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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91화 (191/200)

제191화

저, 저길 봐!

수해가 사라진다!

제로가 이긴 거야!

영국에 나타난 거대한 나무, 위그드라실은 아직 건재하다.

허나 그것에서 파생되어, 점차 지구를 집어삼키고 있던 수해는 어느 순간부터 움직임이 멈추더니 점차 생명력이 빨려 나가듯 말라비틀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플레이어들이 안도의 한숨과. 제로가 승리했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녀가 당한 건가.”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로, 한 줌의 어둠이 뭉치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과, 블랙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듯한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칠흑을 품은 링이 두둥실 떠나디고 있었으며, 등에는 마찬가지로 칠흑으로 물든 열두 쌍의 날개가 펄럭였다.

그러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여는 순간….

오싹-!

그것의 목소리를 들은 플레이어들이 엄습해 오는 공포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동시에.

파지직-!

“허상괴로구나-!”

수해가 더 넓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와 있던, 십강 중 하나인 천둥 길드의 길드 마스터, 썬더.

그가 전신에 뇌전을 두르고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는 순간, 순식간에 검은 천사의 앞에 도착한 썬더는 푸른 뇌전이 깃든 건틀렛을 망설임 없이 내뻗었다.

아니, 그렇게 움직인 것은 비단 썬더만이 아니었다.

같은 십강 중 하나인 블러드 문의 길드 마스터, 블러드 마스터 블러드.

십강 중 하나인 신성의 길드 마스터, 자애의 성자 신성과 강철의 길드 마스터, 강철이 만들어 낸 골렘이 뒤따라 움직였다.

“버러지들이.”

검은 천사는 자신을 공격해오는 플레이어들에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허무에 집어삼켜져, 모조리 사라지거라.”

우웅-!

그러한 말을 내뱉은 검은 천사로부터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구의 형태로 퍼져 나가는 어둠에 닿은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보고 위험함을 느낀 십강의 길드 마스터들이 재빨리 몸을 빼냈다.

허나….

“크윽-!”

가장 먼저 움직이고.

검은 천사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썬더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왼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는데, 제로를 제외한 플레이어중 최속을 자랑하는 썬더였으나.

검은 천사와 너무 가까웠던 나머지, 그것이 뿜어낸 허무의 어둠을 전부 피하지 못한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사라진 왼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썬더의 곁으로 신성이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런 신성은 어느새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고, 순백의 갑옷을 걸쳤으며. 오른손에는 성창 롱기누스를 쥐고 있었다.

“괜찮아. 하지만….”

연신 포션을 들이붓고 있음에도 사라진 썬더의 왼팔은 재생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에 인상을 찌푸린 신성이 회복 마법을 시전했지만….

‘통하지 않아?’

신성의 회복 마법조차 사라진 썬더의 왼팔을 재생시킬 순 없었다.

검은 천사는, 당황하는 플레이어들을 오만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의 이름은 베르젤라. 태초의 어둠의 첫 번째 자식이자, 태초의 빛의 첫 번째 자식 루시엘의 반쪽. 그리고….”

왕을 거역하는 모든 것에 허무를 안겨주는 존재.

쿠구구-!

스스로를 베르젤라. 태초의 어둠의 첫 번째 자식이자, 루시엘의 반쪽이라 칭한 그의 입이 다물어지는 순간.

거대하면서도 난폭한. 허나 어딘가 모르게 고요함을 품은 존재감이 휘몰아쳤다.

그러한 존재감은 전투태세에 돌입한 플레이어들을 짓눌렀으며, 그 무시무시한 압력에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비단 십강의 마스터라 한들 다를 바 없었다.

“완전 괴물이군요.”

전신을 짓누르는 무형의 압력 속에서 베르젤라를 바라보던 신성이 입을 열었다.

존재감만으로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 정도로 짓눌려진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강적이라 칭해지던 적들과 싸워 왔음에도, 이 정도로 힘의 격차를 크게 느낀 적 또한 없었다.

즉, 눈앞의 저것.

베르젤라는….

‘명백한 인류의 재앙임이 틀림없어.’

신성이 속으로 그러한 말을 중얼거릴 때, 베르젤라가 주변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분의 대적자가 안 보이는군. 아직 위그드라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뭐?”

무심히 중얼거리던 베르젤라의 등 뒤로 죽음이 뭉치고 그 속에서 걸어 나온 제로가 입을 열었다.

“대장군은 이제 너 하나만 남았어.”

제로의 말에, 베르젤라가 슬쩍 시작의 나무 위그드라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쉽군. 그녀와 공멸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허나 상관없다.”

“그분의 길을 막아서는 존재는 나 베르젤라. 흑의 대장군이 처리하면 그만.”

쿠구구-!

그러한 말을 내뱉은 베르젤라의 난폭하면서도 거대한 존재감이 제로에게 집중되었다.

그 존재감이 선사하는 무시무시한 압력은 위그드라실 내부에서 느꼈던, 가이아가 다루던 초중력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제로는 그러한 압력 속에서도 태연하게 서 있으며, 무심히 입을 열 뿐이다.

“놈의 밑에 있는 대장군은 총 셋. 백의 대장군 루시엘. 녹음의 대장군 가이아. 마지막으로 너, 흑의 대장군이자 허무의 인도자 베르젤라. 나머지는 놈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멸했거나, 스스로 생을 포기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군단장으로 격하됐거나. 그렇지?”

“그러하다. 그녀는 입이 가벼운 게 문제로군.”

“그러니…, 너만 죽이면 놈과의 싸움을 방해할 존재는 더 이상 없다 이거야.”

츠즛-!

말을 마친 제로가 움직였다.

제로의 신형이 한줄기 선이 되어 늘어나는 순간, 순식간에 베르젤라 앞에 도착한 제로가 꽉 움켜쥔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니 그냥 죽어버려.”

후웅-!

콰앙!

휘둘러지는 주먹에 깃든 농밀한 죽음.

그리고 베르젤라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무한 어둠.

그 둘이 충돌하는 순간, 거대한 충격이 퍼져 나가며 지구가 뒤흔들렸다.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품었기에 그러한 충격을 더욱 자세히 느낄 수 있었던 십강의 길드 마스터들은 경악 어린 표정을 내비쳤다.

베르젤라야 딱 보기에도 강해 보이고, 스스로가 내뿜은 존재감 또한 상당했기에 그러려니 하겠지만….

‘설마 제로의 강함이 이 정도일 줄이야.’

아무리 해도 ‘이긴다’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베르젤라를 상대로, 동수를 이루는 제로의 강함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만일 그러한 강함을 지닌 제로가 없었다면….

‘지구는 진작에 끝장났겠군.’

썰물처럼 밀어닥치는 허상괴들과, 제로가 말한 군단장. 그리고 대장군 급의 존재들.

그들에 의해 지구는 단 하루 만에 멸망했을지도 몰랐다.

이제는….

“부디 승리하시길.”

전적으로 제로를 믿어야 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 * *

쾅! 쾅! 쾅!

제로와 베르젤라.

그 둘이 충돌할 때마다, 지구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이 연신 퍼져 나갔다.

“흐음. 확실히 내 반신과 그녀가 고전할 만하군. 약소차원에 속한 존재답지 않은 강함이다.”

“그래?”

베르젤라의 중얼거림에 제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본래 소속되어 있는 장소는 외차원.

그것은 끝없이 펼쳐진, 그 수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원의 밖을 의미한다.

다만 평범한 존재는 외차원을 의식할 수도, 인지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외차원에 대하 알고 있는 가이아가 눈앞의 이놈보다 더 격이 높다고 할 수 있겠지.’

강함은 눈앞의 검은 천사, 베르젤라가 더욱 강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 격만큼은 대지의 어머니. 혹은 생명의 어머니라 불리는 가이아가 더욱 드높았다.

그나저나….

‘외차원의 마룡 아지 다하카. 그건 도대체….’

사룡 데드로를 본 가이아가 언급한 이름, 아지 다하카.

그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제로에게 있어 아직까지도 미지의 무언가였다.

“나를 두고 한눈을 팔다니. 배짱 한번 좋구나.”

퍼석-!

“큭!”

잡생각에 집중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일까?

베르젤라 토해낸 허무의 어둠을 피하지 못한 제로의 왼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허무의 어둠이 갉아먹고 있다.’

깔끔한 절단면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은 어둠이 육체를 갉아 먹고 있었다.

그것은 죽음마저 갉아먹어 재생을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썬더 또한 왼팔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적자여. 나약하디 나약한 대적자여. 이만 사라지거라.”

우우웅-!

손을 들어 올리며 말하는 베르젤라를 중심으로, 짙은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칠흑과도 같은, 혹은 깊은 무저갱에 자리 잡은 심연과도 같은 어둠은 베르젤라의 머리 위로 뭉쳤다.

완벽한 구의 형태를 한 어둠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해져만 갔는데, 그 모습은….

“무슨 원기옥이라도 되냐.”

모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사용하는 기술과 흡사했다.

“이만 사라지거라.”

“지랄.”

사형선고를 내리듯 입을 연 베르젤라가 거대한 어둠의 구체를 던졌다.

그것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러한 어둠의 구체에 닿은 모든 것이 허무에 집어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편, 제로는 점차 가까워지는 어둠의 구체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것을 막으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지구가. 그리고 인간들이 위험해.’

자치 잘못하면, 단순히 힘과 힘이 충돌한 여파로 인류의 대다수가 목숨을 잃게 된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고 부유섬으로 움직이자니, 그마저도 지구에 영향이 갈 것 같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제로가 어둠의 구체. 아니, 그 뒤에 자리 잡은 베르젤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왕들의 무대다.”

스킬 발동, 외차원의 틈새.

쩌억-!

공간이 갈라지며, 거대한 입이 튀어나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제로와 베르젤라. 그리고 베르젤라가 만들어 낸 어둠의 구체를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그렇게 갈라진 틈새에서 튀어나온 입에 집어삼켜진 둘이 도착한 장소는….

“불쾌하군.”

공허한 죽음이 가득 들어찬 세계.

외차원에 존재하는 틈새 어딘가였다.

베르젤라는 세계를 가득 메운 죽음에 불쾌하다는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런 베르젤라의 반응에 제로가 피식 웃었다.

“여기라면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싸울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바쁘다. 소멸한 나의 반신과, 그녀의 빈 자리를 대신해 그분을 강림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러니….”

3분.

3분 안에 죽여주마.

그러한 말을 내뱉은 베르젤라가 움직였다.

* * *

“방금 그건…?”

마치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한 거대한 어둠의 구체와.

그것을 만들어 낸 베르젤라. 마지막으로 제로가 거대한 입에 집어삼켜지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당황할 때….

“지구에 피해가 오지 않게 이차원으로 이동한 것일지도 모르겠지.”

공간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첸첸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마도왕이 입을 열었다.

“마도왕! 첸첸! 살아 있었군요.”

“그래.”

기뻐하며 외치는 신성에, 마도왕과 첸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러한 둘이 튀어나온 갈라진 공간은 끝없이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마도왕과 첸첸. 그 둘이 구출해 낸 생존자였다.

그나저나….

“이차원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다. 제로가 전력을 다하면 지구는 버티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 없이 제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놈을 데려간 것이겠지.”

그러한 말을 내뱉은 마도왕은, 한때 제로가 서 있던 공간을 바라봤다.

‘그의 강함의 끝을 헤아릴 수조차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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