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61화 (161/200)

제161화

“세이메이.”

바닥에 내려선 제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제로.”

세이메이 또한 제로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일본의 관광은 좀 어떠했나? 일본도 꽤나 즐길 만하지 않던가?”

“지랄하고 있네.”

부드럽게 말하는 세이메이에 피식 웃은 제로가 입을 열었다.

“널 허상괴와의 내통 및 플레이어를 이용한 인채 실험. 일반 시민의 납치 등등의 혐의로 처형한다.”

쿠구구-!

오른손에 쥐어진 네크로노미콘을 들어 올리는 제로의 몸에서 난폭한 존재감이 터져 나왔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그 존재감에 짓눌린 그림자 괴인이 큭! 하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허나 세이메이는 그러한 존재감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군.”

“발뺌하지 마. 이미 증거는 차고 넘치도록 있으니깐.”

세이메이의 반응에 제로가 다시 한번, 피식 웃음을 내뱉으며 스타툰을 바라봤다.

그런 제로의 시선에 스타툰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를 열었는데, 그런 인벤토리에서는….

우루루-!

블루 문과 폭혈단에 대한 정보를 시작으로, 몬스터들의 시체를 조사한 정보.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인채 실험을 자행한 정보 등등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것들은 제로가 괴인을 상대하고 있을 때, 스타툰이 원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자료들이었다.

“이래도 발뺌할 거냐?”

“으음.”

스타툰이 쏟아낸 자료들을 가리키며 말하는 제로에, 세이메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니. 어쩔 수 없군.”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일 거냐.”

“설마, 그럴 리가. 이제 곧 있으면 거사가 코앞인데 그럴 순 없지.”

거사…?

무언가 또 꾸미고 있는 건가?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세이메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정자를 중심으로 주변 정원이 쭈욱 늘어나더니, 곳곳에서 은림과 신선조의 플레이어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숫자는 적게 잡아도 수십만 명.

마치 은림과 신선조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이 정원에 모여있는 듯한 착각…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공간을 늘린 건가?”

“어떤가. 주술사도 꽤나 쓸만한 직업이지 않은가?”

제로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한 세이메이가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확장된 공간 곳곳에 자리 잡은 은림과 신선조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 제각기 무기를 뽑아 쥐며 제로를 노려봤다.

그런 플레이어들에게선….

‘하나같이 폭혈단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신선조의 부조장과 조장급 이상. 그리고 은림의 간부급 플레이어들에게선 개량된 폭혈단의 기운이.

그 외의 플레이어들에겐 평범한 폭혈단의 기운이 진하게 풍겨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학살자 외에도 일인군단이라 불린다지? 어디…, 자네가 지닌 군단과 내가 만들어 낸 군단. 그 둘 중 무엇이 강한지 가려 보세나.”

스윽.

자신만만한 웃음을 내비친 세이메이가 손을 내리그었다.

그에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수십만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제로와 스타툰을 향해 공격을 토해냈다.

제로는 외차원의 창고를 열며 스타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스타툰.”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불렀을 뿐임에도, 그 속뜻을 눈치챈 스타툰이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꾸물거리며 무너지는 순간, 달려드는 플레이어들의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내며 두 자루의 단검을 휘둘렀다.

스타툰의 양손에 쥐어진 단검들이 한번,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수명의 플레이어들의 목이 달아난다.

허나 한 명이 죽으면 열 명이. 열 명이 죽으면 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빈 공간을 메꾸는 모습은 참으로 징글징글했다.

“모습을 드러내라.”

제로가 외차원의 창고를 향해 명령을 내리자, 깊은 심연 속에서 망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외차원의 창고에서 쏟아져 나오는 망자들의 등급과 종류는 다종다양했으며.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데스 나이트 킹. 스켈레톤 엠페러. 퀸 레이스. 본 드래곤. 망자의 번견 등등의 최상위 망자들이었다.

“모조리 쓸어버려.”

키가가가각-!

달그락! 달그락!

끼하하하!

꺄아아악!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외차원의 창고에서 기어나온 수백만의 망자들이 일제히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수백만의 망자들이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잿빛의 해일이 들이닥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콰가강-!

콰강!

스각!

퍼버벅!

그렇게 망자와 플레이어.

그 둘이 충돌하자, 사방에서 폭음과 폭발이 일어나고. 무기와 무기가 맞부딪히는 등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로는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전투음을 음미하며 세이메이를 바라봤다.

“자, 이제 어떡할꺼냐?”

“흐음.”

세이메이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제로의 언데드 군대가, 설마하니 이 정도의 숫자였을 줄은 몰랐다는 듯 미약하게나마 인상을 찌푸렸다.

세이메이 또한 은림의 길드 마스터로, 수많은 네크로맨서들을 만나왔다.

허나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숫자는 기껏 해야 수백. 많아봐야 기천마리에 지나지 않았는데….

“역시나 제로.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군. 이 정도면 혼자서도 나라 몇 개쯤은 손쉽게 멸망시킬 수 있겠어.”

“유언은 그것 뿐이냐?”

쿠구구-!

한발 내딛은 제로에게서 다시 한번 난폭한 존재감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무형의 압력에 세이메이가 있던 정자는 무너져내리고, 제로가 딛고 있던 대지에 쩍! 쩍! 금이 그어졌다.

세이메이 또한 자신을 짓누르는 무형의 압력에,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로와 세이메이. 절대자에 가까운 두 존재의 힘의 충돌에 하늘이 갈라지고 대지가 날뛰었다.

“죽어.”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먼저 움직인 것은 제로였다.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이는 순간, 등 뒤에 만들어진 거대한 흑골의 창이 쏘아졌다.

하지만….

스킬 발동, 상급 주술-극빙의 창.

쩌어엉-!

제로가 쏘아낸 흑골의 창에, 세이메이는 거대한 얼음의 창을 쏘아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두 거대한 창이 허공에서 충돌하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거친 충격이 휘몰아쳤다.

“고작 이 정도인가?”

파라랏-!

피식 웃은 세이메이가 허공에 다량의 부적을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스킬 발동, 식신-귀.

화륵-!

스킬이 발동되며 허공에 흩뿌려진 부적이 일제히 타오르고.

세이메이의 앞으로 다량의 식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메이가 소환한 식신은 하나같이 일본의 신화 속에 존재하는 요괴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아직일세.”

스킬 발동, 백귀야행.

우우우우-!

식신을 소환한 세이메이가 다시 한번 스킬을 발동하자, 사방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지며 수백 마리의 식신들이 강화되었다.

백귀야행으로 강화된 수백의 식신은, 상성만 잘 맞다면 군단장급의 허상괴마저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확실히 은림의 길드 마스터이자, 주술왕이라 불리는 세이메이다운 강함이었다.

하지만….

“떠보기는 이쯤 하지?”

스킬 발동, 아귀왕의 아가리.

으적-!

제로를 향해 달려드는 수백 마리의 식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의 발 밑에 나타난 거대한 입, 아귀왕의 아가리가 수백의 시신을 모조리 집어삼킨 것이다.

아귀왕의 아가리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으적! 으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속에 공포를 느낄 리 없는 식신들의 공포 어린 비명이 뒤섞였다.

“으음….”

설마하니 스킬 한 방에 수백의 식신이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세이메이가 으적거리며 사라지는 아귀왕의 아가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쉽게 가기는 글렀군요.”

스킬 발동, 상급 주술-백천뢰.

콰가강-!

허공에 흩뿌려진 부적이 타오르는 순간, 백 개의 낙뢰가 떨어지며 제로를 강타했다.

1초도 되지 않아 떨어진 백 개의 낙뢰에 정원이 불타오르고, 제로의 육체에 파지직! 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하지만….

“떠보기는 그만하자고.”

스킬 발동, 데스 본 개틀링.

투두두두두-!

백 개의 낙뢰가 하나도 빠짐없이 직격했으나, 제로는 아무런 데미지도 없다는 듯 움직였다.

제로의 등 뒤로 수백, 수천 개의 흑골로 이루어진 화살과 창 따위가 만들어지며 세이메이를 향해 쏘아졌다.

한편, 세이메이는 그런 제로의 공격에 ‘으음….’ 하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다시 한번 부적을 흩뿌리며 방어했다.

스킬 발동, 상급 주술-금강부동진.

쩌저저정-!

세이메이의 앞으로 오색찬란한 방패가 만들어지며, 그 위로 데스 본 개틀링이 쏟아졌다.

데스 본 개틀링이 만들어 낸 흑골의 화살이나 창 따위의, 하나 하나의 위력은 다소 약하다.

허나 그것이 수백 개가 쌓이고. 수천 개가 쌓이는 순간….

쩌어엉-!

세이메이가 만들어 낸, 금강부동진이라는 이름의 방패가 산산이 부서졌으며.

그 틈을 파고든 흑골의 화살 따위과 세이메이의 전신을 스치며 지나갔다.

“끄응.”

세이메이는 스친 상처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 죽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상처를 통해 흘러 들어온 죽음이 실시간으로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은 버틸 만했지만, 이러한 죽음이 누적되고 누적된다면 제아무리 세이메이라 하더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자네를 처리해야 겠…!”

퍼억-!

입을 열던 세이메이의 신형이 수백 미터를 튕겨 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튕겨 나간 세이메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망자의 폭거라는 이름의 거대한 대검으로 변한 네크로노미콘을 쥔 제로가 자리 잡았다.

“주술왕이라 불리는 것 치고는 너무 약한 거 아니야?”

“제로….”

비꼬듯 말하는 제로에, 세이메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세이메이의 표정은 미묘하게 뒤틀려 있었는데, 그것은 네크로맨서로 알려진 제로가 대검을 사용한다는 당혹감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제로에게 한 방 먹었다는 분노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것일까.

“더 이상은 봐주지 않…!”

“언제 봐주긴 했냐?”

흠칫-!

품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한 피냄새가 풍기는 부적을 꺼내던 세이메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언제 움직인 것일까?

순식간에 세이메이의 앞에 도착한 제로가 다시 한번 망자의 폭거를 휘둘렀다.

그에 세이메이는 아까 전 펼쳤던 금강부동진을 다시 한번 사용했는데….

“소용없어.”

스킬 발동, 데스 임팩트.

쩌어엉-!

망자의 폭거가 거대한 충격을 만들어내며 금강부동진이 산산이 터져 나가고, 금강부동진을 박살 냈음에도 사그라들지 않은 충격이 그대로 세이메이의 전신을 다시 한번 강타했다.

거대한 충격에 내부가 뒤흔들린 것일까.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세이메이의 입가에 한 줄기 피가 흘러 내렸다.

“하, 하하. 아하하.”

천천히 몸을 일으킨 세이메이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뜬금없이 웃음을 터트리는 세이메이에 제로가 입을 열었다.

“미쳐버린 거냐?”

“설마.”

제로의 물음에 세이메이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강하군. 너무나도 강해. ‘지금’의 나로는 자네를 감당할 수 없겠군.”

지금의… 나…?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일까?

혹 세이메이 또한 이종족 플레이어로, 지금은 인간으로 의태해 힘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일까?

제로가 그런 생각을 품으며 세이메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세이메이는 돌연 확장된 공간 끝에 자리 잡은 집으로 움직였다.

“아직 불완전하긴 하지만….”

드르륵-!

뭐라 중얼거린 세이메이가 문을 여는 순간, 제로의 눈에 인간과 몬스터의 피가 뒤섞인 마법진 위에 두둥실 떠다니는 오색찬란한 보석이 내비쳐졌다.

“허나 자네를 처리하기 위해선 다소의 도박은 필요해 보이는군.”

세이메이가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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