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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99화 (199/200)

제199화

“큭!”

찢어진 구멍에서, 허상계로 넘어갔던 플레이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신성 또한 뒤섞여 있었는데.

그는 등에 달린 하나의 날개를 펄럭이며 몸을 추슬렀다.

그와 동시에….

“제로 님!”

다급한 움직임으로 신성이 구멍을 바라보자, 찢어진 구멍이 점차 닫히기 시작했다.

저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것의 원흉과 싸우기 전, 제로가 직접 닫은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의 원흉이 죽음을 맞이했기에, 자연스레 닫히는 것일까.

만일 후자라면….

“부디 돌아와 주십시오.”

신성이 착잡한 눈으로 구멍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신성을 제외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닫히는 구멍을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지구와 인류를 구한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제로가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한 법.

플레이어, 일반인 할 것 없이 바라보던 구멍이 닫혔다.

결국 제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결말 또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뭔가 뒷맛이 찝찝하네.”

신성의 곁에 선, 주신 오딘의 신성력과 마신 알루타의 신성력을 이용해 만들어 낸 날개를 펄럭이는 베이글이 입을 열었다.

굳이 따지자면 베이글과 제로의 첫 만남은 악연 그 자체였다.

로스트 월드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두고, 서로 경쟁하고 pvp까지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로가 인류의 구원자이자 자신들의 은인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형님….”

한편, 바닥에 착지한 스타툰 또한 슬픈 눈으로 구멍을 바라봤다.

스타툰 또한 제로와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다만, 제로는 스타툰의 은인이었다.

단순한 소매치기나 거듭 반복해오던, 좀도둑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이 위치에 올라서게 해 준 것이 바로 제로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제로가 돌아오지 못함에 슬픔을 토로했다.

그것은 대현자 마도왕도.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도. 블러드 마스터 블러드도. 천둥 길드의 길드 마스터 썬더도 다를 바 없었다.

“이대로 끝인… 건가요.”

“그렇겠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첸첸의 중얼거림에, 마도왕 또한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지구에는 무수히 많은 허상괴들이 남아 있었다.

또한, 그것들이 번식해 태어나는 몬스터들의 숫자 또한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그를 잃어버린 것이 좀 그렇군.”

제로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의 원흉과 공멸을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구로 돌아오지 않은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너에게 구원받았다. 그 사실만큼은 절대 잊지 않고, 네 무용담이 후세의 후세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지.”

그러한 말을 내뱉은 마도왕이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 외에도,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제로를 잃어버렸다는 슬픔을 억지로 집어삼키고.

자신들은 살아남았다.

인류는 살아남았다.

억지로 그 사실만 되뇌며,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 * *

“괜찮겠어?”

공허한 죽음으로 가득 찬 세계, 외차원.

그곳에서, 아지 다하카의 육체 위로 늘어지게 누워 있는 제로를 향해 죽음이 입을 열었다.

몸을 축 늘여놓은 제로의 모습은, 얼굴의 반쪽이 해골로 이루어져 있을 뿐. 인간이라 불러도 무방한 모습이었다.

“뭐가?”

“지구로 돌아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필요 없어.”

죽음의 질문에, 제로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저들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없더라도, 그들이 앞을 향해 걸어 나가는 길은 끊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는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 방해만 된다.

그런 제로의 생각에, 죽음이 흐음…. 하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왜?”

“그건 도대체 뭐였지?”

죽음을 향해 질문을 던진 제로가 왕을 떠올렸다.

왕의 마지막 일격을 죽음으로 먹어 치우고.

분개하는 왕에게 평온한 안식을 내려줬다.

다만, 그러한 왕은….

“절대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단순한 초월자라 하기에는 뭔가 다르기도 했고.”

“그렇겠지.”

제로의 중얼거림에, 죽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놈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거지?”

“맞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죽음에, 제로가 침묵했다.

허나, 침묵하는 제로의 두 눈동자는 죽음에 꽂혀 있었는데.

그러한 시선에는 ‘진실을 알려줘’라는 무언의 압력이 깃들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단순한 생명체도, 그렇다고 모든 것을 초월한 초월자도 아니야.”

“그럼?”

“단순한 병기.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끝이라 불리는 존재, 혼돈. 그것이 만들어 낸 병기이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끝이라 불리는 존재. 혼돈.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병기.

그러한 죽음의 대답에 제로의 의문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과 지금까지 봐왔던 왕은 단순한 병기라고 불리기엔 부적합한 존재였다.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동하며, 이성을 지니고 있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슬퍼하며, 때론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모습의 어디가 단순한 병기라고 칭할 수 있을까.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었을 때, 죽음이 뒷말을 이어 붙였다.

“본래, 처음 만들어졌을 땐 아무런 이성도, 이지도 갖추지 못한 단순한 병기에 불과했어.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의 모습이 되어버린 거야.”

“흠.”

죽음의 부연 설명에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단순한 병기로 만들어 져, 그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서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차원이 멸망한 것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제로가 죽음을 바라봤다.

“그보다, 놈이 병기로 만들어졌다면 목적은 뭐였지?”

단순한 병기라고 해도, 분명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도구도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제로의 질문에, 죽음이 피식 웃었다.

“간단해. 그게 만들어진 이유는 순환 때문이야.”

순환…?

죽음의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제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환. 생명은 태어남으로 인해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죽음을 통해 또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지. 그건 차원 또한 마찬가지야.”

“그 뜻은…?”

“이미 멸망하고, 다른 차원이 만들어지기 위한 토대가 되어야 함에도 억지로 명줄을 쥐어 잡고 늘어지는 차원들이 존재해. 어떤 것은 자신이 품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은 단순히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의해서 말이야.”

“…….”

이어진 죽음의 말에, 잠시 침묵하고 있던 제로가 입을 열었다.

“즉, 네가 말한 순환을 위해 놈이 만들어졌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끝이라 불리는 존재. 혼돈에 의해서?”

“정확해. 다만,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놈에겐 너무 많은 인과가 묶여 버렸어. 그와 동시에, 기나긴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자아가 생겨나고. 순환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차원들을 침공하며 그 힘을 길러온 것이겠지.”

그 말을 끝으로 죽음이 입을 다물었다.

제로는 그런 죽음으로부터 눈을 떼곤, 공허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궁금하네. 한번 만나보고 싶어.”

“누굴?”

“누구긴 누구겠어. 혼돈이지.”

실없는 제로의 말에, 죽음이 피식 웃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모든 것의 끝이라 불리는 혼돈.

그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시작으로, 외차원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혼돈에서 파생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혼돈의 격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았다.

그 드높은 격은 외차원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죽음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혼돈을 만나고 싶다니. 초월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뭐, 나름 신선한 말이기는 했다.

혼돈을 정확히 알고 있는 존재라면, 그 누구하나 혼돈을 만나고 싶다는 망언을 내뱉지 않을 테니까.

그러한 생각은 오직 단 한 명. 이제 막 초월자가 된 제로이기에 가능한 생각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초월자가 되었기에 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네.’

그러한 생각을 품은 죽음이 외차원 이곳 저곳을 뒹굴거리고 있을 때….

“그나저나, 죽음. 인간이란 존재는 참 재미있지 않아?”

한때 죽음이 제로를 관찰하기 위해 사용했던, 거울을 닮은 원형의 무언가로 지구를 내려다 보고 있던 제로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물음에 죽음의 두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며 제로를 응시했다.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가이아의 말대로, 고작해야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종족이 바로 인간이잖아? 그런 주제에 매 순간순간, 절망을 품고. 슬픔을 느끼며, 기쁨에 몸부림친다. 그 모습은 바라만 봐도 질리지가 않아.”

왕과 전투를 끝내고, 외차원에서 생활한 지 벌써 수백 년.

비록 차원 간의 시간축이 다르다지만, 지구 또한 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백 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이 흐른 지구는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졌다.

가이아가 싹을 틔운 위그드라실은 그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그 거대하면서도 웅장한 외형은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그 외에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어린 인간들 중, 이능을 지닌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품은 이능은 플레이어의 스킬과는 그 결이 완전히 달랐으며. 플레이어에게만 허용된 아이템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가 품은 이능을 활용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몬스터들을 죽여 나간다.

그러한 인간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그리고 얼마를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제로의 반응에 죽음은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다만, 그러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 또한 지루함을 느낄 때면 각 차원을 엿보며 지루함을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리우면 한번 놀러가지 그래?”

그리움.

지구를 바라보며, 인간에 대해 말을 할때마다 제로에게선 짙은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그 그리움이 지구 자체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인류에 대한 그리움인지. 그것도 아니면….

‘잃어버린 연인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차원들 만큼.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초월자들 중 몇 없는 인간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바로 제로였다.

또한 자신의 권속이나 다름없으니….

“좋아!”

생각을 정리한 죽음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또 뭔데?”

“너, 지구로 유희 한번 떠나라. 내가 좋은 선물 하나 준비해 둘게. 이대로 외차원에 처박혀 궁상떠는 것보단 괜찮지 않겠어?”

“유희… 라.”

죽음의 말에 제로의 두 눈동자에 아련함이 스쳐 지나갔다.

유희.

초월자들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각 차원에 아바타를 강림시켜 즐기고 오는 것.

그것이 바로 유희였다.

그러한 유희를….

“나 보고 하라고? 그것도 하필이면 지구로?”

“잔말 말고 갔다 와!”

죽음은 당황스럽다는 듯 말하는 제로의 등을 떠밀었다.

내심, 한 번쯤은 지구에 가보고 싶었던 제로는 그런 죽음의 떠밈을 애써 거부하지 않았다.

“가서 푹 쉬었다와. 네가 구한 지구가 정확히 어떻게 변했는지도 한번 구경해 보고.”

죽음이 연 게이트를 통해 몸을 들이미는 제로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죽음에 고마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죽음. 아니, 아젤리아.”

아젤리아.

언제나 죽음이라 부르는 소년의 진명이었다.

타인의 입으로 진명을 들은 게 얼마 만일까?

수천 년? 수만 년? 어쩌면 수억 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죽음은 사라진 제로가 있던 장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딱히 나쁘지는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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