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우리의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미래의 자원입니다. 그 어떤 자원도 이보다 빛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아껴주고, 보살펴주세요. 여러분이 낳은 여러분의 자녀를 여러분의 손으로 지켜주세요.
날이 저물고 집으로 돌아오면 차유신은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부모님을 다룬 각종 뉴스나 영상을 보면서 그날을 정리하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중학생,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한 일과였다.
차유신의 부모는 ‘위대한 아이들의 집’, 일명 ‘위아집’으로 축약돼 불리는 사회재단의 공동 창립자였다. 언론 매체에 노출되는 날이 노출되지 않는 날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위아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아동지원 단체였으며, 그것을 설립한 차유신의 부모는 전 국민이 우러러보는 사회사업가였다.
[댓글]
지네 아들은 사람 죽였는데 남의 집 애들 챙기고 앉아있네 ㅋㅋㅋ
스크롤을 내리다 발견한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차유신은 무표정으로 해당 댓글을 클릭했다. 밑으로 줄줄이 달린 다른 이들의 댓글이 보였다.
-누가 죽였다는 거?
-저기 재단장 아들이 사람 죽임 ㅇㅇ 내가 옆 학교라 암. 지금도 멀쩡히 학교 다니는 중
-사람 죽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학교 다닌다고? 구라 ㄴ
-정당방위 어쩌고 해서 재판에도 안 넘어감. 근데 죽인 건 맞아
-정당방위면 애초에 범죄가 아니지. 그리고 상식적으로 저런 사람들 아들이 사람 죽이겠냐? 신고하기 전에 헛소리 그만 하고 자라.
마우스를 쥔 손아귀가 움직였다. 최초로 달린 댓글 옆에 있는 ‘신고하기’ 버튼을 눌렀다. 기다란 숨을 내쉰 뒤 목을 젖혔다. 머리가 자꾸만 지끈거렸다.
철컥. 현관 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들렸다. 저벅거리며 들어서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몸을 일으킨 뒤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섰다.
“오셨어요.”
막 안으로 들어선 부모님이 멈칫했다. 차유신을 일별하긴 했지만, 그들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등을 보였다. 이내 안여히 거실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주고받았다.
“거기 원장이 뭐라고 했는데.”
“그냥 뭐, 봉사 인력 지원해줄 테니까 지선그룹에서 받은 지원금 일부 나누자고….”
“웃기고 있네. 그걸 우리가 왜 나눠?”
헛헛하게 받아친 아버지가 소파에 앉았다. 협탁 위의 리모컨을 집어든 그가 우두커니 서있는 차유신을 힐끔거렸다. 언짢게 올라간 손가락이 꾹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직도 교복을 입고 있어? 어서 갈아입지 않고.”
“네. 아버지.”
차유신이 순순히 몸을 틀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등 뒤로 어머니의 걱정이 따라붙었다.
“그나저나 다음 달에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사회단체장 모임은 어떻게 하지.”
“그냥 가면 되잖아. 자기하고 나하고.”
“실은 거기 국장이 좀 거슬려서.”
“왜.”
“자꾸 나한테 아들 얘기 묻는단 말이야. 신경 쓰이게. 그 국장 아들이 쟤하고 같은 학교 다닌다나 봐.”
어머니가 불퉁하게 말을 맺었다. 혀를 찬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탐탁지 않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밀려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히 데려온 것 같아. 우리가 미쳤었지.”
*
[대국민당 집권 2년 차, 6월.]
“차유신이.”
눈꺼풀이 허둥대듯 깜빡였다. 고개가 휙 돌아갔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대국민당 선배 의원이 으름장을 놓았다.
“넌 이 상황에서 잠이 와?”
“죄송합니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서 제가 잠시….”
“정신 차려. 아직 안 끝났어.”
등을 두드리고 난 선배가 시선을 앞에 뒀다. 차유신도 정면을 봤다. 웅장한 국회의사당 내부가 시장바닥처럼 소란했다. 앞쪽 단상을 에워싼 신진화당 의원들이 금방이라도 위에 올라갈 기세로 손을 뻗어댔다. 국회의장 박현세가 분연히 그들을 가로막았다. 득달같은 신진화당 의원들의 구호가 의사당을 울렸다.
“불, 법, 임, 명, 결, 사, 반, 대!”
“그만! 다들 그만! 조용히 하세요. 김태규 의원! 발언 다 했으면 내려가요! 다음으로 대국민당 이지선 의원….”
“불, 법, 임, 명, 결, 사, 반, 대!”
“신진화당. 지금 이러는 게 불법이에요! 문세원 의원, 박현갑 의원. 단상에서 떨어지세요. 이런 식으로 자꾸 의회주의 무시할 겁니까. 이거 지금 전 국민이 보는 현장입니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의사봉을 쥔 박현세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신진화당 의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질을 하며 구호를 이어갔다. 피로함에 젖은 차유신의 시선이 깔렸다. 자리에 둔 스마트폰이 징, 소리를 내며 울려대고 있었다. 단체대화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메시지들이 비쳤다.
[한수현 비서관] 아 미친 더럽게 안 끝나네
[김운열 비서] 저 오늘도 저녁 약속 쫑났음.....ㅠㅠ
[진무원 수석보좌관] 다들 말이 많다
[김운열 비서] 대체 오늘 본회의는 몇 시에 끝날까요
[유해겸 비서] 여야 둘 다 할 말 없어질 때요
[유해겸 비서] 또는 박현세 의장 혈압 올라 쓰러지거나 ^^
[한수현 비서관] 해겸아 천재니?
[김운열 비서] 진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윤재희 비서] 보좌진으로 일할 정도면 전생에 최소 전과 5범임
차유신의 손가락이 올라갔다. 대화창을 활성화한 후, 타닥거리며 문장을 입력했다.
[차유신] 다들 대화방 착각한 것 같은데.
대화창이 조용해졌다. 차유신이 헛웃음을 쳤다. 정말로 대화방을 착각한 거였구나. 차유신은 자신을 제외한 보좌진들만의 대화방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시간이 필요 이상 경과했습니다. 토론을 종결합니다. 지금부터 김치수 대법원장 후보 임명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합니다.”
진이 빠진 국회의장 박현세가 의사봉을 들었다. 땅, 땅, 땅. 날카로운 소리가 의사당을 가로질렀다. 야당 의원들은 착석하지 않았다. 굳이 투표에 참여한다 해도 대법원장 후보 임명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당을 비롯한 동의 세력의 보유 표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었다.
“불, 법, 임, 명, 결, 사, 반, 대!”
구호가 더 커졌다. 의무적으로 동의 버튼을 누르고 난 차유신의 손이 미끄러졌다. 옆에 있던 선배 의원도 동의 버튼을 누른 뒤 턱을 괴었다.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뚜렷하게 빛나는 전광판의 숫자를 확인한 박현세가 고개를 들었다. 엄숙한 한 마디가 전투현장을 방불케 하는 의사당을 잠식했다.
“투표 종료됐습니다. 총 투표수 181표 중 가 127표, 부 12표, 무효 42표로 대법원장 김치수 임명 동의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 땅, 땅. 세차게 의사봉이 내리쳐졌다. 단상을 둘러싼 신진화당 의원들이 우악스럽게 반발했다. 끝내 위로 올라간 신진화당 핵심 의원 신인대가 박현세의 멱살을 잡았다. 쩌렁쩌렁한 호통이 허공을 갈랐다.
“대국민당 비리게이트 봐주기 판결한 김치수 같은 인간을 어디 대법원장으로! 이건 국민에 대한 모독이며, 명백한 불법 임명….”
쇼가 지나치네. 지겹다는 투로 뇌까리고 난 몇몇 대국민당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구로 향하는 의원들을 곁눈질로 보다 차유신도 몸을 일으켰다. 회의장을 벗어나는 그들의 뒤로 아우성을 닮은 신진화당 의원들이 외침이 따라붙었다.
“불, 법, 임, 명, 결, 사, 반, 대….”
뚜벅뚜벅 문 앞에 다다른 차유신의 곁에 아까의 선배 의원이 다가왔다. 은근한 질문이 건네졌다.
“이따 김재식 선배하고 광화문에서 장어나 하려고 하는데, 와서 한 잔 받는 것 어때.”
차유신은 보지도 않고 발을 뻗었다. 슥 문 너머로 구둣발을 내밀고는 단조롭게 말했다.
“장어 안 좋아합니다. 죄송합니다. 선배.”
실소한 선배 의원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차유신은 그대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새하얀 통로를 한참이나 걸었다. 곧 출구로 나오는 차유신을 비롯한 대국민당 의원들을 대기하던 몇몇 기자가 에워쌌다. 특히 언론에 친화적이기로 유명한 차유신 쪽에 몸을 들이미는 기자가 많았다. 다급히 쏟아지는 질문들이 귀를 두드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까. 올 들어 치러진 본회의 중 가장 길었는데요.”
“어제 신진화당에서 김치수 후보가 지닌 여덟 가지 비위 혐의를 공식 발표했는데, 그럼에도 대국민당에서는 강경하게 김 후보 임명을 밀어붙였죠. 신진화당 입장을 대놓고 보이콧한 겁니까.”
“차 선배, 차 선배님! 이거 한 가지만요. 신인대 의원이 제기한 여덟 가지 비위 혐의, 대국민당은 사전에 인지하고 계셨습니까? 김후준 의원이 어제 백블에서 ‘예상은 했다’고 답을 했는데요.”
“제가 말씀드리기는 좀….”
얼버무린 차유신이 낯을 굳혔다. 정말로 차유신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이건 당 지도부와 법사위에서 답변할 문제였다. 과방위 위원인 차유신의 관할이 아니었다.
“차 의원님 지금 감기 걸려서 답변할 컨디션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돌연 커다란 어깨가 차유신의 앞을 막아섰다. 이내 신속하게 기자들 틈바구니에서 차유신을 빼냈다. 주춤거리며 따라오던 기자들이 곧 포기한 듯 발을 멈췄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지, 뭘 일일이 받아주려 하십니까.”
제법 한적해진 곳에 다다라 우태원이 감싸고 있던 어깨를 풀었다. 차유신은 잠자코 눈을 굴렸다.
“기자들 앞에서 너무 비협조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계산을 한 거야.”
“제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쩌려고요.”
“그럴 일은 없어. 나는 아까쯤 네가 올 거라 확신했거든.”
차유신이 심드렁하게 주머니를 뒤적였다. 담뱃갑을 찾아 안에다 손가락을 넣었다. 텅 비어있었다. 그 새 다 피웠구나. 입술 틈으로 탐탁지 않은 숨이 샜다. 바로 눈치챈 우태원이 물었다.
“담배 드릴까요?”
“있어?”
“사 와야죠.”
“어디서.”
“지금은 국회 매점이 문을 닫혔으니… 밖으로 나가서 사와야죠.”
“결국 국회를 나가겠다는 거네.”
중얼거린 차유신이 보다 똑바로 우태원을 봤다. 담담한 명령이 나왔다.
“그럼 같이 나가. 나하고.”
우태원이 의아한 듯 이마를 구겼다. 힐긋한 차유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싫어?”
“아니요. 하지만 의원님께서는 아직 처리할 업무가….”
“급한 건 무원이 형한테 맡기지, 뭐. 난 좀 쉬고 싶어.”
“그럼 바로 댁으로 모실까요?”
“아니.”
차유신이 빙글거렸다. 불쑥 튀어나온 제안이 두 사람의 틈을 메웠다.
“장어 먹으러 가자. 역현호 쪽으로.”
*
역현호는 역현구을과 역현구갑 사이에 있는 커다란 호수의 이름이었다. 잘 조성하면 충분한 관광명소가 되고도 남았을 곳인데, 역현구 자체가 워낙 서울시에서 버려둔 땅으로 취급받는 곳이다 보니 제대로 된 개발 기회를 얻지 못했다. 덕분에 역현호 주변에서는 불법인지 합법인지도 모를 식당 몇 곳이 장사하는 게 전부였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조차 없었다.
“어이구. 의원님, 오셨어요?”
들어서자마자 중년의 남자 사장이 달갑게 반겼다. 막 문을 닫으려고 했던 듯, 식당 안은 절반 정도 불이 꺼져 있었다. 당연히 손님도 없었다. 빙 둘러본 차유신이 말했다.
“제가 너무 늦게 왔나 봅니다. 다음에 와야겠네요.”
“아니요, 아니요! 앉으십시오. 저쪽 자리가 가장 좋습니다.”
사장이 허둥지둥 차유신을 안내했다. 혹여나 차유신의 마음이 변할세라, 거의 떠밀 듯 창가 쪽 자리에 앉혔다. 뒤따라온 우태원이 난잡한 내부의 집기들을 훑어봤다. 결국 자리에 앉은 차유신이 입을 뗐다.
“그럼 장어 이 인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술은요.”
“그냥 소주 주세요.”
“네. 의원님.”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난 사장이 주방을 향했다. 차유신의 맞은편에 앉은 우태원이 팔짱을 꼈다. 이내 한숨 섞인 한 마디를 흘렸다.
“이런 곳을 용케도 아셨네요.”
“역현호 안 와봤어?”
“와보긴 했는데요.”
“이 식당 나름 유명한데. 보기에는 이래도 장어가 꽤 맛있거든.”
“여기서 밥을 먹어본 적은 없어서요.”
“그럼 와서 뭐 했어.”
차유신이 갸웃했다. 우태원은 말없이 팔을 풀었다. 함구하듯 고개를 돌린 그가 창문 너머에 시선을 꽂았다. 차유신도 같은 곳을 봤다. 가로등 불조차 비치지 않는 컴컴한 세상 속에서, 일렁이는 호수 물이 기이한 곡선처럼 전율했다.
시체호.
차유신의 눈이 한번 깜박였다. 역현구 사람들은 이 호수를 시체호라고 부른다. 운도동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조폭사무소 밀집거리에서 싸움이 터졌다 사람이 죽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이 호수에 매장했다. 실제로 비만 오면 약속한 것처럼 저 물 위로 시체가 떴다. 대체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것들이었다.
한 시민단체가 역현호 탐사 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건의했다. 안에 있는 시체가 수십 구는 될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받아들여진 적은 없다. 고작 그런 것에 쏟을 정도로 서울시 예산은 널널하지 않았다.
역현구는 서울시에 속해있지만, 동시에 서울시가 아니었다.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모든 것들이 폐기물로 취급받듯, 그들의 어머니인 역현구도 한낱 난지도로 치부됐다.
이곳에 터를 잡은 모든 이들은 언제라도 역현호 안에 버려질 수 있는 시체였다. 아무도 소리 내 얘기하지 않았지만 서울시가 알고, 역현구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의원님은 가끔 보면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사장이 시뻘건 숯을 테이블 밑에 집어넣고, 그 위에 불판과 장어를 차례로 올렸을 때 우태원이 운을 뗐다. 차유신은 빤히 우태원을 봤다. 위에서 지글거리며 시뻘건 살점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우태원은 무심하게 집게로 고기를 한번 뒤집었다. 털썩, 소리를 내며 까만 겉면을 드러낸 장어가 꿈틀거렸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며 자랐고,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어린 나이에 천재 창업자 타이틀도 달아봤는데… 정작 둥지를 튼 건 역현구을이잖습니까.”
“그게 이상해?”
“전 이상합니다. 당에서나 밖에서나 귀공자 취급을 받던 의원님이 굳이 역현구를 선택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리가 거기밖에 없었어. 애초에 김후준 선배가 나를 끌어들인 조건도 거기에 출마하는 거였고.”
“글쎄요. 선택지가 더 있었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우태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면서 불판 위의 고기가 튀었다. 어이구, 이거 타겠네. 급하게 뛰어온 사장이 가위를 꺼냈다. 서걱거리며 살점이 잘렸다. 적당히 등분한 고기가 불판 가장자리에 둥글게 깔렸다.
맛있게 드십시오. 작업을 마친 그가 차유신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차유신은 가벼운 고갯짓만 했다. 사장이 떠난 가운데, 유독 타들어 간 고기 조각 하나가 차유신의 눈을 사로잡았다. 잿더미가 돼버린 죽은 살점이었다. 잠자코 보던 차유신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우태원의 말은 사실이다. 선택지가 있었다. 김후준으로부터 역현구을을 포함해 총 세 곳의 지역구를 제안 받았다. 머리가 굵은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꺼리는 지역이었다. 초선 때는 이런 곳에서 시작하는 게 관행이라 김후준이 말했다. 차유신은 딱히 토를 달지 않았다.
선택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유신은 선택지를 받은 지 오 분 만에 역현구을을 찍었다. 저는 여기면 됩니다. 그 말에 김후준이 가가대소했다. 내가 제안하긴 했다만, 여긴 좀 그렇지 않나? 차유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역현구을이면 충분합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게 신기술산업 지원안뿐이었는데.”
차유신이 긴 숨을 내쉬었다. 우태원이 가만히 차유신에게 눈길을 뒀다.
“그걸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게 역현구을이라 판단했어. 그곳의 중심인 사도동 집창촌과 하우스 일대가 통째로 공터가 된 가운데,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걸 눈여겨봤거든. 거기에다 대형 벤처기업 단지를 조성하면 딱 좋겠다 싶었어. 그래서 거길 선택한 거야.”
“그랬군요.”
우태원이 주억거렸다. 나지막한 혼잣말이 귓가를 스쳤다.
“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차유신의 윗눈썹이 석연치 않게 비뚤었다.
“무슨 이유.”
“글쎄요. 혹여나 의원님께서 역현구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거기에 뭐 하러.”
목소리가 사뭇 냉랭해졌다. 덩달아 우태원의 낯이 식었다. 고개를 까딱한 그가 뇌까렸다.
“그러게요. 의원님께서 그럴 이유가 없죠.”
바로 짙은 침묵이 그들을 휘감았다. 차유신도, 우태원도 말이 없었다. 열린 창문 너머에서 이따금씩 물살 부딪치는 소리가 밀려들었다. 기포가 들끓는 것처럼 목구멍이 갑갑했다. 차유신의 호흡이 무거워졌다.
돌연 입구 쪽이 소란했다. 왁자지껄 떠들며 네 명의 남자들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하나 같이 덩치가 좋았고, 그중 두 명은 팔뚝에 커다란 문신까지 새긴 채였다. 운도동에서 온 깡패 놈들이구나. 차유신은 눈살을 찡그렸다.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이 지역구 안에 널린 게 양아치였다.
“오 인분 하고 소주, 맥주!”
주방을 향해 소리친 남자 하나가 안쪽 테이블에 앉았다. 그를 중심으로 다른 남자들도 착석했다. 뒤늦게 튀어나온 사장이 미적거리며 그들에게 갔다. 차유신을 힐긋한 그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영업은 아까 끝났습니다.”
“저 사람들은 먹잖아.”
“아니, 저쪽은 좀….”
“어? 아는 얼굴인데.”
문득 한 남자가 기웃거렸다. 차유신은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짤막한 정적이 실내를 장악한 그 순간, 내내 가만히 있던 우태원이 갑자기 소주병의 뚜껑을 돌려 깠다. 이내 맥주잔 안에 벌컥거리며 내용물을 따랐다. 순식간에 잔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출렁이는 잔을 차유신 쪽으로 민 우태원이 손짓을 했다.
“드십시오. 의원님.”
“너 미쳤어? 갑자기.”
차유신이 쏘아붙였다. 우태원이 나긋하게 눈매를 접었다.
“그냥 드세요. 오늘 고생하셨잖아요.”
“너는 안 먹고?”
“저는 못 먹어요. 의원님 모셔야 하잖아요.”
우태원이 턱을 괴었다. 그의 어조가 한층 다정해졌다.
“의원실 막내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한 번쯤 마셔주면 안 되겠습니까. 의원님.”
달래듯 건네 오는 말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머무적거리던 차유신의 손이 내려갔다. 하긴, 목이 꽤 타긴 했다. 원래도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어느 순간부터 갈증이 배로 심해졌다. 알코올이 필요했다. 아주 많이.
단박에 맥주잔을 채 입가로 가져갔다. 꿀꺽거리며 온 내용물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알싸한 자극이 식도를 울렸다. 숨 쉴 틈도 없이 전부 목구멍에 욱여넣은 차유신이 탁,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았다. 더듬거리는 손이 얼굴을 짚었다. 기다렸다는 듯 솟구치는 취기 탓에 목덜미가 홧홧했다. 볼멘소리가 나왔다.
“또라이 새끼야. 제 주인한테 이딴 걸 시키고.”
“자, 의원님. 아.”
개의치 않은 우태원이 장어 한 점을 집어 내밀었다. 불퉁하게 보던 차유신이 끝내 입을 열었다. 기름진 생선 살점이 혀 위에 안착했다. 차유신은 가만히 이를 질근거렸다. 알맞게 익은 고기가 가루처럼 바스러졌다. 기름진 풍미가 확 올라왔다.
저편에서 몸을 일으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남자 두 명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곁눈질로 보는 차유신의 어깨를 잡으며 우태원이 재촉했다.
“저도요. 의원님.”
차유신의 눈초리가 찌푸려졌다. 잠시 다른 곳에 쏠렸던 정신이 물처럼 흘러 우태원에게 돌아갔다.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 제법 천연스러웠다. 난감한 듯 입을 달싹이고 난 차유신이 불판 위의 장어 한 점을 집었다. 이내 우태원의 입 쪽에 갖다 댔다.
“입, 제대로.”
우태원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벌어진 틈으로 노릇노릇한 살점이 들어갔다. 입 안에서 혀를 굴린 우태원이 음미하듯 음식물을 씹었다. 흡족한 한 마디가 다가왔다.
“맛있네요.”
“잠깐 여쭐 게 있는데.”
낯선 남자 목소리가 찾아들었다. 차유신의 눈길이 이동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의 남자 두 명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낯에서 기기묘묘한 경계가 느껴졌다. 한동안 그들을 보던 차유신의 목이 꿀꺽거렸다. 희한한 직감이 들었다.
당연히 자신 때문에 왔을 거라 생각했다. 제법 유명세를 갖춘 국회의원에게 시비를 걸려는 목적이리라 짐작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서너 번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그들은 불쾌감을 연기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건 어떤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향하는 건 차유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히 차유신을 보고 있지만, 시선의 말미에는 우태원이 있었다.
“우읍.”
홀린 듯 멎어있던 차유신이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불현듯 식도가 시큰했다. 구역질이 올라오고 있었다. 올라간 손이 새하얘진 얼굴을 덮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며칠간 밤을 새워 몸이 성치 않은데다가, 빈속에 소주를 그렇게 쏟아부었다. 몸 안에서 저항반응이 일어나는 건 필연이었다.
“얼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의원님.”
우태원이 걱정스레 손을 뻗었다. 볼에 다다른 손가락이 가볍게 살결을 지분거렸다. 차유신은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우태원의 눈이 은은하게 휘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세요.”
입을 꾹 다문 채 시근거리던 차유신이 벌떡 일어섰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울렁이는 머릿속에 아까의 우태원이 자꾸만 차올랐다. 잔상이 반복될수록 동일한 의구심이 범람하는 물살처럼 솟구쳤다.
우태원은 뭐가 그렇게 즐거웠던 걸까.
화장실에 다다르자마자 변기 칸을 찾아 들어갔다. 커버를 열고, 동그란 구멍 안에다 먹은 것을 게워냈다. 방금 섭취한 것은 물론이고 점심, 아침에 먹은 것까지 모조리 쏟아낸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반쯤 혼절한 머리통을 벽에 박았다. 망연한 상실감이 뇌리를 메웠다.
“씨발.”
그러게 왜 처먹었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어도 됐는데.
고작 우태원이 뭐라고.
한참이나 숨을 고른 뒤 칸에서 나왔다. 세면대로 다가가 차디찬 물을 받아가며 세수를 했다. 목구멍까지 통째로 씻어낸 후에야 개운함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젖어있는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얼굴이 또 척척했다. 눈동자가 스르르 올라갔다. 의뭉스럽게 속내를 감춘 검은 하늘이 물방울을 흩뿌리고 있었다. 차유신은 한숨을 쉬었다.
씻는 게 의미가 없구나.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을 때, 안은 고적하기만 했다. 등을 보인 채 앉아있던 우태원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일어나 맞이했다.
“괜찮으십니까, 의원님. 제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차유신의 어깨에 기다란 팔뚝이 감겼다. 살짝 고개를 내린 우태원이 관찰하듯 눈으로 훑어왔다. 억지로 시선을 비낀 차유신이 물었다.
“아까 그 사람들은….”
정처 없이 꺼내진 말이 뚝 끊겼다. 텅 비어있는 그들의 자리가 보였다. 아까 전과 비교했을 때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단지 사람이 없어진 것뿐 아니라, 자리가 눈에 띄게 흐트러진 채였다. 의자 네 개가 전부 바닥을 뒹굴고 있고, 테이블 위에서는 술병이며 식기들이 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우태원.”
차유신의 톤이 낮아졌다. 우태원은 예의 바르게 응수했다.
“네. 의원님.”
“너.”
차유신이 눈을 치떴다. 잠잠하기만 한 우태원의 낯이 망막에 담겼다. 저 창문 너머의 호수만큼이나 고요한 눈빛이 차유신을 사로잡았다. 안에 잠겨 있는 시체 따위는 중요치도 않다는 것처럼, 태평하기만 한 물결이 차유신을 종용해온다.
굳이 바닥을 알아야 하겠느냐고.
차유신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 침이 넘어갔다. 비 갠 후만큼이나 공허한 숨이 입에서 내뱉어졌다. 질끈 감겼던 차유신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단출한 한 마디가 나왔다.
“아니야.”
우태원이 주억거렸다. 단정한 대꾸가 다가왔다.
“그래요.”
우태원은 차유신의 몸을 두른 팔을 풀지 않았다. 차유신도 그걸 풀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참이나 밀착한 채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옷깃이 스칠 때마다 물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실체 없는 파동을 따라 피 냄새가 번졌다. 차유신의 눈이 반쯤 감겼다.
시체 냄새.
명백한 죽은 자의 냄새였지만 역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익숙해 조금 잠이 왔다. 차유신은 문득 의심했다. 이 냄새가 저 창 너머에서 흘러든 것이 맞긴 한가. 내가 발원지를 착각한 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차유신은 항상 많은 것을 혼동하며 살았다.
촤아. 바깥에서 빗소리가 났다. 진동하는 피 내음이 득달같은 비 내음에 집어 삼켜졌다. 끝내 하나로 뭉쳐 뒤죽박죽이 된 냄새를 우렁찬 천둥소리가 덮쳤을 때, 차유신은 더 이상 그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오감을 잃은 사람처럼 멀거니 고개를 들었다. 우태원은 여전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서로를 응시했다.
비는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우악스럽게 내리꽂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각자의 심장에 숨을 겨눴다. 추락하는 하늘보다도 지독한 인력(引力)이었다. 그 와중에 차유신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내일도 저 호수에는 시체가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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