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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62화 (162/200)

제1620화

“그건…?”

“나는 한 스테이지 더 위로 향한다.”

푸욱-!

말을 마친 세이메이가 망설임 없이 손에 쥔 보석을 심장에 틀어박았다.

살이 찢기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보석이 박힌 심장으로부터 두근-! 두근-!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크윽-!”

세이메이의 입에서 고통에 찬 억눌린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동시에 심장에 틀어박힌 보석으로부터 터져 나온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제로는 세이메이를 집어삼킨 어둠으로부터 느껴지는 불길한 무언가에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제로의 등 뒤에 만들어진 거대한 흑골의 창이, 세이메이를 향해 쏘아졌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세이메이를 집어삼킨 어둠을 향해 쏘아졌다.

허나….

“흐음.”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나름 농밀한 죽음을 머금은 공격이었으나, 세이메이를 집어삼킨 어둠은, 제로가 쏘아낸 거대한 흑골의 창. 데스 본 스피어마저 집어삼켜버렸다.

혹시 몰라 몇몇 스킬들을 더 사용해 봤으나, 어둠은 그러한 제로의 모든 공격들을 집어삼키며 고요한 침묵을 만들어냈다.

그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한가지 가능성은….

“지금의 상태에선 평범한 공격은 통하지 않겠네.”

제로가 그러한 말을 중얼거릴 때, 돌연 어둠이 무너져 내리며 세이메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저것을….

“너 세이메이 맞냐?”

과연 세이메이라 할 수 있을까?

무너지는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세이메이의 외형은 상당히 변해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흑발은 백과 흑이 적절히 뒤섞인 색으로 변했으며.

동양인 특유의 흑안은 머리칼과 비슷하게 백과 흑으로 나뉘어 오드아이가 되었다.

머리에는 산양의 그것과 같은 두 개의 뿔이 돋아나고, 등에는 뼈로 이루어진 한 쌍의 날개가 펄럭였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변해버렸고, 분위기 또한 평소의 세이메이 특유의 부드러움 대신 서늘한,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 명검을 보는 듯 날카로워졌다.

다만,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영혼이…?’

그 영혼이었다.

제로는 사신의 흉안을 통해, 영혼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렇게 사신의 흉안으로 바라본 세이메이의 영혼은….

“상당히 잡스럽게 뒤섞였네.”

뒤섞였다.

그것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세이메이의 영혼을 토대로, 허상괴와 몬스터. 인간등의 영혼들이 잡스럽게 뒤섞여 혐오감을 유발시켰다.

만일 지금의 세이메이의 영혼을 다른 누군가가 볼 수 있다면, 그 혐오감에 헛구역질을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한편 무너진 어둠에서 걸어 나온 세이메이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흠, 하며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너, 세이메이가 맞긴 한 거냐?”

의문이 가득 섞인 제로의 물음에, 세이메이의 백과 흑으로 이루어진 오드아이가 제로를 응시했다.

“그럼 내가 누구로 보이….”

“넌 세이메이가 아니야.”

씨익 웃으며 말하는 세이메이에, 제로는 사신의 흉안에서 흉흉한 안광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비록 잡스럽게 뒤섞이긴 했지만, 영혼의 주체는 분명 세이메이가 맞았다.

그 육체도 상당히 변해 버렸지만, 세이메이의 것을 토대로 변했고, 그 흔적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허나 제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것은 과거의 플레이어.

십강중 하나인 은림의 길드 마스터이자, 주술왕이라 불리던 세이메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 제로의 확신을 눈치 챈 것일까?

세이메이가 돌연 키득! 하는 비틀린 웃음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나‘의 대적자 다운 통찰력이구나.”

나…?

대적자…?

제로는 세이메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에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나 ‘대적자‘라는 단어는….

‘군단장급 이상의 허상괴들이 날 지칭할때 사용했던 단여야. 그리고 그들은 날….’

왕의 대적자라 불렀다.

그렇다는 말은….

“너, 허상괴들의 왕이냐?”

“크흐흐.”

제로의 물음에 세이메이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간이었지. 뒤틀린 방식으로, 거짓된 힘을 쌓아 올렸다 한들. 감히 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했으니. 뭐, 방식은 쓸만했다. 다만,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지. 만일 네놈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너’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겠지.”

말을 내뱉은 제로는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야 세이메이가 내뱉은, ‘다소의 도박은 필요하다’라는 말의 뜻이 이해가 갔다.

그는 처음부터 보석. 스스로의 심장에 박아넣은 그것을 받아들일 때,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될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소의 시간을 들여,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겠지.

그것이 제로의 등장으로 틀어져 버린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대적자. 그대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조각’이나마 이 차원에 내가 현현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쿠구구구-!

말을 내뱉는 세이메이. 아니, 왕의 조각으로부터 난폭한 존재감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짓누르는 무형의 압력을 만들어 냈으며, 왕의 조각을 중심으로 대지가 쩌적! 하며 갈라졌다.

제로는 전신의 뼈가 찌릿찌릿 울리는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나 조각이라 하더라도 왕이라 이걸까.

눈앞에 있는 저것은, 지금까지 만나온 그 어떤 적보다 강력했다.

어쩌면….

‘나도 도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수의 군단장 레비아탄.

놈을 상대했을 때의 도박을, 다시 한번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로의 미간은 저절로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아직 힘을 제한하는 육체는 불완전했다.

이 상태에서, 다시 한번 그러한 짓을 벌인다면….

‘자칫 잘못하면 나는 그대로 외차원으로 추방당하겠지.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저것을 지구에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비록 조각에 불과하다지만, 그 힘은 군단장급을 가볍게 상회하며. 조각이 활개친다면 본체가 지구로 넘어올 가능성이 대폭 증가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정리는 끝냈나?”

움찔-!

언제 움직인 것일까?

코앞에서 나타나며 입을 여는 왕의 조각에, 움찔! 몸을 떤 제로가 뒤로 물러났다.

왕의 조각은 그런 제로를 바라보며, 여전히 비틀린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다.

“덕분에. 우선 네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부터 해볼까?”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제로의 등 뒤로 만들어진 거대한 흑골의 창이 왕의 조각을 향해 쏘아졌다.

허나…, 데스 본 스피어는 왕의 몸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산산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그 뼛조각을 흩뿌렸다.

‘쉽게 가긴 글렀나. 그렇다면….’

스킬 발동, 역병의 숨결.

푸확-!

제로의 입이 쩍! 벌어지며 보라빛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보라빛 숨결에는 현실에서 존재하던 역병과, 로스트 월드의 세계에서 존재하던 역병 수십 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흠. 지금의 나에게 이건 위험하겠어.”

펄럭-!

푸확-!

주변의 모든 것을 죽이며 다가오는 보라빛 숨결, 역병의 집합체에 왕의 조각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개를 펄럭였다.

뼈로 이루어진 그것이 펄럭일 때마다 사방으로 광풍이 휘몰아치며 제로가 뿜어낸 역병의 숨결을 밀어냈다.

그와 동시에….

“이번엔 내 차례로군. 이렇게… 였던가?”

파라랏-!

왕의 조각이 품에서 꺼낸 다량의 부적을 흩뿌렸다.

허공에 흩뿌려진 부적들이 순식간에 불타올라 사라지고….

콰가강-!

하늘에서 수백 개의 청색 낙뢰가 제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으윽-!”

수백 발의 낙뢰에 얻어맞은 제로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정신은 왕의 그것일지언정, 육체 자체는 세이메이라 이걸까.

제로는 설마하니 왕의 조각이 플레이어의 스킬. 그것도 세이메이가 습득한 직업, 주술사의 스킬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꽤 쓸만한 힘이군. 그렇지 않나?”

“지랄.”

씨익 웃으며 말하는 왕의 조각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본신의 힘은 사용할 수 없다. 놈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오롯이 세이메이의 그것 뿐이야.’

허나 그렇다고 해도,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본래의 세이메이 또한 상당한 힘을 지녔는데, 그러한 육체가 변이되고. 왕의 조각이 깃들며 더욱 증폭되었다.

어쩌면 눈앞의 왕의 조각은….

‘대장군 급. 혹은 그 이상일수도 있…!’

스킬 발동, 더미 블링크.

퍼엉-!

속으로 중얼거리던 제로가 다급히 마법을 발동했다.

제로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만들어진 더미가 산산이 터져 나갔다.

터져 나간 더미의 파편 사이로는 언제 움직인 것인지, 왕의 조각이 정권을 내지르는 자세로 서 있었다.

“흠. 과연 나의 대적자. 반응은 꽤 쓸만하구나.”

“칫.”

스킬 발동, 역병의 숨결.

쩌억-!

푸확!

제로의 입이 재차 벌어지며, 다시 한번 역병의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그에 왕의 조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또 이것이더냐. 이따위 공격, 나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

“그렇겠지.”

딱-!

콰가강!

왕의 조각이 날개를 펄럭이며 역병의 숨결을 밀어내기 전, 제로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에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역병의 숨결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폭발의 충격은, 세이메이가 왕의 조각으로 변한 직후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은 은림과 신선조의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특히나 그들을 덮친 것은 단순한 충격이 아닌, 역병이 뒤섞인 충격이다.

그 증거로, 충격에 휩쓸린 플레이어들은 온갖 역병에 중독되며,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 나갔다.

“자비가 없구나.”

“어차피 여기에 있는 놈들은 한 놈도 살려 둘 생각이 없었어. 저들은 스스로 ‘선‘을 넘어버렸거든.”

“그러하느냐.”

제로의 말에 왕의 조각이 클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다시 놀아 보자꾸나.”

츠즛-!

왕의 조각이 사라진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제로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제로의 신형이 바닥을 나뒹구는 그때, 제로가 서 있던 자리에 왕의 조각의 주먹이 내리 꽂혔다.

콰아앙-!

단순한 주먹질뿐이었음에도, 그것이 내리꽂힌 대지가 산산이 터져 나갔다.

만일 저 주먹이 자신의 몸에 꽂혔다면?

기껏 수복해 놓은 육체가 박살이 나 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놈을 처리할 순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외차원으로 추방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

물론 외차원으로 추방된다 한들, 시간을 들인다면 다시 지구로 넘어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오게 된 지구가 과연 멀쩡할까?

자칫 잘못하면, 애써 힘들게 넘어온 지구가 이미 멸망해 있을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그렇게 제로의 머릿속이 점차 복잡해져 갈 때….

“나를 눈앞에 두고, 잡생각이 많구나.”

퍼억-!

“큭-!”

언제 나타난 것일까?

눈앞에 나타난 왕의 조각이 내뻗은 정권에 얻어맞은 제로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런 제로는 수백 미터를 날아가고 나서야 겨우, 플라잉 마법을 통해 몸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후, 그래. 이래저래 고민하는 것도 나와는 안 어울리고. 어디 한번 제대로 놀아 보자고.”

우득! 우드득.

몸을 풀며 말하는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리자, 사방으로 난폭한 존재감이 터져 나왔다.

그 존재감에 제로를 중심으로 주변의 대기가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고. 제로가 딛고 있던 대지가 쩌적! 하며 갈라졌다.

“크흐, 좋구나.”

왕의 조각 또한, 이제야 진심이 되어버린 제로에 기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품에서 대량의 부적을 꺼내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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