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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79화 (179/200)

제179화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가 죽어버리다니. 참으로 멍청한 놈이 아닐 수 없구나.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왕의 대적자여.”

“백의 대장군…, 라이트.”

“흐음.”

제로의 중얼거림을 들은 백의 대장군이 묘한 웃음을 흘렸다.

“라이트… 라. 그것이 그대들이 나를 지칭하는 단어인가?”

“맞아.”

백의 대장군의 질문에 제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한 꺼풀 한계를 벗고 나서야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 백의 대장군 라이트.

놈의 강함은….

‘회귀하기 전 만났던 왕. 그 이상이다.’

라이트에게서 느껴지는 그 강렬한 기운은, 회귀 전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였던 왕 이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백의 대장군이 왕보다 강하다면, 어째서 그는 왕의 부하로 있는 것일까?

어쩌면….

‘회귀 전 만났던 왕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던 건가….’

왕은 모종의 이유로 본래의 강함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로에게 있어서 더더욱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본래의 강함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인류를 멸망시킨 존재.

그런 존재가 본래의 강함을 온전히 지니고 지구로 넘어오게 된다면….

‘아니,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게만 집중한다.’

그러한 생각을 품은 제로가 라이트를 바라보자, 그가 씨익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마음속 혼란은 조금 잠재웠는가?”

“덕분에.”

“끌. 그렇다면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해보도록 하지. 나의 이름은 루시엘. 태초의 빛에서 태어난 첫 번째 자식이로다.”

펄럭-!

스스로를 루시엘.

태초의 빛에서 태어난 첫 번째 자식이라 소개한 그의 등 뒤로 열두 쌍의 날개가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하나가 순백을 띠고 있는 그것은 어찌 보면 신성이 지녔던 하나의 날개와 흡사했다.

허나, 그 날개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숭고함은, 신성의 것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할 정도였다.

“루시엘…. 그것이 너의 진명이야?”

“그렇다네.”

제로의 물음에 라이트… 아니, 루시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루시엘에게선 딱히 자신의 이름을 숨겨야겠다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진명을 밝히는 이유는?”

“그대가 진정으로 왕의 대적자가 될 자격을. 그리고 나의 적이 될 자격을 지녔기 때문이라네. 과거의 자네는 무어라 해야 할까…, 상당히 약했거든.”

“약했다… 라.”

생명의 수호자가 품은 생명을 먹어 치우기 전의 자신을 떠올려 본 제로가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그때의 자신은 약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을 압도하는 강함을 지녔었다. 비록 상당한 무리가 뒤따랐지만, 어지간한 군단장급의 허상괴들은 모조리 죽일 수 있는 강함을 갖추고 있었다.

‘확실히 라이… 아니, 루시엘. 놈의 눈으로 보기엔 약자로 보였을 만하겠군.’

가만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시엘의 전신에선 피부가 저릿저릿하게 울릴 정도로 농밀한 투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저러한 강함을 가진 존재라면, 과거의 자신을 약하다… 라고 칭해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다르지만 말이야.”

“그렇다네. 지금의 자네는 다르다네.”

제로의 중얼거림에 루시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기에…, 어디 한번 감당해 보게나. 나 루시엘. 태초의 빛의 첫 번째 자식이 선사하는 시련을. 그 시련을 뛰어넘는다면, 그대는 진정으로 나에게 대적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라네.”

그러한 말을 내뱉은 루시엘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의 뒤에 시립해 있던 허상괴들이 움직였다.

그 숫자는 정확히 열두 마리.

하나하나가 군단장급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그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제로 또한 죽음을 피워올리며 응수했다.

아니, 응수하려 했다.

막 제로가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12마리의 허상괴들은 제로를 지나쳐 바다 밑으로 향했다.

“뭐지…?”

“끌, 저들의 이름은 스캐빈저라네. 익숙한 이름이지 않은가?”

스캐… 빈저…?

확실히 익숙한 이름이었다.

과거 무왕과의 일전 끝에, 루시엘이 버림패로 사용했던 군단장의 이름.

어째서 그 이름을 저 12마리의 허상괴들이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제로의 의문을 눈치챈 것일까.

루시엘이 끌끌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간단하다네. 저들은 나에 의해 만들어진, 이를테면 ‘인위적인 허상괴’라 할 수 있겠지.”

“허상괴를… 만들어…? 그게 가능할 리가 없…!”

“물론 허상괴를 창조하는 것은 오롯이 왕께만 허락된 권능. 허나 인간들이 행한 실험을 다소 이용한 결과, 저런 결과물이 만들어졌지. 참고로 말하자면 저들의 모체는….”

“인간이겠지.”

“그렇다네.”

사신의 흉안으로 들여다본, 죽어버린 해룡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스캐빈저들의 영혼 깊숙이에는 괴로워하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즉, 루시엘. 그는 인간의 시체를 통해 군단장급의 허상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구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의 시체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최소 마스터 레벨을 넘긴 플레이어. 그들의 시체를 이용해 저것들이 만들어졌겠지.

제로가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해룡의 시체 포식을 끝낸 열두 마리의 스캐빈저들이 바다에서 기어 올라왔다.

그들의 전신은 해룡이 지니고 있던, 푸른 대해를 연상케 하는 비늘이 빼곡히 돋아나 있었다.

“그대를 위해 준비한 전채일세. 부디 마음껏 음미하게나.”

그러한 말을 내뱉은 루시엘이 빛의 이면에 녹아들듯 사라졌으며.

동시에 열두 마리의 스캐빈저들이 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키아악!

케에엑!

열두 마리의 스캐빈저들이 행하는 공격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입에 돋아난 날카로운 이빨을 내세워 제로를 찢어발기려 했으며.

어떤 것은 바다에서 끌어 올린 물을 통해 만든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어떤 것은 해룡과 비슷하게 바닷물을 압축시켜 탄환으로 이용하고.

어떤 것은 자신의 육체가 지닌 거력을 앞세워 제로에게 달려들었다.

열두 마리의 스캐빈저 한 마리, 한 마리의 강함은 해룡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저것들은 확실히 군단장급의 강함을 가진 ‘인공 허상괴’.

특히나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계는 제로의 눈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를 너무 우습게 봤어, 루시엘.”

제로의 입에서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순간.

제로의 가슴이 쩍! 하고 갈라졌다.

갈라진 가슴 너머에는 진득한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었으며. 그 어둠 속에서 흉흉한 붉은 안광을 토해내는 하나의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먹어 치워버려, 사룡 덴드로.”

크아아아-!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갈라진 가슴 너머의 어둠 속에서 거친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콰직-!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가 세 마리의 스캐빈저를 집어삼켰다.

세 마리의 스캐빈저를 집어삼킨 드래곤, 사룡 덴드로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으적! 으적! 하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룡 덴드로의 일부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찰나보다 더욱 짧은 시간.

허나 그 짧은 시간마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인지, 사룡 덴드로에 잡아 먹힌 세 마리의 스캐빈저들이 있던 공간이 점차 죽음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로가….

뒤.바.껴.라.

파앗-!

강대한 존재감이 뒤섞인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 공간을 침식하던 죽음이 변했다.

스산하면서도, 공허한 무언가를 품고 있던 죽음은 곧 풍부하면서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생명으로 뒤바뀐 것이다.

‘호오. 죽음을 반전시켜 생명으로 뒤바꾼다라. 확실히 죽음과 생명은 동전과 같이 양면성을 띈 개념. 죽음을 다룰 수 있다면, 능히 생명마저 다룰 수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

빛의 이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시엘이 낮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저것들도 후딱 처리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제로가 빛의 이면에 몸을 숨긴 루시엘을 정확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루시엘은 또한번, 저도 모르게 음험한 미소를 내비쳤다.

* * *

카아악-!

후웅-!

콰가강!

한 마리의 스캐빈저가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수백 톤의 바닷물이 응축된 그것이 휘둘러지자, 강렬한 검풍이 휘몰아치며 주변의 바닷물을 모조리 밀어냈다.

하지만….

“소용없어.”

물의 검날이 닿기 직전, 그것을 휘두른 스캐빈저의 뒤로 이동한 제로가 손을 내뻗었다.

농밀한 죽음이 휘감긴 제로의 손이 스캐빈저의 등을 툭 건드리는 순간, 흘러 들어간 죽음에 스캐빈저의 육체가 한 줌의 가루로 바스라지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남은 스캐빈저의 숫자는….

‘다섯 마리. 일곱 마리를 처리하는데 30초라. 나도 아직 멀었네.’

처음 세 마리의 스캐빈저를 사룡 덴드로가 먹어 치우고. 나머지 네 마리의 스캐빈저를 처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총 30초.

그 사실에 제로는 다소 불만족을 느꼈다.

최상위권의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열두 마리의 스캐빈저를 동시에 상대하게 된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제로는 그런 스캐빈저 7마리를 처리하는 데 30초나 걸렸다는 사실에 불만족해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다른 플레이어가 봤다면 헛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한편, 남아있는 다섯 마리의 스캐빈저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끄덕,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하나의 점으로 달려들며 뒤엉켰다.

“뭐하냐?”

스캐빈저들의 뜬금없는 행동에 제로가 의문을 토하는 순간, 그 의문은 순식간에 해소되었다.

군단장급의 힘을 가진, 인공 허상괴 스캐빈저.

그것들이 가진 힘은 시체 포식.

같은 허상괴. 인간. 허상괴들의 번식을 통해 태어난 몬스터까지 그 무엇하나 가리지 않고 포식해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그 능력을 이용해….

크아아아악-!

다섯 마리의 스캐빈저가 하나로 줄어들었다.

허나, 하나가 된 스캐빈저의 힘은 지금까지와는 그 격이 다를 정도로 강해졌다.

어떻게 보면 저들을 만나기 전 죽였던 해룡. 아니, 그것보다 더욱 강한….

‘대해의 지배자 레비아탄… 보다 반걸음 정도 약하겠네.’

물론 그마저도 상당한 무력인 건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해룡의 시체를 포식해 얻은 물의 지배력까지 다섯 마리의 스캐빈저가 하나가 됨으로써 더욱 늘어났다.

물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 그 하나만 두고 보자면, 레비아탄과 동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방금 나한테 진 놈의 힘 아니냐.”

푸확-!

속삭이듯 중얼거린 제로의 전신에서 농밀한 죽임이 폭발하며 뿜어져 나왔다.

주변을 잠식하며 퍼져 나가는 죽음이 곧 제로의 손끝을 따라 이동하더니….

“명왕의 단두대, 완성.”

상공 수십 킬로미터 위로 거대한 칼날의 형태를 이룬 죽음이었다.

“이만 죽어.”

스윽.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듯 입을 연 제로가 손을 내리긋자, 하나가 된 스캐빈저를 향해 거대한 칼날. 명왕의 단두대가 떨어져 내렸다.

스캐빈저는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칼날에 대항하기 위해, 발밑의 바다를 이루는 수천톤의 바닷물을 끌어올려 하나의 방패를 만들었다.

“멍청한 놈.”

스칵-!

혀를 차는 제로의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칼날이 물의 방패를 가르고. 이어 그 뒤에 있는 스캐빈저의 몸뚱이를 이등분 내버렸다.

육체가 이등분되고, 명왕의 단두대를 이루는 죽음에 집어삼켜진 스캐빈저의 육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래 기다렸냐?”

“클.”

스캐빈저의 소멸을 뒤로하며 입을 여는 제로에, 빛의 이면에서 나온 루시엘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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