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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하는 네크로맨서-159화 (159/200)

제159화

“과연 제로….”

“상당한 강함이군.”

“하지만 죽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서로가 시선을 교차하며 말하는 순간, 제로가 움직였다.

“나도 참 얕보이나 봐? 버러지들 따위가 날 죽이니 마니 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강-!

제로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죽음의 탁류가 터져 나왔다.

사방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박살내고, 부식시키며 나아가는 그것에 세 명의 조장들이 각기 뽑아 쥔 카타나를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맺혀 있는 세 자루의 카타나와, 제로가 만들어 낸 죽음의 탁류가 충돌하는 순간….

콰가강-!

거대한 폭발과 함께 세 명의 조장들이 다시 한번 뒤로 튕겨 나갔다.

언뜻 보면 세 명의 조장들이 밀리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아직 여유가 엿보였다.

“예상 이상의 강함.”

“허나 상정한 범위 안이다.”

“우리들이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

파밧-!

또 한 번 시선을 교차한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패도적이고, 경쾌하며 부드럽게.

각각의 특징을 살리며 움직이는 그들은 확실히 마스터 레벨을 넘긴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줬다.

순식간에 음속을 뛰어넘어, 초음속의 영역에 도달한 그들은 순식간에 제로 앞에 도착했으며, 망설임 없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스킬 발동, 비검-강.

스킬 발동, 비검-쾌.

스킬 발동, 비검-유.

확실히 같은 직업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육성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로스트 월드의 특징인 것일까?

그들이 사용하는 스킬은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되었으나, 그 결은 제각각이었다.

패도적인 기세를 휘감은 카타나가 제로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어쌔신 특유의 재빠름을 지닌 검격은 제로의 미간에 박혀 있는 보석을 노리며 찔러졌고.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부드러움을 겸비한 검격은 제로의 양팔과 다리로 향했다.

머리를 노리며 떨어지는 검격을 막기 위해 움직인다면, 쾌와 유의 묘리가 담긴 공격에 당한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노리자니, pk 혹은 pvp에 노련했던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나머지 공격에 치명상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야?”

스킬 발동, 퍼펙트 데스 실드.

쩌어어엉-!

제로를 중심으로 반투명한 죽음의 방패가 둘러쳐지며, 세 명의 조장들이 휘두르는 카타나를 막아냈다.

세 자루의 카타나와 제로가 펼친 퍼펙트 데스 실드가 충돌하는 순간, 사방으로 거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이게 너희들의 전부라면 좀 실망인데.”

스킬 발동, 데스 본 개틀링.

투두두두두-!

콰가가가가각-!

세 명의 조장들을 노리며, 수백 개의 흑골의 화살이 쏘아졌다.

제로의 등 뒤로 만들어지기 무섭게 세 명의 조장들을 향해 쏘아지는 흑골의 화살의 모습은 스킬명 그대로 개틀링을 연상시켰다.

세 명의 조장은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개의 흑골의 화살에 사방팔방을 누비며 회피를 취했다.

그로 인해 대다수의 화살들은 바닥에 틀어박힐 뿐이었지만, 몇몇 화살들은 그런 조장들의 회피를 뚫고 허벅지나 팔뚝 따위에 꽂혔다.

큭-!

크으으….

이건 위험…!

하나. 혹은 두 개.

제로가 쏘아낸 흑골의 화살의 갯수가 수백 개를 넘어, 수천 개에 도달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참으로 경미한 피해가 아닐 수 없다.

허나 제로의 공격 하나하나에는 농밀한 죽음이 깃들어 있다.

그것들을 단 하나라도 허용하는 순간, 흑골에 깃들어 있는 죽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생명을 갉아먹는다.

그 증거로, 세 명의 조장들 또한 흑골의 화살이 틀어박힌 상처를 중심으로 점차 죽음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5분. 아니,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면, 그들은 죽음에 집어삼켜져 목숨을 잃을 것이다.

“어때? 이래도 아직 할만하다고 느껴져?”

비꼬듯 말하는 제로에 세 명의 조장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한번 퍼지기 시작한 죽음은 최소 교황급의 사제가 아니라면 몰아낼 수 없다.

그나마 그들이 마스터 레벨을 넘어선 플레이어였기에 버틸 수 있을 뿐, 생명을 갉아먹는 죽음을 밀어내지 못한다면….

무조건 죽는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세 명의 조장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품에서 하나의 환약을 꺼내 쥐었다.

피처럼 붉은색으로 번들거리는 그것은 앞서 상대했던 신선조 13번대가 사용한 폭혈단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욱 진한 핏빛을 띠고, 잡스럽게 뒤섞인 몬스터와 플레이어의 기운을 본다면….

‘폭혈단에서 더욱 개량된 약인 건가?’

푸확-!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개량된 폭혈단을 복용한 세 명의 조장들에게서 막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살기와 존재감. 마나. 그리고 개량된 폭혈단 특유의 기운이 뒤섞인 그것이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하자, 제로에게 막대한 압력이 쏟아져 내렸다.

“으음.”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확실히 조장급 플레이어란 것일까.

아무리 개량된 폭혈단을 복용했다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무형의 압력은 제로에게조차 다소 뻐근함을 선사했다.

이 정도라면….

‘수의 군단장 레비아탄. 그놈과 엇비슷하겠네.’

세 명의 플레이어가, 한 마리의 군단장급 허상괴와 비슷한 힘을 발휘한다.

확실히 폭혈단이라는 환약이 가진 힘은 대단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고작 그 정도로 날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냐?”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크르르….

제로의 말에, 한 플레이어가 대답했다.

나머지 두 플레이어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부여잡고 있음에도, 비틀린 입에서 짐승의 울부짖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강함을 추구하는 거냐. 아니면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나 날 죽이고 싶은 거냐.”

“글쎄…, 어떨까?”

쾅-!

다시 한번 이어진 제로의 말에, 아까 입을 열었던 플레이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 명의 조장이 움직였다.

그들이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대지가 쾅! 쾅! 하며 터져 나갔다.

180도 달라진 움직임과, 그 이상으로 강해진 모습을 보자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아니, 최소한 기세가 위축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강해지긴 했는데 말이야. 역시 너희들도 힘에 휘둘리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네.”

저들은 확실히 강해졌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 상대했던, 신선조 13번대의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저들 또한 강해진 힘을 컨트롤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강해진다 한들 그 힘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한다면, 없으니만 못하다.

아까 전의 날카로움과 섬세함을 잃어버렸다면….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해.”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콰앙-!

커헉!

제로의 코앞에 나타난 플레이어 한 명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허나, 그는 휘두른 카타나가 제로의 몸에 닿기도 전에 쏘아진 거대한 흑골의 창에 가슴을 얻어맞으며 뒤로 튕겨 나갔다.

입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하는 모습과, 흑골의 창에 얻어맞은 가슴이 움푹 파인 것을 보아 즉사를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한편, 동료 한 명이 죽음에 이르는 데미지를 받았음에도 나머지 두 플레이어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들에겐 더 이상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개량된 폭혈단을 복용한 이상, 언젠가 괴물이 되든. 혹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멸하든…, 그들의 끝은 죽음으로 확정되었다.

그렇다면….

“네놈을 저승길 길동무로 만들어주마.”

“모든 것은 세이메이 님을 위하여.”

제로를 향해 입을 연 두 플레이어가 카타나를 휘둘렀다.

허나, 그 휘두름은 아까 전의 날카로움과 섬세함 따위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저 단순히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마구잡이 식으로 휘두를 뿐이다.

이런 공격을 그 누가….

“마스터 레벨을 넘긴 플레이어의 공격으로 보겠냐.”

스킬 발동, 명왕의 일격.

콰아앙-!

허공에 새겨진 마법진에서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먹이 떨어졌다.

명왕의 일격은 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플레이어 한 명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는데, 명왕의 일격은 레비아탄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입혔던 일격이다.

제아무리 개량된 폭혈단으로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일개 플레이어가 버틸 수 있는 성질의 위력이 아니었다.

“너 혼자 남았네?”

제로는 명왕의 일격에 짓뭉개진 동료를 바라보며 멈칫한 마지막 남은 조장급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비아냥에 마지막 남은 조장이 으득! 이를 갈았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여주마.”

우득-! 우드득.

말을 마친 조장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개량된 폭혈단에 의한 육체의 괴물화를 억누르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것을 해방시켜 버렸다.

그로 인해 그는 더욱 강한 힘을 취할 수 있게 되었지만….

크아아아아아-!

완전히 이성을 상실해 괴물이 되어 버리는 걸 피할 수 없었다.

허나, 그렇게 괴물이 되었음에도 붉게 번들거리는 그의 두 눈동자만큼은 여전히 제로에게 꽂혀 있었다.

“그렇게 날 죽이고 싶은 거냐. 그놈의 세이메이가 뭐라고 구슬렸길래 이런 광신도들이 만들어진 거야?”

세이메이를 위해서라면 죽음마저 불사른다.

로스트 월드였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서는 적어도 죽음이 끝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 번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거리낌 없이 죽음을 택하다니.

무언가….

“세뇌라도 한 건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허나 세이메이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수십만에 달하는 플레이어. 개중에서 마스터 레벨을 넘긴 플레이어들의 정신까지 세뇌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뭐, 일단은….”

츠즛-!

콰가각-!

제로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지는 순간, 네 줄기의 날카로운 참격이 내리꽂혔다.

상공 수백 미터 위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는 한때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새겨진 네 줄기의 상흔에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이제는 검도 쓰지 않는 거냐. 짐승이 따로 없네.”

괴물이 되어버린 플레이어의 외형은 짐승의 그것이었다.

언뜻 보면 웨어 울프와 상당히 흡사했으나, 전신을 뒤덮고 있는 것은 털이 아닌 푸르스름하게 번들거리는 비늘이었다.

그 모습이 ‘폭혈단은 허상괴를 통해 만들어졌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뭐, 그건 세이메이를 만나 보면 알겠지. 그러니 넌 그냥 죽어.”

스킬 발동, 데스 이레이저.

하울링을 터트리며 뛰어오른 괴물을 제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스킬을 발동했다.

그에 손가락 끝에서 죽음으로 이루어진 잿빛의 광선이 튀어나와 괴물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

파사삭-!

제로를 향해 양손을 휘두르는 모습 그대로 육체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죽음은 모든 것에 평등히 찾아온다.”

제로는 육체가 붕괴해 죽음을 맞이한 괴물. 한때 플레이어였던 그것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슬쩍 주변을 훑어보니 세 명의 조장이 이끌었던 신선조의 플레이어들 또한 정리가 끝나갔다.

덤으로 3파전을 만들었던 변이된 허상괴와 몬스터들의 정리마저 끝났으니….

“스타툰은 잘 하고 있으려…?”

그리자 비스무리한 괴인과 싸우는 스타툰을 돌아보던 제로가 미미하게나마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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