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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92화 (192/200)

제192화

콰가강-!

베르젤라로부터 뿜어져 나온 어둠이 허공에 뭉쳐 무기의 형태로 제로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 공격 방식은 제로 또한 애용하던 데스 본 시리즈와 비슷했으나,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어둠이 뭉쳐 만들어진 무기가 사방팔방에 꽂히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거대한 폭발이 가시며 드러난 풍경은 그 무엇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어둠의 폭발에 휩쓸린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린 것이다.

허나 단 하나.

허무의 어둠으로 이루어진 폭발조차 집어삼키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너무 어지르지는 말아줄래?”

제로가 텅 비어버린 공간 속에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본래 외차원에 속한 제로다.

그것을 육체라는 힘의 제약을 통해 지구에 남아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곳은 온전한 외차원이 아닌, 그 틈새에 불과한 세계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가득 메운 공허한 죽음은 제로의 힘과 육체를 증폭시켰다.

특히나, 외차원의 틈새를 가득 메운 죽음은 제로의 마음과 정신을 평온하게 안정시켜 주기도 했다.

한편, 베르젤라는 자신의 공격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어 나오는 제로에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내 반신과, 그녀를 죽일 만한 강함은 있다 이건가. 하지…!”

뭐라 입을 열던 베르젤라가 순간 몸을 내뺐다.

그의 전신이 허무의 어둠에 집어삼켜져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곧 그 장소에 거대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룡 덴드로…?”

갑자기 나타나, 베르젤라에게 기습을 가한 것은 사룡 덴드로였다.

허나, 그것의 갑작스런 등장은 제로에도 상당한 당혹감을 심어줬다.

그도 그럴 것이….

‘명계에 속해 있는 저것이 어째서 외차원의 틈새에 나타난 거지?’

사룡 덴드로는 명계의 파수꾼.

외차원은 명계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사룡 덴드로의 등장은 제로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가이아. 그녀의 말이 옳았던 것일까.’

사룡 덴드로. 그것의 본래의 모습은 가이아가 언급했던, 외차원의 마룡 아지 다하카. 그것이란 말인가.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머리 위로 모습을 드러낸 베르젤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도마뱀 따위가 감히…!”

상대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베르젤라의 드높은 자존심에 금이라도 그어버린 것일까.

흉신악살처럼 인상을 찌푸린 베르젤라의 입에서, 난폭한 울부짖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스릉-!

어둠이 뭉치며, 그 속에서 한 자루 검이 튀어나왔다.

칼날부터 손잡이까지.

모든 것이 흑색 일통의 그것은 언뜻 보기에도 수수해 보였으나, 상식을 초월하는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베르젤라가 흑색의 검을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 예기가 주변의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는 것이다.

“마검 라그나로크. 오랜만에 뽑아보는군.”

베르젤라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흑색의 검, 마검 라그나로크의 검신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을 뽑아 쥔 것이 과연 얼마 만일까. 기뻐해도 좋다. 나 베르젤라가 네놈의 강함을 인정했다는 뜻이니.”

그러한 말을 내뱉은 베르젤라에, 제로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놈은 제로의 강함을 인정해 마검 라그나로크를 꺼내 쥔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의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 ‘내가 이렇가 강한 존재다’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꺼냈을 뿐이다.

“허울뿐인 말로 포장해봤자 진실은 변하지 않아.”

“놈-!”

콰가가-!

제로의 말에 노호성을 터트린 베르젤라가 움직였다.

그의 등에 달린 열두 쌍의 칠흑의 날개가 펄럭이는 순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며 순식간에 제로의 앞에 도착했다.

“죽어라!”

후웅-!

스카가가각!

마검 라그나로크가 휘둘러질 때마다 수백, 수천 개의 참격이 제로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제로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죽음마저 뚫고 들어와, 제로의 육체에 하나둘씩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껍데기에 뭐하냐?”

지금 제로를 이루고 있는 육체는 단순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새겨진 제로의 육신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은 오롯이 흑골만이 존재하는 몸뚱이였다.

그와 동시에….

쿠구구-!

제로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의 크기가 순식간에 증폭되기 시작했다.

수 배? 수십 배? 수백 배?

그러한 단위로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된 제로의 힘.

마검 라그나로크를 휘두르던 베르젤라는, 증폭된 제로의 힘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말했지. 이곳이라면 나도 마음 놓고 제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그것이 네 본래의 힘이라는 것이냐.”

“맞아.”

베르젤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제로가 움직였다.

제로가 한 발 내딛기 무섭게, 흑골로 이루어진 몸뚱이가 무너져 내리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스킬 발동, 데스 터치.

베르젤라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농밀한 죽음을 휘감은 손으로 베르젤라의 날개 하나를 건드렸다.

그러한 제로의 손이 닿은 베르젤라의 날개 하나가 농밀한 죽음에 집어삼켜지며,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바스라지며 사라졌다.

“크윽-!”

베르젤라는 한순간의 방심으로 열두 쌍의 날개. 총 스물네 개의 날개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악귀와도 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놈…. 감히 내 날개를…!”

쿠구구-!

처음은 사룡 덴드로… 아니, 외차원의 마룡 아지 다하카.

두 번째는 제로.

연달아 꼴사납게 회피하고, 하나의 날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베르젤라로부터 별의 폭발과도 같은 거대한 분노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죽여주마. 반드시 죽여주마.”

두 눈동자는 오직 제로에게 고정되고.

그 입에선 연신 ‘죽이겠다’라는 말밖에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 모습은 분노에 의해 이성이 사라져버린 광전사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대장군씩이나 되는 존재가…, 고작 이 정도에 이성이 마비되다니. 어이가 없네.’

제로가 속으로 그러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사룡 덴드로가 움직였다.

크아아-!

순식간에 베르젤라에 근접한 사룡 덴드로가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포효를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사룡 덴드로는 망설임 없이 베르젤라를 집어삼켰다.

아니, 삼키려 했다.

막 사룡 덴드로의 거대한 입이 베르젤라를 집어삼키려는 순간….

“버러지 따위가!”

스카가가각-!

베르젤라가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사룡 덴드로를 향해 마검 라그나로크를 휘둘렀다.

한 번의 휘두름에 수천 개의 참격을 만들어 내는 마검 라그나로크.

그렇게 만들어진 수천 개의 참격은 사룡 덴드로의 거대한 몸뚱이를 헤집으며 사라졌다.

쿠웅-!

그에 사룡 덴드로의 거대한 몸뚱이가 수천 조각으로 나뉘며 무너져 내렸다.

제로는 사룡 덴드로의 허무한 패배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가이아가 잘못 본 거겠지.”

적어도 외차원에 속해 있는 존재라면, 그리고 가이아가 언급한 대로 외차원의 마룡이라 불린다면 고작 방금 전의 일격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제로는 수천 조각으로 나뉘어 무너져 내린 사룡 덴드로가, 외차원의 마룡 아지 다하카라는 가이아의 말을 부정했다.

“뭐, 그보다도…. 이제는 내 차례냐?”

“죽인다.”

콰앙-!

제로의 말에 다시 한번 ‘죽인다’라는 말을 내뱉은 베르젤라가 움직였다.

그것이 딛고 있던 대지가 쾅! 하며 터져 나가는 순간, 베르젤라의 신형이 쭉 늘어나며 제로의 앞에 도착했다.

“죽어라.”

후웅-!

순식간에 제로 앞에 도착한 베르젤라가 마검 라그나로크를 휘둘렀다.

그러한 라그나로크의 검신에는 베르젤라의 힘. 허무한 어둠이 휘감겨져 있었다.

어둠을 휘감은 라그나로크의 칼날은, 한번 스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정도로 흉악한 힘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분노로 이성이 마비된 네놈의 공격이 나에게 닿을 거 같아?”

제로는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허무의 어둠을 휘감은 라그나로크의 검신을 피해냈다.

그에 베르젤라의 표정이 더욱 찌푸려졌다.

“노오옴! 순순히 죽어버리지 못할까!”

이성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힘에 이끌려 검을 휘두른다.

베르젤라가 품은 힘을 생각해 보자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흉악한 공격이 된다.

하지만….

“차라리 루시엘. 혹은 가이아가 더 강했어.”

전체적인 힘의 크기는 베르젤라가 그 둘을 압도할지 모른다.

허나 힘의 컨트롤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처럼 힘에 이끌려 움직이는 베르젤라보다 그 둘이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도 그러했다.

한편 베르젤라는 자신을 무시하듯 말하는 제로에 ‘으아아아아!’ 하는 괴성을 내질렀다.

“나는 흑의 대장군 베르젤라! 태초의 어둠의 첫 번째 자식이다! 그런 내가 약하다고? 웃기지 말란 말이다!”

“그래봤자 약한 건 약한 거야.”

퍼억-!

베르젤라의 복부에 제로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농밀한 죽음을 휘감은 정권에 얻어맞은 베르젤라가 컥! 하는 억눌린 신음을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외차원의 틈새로 널 데려오지 않았어도 됐겠어.”

물론 그건 아니다.

이성을 잃은 베르젤라가 흩뿌리는 힘은 지구를 붕괴시킬 정도로 위험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로가 그러한 말을 내뱉은 이유는 오직 도발을 위해서였다.

“으아아아아! 죽여버리겠어!”

분노로 가득 찬 베르젤라의 이성이 한 번 더 무너지며, 무차별적으로 마검 라그나로크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휘둘러질 때마다 튀어나오는 허무의 어둠으로 이루어진 참격이 외차원의 틈새를 이루는 대지를 집어삼키며 소멸시켰다.

이러한 공격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지구는 1분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한편, 제로는 되는대로 검을 휘두르는 베르젤라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만 끝내…!”

죽음을 하나의 점으로 압축시키고 있던 제로가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수천 조각으로 나뉜 사룡 덴드로의 시체가 들썩이며,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드래곤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거대한 입을 쩍! 벌리자, 외차원의 죽음이 휘감긴 날카로운 엄니가 모습을 드러냈으며….

콰직! 콰직! 콰직!

세 개의 머리가 순식간에 움직여 베르젤라의 전신을 씹어 삼켰다.

“으아아악! 어, 어째서! 내가! 흑의 대장군이자 태초의 어둠의 첫 번째 자식인 내가 어째서!”

베르젤라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드래곤, 사룡 덴드로. 아니, 외차원의 마룡 아지 다하카에게 씹어 먹히는 와중에도 별의 폭발과도 같은 분노를 터트렸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로는….

“정말이었던 거냐?”

사룡 덴드로의 시체에서 튀어나온,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드래곤.

외차원의 마룡 아지 다하카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알고 있었지? 죽음.”

그러한 제로의 목소리가 퍼져 나가는 순간.

제로의 등 뒤로 거울을 닮은 원판이 모습을 드러내며 죽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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