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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87화 (187/200)

제187화

크르르….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던 폭발이 사그라들며 드러난 풍경에 베히모스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자신의 브레스에 쓸모없어진 인간들 모두가 사라져야 했으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다소의 상처는 보일지언정, 그 상처가 죽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그에 베히모스가 슬쩍 가이아를 바라봤는데, 그런 베히모스를 응시하는 가이아의 두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뭐 하고 있나요? 당장 정리하세요.”

가이아의 입에서 눈동자만큼이나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베히모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다만, 방금 전 사용한 브레스의 영향일까?

살아남은 인간들을 향해 적의를 터트리는 베히모스의 덩치가 사뭇 줄어들어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산을 연상시키는 거체였다면.

지금의 베히모스는 자그마한 언덕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크아앙-!

다소의 힘을 사용했다 한들, 덩치가 줄어들었다 한들 베히모스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멈춰 선다면….

가이아에게 죽는다.

그 사실을 베히모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가이아.

녹음의 대장군이자, 시작의 나무 위그드라실의 관리자.

또한 생명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존재.

그런 그녀는 평소에 매우 온화했으나, 그 속은 상당히 비틀려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하나의 종족을 멸종시키기도 했으며,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부하는 망설임 없이 그 목숨을 끊어놓는다.

그것은 권속이라 불리는 베히모스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베히모스가 바닥을 박차며 인간들, 정확히는 아직 남아있는 나무 덩굴로 이루어진 고치를 향해 뛰어오르는 순간….

“앉아.”

쿠궁-!

거대한 압력이 베히모스를 짓누르고, 그러한 압력에 베히모스가 바닥에 처박혔다.

베히모스는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에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이 압력은 자신이 다루는 중력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그저 압도적인 존재감.

제로의 전신에서 터져 나오는, 고요하면서도 난폭한 압도적인 존재감이 만들어 낸 압력이었다.

크르륵-!

베히모스가 낮은 울림을 토해내며 몸을 움직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 압력에서 빠져나가 인간들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베히모스가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집어삼켰다.

브레스를 사용해 힘이 줄어든 영향일까? 아니면 눈앞의 존재.

자신의 어머니와 적대하는 존재의 본래 힘이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일까.

싸늘하게 식은. 허나 언뜻 보면 오만한 기색이 서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제로에 베히모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륵!

쩌저적-!

베히모스가 힘을 쥐어짜며 몸을 일으키자 발을 딛고 있던 대지가 갈라졌다.

마치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양 사방팔방으로 갈라지는 대지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한편, 그러한 베히모스의 제로를 바라보고 있던 가이아는….

“흐음. 제 아이가 다소 지쳤나 보네요.”

여전히 요염한, 허나 그 속에는 다소의 불쾌감이 깃들어 있는 미소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제 아이가 죽는 것도 보기 싫으니…, 어쩔 수 없지요. 이건 정정당당한 대결이 아닌, 죽고 죽이며 살아남기 위한 투쟁. 너무 치사하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제로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말한 가이아의 발밑에서 한 줄기 나무 덩굴이 튀어나왔다.

그 끝은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었으며, 그러한 가시의 끝에선 녹색의 액체가 방울방울 맺혀 떨어졌다.

푸욱-!

가이아의 발밑에서 솟아오른 나무 덩굴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베히모스의 등을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무 덩굴이 꿀렁거리며 베히모스의 체내에 녹색의 액체를 주입했다.

그 순간….

크르르-!

크아아아아아앙!

베히모스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포효가 터져 나오며 녹색의 액체가 주입된 그 육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전신을 뒤덮은 털이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를 나무껍질과도 비슷한 무언가 자리 잡는다.

네 개의 발에 돋아난 발톱은 체내에 주입된 액체와 같이 녹색으로 변하고 극악의 맹독이 흘러내렸다.

맹독이 한 방울씩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독무마저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처음과 비교해 그 덩치가 많이 줄어들었다지만, 그럼에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베히모스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뼈가 뒤틀리고 부서져 새로이 만들어지고 근육이 극한까지 압축되어, 변화를 끝낸 베히모스의 덩치는 흔히 동물원에서 볼 수 있었던 코끼리. 그 정도의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더 강해졌어.’

덩치는 줄어들었을지언정, 베히모스의 강함은 도리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슬쩍 돌아본 뒤에는….

‘저들도 방금 전 폭발에 의한 충격을 추스르느라 상당히 지쳤어.’

제로의 눈에 들어선 첸첸과 마도왕.

그들은 상당히 피폐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첸첸의 호문쿨루스들의 숫자는 이제 십여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대현자라 불리며, 그 끝을 모를 정도로 방대했던 마도왕의 마나 또한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남은 고치의 숫자는 얼핏 봐도 수십만.

과연 저들의 힘이 떨어지기 전, 생존자들을 구출할 수 있을…!

퍼억-!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제로가 거대한 충격을 깨닫는 순간, 그 신형이 바닥에 처박혔다.

언제 움직인 것일까?

덩치가 줄어든 만큼 속도가 오른 것인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움직인 베히모스가 거력이 담긴 앞발로 제로를 후려쳤다.

그렇게 바닥에 처박힌 제로의 앞에 착지한 베히모스가 그르르…, 하는 울림을 토해냈다.

“그래, 지금은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

박살 난 파편을 헤치며 일어선 제로가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두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아 베히모스를 응시했다.

그렇게 제로와 베히모스. 그 둘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였다.

서로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쩌엉-!

둘의 신형이 쭉 늘어나 한줄기 선으로 변해 충돌했다.

시작의 나무 위그드라실의 내부를 누비는 두 개의 선이 충돌할 때마다 사방으로 거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완전 괴물이군.”

“그래도… 제로라는 존재가 있어서 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있던 마도왕과 첸첸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만전의 상태라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을 압도하고 있는 제로의 강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아직도 움직일 생각이 없는 저 괴물인 건가.”

하나의 고치 속에서 생존자를 구출해 낸 마도왕이 슬쩍 녹음의 대장군 가이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괴물은 지금, 제로가 압도하고 있는 베히모스라는 이름의 괴물보다 더욱 강할 것이다.

만일 저 괴물이 베히모스와 합동해 제로를 압박한다면?

제아무리 제로가 상식을 초월한 강함을 지녔다 한들, 자신들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라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에….

제로의 승리는 요원할 것이다.

‘그러니 저 괴물이 움직이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생존자들을 구출해 제로가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품으며 마도왕은 생존자의 구출에 집중했다.

* * *

“흐음.”

각종 보조 마법을 통해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고.

데스 임팩트와 데스 부스터를 동시에 발동하며 움직이는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베히모스는 덩치가 작아진 만큼 상당히 재빨라졌으며, 그 거력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베히모스의 전신을 뒤덮은 나무껍질과도 같은 무언가의 방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쩌면 본래 지니고 있던 털과 가죽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특히나 지금은 루시엘 때와는 다르게, 생존자들을 신경 써야 해 본래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제로는 ‘자신’이 베히모스따위에게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진짜 문제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며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허상괴, 녹음의 대장군 가이아.

그녀가 문제였다.

최소한 마도왕과 첸첸.

그 둘이 가이아와 싸우기 전까지 모든 생존자들을 구출해 냈으면 하는 바람이었….

크앙-!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다시 한번 딴생각을 하는 제로가 못마땅한 것일까?

멈춰 선 베히모스가 제로를 향해 포효를 터트리며, 후읍-! 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에 베히모스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그것의 입에 강대한 기운이 뭉쳤다.

“브레스….”

조용히 중얼거린 제로의 말이 맞다는 듯, 베히모스가 다시 한번 포효를 터트리는 순간….

콰가가가-!

베히모스의 입에서 초중력으로 이루어진 한줄기 브레스가 쏘아졌다.

그것의 목표는 정확히 제로.

제로는 공간마저 일그러트리고, 빛마저 빨아들이며 다가오는 베히모스의 브레스에 돌연 씨익 웃어 보였다.

“확실히 브레스는 강력해. 하지만….”

츠즛-!

콰가강-!

베히모스의 입에서 쏘아진 브레스가 충돌하기 직전, 제로의 신형이 무너져 내리며 사라졌다.

그에 목표를 잃은 베히모스의 브레스는 벽과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한편, 그렇게 사라진 제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푸욱-!

커헝!

베히모스의 가슴 아래였으며, 그렇게 나타난 제로는 망설임 없이 베히모스의 가슴에 손을 쑤셔 넣었다.

베히모스는 자신의 살을 부드럽게 파헤치며, 자신의 심장을 움켜쥔 제로에 당혹성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제로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는데, 그것은 마치 ‘떨어져!’라고 외치는 듯 보였다.

제로는 그런 베히모스의 공격을 퍼펙트 데스 실드로 막아내며 입을 열었다.

“브레스 같은 큰 공격은 기회를 봐가며 해야지. 뭐,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브레스를 날려서 틈을 노릴 수 있었지만 말이야.”

그러한 말을 내뱉은 제로가 오른손에 힘을 주며, 베히모스의 심장을 터트리자….

쿠웅-!

베히모스의 두 눈동자에 생명의 빛이 빠져나가고, 베히모스의 거체가 둔중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완전한 죽음.

심장을 잃어버린 베히모스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단순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가이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당신은 제가 직접 상대해야 하나 보네요.”

촤라락-!

그러한 말을 내뱉은 가이아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제로가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심장을 잃어 시체가 되어버린 베히모스의 주변으로 가시나무 덩굴이 솟아올랐다.

그것들은 베히모스의 시체를 휘감으며 사라졌다.

“그래도 나름 권속의 시체라고 챙기는 거냐.”

“뭐, 없어진 심장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으면 다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말을 내뱉는 가이아의 반응은, 자신의 권속인 베히모스를 단순히 도구 취급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너무 쉽게 죽지는 말아주세요. 저도 오랜만에 움직이는 거라 조금은 즐기고 싶거든요.”

촤라락-!

루시엘과 같은 말을 내뱉었던 가이아의 발밑으로 수십 개의 가시나무 덩굴이 솟아났다.

하나하나가 수백 개의 뾰족한 가시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러한 가시나무 덩굴은 가이아가 손짓하는 순간….

쫘악-!

채찍과 같은 움직임으로 제로를 향해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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