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하는 네크로맨서-160화 (160/200)

제160화

“괜찮냐?”

폐쇄된 원전의 천장을 뚫고 튀어나온 스타툰을 향해 제로가 입을 열었다.

스타툰은 그림자 괴인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형님, 저놈 뭔가 이상한데요?”

“그래 보인다.”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스타툰에, 제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이상한 점은 괴인의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뭐가 그리 문제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스타툰의 레벨은 700을 넘어섰다.

아무리 레벨이 높다고 해도,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런 스타툰을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을 순 없었다.

다만, 그런 괴인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스타툰의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자잘하게 눈에 띄었다.

그 외에도….

“저놈, 플레이어가 맞기는 한… 아니지. 애초에 인간이 맞기는 한 거야?”

전신이 꾸물거리며, 흉흉한 붉은 안광을 토해내는 괴인을 내려다보며 제로가 입을 열었다.

스타툰을 상대로 힘을 드러냈기 때문일까?

처음 봤을 때와 달리, 괴인에게선 인간 특유의 기척이 허상괴 특유의 기척과 뒤섞여 풍겼다.

마치….

‘폭혈단을 복용한 플레이어. 아니, 그 이상으로 혼종이네.’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구멍 밑으로 뛰어내렸다.

플라잉 마법을 통해 천천히 내려선 제로의 등 뒤로, 스타툰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타툰은 네크로노미콘을 꺼내 쥐는 제로에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제가 처리할 수 있….”

“그러면 늦어.”

스타툰의 기분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화려하게 일을 벌여 버렸다.

이대로 있으면 폐쇄된 원전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개떼처럼 몰려올 것이다.

그 속에는 일본의 군인이나 경찰 또한 포함되어 있을 터.

그것은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길 원하는 제로의 의도에 어긋난다.

그렇다면….

“놈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움직여야지.”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최대한 빨리, 모든 것의 시작이자 원흉인 세이메이를 만나야 하는 제로였기에,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그러니 그냥 죽어.”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제로의 등 뒤로 만들어진 거대한 흑골의 창이 괴인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저게 뭐냐?”

괴인의 가슴을 강타해야 할 흑골의 창, 데스 본 스피어가 허망하게 통과하며 바닥에 틀어박혔다.

괴인이 회피를 취한 것이 아니다.

데스 본 스피어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통과하듯, 괴인을 통과했을 뿐이다.

“저게 문제라니까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는 제로에, 스타툰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모든 공격을 투과시키는 저 성질 때문에 이렇다 할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 스타툰이다.

차라리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면 그나마 납득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한편 제로는 또 다시 흑골의 창, 데스 본 스피어를 날려봤다.

허나 이번 공격도 괴인의 몸을 그냥 통과해 바닥에 꽂혔다.

그 모습에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종족이 쉐도우라 하더라도 마법을 통과시킬 순 없는데…. 세이메이 이놈은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모든 것을 통과시켜 버리는 저 육체는 분명 세이메이의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허상괴를 통해 ‘연구’를 진행한 것이 아닌, 허상괴와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지.”

그러한 말을 중얼거린 제로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제로의 몸뚱어리에서 난폭한 존재감이 터져 나왔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난폭한 존재감은 무형의 압력을 만들었으며, 그 압력에 짓눌린 스타툰이 큭! 하며 신음을 흘렸다.

“스타툰 넌….”

“알겠습니다.”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자, 그…!”

스칵-!

스타툰도 물러났겠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려던 제로가 고개를 젖혔다.

그와 동시에, 언제 움직였는지 제로의 코앞에 나타난 괴인이 몸뚱어리와 마찬가지로 일렁이는 그림자와도 같은 단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제로의 뼈를 스치고 지나갔으며, 단검에 의해 새겨진 상처를 통해 미약한 죽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속도는 스타툰과 동급. 아니, 조금 더 빠르려나?”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가강-!

제로를 중심으로 죽음의 탁류가 터져 나왔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짓이기며 뻗어나가는 죽음의 탁류에, 괴인이 처음으로 회피를 취했다.

폐쇄된 원전 이곳저곳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괴인은 그 그림자를 통해 이동하며, 제로가 만들어 낸 죽음의 탁류를 피했다.

“흐음. 같은 물리력을 동반한 마법이라 해도,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는 건가? 그럼….”

스킬 발동, 파이어 볼.

후웅-!

콰앙!

제로의 손 위로 피어오른 불구덩이가 괴인을 향해 쏘아졌다.

쏘아진 불구덩이, 파이어 볼의 위력은 하급 마법에 걸맞게 형편없이 약하다.

하지만….

“흐음.”

제로는 괴인이 파이어 볼을 데스 본 스피어처럼 통과시킨 것이 아닌, 데스 웨이브처럼 회피라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에 묘한 웃음을 흘렸다.

“같은 물리력을 동반하고 있더라도, 물질계 공격은 모조리 통과시켜 버린다 이건가.”

그렇다면 스타툰이 애먹을 만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안 통해.”

제로라면 괴인을 죽일 방법이 차고 넘친다.

“우선 가볍게.”

스킬 발동, 데스 저지먼트.

콰가강-!

돌연, 하늘에서 한줄기 잿빛의 낙뢰가 떨어지며 바닥을 부숴버렸다.

다만, 빛 계열 마법을 제외하면 가장 빠르다 할 수 있는 뢰 계열 마법인 것일까.

괴인은 데스 저지먼트에 직격당하는 것을 피했으나, 온전히 회피하지는 못했는지 전신에 미약한 스파크가 튀겼다.

“내가 시간이 없거든. 그러니 후딱후딱 끝내자.”

스킬 발동, 데스 허리케인.

후우우웅-!

콰가가가가각!

제로의 등 뒤로 미풍이 살랑이는 순간, 미풍은 곧 괴인을 중심으로 광풍으로 변하고. 광풍은 곧 날카로운 칼날로 이루어진 회오리로 승화했다.

허리케인을 이루는 바람의 칼날 하나, 하나에는 제로의 농밀한 죽음이 깃들어 있다.

단순히 스치기만 하더라도, 상처를 통해 흘러 들어간 죽음이 생명을 갉아먹을 것이다.

한편, 괴인은 자신을 중심으로 점차 옥죄어 오는 데스 허리케인에 처음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어딜.”

스킬 발동, 데스 애로우.

순수한 죽음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돌연 원전 구석으로 쏘아졌다.

언뜻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공격한 것으로 보이나….

푸욱-!

제로가 쏘아낸 데스 애로우는 그림자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괴인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제로는 괴인이 데스 허리케인을 피하기 위해, 그림자와 그림자를 뛰어넘어 이동하는 것을 예측해 공격한 것이다.

“크윽-!”

데스 애로우에 어깨를 관통당한 괴인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놈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지금의 제로에겐 그것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후딱후딱 끝내자.”

스킬 발동, 명계의 사슬.

스킬 발동, 데스 체인.

스킬 발동, 사신의 시선.

사방에서 명계의 냉기와 죽음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튀어나오며 괴인을 향해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제로의 등 뒤에 나타난 사신의 흉안이 흉흉한 안광을 토해내는 순간, 폐쇄된 원전 내부가 꽁꽁 얼어붙었다.

촤르륵-!

“커헉-!”

사신의 흉안에 양다리가 얼어붙고, 명계의 사슬과 데스 체인에 전신이 포박된 괴인이 억눌린 신음을 터트렸다.

빠져나가고 싶어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림자 같은 괴인의 유동적인 육체는 사신의 시선이 토해낸 냉기와, 명계의 사슬이 품은 냉기에 얼어붙고 있었다.

또한 같이 포박하고 있는 데스 체인의 죽음이 점차 육체를 잠식하며 생명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억지로 몸을 빼낸다면, 육체가 박살이 나버리는 것을 피할….

“… 수 없는데 말이지. 너도 참 독하다.”

제로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사신의 흉안에는, 그 크기가 상당히 작아진 괴인이 내비쳐졌다.

처음의 데스 애로우에 의한 상처를 통해 퍼져나가는 죽음.

그 뒤를 이어 명계의 냉기로 얼어붙는 육체와, 데스 체인에 의해 파고드는 죽음까지.

괴인은 죽음이 갉아먹는 육체와, 냉기가 얼리는 육체를 말 그대로 ‘버린다’라는 것으로 구속을 빠져나왔다.

허나, 그것은 괴인에게도 상당한 타격이었는지 풍기는 기운은 다소 약화되어 있었다.

“징글징글하다. 이만 끝내자.”

스킬 발동, 데스 이레….

흑골의 손가락으로 괴인을 가리키며, 마무리를 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하던 제로가 손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제로의 미간이 다소 찌푸려졌다.

“도망치는 거 하나는 재빠르네.”

공허한 눈구멍에서 데굴거리는 사신의 흉안은 확실히 괴인을 포착하고 있었다.

헌데….

“도대체 무슨 수로?”

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신의 흉안에 포착된 이상, 놈은 도망칠 수 없다.

그림자를 통해 이동한다 한들, 놈이 어디로 가는지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헌데 이번은 달랐다.

마치 주변의 빛이 괴인을 집어삼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기 무섭게, 괴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급히 사신의 흉안으로 주변을 살펴봤으나, 사라진 괴인의 흔적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놈은 완전히 자신의 추격을 뿌리치고 사라졌다.

하지만….

콰직-!

제로의 이성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제로의 자존심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제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난폭한 존재감이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제로가 딛고 있던 바닥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한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스타툰이 제로의 등 뒤로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찾아낼까요?”

제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일까?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스타툰의 목소리 또한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한편, 제로는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는, 날뛰는 존재감을 거두어들이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어디로 갔는지는 대충 예상이 되거든.”

그러한 말과 함께 제로는 플라잉 마법을 통해 원전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뒤를 이어 스타툰 또한 원전을 빠져나오자….

스킬 발동, 어스 퀘이크.

쿠르르-!

돌연 거대한 지진이 발생하며, 원전을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제로의 기감에는 수 킬로미터 밖에서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다수의 인간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이대로 원전을 내버려 둔다면, 블루 문과 폭혈단 따위의 정보가 세간에 공개된다.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찾아올 수 있기에 제로는 폐쇄된 원전 자체를 통째로 지워버린 것이다.

“가자.”

“예.”

대지진을 통해 원전을 통째로 지워버린 제로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목적지는….

* * *

“허억-! 허억-!”

잘 꾸며진 자그마한 정원.

그곳의 중심에서 튀어나온 괴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편, 정원 옆에 마련된 정자에 앉아 있던 세이메이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괴인에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지?”

“죄송… 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세이메이의 물음에 괴인이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를…, 죽여 주십시오.”

임무를 실패했다.

괴인은 그 실패에 대한 대가를 죽음으로 갚으려는 것이다.

그런 괴인의 말에 세이메이가 피식 웃었다.

“내 수족과도 같은 널 왜 죽이겠느냐. 그리고…, 손님이 찾아왔구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세이메이에, 괴인 또한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런 둘의 눈동자에 내비쳐진 것은, 상공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괴물.

스산한 죽음을 두른 흑골의 망자, 제로가 내비쳐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