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잘못 키운 개
0.
[대국민당 집권 5년 차, 4월.]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새하얗게 질린 육면체 공간 안에서 붉은 혈흔이 스멀거렸다. 바닥과 벽에 균열처럼 걸린 핏자국이 점멸하는 시야를 점점 옭매온다. 눈을 가로막고, 귀를 틀어막고, 이내 목구멍까지 파고든다.
식도까지 핏물이 고인다.
탁. 벗은 발로 바닥을 지르밟았다. 고여 있는 핏물이 찰박이는 소리를 냈다. 묵묵하게 보다가, 발을 뻗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창밖에서 종종 번개가 번쩍였고, 안이 환해질 때마다 붉은 발자국이 수를 늘려갔다. 처절한 족적이 늘어날수록 걸음이 사뿐해진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가벼워진다.
벽을 따라 빙 돌아 도로 검은 소파 앞에 섰다. 어둑한 가운데서도 일정하게 솟아올랐다 내려앉는 남자의 벗은 가슴팍이 뚜렷하다. 철갑처럼 단단한 가죽 곳곳에 지리멸렬하게 남아있는 상흔도, 백야 속에서 보듯 현현하다.
한쪽 무릎을 소파 시트에 올렸다. 또 다른 무릎도 마저 디뎠다. 남자의 굵직한 상체를 사이에 둔 채 차유신은 올라타듯 위에 몸을 앉혔다. 이내 양손으로 시트를 짚으며 곧게 감긴 남자의 기다란 눈매를 내려다봤다.
또, 섬광. 머릿속에서 유리가 깨지듯 아찔한 균열이 번진다. 무겁게 주억거리고 난 고개가 약에 취한 것처럼 넘어간다. 시트를 억누른 손이 떨어졌다.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한 열 개의 손가락을 모아 옮겼다. 굵은 모가지를 중심으로 둥글게 말았다. 남자의 목이 안정적으로 감겼다.
정적에 잠긴 뇌리를 방해하듯, 부쩍 커다란 마찰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후드득, 소리가 사납게 창문을 때려댄다. 우박처럼 떨어진 빗방울이 카운트다운을 하듯 심장을 두드린다.
열, 아홉, 여덟, 일곱.
목을 두른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여섯, 다섯, 넷, 셋.
양 엄지손가락을 나란히 붙이고는, 울대뼈를 향해 끌어올렸다.
둘.
팔뚝에 힘줄이 설 정도로 힘을 끌어모아 꾹 눌렀다. 두 손가락이 단단한 가죽에 제대로 박혔다. 울대뼈가 움푹 팼다.
하나.
“부족해요.”
쿠르릉. 요란한 천둥소리에 귓바퀴가 꿈틀거렸다. 시트에 늘어져 있던 남자의 손이 올라왔다. 자신의 목을 휘감은 차유신의 손가락을 피아노라도 치듯 두드리다가, 이내 손등을 타고 미끄러졌다.
“여기보다 밑쪽에 꽂고.”
차유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친절하게 끌어당겼다. 이어 양 손목을 한 손에 담은 뒤, 대뜸 힘을 실었다. 엄지손가락이 남자의 목 중심에 푹, 꽂혔다.
“더 조여야죠.”
창백한 빛 세례가 망막을 엄습했다. 색소를 잃은 것처럼 하얗게 물든 남자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양 눈매가 황홀하게 접히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내가 죽겠어요? 선배.”
차유신의 어금니가 꽉 깨물렸다. 한계까지 단단해진 교근이 부들거렸다. 분노의 장벽 앞에서 빛이 식었다. 남자의 실루엣이 사라졌다.
거친 숨을 몰아쉰 차유신이 온 힘을 다해 손가락을 조였다. 양 팔뚝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까맣기만 한 시야 너머에서 남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질근거리던 차유신의 입술이 열렸다. 분기에 찬 가운데, 나직한 외침이 나왔다.
“뒈져. 이 개새끼야.”
차유신은 개 한 마리를 잘못 키웠다.
그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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