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정확히 언제 그들이 쳐들어올지, 제로 님도 모르는 겁니까?”
“몇 번을 말해? 회귀 후 내가 벌인 일들 때문에 인과가 비틀어졌어. 그 영향으로 미래도 변했지. 지금부터 어떻게 흘러갈지는 나도 예상할 수 없어.”
“그렇군요.”
신성의 길드 하우스 최상층.
그곳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신성의 물음에, 제로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 앞에서 ‘지금부터 시작이다’ 따위의 말을 내뱉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내뱉은 제로조차 언제 어느 때, 그리고 어떻게 허상괴의 왕이 침공할지는 미지수였다.
그것은 신성에게 말했다시피, 회귀 이후에 제로가 한 행동들 덕분에 인과가 비틀어져. 그 미래가 개변했기 때문이다.
미래란 수백, 수천줄기로 뻗어나가는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것.
회귀 전과 똑같이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사소한 실수 하나로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그렇기에….
‘넌 언제 찾아오는 거냐.’
후릅.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제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성은 그런 제로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조금 늦는군요. 대장군이라 했습니까? 저희들의 진정한 적의 부하가.”
“맞아.”
“그런 대장군을…. 그것도 마지막 남은 대장군을 제로 님께서 처리한 지 벌써 일주일.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침공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죠.”
끄덕끄덕.
신성의 말에, 스타툰과 스로우. 그리고 베이글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것은 ‘차원’ 그 자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난 착각에 불과했다.
애초에 저렇게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통로, 구멍을 만들어 낸 것만 하더라도 상당히 격이 높은 초월자의 영역에 가깝다.
다만, ‘연결 통로’를 만들었다 한들. 그것으로 왕이 넘어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애초에 하나의 차원을 다스리는 왕이라면, 그 격이 드높아 차원과 차원간의 이동에 막대한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놈이 수없이 많은 차원들을 멸망시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 아니, 어쩌면….’
왕 본인은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대장군과 허상괴. 그리고 단순한 병졸들만으로 수없이 많은 차원들을 무너트려 온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선 기회야.’
왕이 아닌, 단순한 허상괴만 넘어온다면 충분히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지구는 그렇게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왕이 직접 강림한다면….
‘외차원의 틈새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신성과 스타툰. 스로우와 베이글까지.
모두가 한데 모여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신성! 큰일 났어!”
문이 거칠게 열리며, 신성 길드의 부마스터, 일격필살의 루나가 들이닥쳤다.
그녀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전신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갑작스런 루나의 난입에 신성이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밖을… 밖을 봐!”
다급한 루나의 외침에 신성의 시선이.
아니, 신성을 포함한 스로우와 스타툰. 베이글과 제로까지.
그 모두의 시선이 홱! 하며 창 밖의 하늘을 향했다.
“최악이네.”
제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스토리 중, 최악의 스토리가 펼쳐진 것이다.
* * *
재앙은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찾아왔다.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한 명의 플레이어였다.
“어라? 저게 뭐… 냐…?”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플레이어는, 구멍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에 당혹성을 터트렸다.
그런 플레이어의 당혹성은 곧 주변의 이목을 끌었으며.
주변에 있던 사람들 또한 하나둘씩 그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저것도 허상괴야?”
누구는 아직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구는 거대한 손의 주인이 허상괴임을 깨닫고 절망 어린 표정을 내비친다.
허나, 그런 인간들의 반응에도 구멍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손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콰직-!
거대한 손이 구멍의 경계를 붙잡으며….
찌지직-!
양옆으로 움직이자, 거대한 손에 붙잡힌 구멍이 찢어지며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크게. 더욱 크게.
거대한 산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해진 찢어진 구멍 속에서는….
“얼굴…?”
거대한 손의 주인이라 예상되는 존재의 상반신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머리에 세 개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순백으로, 하나는 칠흑으로. 하나는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뿔에는 검은 뇌전이 파지직거린다.
한편, 그렇게 찢어진 구멍으로 상반신을 드러낸 허상괴의 입이 열렸다.
“진격하라.”
키카카카칵!
끼하하!
꺄하하하!
그것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찢어진 구멍에서 허상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숫자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등장했던 허상괴들의 숫자를 가볍게 상회하고 있었다.
한편, 갑작스런 허상괴들의 등장에….
“으아아아-!”
“허, 허상괴다!”
“괴물이 몰려온다!”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혼란에 빠지며, 다급히 쉘터로 뛰어갔다.
그런 일반 시민들 사이사이에 섞여 있던 플레이어들은 각자 무기를 뽑아 쥐며,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허상괴들을 향해 스킬을 난사했다.
그것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 옆에 있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과, 시작의 나무 위그드라실에 큰 타격을 입은 유럽 등등.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플레이어들이, 구멍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허상괴들을 향해 스킬을 난사했다.
플레이어들은 각성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전쟁과 전투로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1억 명 가까이 되는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스킬을 사용하는 모습은 장관 그 자체였다.
허나….
“티도 안 나잖아….”
연신 검을 휘두르며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허상괴를 죽여 나가던 플레이어 한 명이 절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까지 백 마리에 가까운 허상괴를 죽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적게는 수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마리까지 허상괴들을 죽이며 그 숫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1억에 가까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필사적으로 허상괴를 죽여 나갔음에도, 하늘을 뒤덮은 허상괴 무리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구멍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지구의 생물에 깃들어 그 육체를 강탈하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죽인다.
허상괴들은 그러한 행동만 반복할 뿐이었다.
한편, 러시아의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이 점차 지치고, 절망에 빠져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늘어트리는 순간….
“겁먹지 마라!”
콰가강-!
어디선가 울려 퍼진 노호성과 함께, 푸른 뇌전의 형태를 한 용이 튀어나와 허상괴들을 집어삼켰다.
푸른 뇌전으로 이루어진 용이 몸부림칠 때마다 수백의 허상괴들이 푸른 뇌전에 타오르며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것의 머리 위에 올라탄 플레이어가 주먹을 내뻗을 때마다 또다시 수백 마리의 허상괴가 쓸려나갔다.
“써, 썬더?”
“썬더다!”
“십강의 마스터들이 움직였어!”
푸른 뇌전으로 이루어진 용에 올라탄 플레이어, 썬더.
그를 알아본 다른 플레이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편, 그렇게 허상괴들을 향해 움직인 것은 비단 썬더만이 아니었다.
유럽의 상공.
그곳에 모습을 한 명의 플레이어가 버럭 외치며 스태프를 흔들었다.
“지구는 우리 인간들의 것이다!”
콰가강-!
구멍보다 높이.
지구의 대기와 우주의 경계 부근에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며, 수십 개의 운석이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반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최상위 마법, 미티어 스톰이었는데 그러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플레이어 중 단 한 명.
오직 마법만 파고들어 대현자의 위치까지 올라선 마도왕뿐이었다.
그렇게 마도왕이 시전한 미티어 스톰에 허상괴 무리의 일각이 무너져 내리고, 그 뒤를 이어….
“괴물 따위에게 지구를 내어 줄 것 같아?”
등에 박쥐의 그것과도 같은 날개를 달고 있는 호문쿨루스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허상괴들을 향해 돌격했다.
그런 호문쿨루스들의 사이에는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이 자리 잡아 수많은 포션병들을 집어 던졌다.
그녀가 던지는 포션 하나하나가 허상괴와 충돌할 때마다. 지옥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극한의 냉기가 휘몰아치며, 삭풍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날뛰었다.
호주에서도 십강 중 하나인 블러드 문의 길드 마스터, 블러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나의 혈족들아! 움직여라! 춤추어라! 적의 피로 그 갈증을 해소해라! 인간을 위협하는 저 버러지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거다!”
콰가강-!
마치 오케스트라 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의 손짓처럼 움직이는 블러드의 양손.
그렇게 블러드의 양손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사방에서 핏빛의 탄환이 모습을 드러내며 덮쳐오는 허상괴들을 향해 쏘아졌다.
그 뒤를 이어 진조라고도 불리는, 엘더 뱀파이어의 피를 이어받은 뱀파이어들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등에 돋아난, 박쥐의 그것과 같은 날개를 펄럭이며 허상괴를 덮쳐 그 피를 빨아먹었다.
호주 다음은 태평양 한 가운데였다.
바다 깊숙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부상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배였다.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배의 곳곳에는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달려 있었으며.
그 무기를 다루는 것은 인간이 아닌 골렘이었다.
“저스티스 호! 출항이다!”
오우!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고!
앞으로 다시는 인간을 무시하지 마라!
뱃머리에 서 있는 플레이어, 강철의 외침에 따라 강철 길드의 길드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스티스 호는 강철의…, 아니 강철 길드의 역작이다.
곳곳에 박아넣은 부유석을 통해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으며. 그 동력원으로는 로스트 월드에서 구한 S급 마나석과, 로열 알케미스트 첸첸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현자의 돌을 사용했다.
특히나 S급 마나석과 현자의 돌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만큼, 저스티스 호는 강력한 방어막에 보호받고 있다.
강철은 저스티스 호의 방어막은 로스트 월드 최강의 존재라 불리는 레드 드래곤조차 뚫지 못할 것이라 자랑한다.
그 외에도, 곳곳에 달린 각종 무기들이 발휘하는 화력은 발군이었으며…
“천공멸룡포 발사!”
망치를 꺼내며 외치는 강철에, 저스티스 호에 달려 있던 거대한 포신이 굉음을 토해냈다.
콰가가가가-!
포신에서 뿜어진 강렬한 열선에 노출된 허상괴들은, 그 등급에 구애받지 않고 평등하게 녹아내리며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힘이다! 이 괴물 놈들아!”
일격에 수만 마리의 허상괴를 날려버린 강철이 크하핫! 하는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직접 만든 갑옷을 걸치고, 거대한 망치를 든 강철. 종족마저 드워프인 그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역전의 전사와도 비슷했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십강에 의해 이제는 역으로 허상괴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꽤나 괜찮게 움직이고 있군요.”
“그래. 그나저나…, 강철 잰 언제 저런걸 만들었대냐.”
제로는 하늘을 부유하며, 각종 무기로 폭격을 가하는 저스티스 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뭐, 자신 몰래 저런 걸 만들었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허상괴들과의 전쟁에 충분한 도움만 된다면 오케이였다.
하지만….
“긴장해.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이건 총력전이야. 저쪽에서도 ‘진짜’들이 온다.”
은혜를 받았음에도, 그 은혜를 감당하지 못해 격이 하락한 존재들, 군단장.
그들이 구멍에서 튀어나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러한 군단장 중 몇몇은 신성의 길드 하우스 옥상에서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제로와 신성. 스타툰과 스로우. 그리고 베이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