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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64화 (164/200)

제164화

십강 중 하나인 은림의 길드 마스터이자, 일본의 수호신이라고까지 불리던 주술왕 세이메이가 죽었다.

그 충격적인 진실에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이며 술렁거렸다.

세간에는 세이메이의 죽음이 일본에 나타난, 그저 존재만 알려져 있던 군단장급 허상괴와의 전투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허나 다른 십강의 길드 마스터들. 그리고 몇몇 최상위 플레이어들은 주술왕 세이메이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세이메이는 선을 넘었다. 그로 인해 제로에게 처단당했다.’

…라는 진실을.

특히나 주술왕 세이메이의 죽음. 그리고 은림과 신선조가 몰락한 이후, 전 세계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블루 문이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자, 최상위 플레이어들은 더더욱 세이메이가 제로에게 죽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한편 일본은 갑작스런 세이메이의 죽음과 은림. 그리고 신선조의 몰락에 상당히 당황했다.

일본이 지금까지 허상괴에 의한 피해가 적었던 가장 큰 이유가 그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헌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방어에 크나큰 구멍이 뚫려 버렸으니, 그 구멍을 메꾸지 못하는 한 일본의 쇠락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세이메이가 죽고, 은림과 신선조가 사라진 지 얼마나 되었고 벌써부터 일본 전국에서 중소형 길드들이 난립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허나, 그러한 혼란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제로는….

“괜찮습니까?”

소파에 죽치고 앉아, 음울한 무언가를 내뿜고 있는 제로에 신성이 입을 열었다.

제로가 일본에 다녀온 지 벌써 3일이나 흘렀다.

그런 제로는 한국으로 귀환한 이래, 지금까지 상당히 저기압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무언가 ‘고뇌에 빠졌다’라고 볼 수 있었다.

“별거 아니야.”

신성의 물음에 제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그 속은 상당히 복잡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이 알고 있었어.’

일본에서 만난 왕의 조각.

사실상 허상괴의 왕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놈이 말했다.

두 번째 기회는 잘 즐기고 있냐고.

왕의 조각이 언급한 두 번째 기회란,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를 통해 제로가 한 회귀를 뜻한다.

왕이 자신의 회귀를 알고 있다면….

‘지금까지 날 대적자로 언급한 것. 그리고 회귀 전과는 달라진 침공의 방식까지. 모든 것이 이해가 돼.’

허나, 그렇다면 어째서 좀 더 빨리 지구 침공을 감행하지 않은 것일까?

자신이라면 적이 회귀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사전에 그 싹을 짓밟아놨을 것이다.

허나 왕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와인이 숙성되기만을 기다리듯, 천천히 시간을 들여 지구를 공격한다.

어째서일까?

왜?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 그러고 보니 제로 님.”

“왜?”

갑작스런 신성의 부름에,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사신의 흉안이 신성을 응시했다.

신성은 오늘따라 유독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사신의 흉안에,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 또 무슨 문제?”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해 죽겠는데, 이놈의 사건은 어째서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

‘나에게 언급할 정도라면 상당히 심각하다는 뜻인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제로가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누가 또 사고라도 쳤어?”

“그게…, 사고라면 사고… 겠죠?”

제로의 물음에 신성이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뱉었다.

그에 제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몇몇 국가들이 포션을 필두로, 대량의 아이템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그게 왜?”

신성의 말에 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직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반발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지만, 제로가 일본에 있을 때.

신성이 직접 나서서 일반인들도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놨다.

다만 그렇게 유통되는 아이템들은 전부 협회의 관리 하에 놓여, 누군가가 아이템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지 못하게 엄중한 감시를 진행했다.

그렇기에 국가 차원에서 대량의 아이템을 매입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특이하긴 했지만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국가 차원에서 아이템을 매입해, 자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지원의 형식으로 뿌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뒤이어진 신성의 말에 제로의 미간이 더더욱 찌푸려지게 되었다.

“그들이 대량으로 매입한 아이템을 가지고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또한…, 연금술사나 대장장이 계열의 플레이어들의 납치. 저레벨 플레이어들을 강제로 징집 등의….”

“주동자는?”

“네?”

말하는 와중 던져진 제로의 물음에 신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주동자가 있을 거 아니야. 어떤 미친놈이 그딴 미친짓 을 제정신으로 하겠냐. 그렇게 되면 플레이어 협회와… 아니, 나와 척을 지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것이… 중국과 미국입니다.”

중국과 미국.

그 두 국가의 이름이 언급된 순간, 제로가 한숨을 토해냈다.

솔직히 말해서 제로는 별 볼 일 없는 약소국 몇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해 보겠다고 그러한 짓을 벌였을 것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지구의 모든 국가의 정상들에게 목줄을 채워 둔 것은 아니지만 나름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의 정상들에겐 목줄을 채워 뒀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들이 헛짓거리를 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설마 목줄을 무시하고 그따위 짓거리를 벌이다니. 아니면….’

“무왕과 룬의 반응은?”

“연락을 취해 보고 있지만….”

신성의 대답에 제로가 비틀린 미소를 내비쳤다.

그와 동시에 흑골의 육체를 휘감은 스산한 죽음이 출렁였다.

그 모습에 신성은 저도 모르게 다시 한번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그렇단 말이지.’

어째서 미국과 중국이 그따위 짓거리를 벌였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룬과 무왕을 믿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룬과 무왕에게 협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어찌 되었든….

‘날 무시한다는 것은 다를 바 없어.’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제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잠깐 봐야 할 사람이 좀 있어서 말이야.”

신성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한 제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흑골의 몸뚱어리가 힘없이 무너지는 순간, 제로는 죽음에 휩싸여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망자의 거성에 모습을 드러냈다.

터벅. 터벅.

망자의 거성에 나타난 제로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겨, 중앙의 홀에 자리 잡은 뼈의 옥좌에 털썩 주저앉았다.

“블러드.”

“부르셨습니까.”

뼈의 옥좌에 앉기 무섭게 입을 여는 제로에, 홀 천장의 그림자에서 퍼드득! 날개를 펄럭이며 떨어져 내린 박쥐가 곧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십강 중 하나인 블러드 문의 길드 마스터이자, 블러드 마스터라 불리는. 엘더 뱀파이어라는 종족을 가진 이종족 플레이어, 블러드의 등장이었다.

“알고 있었지?”

“무엇을 말입니까?”

“중국과 미국. 아니, 룬과 무왕. 그 두 놈들이 벌이는 짓거리를.”

제로의 물음에, 블러드는 그저 묘한 웃음을 내비쳤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제로는 블러드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왜 말하지 않았지?”

“마스터가 바빠 보여서 말이죠.”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쿠구구-!

마치 장난치는 듯한 블러드의 대답에, 제로의 전신에서 난폭한 존재감이 터져 나왔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존재감 속에는 농밀한 죽음 또한 뒤섞여 있었으며, 그러한 존재감에 망자의 거성이 무너질 듯 우르르 떨렸다.

특히나 제로가 터트린 존재감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는 블러드는 육체와 정신. 양쪽을 짓누르는 그것에 ‘큭!’ 하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마스터께선 저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아니, 애초에 마스터께선 저의 존재조차 잊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불만을 토로하는 듯 한 블러드의 외침에, 제로가 침묵했다.

허나 침묵은 긍정의 다른 표현.

고요한 침묵을 유지하는 제로는 천천히,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난폭한 존재감을 거두어들였다.

솔직히 말해서 블러드의 말이 맞았다.

그때의 만남 이후, 블러드가 자진해서 자신의 부하가 된 이래.

제로는 블러드의 존재를 잊어먹었다.

그저 단순히 ‘스스로 부하가 되겠다니 사고는 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내버려 둔 것이다.

“미안하다. 그건 내 실수였다.”

“괜찮습니다.”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제로에, 블러드가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블러드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비록 스스로가 고개를 숙이며 밑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제로에게 소소한 복수를 하기 위해 현 상황이 되도록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헌데, 설마하니 제로가 먼저 고개를 숙일 줄은 몰랐던 블러드였다.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있냐?”

블러드가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제로가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물음에, 블러드의 표정이 처음으로 미미하게나마 굳어졌다.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저…, 무왕과 룬. 그 둘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것 정도밖에는.”

“어째서지?”

“그들이 절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미 블러드가 제로의 밑에 들어갔다는 것은 십강의 모든 마스터들에게 전달된 사항이다.

그렇기에, 무언가 수작질을 버린다면 블러드를 경계하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제로가 으음…, 하며 낮은 신음을 흘릴 때.

블러드가 뒤이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가지 특이점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이점?”

“예. 무왕과 룬. 그 둘은 공통적으로 ‘한 존재’를 만난 뒤, 일을 벌이기 시작했더군요.”

“한 존재…?”

블러드의 말에 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무왕과 룬이 만난 사람을 굳이 ‘존재’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둘이 만난 게 단순히 사람이 아닌 것일까.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둘이 만난 존재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였죠.”

블러드가 잠시 말을 멈추며 숨을 고르자, 제로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은 얼른 뒷말을 이어 말하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외형은 영국의 신사를 연상시킵니다. 그는 백발에 백염을 지녔으며, 새하얀 모자와 슈트를 걸치고, 한쪽 눈에는 새하얀 모노클을 착용했습니다. 또한 한 손에는 새하얀 지팡이를 쥐고 있더군요.”

“백의… 대장군….”

블러드의 묘사에 제로가 억눌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백의 대장군.

이름은 라이트.

회귀 전,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대장군은 총 둘이 존재한다.

하나는 제로 또한 만난 적이 있는 백의 대장군, 라이트.

또 하나는 그런 라이트와 반대되는, 흑의 대장군 다크니스다.

아니, 라이트와 다크니스라는 이름마저, 두 대장군이 다루는 힘이 빛과 어둠이었기에 플레이어들이 임의로 붙인 것이다.

물론 그 둘 외에 대장군 급의 허상괴가 더 있을 수 있겠으나, 애석하게도 제로가 알고 있는 대장군은 그 둘이 전부였다.

“그를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블러드의 물음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면 현시점에서, 아직 강림하진 왕을 제외한다면 그 둘이 인류의 최대 위험일 것이다.

“일단 무왕과 룬을 호출해.”

떨어진 제로의 명령에 블러드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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