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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90화 (190/200)

제190화

“괜찮을까요.”

영국에 자리 잡은 거대한 나무, 시작의 나무라 불리는 위그드라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수해의 경계에 서 있던 플레이어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수해의 경계에는 걱정스레 중얼거린 플레이어 외에도,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집결해 있었다.

가장 앞열에는 강철 길드에서 만든 골렘들이 집결해, 수해가 더 넓어지는 것을 막아섰다.

그 뒤를 이어, 같은 십강 중 하나인 러시아의 천둥. 호주의 블러드 문. 한국의 신성이 자리 잡았다.

다만, 그렇게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긴장과 걱정이 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콰가강-!

쿠궁!

쿠우웅-!

연신 거대한 나무, 위그드라실로부터 강렬한 충격이 퍼져 나왔다.

그것은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를. 제로를 믿으세요.”

조용히 퍼져 나가는 신성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렇게 말한 신성 또한 걱정스러운 기색을 완벽히 감추지는 못했다.

‘제로 님.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허나 지금은 마음 졸이며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수해가 벌써 독일과 프랑스를 집어삼켰다.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점차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만일 십강이 나서 막아서지 않았다면, 그러한 수해는 삽시간에 지구 전역을 뒤덮어 버렸을 것이다.

* * *

수천 개로 불어난 가시나무 덩굴이 휘둘러진다

초중력이 휘감긴 가시나무 덩굴이 휘둘러질 때마다 대지가 터져 나갔다.

쉴틈없이 쏟아지는 가이아의 공격을 제로는 블링크를 이용해 피하며….

스킬 발동, 데스 본 퍼레이드.

콰가강-!

가이아의 빈틈을 노리며 공격을 가해나갔다.

허나, 그러한 제로의 공격이 가이아에게 닿기 직전,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대지가 움직이며 모조리 막아냈다.

“거슬리네.”

“그런가요?”

제로의 중얼거림에, 가이아가 싱긋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대지의 어머니. 그런 절, 대지가 지켜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답니다? 마치….”

촤왁-!

파스스.

제로의 뒤에 솟아오른 가시나무 덩굴이 휘둘러졌다.

허나 그것은, 제로의 육체를 강타하기도 전에 주변을 부유하고 있는 죽음에 먹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당신이 죽음에 보호받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쯧,”

다시 한번 싱긋 웃어 보이며 말하는 가이아에, 제로가 낮게 혀를 찼다.

확실히 자신 또한, 스스로를 중심으로 배회하고 있는 죽음에 보호받고 있었다.

그 격이 낮은 공격은 육체에 닿기도 전에, 죽음에 먹혀 사라진다.

그 모습은 언뜻 보면 대지에 보호받고 있는 가이아와 비슷했다.

“그나저나 뭘 그렇게 참고 계신가요?”

내가… 참고 있다고…?

이해할 수 없는 가이아의 질문에 제로의 두 눈동자가 의문으로 물들었다.

“당신이 왜 스스로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지 전 알고 있답니다. 인간들을 구출했다지만, 아마 당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면…. 그대가 지키려는 세계가 망가지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가이아의 말에 제로는 침묵했다.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자신이 품은 강대한 힘, 죽음.

그것을 서스럼없이 풀어버린다면, 이 세계에. 지구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제로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제로가 본래의 힘을 발휘하는 것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다.

그런 제로를 바라보며 가이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이곳은 시작의 나무 위그드라실의 내부. 당신이 지키려는 세계…, 지구라 불리는 차원과는 완전히 격리된 세계니까요.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지키던 인간들이 사라진 순간. 제가 격리시켰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어째서 그러한 짓을 한 거지?”

가이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의문이 일어난다.

그것은 어째서 가이아는 그토록 자신이 전력을 내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손에 죽을 수 도 있는데.

그러한 제로의 의문을 눈치챈 가이아였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단순히 싱긋 웃을 뿐.

그 해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뭐….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겠지.’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품은 제로가 가이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해 줬음에도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너에게 무례가 되겠지. 그렇다면….”

쿠우우우-!

뒷말을 흐리며 입을 다문 제로의 전신에서 농밀한 죽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차 거대해져, 위그드라실 내부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껍데기가 버티지 못하는 건가.’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 올렸기 때문일까?

그나마 인간의 모습과 가까워졌던 껍데기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시작은 피부였다.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양, 이리저리 일그러지던 피부가 잿빛의 불꽃에 타올라 사라지고.

그 밑에 자리 잡은 살점과 근육 따위가 흐물흐물하게 녹아 흘러내린다.

한쪽 눈알이 툭! 바닥으로 떨어져, 살점과 근육처럼 녹아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복부에 가득 들어차 있는 장기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껍데기가 무너져내린 제로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롯이 흑골.

마치 한계를 벗어나기 전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것이 당신의 본신이로군요.”

“그래. 그러니…, 너무 쉽게 죽지는 마라.”

콰가강-!

제로가 흑골의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가이아를 가리키자, 주변을 잠식해 나가던 죽음이 움직였다.

하나의 점으로 뭉친 죽음은 거대한 칼날의 형태를 갖추고, 망설임 없이 가이아를 향해 쏘아졌다.

콰가강-!

거대한 칼날이 가이아에게 닿기 직전, 대지가 불쑥 솟아오르며 가이아를 보호했다.

그 둘의 충돌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으며, 그 폭발 속에서 가이아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강하시네요.”

폭발이 사그라들며 나타난 가이아의 육체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허나, 그런 가이아가 딛고 있던 대지는 죽음에 물들어,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제 끝을 보자. 너무 오래 끌었다.”

“그러네요….”

제로의 말에, 가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런 가이아의 표정에는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미미한 슬픔이 깃들었다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있었던 인간이 블랙홀을 만들었더군요.”

“…?”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품기 무섭게….

“허나, 그 인간이 만들어 낸 블랙홀은 본래의 위력에 1/100에도 못 미쳐요. 제가 보여드리죠. 진정한 블랙홀이란 무엇인지.”

쿠구구-!

그러한 말을 내뱉은 가이아가 손을 내뻗자, 그녀의 손 위로 하나의 검은 점이 만들어졌다.

한 치의 흔들림도, 일그러짐도 없는 완벽한 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그것으로부터….

“큭-!”

막대한 흡입력이 발생하자 제로가 몸을 비틀거리며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가이아가 만들어 낸 블랙홀은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나무의 관리자라는 존재가, 위그드라실을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인 거냐!”

제로가 버럭 외치자, 가이아가 싱긋 웃어 보였다.

“제가, 지구에 뿌리 내린 위그드라실은 묘목이라고 말했었죠?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진짜 위그드라실’의 자그마한 뿌리에 불과해요. 잔털이나 마찬가지인 이것이 사라진다 해서, 진정한 위그드라실에는 아무런 타격도 입힐 수 없죠.”

그러한 말을 내뱉는 가이아에, 제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즉, 가이아는 위그드라실과 함께,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생각이었다.

한편, 점차 덩치를 키워가는 블랙홀에 위그드라실이 점차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덩치가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흡입력은 제로마저 끌어당겼다.

그에 제로는….

‘이번에 모든 것을 끝낸다.’

쿠구구-!

제로는 사방에 퍼져 있던 죽음과 자신이 품은 죽음마저 뭉쳐 하나의 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잿빛의 구체.

언뜻 보기엔 가이아가 만들어 낸 블랙홀과 흡사했으나, 그 성질은 전혀 달랐다.

“아아, 아름답군요.”

“이걸로 끝내자.”

잿빛의 구체를 바라보며, 가이아가 다시 한번 미미한 슬픔을 드러냈다.

제로는 그런 가이아를 향해 입을 열며, 손 위로 만들어진 잿빛의 구체를 쏘아 보냈다.

느릿하게. 그러나 재빠르게.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움직이는 잿빛의 구체가 가이아의 블랙홀과 충돌하는 순간….

세계는 환한 빛에 집어삼켜졌다.

* * *

“이게 뭐 하자는 짓이지?”

공허한 죽음과, 따스한 생명이 공존하는 세계.

그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제로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가이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이아는 그런 제로를 향해, 슬픈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답니다.”

가이아가 언급한 그.

그것은 아마 허상괴의 왕일 것이다.

헌데, 어째서? 왜?

그의 부하나 다름없는 가이아가, 그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것일까.

제로가 그런 의문을 품기 무섭게….

“아시나요? 저희 대장군들은 스스로 그의 은혜를 받아들여 그의 밑으로 들어간 존재와. 저와 같이 그와 계약을 통해 대장군이 된 존재. 그 둘로 나뉜답니다.”

….

“당신에겐 모진 짓을 해버렸네요.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인간들에게 위해를 끼쳤으니 말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전 인간이 싫지 않아요. 기껏해야 백 년도 살지 못하는 그들이 내뿜는 열정과 정열은 언제까지나 지켜봐도 질리지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제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그렇기에 당신의 분노를 이용한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리지요.”

그러한 말을 내뱉은 가이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한 가이아의 모습은 단순히 삶에 지쳐버린 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당신의 옛 연인을 만나게 해드렸으니…. 그걸로 퉁치면 안 될까요?”

슬픈 미소로 싱긋 웃어 보이는 가이아에, 제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확실히 가이아가 품은 생명과, 그녀가 품은 생명은 비슷했다. 자칫 잘못하면 동질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그런데 설마….

“그녀를 생명의 수호자로 만든 것이 너였던 거야?”

“그렇답니다. 물론 그로 인해 당신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버렸지만 말이죠.”

말을 마친 가이아의 육체가 발끝에서부터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한 줌의 빛 가루로 변해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다 되었군요. 부디…, 당신은 당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저처럼 그의 권속으로 타락하지 않기를…, 부디….”

파앗-!

그러한 말을 끝으로, 가이아의 육체가 완전히 사라지고.

공허한 죽음과 따스한 생명이 충만한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한편, 그렇게 제로가 가이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허상계에 자리 잡고 있던 왕이 비틀린 미소를 내비쳤다.

“계약을 어겼구나, 가이아여.”

그러한 말을 내뱉은 왕이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손안에 하나의 자그마한 나무가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시작의 나무, 위그드라실.

그리고 가이아가 어쩔 수 없이 왕의 대장군이 된 이유였다.

“멍청하기는. 나와의 계약만 잘 이행하면 위그드라실을 되찾을 수 있을 터였는데.”

콰직-!

입을 다문 왕이 꽉! 주먹을 움켜쥐자, 그의 손 위를 두둥실 떠다니던 위그드라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약은 파기되었다.”

그러한 말을 내뱉은 왕은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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