.”
“포르노?”
“그런 영상에서 한 번쯤 본 듯한 전개예요.”
“그래? 난 포르노를 본 적이 없어서 몰라.”
차유신의 낯이 골똘해졌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우태원이 낮게 웃었다.
“본 적이 없어요?”
“없어.”
“의외예요.”
“안 좋아해. 실제로 하는 게 아니니까. 수음도 안 좋아하고.”
“누군가와 하는 것만 좋아하는 거네요.”
“어. 상대방이 기분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좋아.”
차유신의 목이 늘어졌다. 좀 더 우태원의 팔뚝에 머리를 기댄 채, 가만히 눈동자를 끌어올렸다. 자못 심각한 질문이 나왔다.
“넌 본 적 있어?”
“어릴 때 친구들하고 종종 봤어요.”
“그게 더 의외인데.”
“왜요?”
“넌 성욕이 나보다도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엄밀히 따지면 없는 쪽이긴 한데….”
우태원이 말을 흐렸다. 이어지는 언어에 적잖은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런 거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그 사람을 대입해 수음하는 걸 즐겼어요.”
차유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포르노에 대입해 수음하게 만드는 사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후보가 있는데, 대놓고 물어보기는 좀 그렇다. 자의식 과잉처럼 느껴질 것 같다.
잠자코 누워 머리만 굴리던 차유신의 입에서 바람 빠진 웃음이 터졌다. 이내 몸을 숙여가며 커다랗게 웃고 말았다. 우태원이 의아한 듯 차유신을 확인했다. 차유신은 모른 척 창 너머에 시선을 뒀다. 별이 오늘따라 많았다.
잊고 있었다. 자신은 마음에 드는 게 생기면 겁이 많아지는 사람이라는 걸.
“그거 선배 맞아요.”
우태원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후끈해진 차유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조곤조곤 덧붙였다.
“선배 생각하면서 수음했어요. 어릴 때부터 자주.”
“그럼 그때부터 남자 좋아한 거야?”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선배 전에는 여자하고만 잤으니까.”
“그럼 나는 뭔데.”
“선배는 그냥….”
우태원의 어조가 나직해졌다. 무지근한 훈풍이 귀를 스쳤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에요. 저에게.”
언어의 끄트머리가 눅눅했다.
“신에게는 성별이 없어요. 그런 걸 진작 뛰어넘은 존재니까.”
우태원의 눈이 감겼다. 빤히 바라보던 차유신이 손을 내밀었다. 다물린 우태원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쓸고는, 입을 맞췄다. 우태원의 윗눈썹이 움칠거렸다. 차유신이 은은하게 불렀다.
“우태원.”
우태원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달콤한 꿈을 꾸듯 눈매가 나른하게 휘었다. 차유신의 목소리가 녹았다.
“태원아.”
우태원의 속눈썹이 달싹였다. 재차 입을 맞춘 차유신이 말했다.
“내가 왜 너를 좋아하게 됐는지, 방금 깨달았어.”
기다란 우태원의 눈시울이 진동했다. 텁지근한 차유신의 목구멍을 타고 깊은 구석에 처박혀있던 언어가 스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동굴을 가르며 피어난 효후에는 명명백백한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그건 욕망이었다.
“네가 내 어둠이야.”
미끄러진 손가락이 우태원의 뺨을 쓸었다. 우태원의 목이 덜덜거렸다. 차유신의 얼굴이 내려갔다. 우태원의 입술을 찾아 제 것을 맞붙이고는, 오래된 고백을 꺼냈다.
“네가 내 어둠을 구원했어.”
차유신의 혀가 축축해졌다.
“사랑해. 태원아.”
춥, 소리를 내며 차유신의 입술이 또 한 번 우태원의 것과 겹쳤다. 녹진한 열기에 머리가 핑글 돌았다. 차유신의 어깨가 전율했다.
“내가 널 구원할 테니…. 너는 나를 구원해.”
우태원의 눈동자가 서서히 드러났다. 차유신은 초점 없는 눈으로 그를 관조했다. 일그러진 망막 속에서 차유신의 모습이 흔들렸다. 새삼 질어진 그의 그늘에 온 신경이 사로잡혔다. 무덤덤하게 보던 차유신의 턱이 덜컥거렸다.
우태원은 울고 있었다.
“이제 그만 해요. 선배.”
눈꼬리를 타고 흐른 물이 시트를 적셨다. 차유신은 망연히 우태원을 올려다봤다. 어금니를 질끈 문 그가 고개를 떨궜다. 한층 굵어진 눈물이 시트에 후드득, 떨어졌다. 젖은 목소리가 침실을 메웠다.
“더 이상 날 두렵게 만들지 마요.”
부들거리는 손이 시트를 움켜쥐었다. 우태원이 헐떡였다.
“선배가 그러면 나는….”
서글픈 포효가 공명했다.
“내일을 기대하게 돼요.”
그의 머리가 시트에 처박혔다. 커다란 어깨가 들썩였다. 우태원이 애원했다.
“그냥 나를 불행 속에 남겨둬요. 선배.”
시트가 흥건해졌다.
“29년 동안 그렇게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해줘요.”
울부짖음이 깊어졌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차유신이 손을 뻗었다. 경련하는 우태원의 정수리를 감싼 뒤 죽 쓸어내리고는, 얼굴을 내밀었다. 뜨거워진 그의 귓바퀴에 입술을 갖다 댔다. 단호한 한 마디가 나왔다.
“싫어.”
차유신의 손이 보다 내려갔다. 떨어대는 목덜미를 움켜쥐어 족쇄를 채우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너에게 행복을 알려줄 거야. 이제부터.”
우태원은 계속해서 울었다. 차유신은 그의 목을 꽉 쥔 채 묵묵히 내려다봤다. 우태원은 괴로워했지만, 그 손을 내치지 못했다. 신의 손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 순응 이외의 선택지가 없었으리라.
우태원 스스로 채운 목줄이었다.
*
잠결에 낙엽 냄새를 맡았다. 지금은 5월이고, 낙엽이 내리는 시기가 아닌데 희한하게도 그런 냄새를 맡았다. 심지어 신선한 낙엽도 아니었다.
온전히 죽은 낙엽의 냄새였다.
선배. 그거 알아요?
희미한 질문이 들렸다. 차유신은 축 늘어진 채 입만 뻐끔거렸다. 목이 잠긴 탓에 내뱉는 소리가 온전치 못했다.
뭐….
선배가 역운회에 맞은 약.
응.
최음제 성분 들어있긴 한데, 함량이 엄청 적어요.
그래.
차유신은 가붓한 고갯짓을 했다. 그렇구나. ‘그런 용도’는 아니었나 보구나. 그럼에도 기묘한 일이다. 분명히 차유신은 아까 몸이 달아올라 죽을 것만 같았는데. 우태원을 갈구하며 펄떡이는 오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그냥 내가 너하고 하고 싶었나 보다.
차유신이 웃음기도 없이 뇌까렸다. 상대방이 설핏 웃었다.
그러게요.
왜 웃어.
행복해서요.
차유신의 이마에 따스한 손이 올라왔다. 흠집이라도 날까 살살 쓸어대고 난 그가 읊조렸다.
그리고 그게 불행해서요.
그 시점에서 차유신은 다시 잠에 빠졌다.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너무나도 안온해, 정신을 다잡는 게 어려워졌다. 무의식의 세계에 스스로를 몰아넣은 채 차유신은 무작정 휴식에 잠겼다. 그런 차유신의 사위를 에워싼 건 끝없는 낙엽의 잔상이었는데, 거기에는 색채도 생기도 없었다. 대신 싸늘한 시체 냄새가 났다,
그래서 차유신은 더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
지잉, 지이잉. 머리맡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텅 비어있었다. 잠이 덜 깬 낯으로 숨을 몰아쉬다가, 일단 시선을 내렸다. 시트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핸드폰이 보였다. 액정에 박힌 이름은 진무원이었다.
“어. 형.”
통화버튼을 누른 뒤 귀에 가져갔다. 다짜고짜 부르는 목소리가 찾아들었다.
-유신아. 일어났어?
“어. 얘기해.”
-나 지금 네 집 앞에 차 대기시켰다. 십 분 안에 준비해서 내려와.
“무슨 일이야.”
-하, 진짜….
진무원이 죽겠다는 양 한숨을 쉬었다. 짧은 뜸을 들이고 난 그가 목소리를 깔았다.
-석일태 죽었다.
차유신의 눈이 확 커졌다. 핸드폰을 쥔 손아귀가 흠칫거렸다. 더듬거리던 입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착 가라앉은 대답이 나왔다.
“알았어. 금방 내려갈게.”
*
정확히 십 분 만에 준비를 마친 뒤 밑으로 내려갔다. 전용 세단의 뒷좌석에 몸을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았다. 미처 몸에 걸치지 못한 재킷과 넥타이를 옆 좌석에 내던진 후에야 앞을 확인했다. 조수석에 앉은 진무원이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바로 경찰청으로 간다. 허대윤 청장 쪽에서 먼저 미팅 요청 왔어.”
“어. 그렇게 해.”
대충 말을 맺고는 등을 젖혔다. 급하게 움직이는 통에 절단된 새끼발가락 쪽이 욱신거렸다. 뛸 때는 몰랐는데, 멈추고 나니 적잖게 고통스럽다. 낯을 찌푸린 차유신이 룸미러를 힐긋했다. 운전대를 잡은 젊은 청년이 보였다. 처음 보는 면상이라 절로 눈이 구겨졌다.
“저건 누구야.”
의아한 손가락질이 그의 뒤통수를 향했다. 황급히 몸을 튼 그가 구십 도 각도로 허리를 굽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어제 자로 출근한 비서 임지혁….”
“앞에 봐. 새끼야.”
차유신이 훈수를 뒀다. 서둘러 몸을 바로 한 그가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진무원이 손사래를 쳤다.
“네가 나한테 권한 주고 권헌 나간 자리에다 적당히 꽂으라 했잖아. 그래서 급하게 면접 봐갖고 하나 채용했어.”
“몇 살이야? 저거.”
“스물여섯 살입니다, 의원님.”
“넌 대답하지 말고 그냥 운전을 해.”
꾸역꾸역 대답하는 청년에게 차유신이 으름장을 놓았다. 움츠린 그가 주억거렸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긴 숨을 고른 차유신이 이마를 짚었다. 절단된 부위가 갈수록 쓰렸다. 진통제라도 하나 챙겨올걸.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고 난 차유신이 조수석을 향해 팔을 뻗었다.
“무원이 형. 거기 밑에 열어봐.”
진무원이 바로 글로브박스를 열었다. 안에서 보드카 병 하나가 데굴거리며 내려왔다. 차유신이 손을 까딱했다.
“줘.”
“마시게?”
“어. 마시게. 아파서 뒤질 것 같아.”
진무원이 망설임 없이 보드카 병을 건네줬다. 받아든 차유신이 뚜껑을 열었다. 룸미러 속 청년이 사색이 됐다. 그대로 입에 가져가 벌컥거리는 차유신을 향해 진무원이 태연히 조언했다.
“너 다쳤다며.”
“어.”
“적당히 먹어라.”
“얼마나 적당히.”
“거기서 이 분의 일.”
“괜찮네.”
절반가량 남은 보드카의 절반이 딱 일 분만에 비었다. 입을 훔친 차유신이 옆에다 병을 던졌다. 이내 재킷을 걸치고, 넥타이를 칼라 밑에 집어넣었다. 곁눈질로 지켜보던 진무원이 입을 뗐다. 부쩍 신중한 음성이었다.
“추가로 보고할 것 있어.”
“뭐.”
“우태원이 새벽에 사직서를 냈고, 대국민당이 이를 받아들였어. 본회의 의결이 남아있긴 하지만 사실상 우태원은 오늘 자로 의원직을 내려놓은 셈이야. 본인이 더 이상 국회에 있을 의사가 없고, 소속 정당이 이를 수용했으니까.”
막 넥타이 매듭을 완성하고 난 손이 툭 떨어졌다. 파노라마처럼 길어지는 차창 밖 풍경이 무뎌져 갔다. 차유신의 입에서 건조한 대꾸가 나왔다.
“그래.”
*
경찰청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허대윤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몇 장의 페이퍼를 올렸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종이로 뽑은 것이었다. 뚫어져라 보던 차유신이 한 장을 집어 면밀히 관찰했다. 확실히 석일태였다. 눈을 감고 있고, 목이 돌아간 채다. 다만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어제 오전 운도동 SDB빌딩 지하에서 석일태를 폭행 혐의로 현장 검거한 후 역현경찰서에서 12시간 넘게 조사를 진행한 다음 금일 오전 5시경 경찰들의 보호 아래 자택 이동을 시작했어. 출발한 지 20분 만에 사거리에서 돌진해 온 대형 트럭에 차가 전복했지. 경찰들은 대부분 경상 정도에 그쳤고, 그 과정에서 무리 지은 남자들이 석일태를 빼갔어. 이후 1시간 30분이 지난 6시 50분경 한 경기도의 한 호수에서 포대에 싸인 채 버려진 석일태의 시신을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해 신고했고.”
“사인은요.”
“불상의 인물에 의해 목이 오른쪽으로 꺾이면서 경동맥이 폐쇄. 뇌에 대한 혈액공급이 끊기고 산소가 차단되며 뇌사, 이후 심장마비. 범행을 시작한 후 완전 사망까지 걸린 시간은 7분에서 8분가량으로 추정. 확실하게 전문가가 한 짓이야.”
허대윤이 허리를 짚었다. 차유신의 아랫입술이 깨물렸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인지했다. 불상의 인물에 의해 목이 꺾여 사망. 7~8분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살인. 명백한 전문가에 의한 범죄.
“용의자는 파악했습니까.”
“서울 시내 CCTV 전부 뒤집어 까서 수사 들어갔는데 쉽지 않아. 범행에 쓰는 차량을 열 번 넘게 바꿔 탔고, CCTV가 거의 없는 이동 경로만 교묘하게 골라 이용했어. 경찰에 내부자를 뒀나 싶을 정도로 방식이 용의주도해.”
“역운회에서 벌인 일일 가능성은요.”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그게 가장 높지. 우리가 모르는 집안싸움으로 인해 다른 마음 먹은 놈들이 석일태를 작업한 거라고 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봐. 그런데 문제가 있어.”
허대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낯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오늘 오전 5시 10분부터 오전 8시 20분까지, 역운회 조직원 173명이 순차적으로 출국했어. 출국금지 대상이 아닌 인물들은 비행기를 이용했고, 서재길이나 권문직처럼 출국이 불가능한 놈들은 따로 불법 선박을 통해 이동한 모양이야. 이미 석일태가 무너진 시점에서 역운회 역시 끝난 거라 봐도 무방해. 본인들로서는 살길 찾겠다고 그런 거겠지만, 주요 용의자가 통째로 국내를 이탈하면서 수사 자체가 상당히 어려워졌어.”
“어디로 갔답니까.”
“상해. 비행기로 뜬 놈들이 전부 거기로 날랐어. 아마 배 탄 놈들도 같은 곳으로 향했겠지. 석일태 회장이 20년 전부터 키워 온 한인 조직이 거기에 있어. 사실상 역운회의 상해지점 같은 개념이야. 이 이상 국내에 있어 봐야 미래가 안 보이니, 상해처럼 보다 판이 넓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거라 판단한 거겠지. 뭐, 현명하다면 현명한 선택이다만.”
허대윤이 혀를 찼다. 차유신은 가만히 팔짱을 낀 채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페이퍼에 들어찬 석일태의 최후가 잔상처럼 시야에서 번졌다. 한참이나 입을 다신 차유신이 탁한 질문을 꺼냈다.
“그럼 이제 역운회는 누가 이끄는 걸까요.”
이리저리 청장실을 오가던 허대윤이 멈췄다. 느릿느릿 돌아간 얼굴이 차유신과 마주쳤다. 사뭇 냉한 표정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경찰 입장에서 거기까지 파악하는 건 어려워.”
“그렇겠죠.”
“다만.”
허대윤이 돌연 탄식했다. 차유신의 고개가 보다 들렸다. 허공에 시선을 둔 허대윤이 뇌까렸다.
“오늘 새벽 사표 낸 우태원 의원이 오전 7시 25분 비행기로 상해에 출국했어.”
테이블을 짚은 손이 덜컥거렸다. 일렁이는 눈망울이 스르르 흘러내린 끝에 다시 올라갔다. 묵묵하게 차유신을 응시하는 허대윤이 보였다. 마른 침을 삼킨 차유신이 물었다.
“경찰에서는 이제 우태원을 의심할 겁니까.”
허대윤이 픽, 웃었다.
“설마.”
어깨를 으쓱한 그가 말을 이었다.
“그놈의 증거가 없잖아. 환장스럽게도.”
*
데스크 위에 놓인 ‘국회의원 우태원’ 명패를 뒤집었다. 저벅저벅 걸어가 창가 앞에 섰다. 투명한 창 밑으로 화단을 지키는 무성한 나무들이 보였다. 그저 보일 뿐이다. 그 나무에서는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한 대 물고 불을 붙였다. 훅 내뿜은 연기가 푸르른 화단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 와중에 어떤 색채는 변치 않는다. 나무가 드리운 새까만 그림자. 빛을 반사하며 완성한 색채는 불안정성 앞에서 무릎을 꿇지만, 어둠은 의연히 자리를 지킨다. 그들은 빛나지 않기에 때때로 완전하다.
“그 검은 개….”
차유신의 입에서 희미한 혼잣말이 나왔다. 재차 흘려보낸 연기가 한층 전경을 흐렸다. 자욱한 연무 속에서도 음지는 여전히 음지다. 사멸이 두렵지 않은 어둠의 영역은 조금은 지루한 듯 차유신을 올려다볼 뿐이다.
“키우고 싶었는데.”
툭. 차유신의 손끝을 타고 재가 떨어졌다. 낙하한 뭉텅이가 캄캄한 창틀 구석에 처박혔다. 내려다보던 차유신의 눈이 고적해졌다. 왠지 기다리고 싶어졌다.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언젠가 만날 것만 같았다. 자신이 사랑한 그림자를.
개가 죽은 후부터 차유신은 종종 그랬다. 개를 기다렸다.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개라면 죽음 속에서도 살아있을 거라 믿었다. 무덤에서 태어난 생물에는 그런 기대감이 든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기에, 생명을 잃었을 때조차 그대로일 거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서로에 대한 기만이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냈나.”
짙은 숨이 연기와 엉겨 내뱉어졌다. 차유신의 눈꺼풀이 흘러내렸다. 재가 떨어졌던 창틀 모퉁이가 사물사물 죽어갔다. 이내 새까만 구렁텅이가 됐다.
빤히 보던 차유신이 손을 내밀었다. 파스스, 재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걸렸다. 낯을 굳힌 차유신이 손톱을 내밀었다. 그늘에 잠겨있던 것을 잡아 끄집어냈다. 하얀 종이쪽지. 천천히 펼쳤다. 안에는 지극히 단출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담배 피우지 마세요, 선배. 건강 나빠져요.
우태원.
일자를 유지하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휘파람을 불 듯 연기를 쏟고 난 차유신이 손가락에 끼운 담배꽁초를 끌어내렸다. 창틀에 종이를 올린 뒤 재떨이 삼아 푹 꽂아버렸다. 치익, 소리를 내며 글자가 탔다. 심드렁한 혼잣말이 나왔다.
“지랄하네. 누구 마음대로.”
무덤에서 태어나 무덤에서 살아온 우태원. 그러나 차유신을 만난 이상 그의 터전은 이제 요람일 수밖에 없다.
차유신이 그렇게 만들 거니까.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