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여울
12.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역현구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
여자들에게서는 늘 같은 샴푸 냄새가 났다. 가게 옆에 붙어있는 모텔에서 수년째 쓰는 싸구려 브랜드의 것이었다. 여자들은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손님과 옆 모텔에 가서 일을 치른 후 같은 샴푸로 머리를 감고 가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같은 일들을 반복했다.
나는 그 샴푸 냄새가 싫었다.
“울아. 담배 좀 사다 줄래?”
가게 한구석의 방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다 보면 수시로 여자들이 드나들었다. 목적은 대개 심부름이었다. 담배인 경우가 많았고, 생리대나 콘돔 같은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시키는 대로 사서 갖다주면 그들은 심부름 값으로 거스름돈을 줬다.
“남은 거 있어요.”
서랍을 뒤져 하얀 담뱃갑을 꺼냈다. 어쩌다 거기에 있게 됐는지는 나도 잘 몰랐다. 여자들은 내 방을 휴게실처럼 이용했다. 거기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내 방에서는 담배나 생리대, 콘돔 따위가 떨어진 동전처럼 굴러다녔다.
“어머. 고마워라.”
생긋거린 여자가 담뱃갑을 받아들었다. 이내 대뜸 내 앞에서 양반다리로 앉고는,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을 밀어줬다.
“너 가져.”
“고맙습니다.”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에서는 역시 샴푸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을 고이 접어 서랍 안에 넣었다. 서랍장 문을 닫은 뒤 가볍게 손 냄새를 맡았다. 나에게서도 샴푸 냄새가 났다.
“뭐해?”
담뱃불을 붙인 여자가 기웃거렸다. 나는 신문지에다 손바닥을 대었다.
“신문 읽어요.”
“안 어려워? 거기 한자도 많잖아.”
“안 어려워요.”
“한자 읽을 줄 알아?”
“네.”
“이건 뭐야?”
“재계.”
“이건.”
“야권.”
“너 진짜 대단하다.”
여자가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다. 정말로 신통방통하다는 투였다. 불현듯 여자의 뒤에서 문이 열렸다. 들어온 단발머리 여자가 다짜고짜 여자의 담뱃갑에서 한 대를 뽑아 입에 물었다. 앉아 있던 여자가 짜증을 냈다.
“아, 좀! 사서 피우라고.”
“야. 너 바깥에 봤어?”
“바깥에 뭐.”
“정 이사 왔다?”
“해도 안 졌는데 벌써?”
“어어. 미쳤나 봐.”
찌푸린 단발머리가 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원래 있던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누구 데려갔는데.”
“은지.”
“은지 엄청 좋아하네.”
“착해갖고 싫은 소리 못하는 애잖아. 알고 데려간 거지.”
“걔 또 울면서 들어오겠다. 하여간 손버릇 존나 더러운 새끼.”
“이 정도면 마담 언니가 컷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 언니가 하겠어? 역운회라면 다 대주는 인간이. 정 이사가 아무리 좆같아도 역운회 사도동 본부장이야. 그 언니가 역운회 앞에서 빼는 것 봤니?”
원래 있던 여자가 혀를 내둘렀다. 훅, 연기를 내뿜은 단발머리가 이를 갈았다.
“식구도 챙길 줄 모르는 미친년. 역운회 창녀년.”
방이 고요해졌다. 입을 다문 여자들이 뒤늦게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 신문만 봤다. 눈치를 보던 원래의 여자가 갑자기 과장되게 내 어깨를 쳤다.
“야, 그건 그렇고. 울이 대단하다?”
“울이가 왜.”
“얘 한자 읽어. 신문에 있는 것 다 읽더라.”
“진짜? 울이가 몇 살이지?”
“여섯 살이었던가. 맞지, 울아?”
여자들이 나에게 눈을 맞췄다. 나는 가만히 끄덕였다.
“네.”
“너 나중에 학교 들어가면 엄청나겠다. 영어도 잘하잖아. TV만 보고도 똑같이 따라 하고.”
“학교 못 갈지도 몰라요.”
담담한 대꾸가 나왔다. 여자들이 또 조용해졌다. 바로 내 말뜻을 이해한 그들이 서둘러 담배를 뻐끔거렸다. 방 안이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찼다. 목이 아팠지만 나는 기침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여자들은 담배를 각 두 대씩 피우고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는 한동안 하얀 연기가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지독한 샴푸 냄새가 났다.
*
‘여울’은 역현구 사도동에 있는 방석집 이름이었다. 사도동 중심부에서 왼편에 위치에 있었다. 사도동의 구조는 간단했다. 한가운데 거대 하우스 밀집촌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집창촌이, 다른 한쪽에는 방석집이 몰려있는 형태였다.
손님은 다양했다. 하우스를 오가는 도박꾼, 하우스를 운영하는 장사꾼, 그리고 이 일대를 관리하는 역운회 조직원들. 사도동에 있는 모든 것은 역운회의 손아래 있었다. 내가 태어난 여울은 역운회 조직원이 유독 자주 찾는 방석집이었다. 어머니는 그곳의 마담이었다.
“애 이름 안 붙여줄 거야?”
여울의 가장 안쪽에는 어머니의 개인 방이 있었다. 개인 방이라고는 해도 방석집에 존재하는 여느 룸들과 비슷했다. 단지 더 넓고, 고급스럽게 꾸며졌을 뿐이다. 나조차도 그곳에는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했다. 아주 가끔씩, 어머니가 불렀을 때만 발을 들였다. 대체로 손님이 나를 보길 원할 때였다.
“도 사장이 알아서 뭐 하게요.”
남자의 질문에 어머니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 틈으로 수증기 같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남자도 덩달아 굵직한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숨을 참은 채 어머니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함부로 기침을 했다간, 어머니로부터 한 소리 들을 게 분명했다.
“몇 살이야.”
“여섯이었던가, 일곱이었던가.”
“본인 애 나이도 몰라?”
“솔직히 헷갈려. 2월생인 건 분명한데.”
“나 참…. 그러게 출생신고 하라니까. 그러면 안 헷갈릴 것 아니야.”
“애 아빠가 누구인 줄 알고 함부로 출생신고를 해요? 들일 호적이 없다니까.”
“야, 그냥 내 호적에 올려. 몇 번을 말해!”
탕, 테이블이 내리쳐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수그렸다.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배만 빨았다. 연무와 함께 냉랭한 언어가 샜다.
“내가 뭘 믿고 당신 호적에 울이를 들여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언제까지 울이, 울이, 할 거야? 그것도 사내새끼한테. 야, 내가 지금 너한테 기회 주는 거야. 줄 때 잡아. 어?”
“별로 기회가 아닌 것 같은데.”
어머니가 시큰둥하게 손을 내밀었다. 재떨이 위에서 툭, 툭, 하얀 재가 떨어졌다. 곤로한 음성이 방을 메웠다.
“석일태 사장이 배 사장하고 당신, 둘 다 제거하고 역운회 통째로 먹으려 한다는 얘기가 있어. 당신 죽으면, 그대로 애 고아 되게?”
남자의 턱이 움찔했다. 꿀꺽거리며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곧 서늘한 음성이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어디서 들었는지가 뭐가 중요해? 하여간 당신하고 배 사장 사이 오가면서 충견처럼 구는 우종진 이사, 걔 조심해요. 걔가 석 사장 프락치야. 당신하고 배 사장하고 둘 다 홍콩에서 필로폰 들여오려고 그쪽 애들이랑 각각 다른 루트로 협상 중이라면서. 그거 중간에서 이간질 시켜갖고 둘이서 치고받고 싸우다 자멸시키려는 모양이야. 석 사장하고 우 이사가 말이지.”
“지금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잖아. 이 씨발년아!”
요란한 소음과 함께 테이블이 엎어졌다. 나는 완전히 어머니의 팔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씩씩거리며 다가온 남자가 어머니의 턱을 잡아 올렸다. 어머니는 피곤하다는 듯 들고 있던 담배만 까딱거렸다.
“여기 역운회 애들 단골집이야. 오며 가며 듣는 귀 없었겠어?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왜 이렇게 오버해요? 자신감 떨어지는 사람처럼.”
남자의 낯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남자에게 얼굴을 움켜잡힌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태연하게 담배를 마저 피웠다. 서너 모금 빤 끝에 남은 꽁초를 내려다보다, 어머니가 눈을 돌렸다. 이내 내 손에 쥐여 주며 지시했다.
“이거 재떨이에 버리고 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테이블로 걸어가 재떨이에 꽁초를 꽂고는 돌아왔다. 자리에 앉았을 때, 아까에 비하면 다소 가라앉은 남자의 면상이 나를 향했다. 나는 빤히 눈동자를 끌어올렸다. 밭은 숨을 몰아쉰 남자가 어머니의 턱에서 손을 거뒀다. 이내 퉤, 바닥에 침을 뱉으며 경고했다.
“간다. 어디서 헛소리 지껄이고 다니지 말고.”
입구로 걸어간 남자가 쾅. 문을 닫고는 사라졌다. 나는 멀거니 서서 어머니를 쳐다봤다. 다리를 꼰 어머니가 길게 목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짜증 섞인 혼잣말이 귀를 옭맸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
*
여울, 구멍가게, 뒷산. 다시 여울, 구멍가게, 뒷산. 내 행동반경은 지극히 단순했다. 애초에 거기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같이 다닐 친구도 없었다. 인근의 방석집에 내 또래 애들이 일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은 전부 나를 피했다.
역운회 창녀년 아들! 종종 나를 그렇게 부르는 아이가 있었다. 못 들은 척 흘려버리다, 결국 어느 날 버럭 했다. 너희 엄마도 창녀야! 놈은 울먹이며 도망갔다. 놈을 끝으로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는 없었다.
내 또래 아이가 다시 말을 걸어온 건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였다.
“너 여기서 살아?”
처음엔 나보다 많이 형인 줄 알았다. 키가 꽤 커서였다.
“응.”
나는 가붓하게 주억거렸다. 소년은 물끄러미 내 손을 주시했다. 나는 쥐고 있던 담배 두 갑을 내밀었다.
“이거 필요해?”
“음… 아니. 난 괜찮아.”
소년이 도리질을 쳤다. 이내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몇 살이야?”
“여섯 살.”
“내가 형이네. 난 일곱 살이야.”
“그럼 나하고 동갑인 거야. 난 2월생이거든. 빠른 년생이니까 너하고 동갑인 거야.”
내가 또박또박 말했다. 헛웃음을 친 소년이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야?”
“울.”
“그게 다야?”
“여울.”
“저거랑 이름이 같네.”
소년이 손가락을 뻗었다. 가리킨 곳에 우리 가게의 간판이 있었다. 나는 그저 입을 다셨다.
“사실 가짜 이름이야.”
“가짜 이름?”
“난 이름이 없어. 그래서 사람들이 다 가게 이름을 따서 불러. 저기가 우리 가게거든.”
“이름 예쁘다.”
“여자애 이름이잖아.”
내가 대뜸 따졌다. 소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예쁜데.”
이번엔 내가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정훈석.”
“멋있다.”
“너도 나중에 이런 이름 만들어.”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난 호적에 올라가야 해.”
“호적?”
“어. 어머니가 다른 남자하고 결혼을 해야 해. 그래야 내가 그 남자 호적에 올라가.”
“어렵네.”
정훈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잠자코 눈을 깜박였다. 좀 멍청한 놈 같다.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닌 듯해 다행이다.
가게 쪽에서 기척이 났다. 내 얼굴이 돌아갔다. 막 차에서 내린 두 남자가 입구를 향하고 있었다. 안 되는데, 아직 문 안 열었는데.
“나 가볼게.”
황급히 다리를 뻗었다. 허겁지겁 달려가는 나를 정훈석이 불러 세웠다.
“울아.”
잠시 뒤를 봤다. 놈이 조곤조곤 말했다.
“난 운도동 살아. 오늘은 아빠 따라서 잠깐 놀러 왔어. 다음에 또 놀러 올게.”
나는 성의 없이 손을 흔들었다. 이내 마저 뛰어 가게 앞으로 갔다. 멀끔한 정장 차림의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남자는 젊었고, 한 남자는 그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들어가시면 안 돼요. 누나들 아직 출근 안 했어요.”
입구를 막아서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나이 많은 남자가 실소했다. 이내 젊은 남자를 보며 물었다.
“이 애가 서인이 아들인가?”
젊은 남자가 끄덕였다.
“맞습니다.”
“아이고. 어린애가 벌써부터 인물이 훤칠하네. 미인 밑에서 미남 나오는 법인가.”
나이 많은 남자가 피식거렸다. 젊은 남자가 나를 향해 허리를 굽었다. 가볍게 내 어깨를 어루만지고는, 입을 열었다.
“엄마 만나러 왔는데, 문 좀 열어줄래?”
“누구신데요? 성함 알려주세요. 제가 들어가서 얘기할게요.”
내 목이 꼿꼿해졌다. 젊은 남자가 못 당하겠다는 투로 입꼬리를 올렸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긴 미소였다.
“어머니께 우종진 이사 왔다고 전해줘. 석일태 사장하고.”
*
“내년쯤에 이쪽 방석집 라인은 전부 리모델링을 할까 해. 보다 체계적으로 업소를 운영하는 거야. 그러려면 이쪽을 아주 잘 알고, 또 능력이 있는 마담 하나가 본부장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석 사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위스키 잔을 들었다. 꿀꺽거리며 잔을 비우는 그의 옆에서 ‘우 이사’라고 불린 남자는 정자세로 앉아만 있었다. 막 안으로 들어온 내가 문을 닫고 그들의 곁으로 갔다. 테이블 위에다 주방에서 가져온 과일 그릇을 뒀다. 석 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똑똑해라. 심부름도 잘하네.”
나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관찰하듯 보던 그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하얀 지폐 몇 장을 뽑더니, 손에 쥐여 줬다.
“가져라. 심부름 값이다.”
손 안에서 ‘100,000원’이라고 적힌 지폐가 팔랑거렸다. 나는 어머니를 힐긋했다. 어머니가 고갯짓을 했다. 받으라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어, 그래. 어머니 옆에 있어봐라. 얼굴이나 잘 보게.”
석 사장이 껄껄거렸다. 나는 몸을 틀어 어머니가 있는 소파로 갔다. 옆에 몸을 앉힌 뒤 어머니와 석 사장, 우 이사를 번갈아 봤다. 빈 잔을 내려둔 석 사장이 턱을 괴었다. 은근한 음성이 다가왔다.
“아무튼 아까 말한 그 본부장 역할, 우리 서 사장이 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어머니의 입에서 픽, 소리가 났다. 내뻗어진 손이 테이블 위의 담뱃갑을 쥐었다. 한 대를 빼서 입에 문 어머니가 뇌까렸다.
“다른 업소 마담들이 질투 좀 할 텐데.”
“다른 년들이 질투한다고 마냥 당하고 있을 여자야? 우리 서 사장이.”
석 사장이 과장되게 폭소했다. 웃지도 않고 담배 끝에 불을 붙인 어머니가 말을 돌렸다.
“뭐, 그건 그거고.”
차가운 질문이 덧붙었다.
“도 사장하고 배 사장은? 둘 다 갈아버린다면서. 금방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영 소식이 없네.”
어머니가 갸웃했다. 석 사장의 낯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무표정이 된 그가 위스키 병의 목을 잡았다. 그대로 자신의 잔 위에 가져가 내용물을 쏟았다. 표면장력에 맞춰 채워진 잔이 찰랑였다.
“도명진이가 뭐래.”
잔을 든 석 사장이 물었다. 훅 연기를 뿜은 어머니가 답했다.
“홍콩에서 필로폰 들여오는 거, 맞긴 한가 봐요. 며칠 전에 떠봤더니 아니라고도 못 하고 얼굴만 붉히다 가더라고.”
“잘됐네. 판은 다 짜졌고, 작업하는 일만 남았어.”
석 사장이 입가에 잔을 가져갔다. 대번에 손목을 꺾고는, 두어 번에 걸쳐 내용물을 비웠다. 빈 잔을 내려둔 그가 입을 훔쳤다. 이어 우 이사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홍콩 쪽에 얘기 흘려놨어. 역운회 사장 중 두 명이 가격 후려치기 하려고 양쪽에서 필로폰 금액 갖고 장난칠 거라고. 거기서는 두 사람 다 탐탁지 않을 거야. 다음 달에 홍콩 애들 입국할 텐데, 내가 먼저 접근해서 최고가 제시하고 두 사람 다 담그자고 제안할 거야. 싫다고 할 이유가 없지. 어차피 그들 입장에서는 해외에서 칼춤 추는 일이야. 담그고 튀면 그만이라는 얘기지. 무엇보다 내 가격은 두 사람이 제시한 가격의 두 배 수준이거든.”
석 사장이 테이블을 어루만졌다. 매끈한 표면을 딱, 딱, 소리 나게 두드려가며 권태롭게 읊조렸다.
“애초부터 말이 안 돼. 물론 역운회가 국내에서 가장 큰 조직이긴 하지만, 500명도 안 되는 회사에 보스가 세 명이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가면 갈수록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걸 깨달아. 사공이 세 명이나 되면 배가 함부로 가거든.”
딱. 마지막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유독 컸다. 얼굴을 든 석 사장이 어머니에게 시선을 뒀다. 어머니가 말없이 그와 눈을 맞췄다. 엷게 미소를 띤 석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벅거리는 발소리에 괜한 긴장감이 일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다가온 그가 팔을 뻗었다. 부드럽게 어머니의 허리를 감고는 희롱하듯 주물럭거렸다.
“온 김에 서 사장하고 내밀한 얘기도 좀 나누고 그래야 하는데…. 예쁜 아들내미도 있는데다가, 내가 워낙 시간이 없네.”
어머니가 사뿐히 눈매를 접었다.
“아쉽네요.”
똑똑.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일어난 우 이사가 입구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방금 전달받았습니다. 정장 차림의 남자가 하얗게 포장한 액자 모양 물건을 건넸다. 받아든 우 이사가 기다리라는 턱짓을 했다. 남자가 일자로 우뚝 섰다.
“요즘에 미술품 사들이는 데 재미를 붙여서, 주말마다 경매장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는데. 딱 보니까 서 사장 생각나는 그림이 있더라고. 작가가 신예긴 하지만 그쪽에서 꽤 주목받는 천재라대? 서 사장이 한번 잘 봐봐. 값어치가 얼마나 될는지.”
허리를 세운 석 사장이 발을 옮겼다. 이동한 우 이사가 테이블 위에 물건을 올렸다. 우 이사를 스쳐 지나간 석 사장이 열린 문 앞에 섰다. 다시 어머니를 본 그가 부드럽게 입을 뗐다.
“난 이만 가볼게. 조만간 또 보자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사장님.”
어머니가 사뭇 예의 바르게 상체를 숙였다. 우 이사를 힐끔한 석 사장이 손짓을 했다.
“그건 종진이 네가 좀 걸어줘라. 난 광화문 식사 자리 빨리 가봐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사장님.”
우 이사가 구십 도 각도로 허리를 굽었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등을 보인 석 사장이 밖으로 나섰다. 그림을 들고 왔던 남자가 문을 닫았다. 안이 다소 고요해졌다.
“어디다 둘까요. 사장님.”
우 이사가 액자 모서리를 잡았다. 지익, 소리와 함께 새하얀 종이가 뜯겼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연기만 뿜었다. 습관적으로 곱씹는 혼잣말이 들렸다. 머저리 같은 새끼들. 역운회 사람이 이 방에서 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항상 그런 말을 했다.
찢겨나간 종이 너머에서 현란한 물감 자국이 점점 드러났다. 갖춰져 가는 그림을 감상하던 망막이 흔들렸다. 유독 시뻘건 색감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건 아주 빨간 꽃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실제 꽃보다 신선한 색채를 지니고 있어, 마치 피에 갓 담갔다 건진 것을 연상케 했다.
“아무 데나 둬. 나 그림에 관심 없어.”
어머니가 이마를 짚었다.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가 꽁초 크기만큼 줄어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나에게 그것을 버리고 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 위태로운 조각을, 어머니는 한동안 붙들고 있었다.
“도명진 사장한테 흘렸어. 너하고 석 사장이 짜고 도 사장이랑 배 사장 작업할 거라고.”
어머니가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막 액자를 들어 올린 우 이사가 주춤했다. 어머니가 곁눈질로 그를 봤다.
“네가 시키는 대로 했어. 이제 됐니?”
우 이사는 아주 잠시만 멈춰있었다. 찰나의 정적이 두 사람을 가르고, 우 이사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그림을 든 그가 저벅저벅 걸어 구석으로 갔다. 널따란 빈 벽이 있는 자리였다. 눈으로 자리를 가늠하던 우 이사가 중얼거렸다.
“잘하셨습니다. 서 사장님.”
“나 이제 몰라. 너 알아서 해.”
어머니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등을 젖혔다.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다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능숙하게 새까만 꽁초를 받았다. 어머니가 단조로이 지시했다.
“재떨이에 버리고 와. 울아.”
바로 자리에서 벗어나 테이블로 향했다. 재떨이에 꽁초를 박고, 고개를 들었다. 서랍에서 못과 망치를 꺼내던 우 이사와 눈이 마주쳤다. 묵묵하게 나를 살피던 그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몇 살이죠?”
“울이?”
“네.”
“여섯…. 일곱…. 아니, 여섯이 맞나.”
“곧 학교에 가야 하겠네요.”
“거기를 어떻게 가겠니? 주민등록도 안 한 애가.”
“제 호적에 올리세요. 서 사장님만 괜찮으시다면.”
나직하지만 단호한 한 마디였다. 어머니의 눈꺼풀이 확 들렸다. 덩달아 나도 눈을 달싹였다.
“저는 그랬으면 좋겠는데.”
의자를 벽 쪽으로 옮긴 우 이사가 단숨에 위로 올라섰다. 빈 벽을 더듬거리며 위치를 잡고는, 입에 문 못을 빼 맞추면서 말을 이었다.
“서 사장님도 그게 좋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딱. 못의 윗부분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의 아랫입술이 미미하게 깨물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녀가 중얼거렸다.
“너 태원이는 어쩌고.”
“상관없잖습니까. 태원이가 울이보다 세 살이 어립니다. 울이가 들어온다고 해서 둘이 딱히 서열 꼬일 게 없다는 얘기죠. 게다가 태원이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없이 자랐으니.”
딱. 보다 세찬 마찰음이 들렸다. 굵다란 못이 푹, 벽에 처박혔다. 튀어나온 못을 만지작거린 우 이사가 말을 맺었다.
“서 사장님이 와주는 쪽이 더 좋겠죠.”
망치가 의자 위로 내려왔다. 밑에 뒀던 액자를 찾아 든 우 이사가 다시 허리를 폈다. 하얗기만 한 벽에 화려한 불청객이 걸렸다. 꿈틀거리는 혈관처럼 만개한, 새빨간 꽃이었다.
“너 죽을 수도 있는 입장이야.”
바닥으로 내려오는 우 이사에게 어머니가 쏘아붙였다. 우 이사는 심상하게 손을 털었다.
“압니다.”
“너 석 사장 제대로 배신한 거야. 나를 통해 석 사장이 도 사장하고 배 사장 칠 거라는 걸 장본인들에게 흘렸어. 결국 셋이서 진흙탕 싸움하다가 전부 깨지는 꼴 보겠다는 건데…. 그게 네 뜻대로 될 것 같아? 역운회 먹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어머니가 눈을 치떴다. 우 이사는 무표정으로 발을 내밀었다. 딱딱한 구둣발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나는 어쩐지 수그린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그림자가 서서히 어머니를 향해가고 있었다.
“쉽지 않다는 것 압니다. 다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울이를 제 호적에 올릴지, 말지만 얘기해 주십시오.”
어머니의 눈빛이 서슴거렸다. 어느덧 우 이사의 그림자는 어머니를 덮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질근 입술을 깨문 어머니가 날을 세웠다.
“그만.”
우 이사가 멈칫했다. 어깨를 떤 어머니가 우 이사를 외면했다.
“CCTV 있어. 석 사장이 지난주에 설치했어. 음성까지는 녹취가 안 되지만,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는 전부 노출돼.”
미간을 구긴 우 이사가 허리를 짚었다. 그의 입술 틈에서 텁지근한 숨이 샜다. 힐긋 우 이사를 본 어머니가 입을 뗐다. 한층 정돈된 음성이 실내를 메웠다.
“네 뜻대로 석 사장하고 배 사장, 도 사장 다 무너뜨리고 역운회 먹으면 그때 울이 호적에 올려. 난 조폭 새끼들 다 살아있는 시체라고 생각해. 하나같이 언제 죽을지 몰라. 그래서 울이를 조폭 놈들 호적에는 못 올리는 거야.”
“제 뜻대로 성공하면, 그땐 된다는 거네요.”
우 이사가 얼핏 웃었다. 아주 여유로운 미소였다. 복잡한 듯 찌푸린 어머니가 끝내 수긍했다.
“그래. 그때는 돼.”
“알겠습니다.”
흔쾌히 답한 우 이사가 몸을 틀었다. 뚜벅뚜벅 이동하는 그의 그림자가 나를 스쳤다. 입구에 다다른 그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대로 돌리려다 나를 일별하고는, 입매에 호를 걸었다. 은은한 언어가 귓불을 간지럽혔다.
“울이 이름은 유신으로 하시죠.”
“유신?”
어머니의 의아한 듯 되물었다. 손잡이를 빙글 돌린 우 이사가 말했다.
“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최고의 뜻이죠.”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밖으로 나선 우 이사가 문을 닫았다. 탁. 정적에 휩싸인 방 안에서 나는 습관처럼 어머니부터 살폈다. 어머니는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꾹 다물린 입에서는 아무런 언어가 나오지 않았다. 희한한 의구심이 들어, 나는 연달아 눈을 깜빡였다.
역운회가 나갔는데, 어머니가 ‘머저리 같은 새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
우렁차던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잠자리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9월이 왔다. 석 사장이라는 사람은 그날 이후로 가게에 오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가 화려한 차림을 하고 시내에 다녀오는 일이 잦아졌다. 대체로 늦은 저녁에 나가 새벽에 왔다. 돌아온 어머니는 줄담배를 피웠고, 그러면서 ‘머저리 같은 놈들’을 반복해 말했다. 그다음 날에는 반드시 우 이사가 왔다.
그는 항상 뭔가를 가지고 왔다. 매우 비싸 보이는 고급 화분이라든지, 명품 브랜드 로고가 들어간 커다란 쇼핑백이라든지, 하다못해 하얀 봉투라도. 우 이사가 오면 어머니는 약속한 것처럼 방의 문을 잠갔다. 그들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가량 밀폐된 공간에 있었다. 나는 그들이 CCTV까지 설치된 곳에서 무엇을 하는 지가 종종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가 진짜 나를 호적에 올릴 것인지였다.
“아이스크림 먹어.”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로 우 이사가 오던 날, 나는 가게 입구를 배회하며 돌멩이를 걷어차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누군가가 내 목덜미에 차가운 것을 댔다. 화들짝 놀라 뒤를 봤다. 정훈석이 아이스크림 봉지를 흔들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너 되게 자주 보인다.”
놈에게 들린 아이스크림을 낚아챘다. 정훈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싫어?”
“그건 아니고.”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싫었다. 그러나 그걸 표출하면 외로워질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이 구역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경멸했다. 그것들과 어떤 형태로든 엮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조차도 말이다.
마음은 그랬지만, 실천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혐오를 혐오답게 하는 것보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더 컸다. 나는 결국 사람이 필요한 여섯 살이었다.
“오늘은 삼촌이랑 왔어.”
“삼촌?”
“친삼촌은 아니야. 아빠 회사 친구인데, 내가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
정훈석이 아이스크림을 깨물며 말했다. 나도 봉지를 까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물었다. 쪽쪽 빨아보자, 싸구려 과일 향이 물씬 입 안을 채웠다. 그 인공적인 맛을 억지로 음미하며 놈에게 질문했다.
“너는 너희 아버지가 깡패인 것 알아?”
정훈석의 입에서 뚝, 아이스크림이 조각났다. 놈의 표정이 부쩍 멍청해졌다.
“우리 아빠가 깡패래? 누가 그래?”
“너희 아버지 회사가 어디야.”
“역운회.”
“거기가 깡패 회사야. 그러니까 너의 아버지는 깡패인 거고.”
“우리 아빠는 그냥 이 동네 관리하는 사람인데.”
“그게 깡패가 하는 일이야. 이 멍청아.”
놈의 머리를 딱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쳤다. 정훈석은 맞고서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눈을 껌뻑여가며 바닥을 볼 뿐이었다. 놈의 손에서 그새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뚝, 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말 함부로 하지 말라면서 나를 한 대 칠 법도 한데, 정훈석은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알게 된 지는 불과 한 달 된 사이이지만 정훈석은 이상할 정도로 나를 잘 따랐다. 내가 대단히 똑똑하며 뭐든지 다 아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한자를 읽을 줄 알고, 영어를 잘 따라 한다는 걸 몇 번 보여줬더니 나를 무슨 종교처럼 신봉했다.
돈이라도 빼앗긴 애처럼 풀죽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입이 다물렸다. 만에 하나 정훈석이 믿지 않는다면 다른 것도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그만두기로 했다.
예를 들어 너희 아버지는 우리 가게 누나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 이사’라는 사람이며, 싫어하는 이유는 누나들에게 손찌검을 하기 때문이고, 그 누나들 말고도 이 동네 사람 다수에게 너희 아버지는 미움받고 있다고. 너희 아버지는 그런 깡패 놈이라고.
“미안해.”
갑자기 정훈석이 사과를 했다. 내 눈이 바로 찡그려졌다.
“뭐가 미안해.”
“음… 그냥.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정훈석이 거의 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궜다. 나는 남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입 안에 넣은 채 굴렸다. 놈이 끈적거리는 손을 입고 있던 티셔츠 자락에 비볐다. 새파란 면 위에 질척한 자국이 남았다.
“아빠가 깡패라서 미안해.”
“그게 다야?”
내 언성이 절로 높아졌다. 정훈석이 갸웃했다. 둥그런 눈이 천진하게 빛났다.
“그럼. 또 뭔가를 해야 해?”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버지가 깡패인데.”
“어쩔 수 없잖아. 이미 그렇게 된 걸 어떻게 해.”
정훈석이 다 닦은 손으로 손부채질을 해줬다. 미지근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쳤다. ‘여울’ 간판을 힐끔거린 정훈석이 담담히 말했다.
“원래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 많은 거야. 울아.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
“너 되게 한심한 놈이다.”
“그런 얘기 자주 들어.”
정훈석이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그 어조가 하염없이 태평해,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 왠지 내가 놈에게 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사실이 허망하면서도 분했다.
“같이 온 동생 볼래?”
정훈석이 말을 돌렸다. 나는 불퉁하게 시선을 끌어올렸다. 놈이 해맑게 말을 덧붙였다.
“삼촌네 아들하고 같이 왔거든.”
“우 이사?”
“응. 우 이사 아저씨. 너도 알아?”
“우 이사한테 아들이 있어?”
“있어. 세 살이야.”
정훈석이 저편의 검은 차를 가리켰다.
“저기 뒷좌석에 있어. 햇볕이 싫다고 안에 있겠대.”
새까맣게 선팅된 차창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빤히 유리를 보던 내 낯이 골똘해졌다. 자식이 있다는 건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제 호적에 올린다고 하기에 당연히 아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 왔다.
햇살을 고스란히 반사하는 까만 창을 보고 있자니 눈초리가 조금조금 매서워졌다. 조급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자식이 있어도, 내가 호적에 올라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가. 나는 거기까지는 잘 몰랐다. 그러므로 막연히 두려워졌다.
만에 하나 저놈 때문에 내가 호적에 올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구석에 버려진 벽돌이 보였다. 덥석 집어 들고는 차를 향해 걸었다. 정훈석이 서둘러 따라왔다.
“울아. 벽돌은 왜?”
“시끄러워.”
놈을 무시한 채 차창 앞에 섰다. 어둑한 유리 너머에서 움직이는 작은 머리통이 보였다. 이걸로 치면, 죽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벽돌보다 가벼운지 무거운지, 그 무렵의 나는 전혀 몰랐다.
무작정 던졌다. 쨍그랑,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검은 창이 사방팔방 깨져나갔다. 시트 끄트머리에 처박힌 벽돌이 퉁, 튀어 올랐다가 바닥을 굴렀다.
훤히 드러난 차 안에는 아주 귀엽게 생긴 어린애가 있었다. 인형처럼 앉아만 있는 애였다. 벽돌에 스쳤는지 유리 조각에 스쳤는지, 하얀 볼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놀라지도 않고 대충 얼굴을 훔친 애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나는 석연치 않은 눈으로 놈을 마주봤다.
벽돌로는 사람이 안 죽는구나.
“무슨 일이야?”
뒤편에서 어른 목소리가 났다. 고개가 홱 돌아갔다. 성큼성큼 다가온 우 이사가 나와 차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내 차 문을 열어 어린애를 잡고는 이리저리 살폈다. 무표정으로 멈춰있던 애가 말했다.
“안 다쳤어요.”
“볼은 왜 그래.”
“제가 했어요.”
애의 눈망울이 또렷해졌다. 우 이사의 미간이 미미하게 좁혀들었다.
“또?”
애는 답하지 않았다. 귀찮다는 투로 몸을 숙이고는, 입에 지퍼를 채웠다. 탄식한 우 이사가 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뒷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울이는 안 다쳤니?”
우 이사가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 대꾸했다.
“네.”
“그래. 다행이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장난치지 마라. 예쁘게 생겨서 왜 나쁜 일을 하고 그래.”
“네….”
어깨가 점점 움츠려졌다. 내가 아주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걸, 그제야 막연하게나마 인지했다. 가만히 관찰하던 우 이사가 손을 뻗었다. 가볍게 내 등을 어루만지고는, 타이르듯 말했다.
“조만간 울이 동생 될 아이야. 잘 해줘야지. 응?”
“호적.”
저도 모르게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우 이사의 윗눈썹이 꿈틀거렸다. 더듬거리던 입이 마저 열렸다.
“이미 자식이 있는데, 제가 또 호적에 올라갈 수 있어요?”
멍해져 있던 우 이사가 갑자기 대소했다. 적잖게 웃고 난 그가 보다 부드럽게 내 등을 쓸었다. 한껏 상냥한 언어가 다가왔다.
“충분히 올라갈 수 있지. 아저씨가 이름도 지어놨어. 유신이라고. 아주 좋은 뜻이야.”
“진짜죠?”
“그럼.”
우 이사가 크게 주억거렸다. 말아 물렸던 입술이 스르르 풀렸다. 노곤한 혼잣말이 나왔다.
“다행이네요.”
머릿속에서 잔잔한 파동이 번졌다. 점점 늘어나는 물결을 따라 동일한 언어가 황홀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다.
그리고 갈망했다. 이 안도가 영원하기를.
*
원래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 많은 거야. 울아.
그날 정훈석이 했던 이야기는 꽤나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나는 사실 그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일찍부터 그걸 깨달았다. 그때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은 건, 더는 인정하기 싫어서였다.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일투성이었다. 이름 없이 태어난 것도, 싸구려 샴푸 냄새가 풍기는 방 안에서 혼자 책이나 신문을 봐야 하는 것도, 당장 내년에 학교에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이 지긋지긋한 역현구 사도동에서 태어난 것까지, 전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원하지 않은 것 일색이었다.
어머니가 사라진 일도 그랬다.
가게에 들이닥친 남자들은 한 번쯤 봤던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여자들은 그들이 역운회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이 어머니의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는 사이, 여자들은 초조해하며 대화를 나눴다.
“우 이사가 죽었대.”
“왜?”
“석 사장 배신하려다 걸려서. 엊그제 홍콩 조직이랑 같이 배 사장하고 도 사장 담가버릴 때 우 이사도 같이 담갔대.”
“근데 마담 언니는 갑자기 왜 찾아온 거야?”
“언니가 우 이사랑 짜고….”
이어지는 대화 소리가 귓가에서 흐려졌다. 방 안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남자들이 윽박지르는 외침이 복도까지 들렸지만, 정작 어머니는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벌컥 문이 열렸다. 이마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어머니가 남자들에게 이끌려 나왔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해 맨발로 끌려가던 어머니가 나를 봤다. 우두커니 서 있던 내 어깨가 전율했다. 숨을 몰아쉰 어머니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뒤에 있던 남자가 어머니를 재촉하듯 밀어붙였다. 고꾸라질 뻔했던 어머니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이내 태연하게 발을 옮겼다. 주변을 꽁꽁 에워싼 남자들 때문에 어머니가 죄인처럼 보였다.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어떻게 해, 경찰에 신고해? 신고한다고 되겠어? 그냥 둬.
본인이 자처한 거야.
어머니와 남자들이 사라진 후, 나는 후다닥 뛰어 어머니의 방으로 갔다. 화분이며 접시 등이 산산이 부서져 난잡해진 바닥을 조심조심 밟아가며 주변을 살폈다. 벽 한 편에서 화사하게 만개한 빨간 꽃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똑바로 눈을 떴다. 꽃은 여느 때처럼 붉었지만, 더 이상 그것이 출렁이는 핏물 같다는 감상은 들지 않았다.
어머니가 흩뿌리고 간 진짜 피가 액자를 휘덮고 있어, 이제 그 꽃은 가짜처럼 보였다.
*
가게에만 있었다. 아무 곳에도 나가지 않고,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한정된 공간을 오갔다. 어머니가 사라진 후 여자들은 일제히 그곳을 떠났다.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함께 가자는 여자도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언제 돌아올지 몰랐으므로, 계속해서 그곳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한 달이 지나자 가스가 끊겼다. 나는 생라면을 부숴 먹거나 여자들이 남겨두고 간 과자를 먹었다. 한 달 반이 지나자 전기가 끊겼다. 나는 서랍장에서 촛불을 꺼내 불을 붙이고 다녔다. 두 달이 지나자 물이 끊겼다. 나는 굴러다니는 쓸모없는 종이를 찾아 얼굴을 닦고, 머리를 씻었다.
희한하게도 신문만큼은 매일같이 가게 문 밑으로 배달됐다. 나는 촛불을 켜둔 채로 글자를 읽었다. 국회에서 싸움이 났고, 검찰이 어떤 기업에 대한 수사에 나섰고, 광화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흔한 뉴스들이었다. 여울이라는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나만큼이나, 세상은 심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심심하지 않은 뉴스를 하나 발견했다. 사회면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는 손가락 하나만 한 기사였다. 역현호에서 30대 여성의 시신 하나가 발견됐다고 했다. 신원은 알 수 없으나, 경찰은 심하게 폭행당한 뒤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기사는 딱 거기서 끝났다.
*
복도 쪽에서 저벅거리는 기척이 났다. 어머니의 테이블 위에 일자로 누워있던 내 고개가 돌아갔다. 건물주인가. 몇 번인가 이곳을 들락거리는 걸 봤다. 그때마다 나는 옷장 안이나 테이블 밑 따위에 숨어들곤 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보면, 그는 알아서 떠났다.
“어린애가 이런 데 있다고?”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대꾸가 이어졌다. 일단 찾아보지, 뭐. 아니면 마는 거고. 서둘러 테이블에서 내려왔다. 벽에다 등을 붙인 채 숨을 골랐다. 건물주는 아닌 것 같다. 건물주는 나이가 아주 많은 남자인데, 저 사람들은 젊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 방은 또 뭐야.”
일단 숨을 곳을 찾던 내 근처에서 확 문이 열렸다. 불쑥 들어온 남자가 안을 두리번거리다 흠칫했다. 덩달아 움칠한 내가 입을 오므렸다. 빤히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뒤로 여자가 다가왔다.
“어머나, 진짜 있네? 엄청 어려 보인다.”
“부모님은 어디 갔니?”
남자가 물었다. 나는 망설이다 답했다.
“몰라요.”
“여기엔 얼마나 있었어.”
“삼 개월 정도요.”
“혼자서?”
“네.”
남자가 제 턱을 어루만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일단 나가자. 여긴 곧 없어질 거야.”
“여기가 없어져요?”
“그래. 이 구역을 전부 다 리모델링할 거야. 계속 여기에 있으면 위험해.”
뭉그적거리다 마지못해 따랐다. 여자가 남자의 반대편에서 내 팔짱을 꼈다. 내 머리 위로 저들끼리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럼 몇 명이지? 얘까지 총 네 명?”
“생각보다 많네. 내일 당장 자료 만들어서 언론에 뿌려야겠다.”
“하여간 사람들 참 대단해. 이런 어린애를 버리고 어떻게 도망칠 생각들을 하나 몰라.”
여자가 혀를 찼다. 무력하게 그들 사이에서 걸음을 옮기던 내가 주춤했다. 머릿속을 가로지르며 떠오른 사실이 있었다.
이 사람들, 유명한 이들이다. 신문에서 봤다.
“위아집 차재후 류민경 재단장….”
나지막한 한 마디가 나왔다.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멈칫했다. 여자가 반색하며 물었다.
“우리 알아? 어떻게 알아?”
“신문에서 봤어요.”
“신문? 너 신문을 읽어? 몇 살인데.”
“여섯 살이요.”
“깜찍하기도 해라.”
여자가 흡족하게 웃었다. 남자가 흐뭇하게 나를 다독였다.
“그래. 우리는 ‘위대한 아이들의 집’이라는 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야. 이제부터 너를 우리 재단에 있는 보호소에서 키워주기 위해 데려가는 거고.”
“보육원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물었다. 일순 머뭇거린 남자가 곧 답했다.
“맞아. 실은 보육원이야.”
“거기 가면 출생신고도 해줘요?”
“그게 무슨 얘기야?”
남자가 심각하게 물었다. 나는 또박또박 답했다.
“저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름도 없고, 학교에도 못 가요.”
두 사람이 동시에 조용해졌다. 얼굴을 든 그들이 무언의 눈짓을 주고받는 게 느껴졌다. 여자가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얘, 딱 그 나이대 아니야? 우리가 찾던.”
남자가 눈에 띄게 목을 꿀꺽였다. 한동안 고민에 잠겨있던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표정이 새삼 다정했다.
“솔직히 보육원은 싫지?”
나는 수긍의 고갯짓을 했다. 이내 꼿꼿하게 남자를 마주 봤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의도를 파악했고, 서로의 니즈가 맞기를 바랐다.
“일단 우리 집으로 가보자. 가서 마저 얘기하자.”
남자가 대뜸 나를 안아 들었다. 먼저 나아간 여자가 가게 입구를 열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환한 빛이 얼굴을 덮쳐왔다. 삼 개월 만에 햇살이었다.
“혹시 원하는 이름이 있니?”
문 너머로 한 걸음 나서며 남자가 물었다. 나는 뚫어져라 바깥을 응시했다. 삼 개월 사이에 폐허처럼 변한,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사도동 거리를 보며 내내 열망해오던 언어를 내뱉었다.
“유신(維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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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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