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군단장급 이상의 허상괴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들 또한, 크게 보자면 최상급 허상괴와 다를 바 없다.
허나, 군단장급 이상의 허상괴와 최상급 허상괴에게는 명백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이성의 유무이며, 그중 하나가….
“은총의 유무라.”
주술왕 세이메이.
십강 중 하나인 은림의 길드 마스터이자, 일본을 양지와 음지에서 쥐락펴락하는, 사실상 일본의 지배자.
그는 눈앞에 있는 하나의 보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보석은 오색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며, 인간과 몬스터의 피가 뒤섞인 것으로 만들어진 마법진의 정중앙에 자리 잡아,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세이에미가 바라보고 있는 보석은 허상괴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핵이자, 허상괴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왕의 힘이 일부분 담겨있는 씨앗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보석, 왕의 힘이 담겨 있는 씨앗이야말로 은총의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군단장급 이상의 허상괴들은 전부, 각 차원에 존재하던 지배자이자 절대자이며, 때론 마왕이라 불리었던 존재임과 동시에 용사라 불리었던 존재들이다.
그들이 왕의 눈에 띄어, 은총. 즉, 씨앗이 육체에 심어져 허상괴로 변해버린 것이 군단장급 이상의 허상괴들의 정체였다.
그러한 씨앗이 지금, 주술왕 세이메이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한편, 씨앗을 바라보고 있던 세이메이는 밖이 부산스러워지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방을 나섰다.
“무슨 일이지?”
“아키하바라 근처에서 제로와 신선조 13번대가 충돌했습니다.”
“제로…?”
그림자가 일렁이며 튀어나온 괴인의 대답에, 세이메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뜬금없이 제로의 등장이라니.
그것도 하필이면….
“거사가 코앞이다. 신중히. 그리고 조용히 처리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세이메이의 명령에 괴인이 다시 한번 꾸물거리며 그림자를 통해 사라졌다.
* * *
끄어어어어-!
제로의 손에 쥐어진 영혼, 한때 스타툰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신선조 13번대 조장, 츠바키의 영혼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츠바키의 영혼은 현재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영혼에 새겨진 정보를 마지막 한 톨까지 빨아먹고 있는 제로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정보를 빨아들였을까?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든 정보를 빨려버린 츠바키의 영혼은 곧 완전히 붕괴하고, 윤회의 고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소멸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찾았어.”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타툰의 질문에, 제로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조장급 플레이어라 이걸까?
츠바키의 영혼에는 꽤나 쓸만한 정보가 있었다.
비록 13번대의 주 임무가 ‘사냥’이다 보니, 블루 문에 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블루 문이 어디서 만들어지는지는 찾았으니.’
조장급은 조장급.
츠바키의 기억에는 블루 문이 만들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히 새겨져 있었다.
“그럼 움직이자.”
끄덕.
플라잉 마법을 통해 떠오르며 움직이는 제로의 뒤를 따라, 스타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제로와 스타툰이 향하는 장소는, 과거 원전 사고로 아직까지도 황폐화 되어 있는 후쿠시마였다.
그곳은 현재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닫지 않는 장소로, 허상괴와 몬스터들만이 득실거리는 죽음의 땅이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그딴 약을 만들 수 있는 거겠지.”
후쿠시마의 폐쇄된 원전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중얼거렸다.
그런 제로의 중얼거림에 스타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는 방사능과, 주변을 돌아다니는 허상괴와 몬스터들.
특히나 방사능에 물들어 변이를 일으킨 그것들 덕분에 따로 경비원을 쓸 필요도 없다.
아니, 애초에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이곳까지 찾아올 머저리는 없을 것이다.
또한 블루 문이니, 폭혈단이니 하는 플레이어들에게 통용되는 것들은 같은 플레이어가 만들 것이니, 방사능에 오염될 걱정 또한 확연히 줄어든다.
확실히 뒤가 구린 짓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모조리 쓸어버릴까요?”
“흐음.”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두 자루 단검을 뽑아 쥐며 말하는 스타툰에, 제로가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허나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폐쇄된 원전 내부에 돌아다니고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수천 명 정도.
그들 모두가 은림과 신선조에 소속되어 있으며, 원전 내부를 뒤지면 블루 문이나 폭혈단이 만들어지는 증거를 찾을 수 있으니….
“모조리 죽여버려.”
“알겠습니다.”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타툰의 신형이 훅! 하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악-!
뭐, 뭐야!
습격이다!
돌연 폐쇄된 원전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원전 내부로 숨어 들어간 스타툰이 닥치는 대로 플레이어들을 죽여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플레이어들은 그런 스타툰을 피해 원전 밖으로 도망 나왔지만….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퍼걱-!
대기하고 있던 제로의 핀포인트 저격에 의해 머리가 박살 나며 죽어버릴 뿐이었다.
원전 내부에서 스타툰에게 죽든, 원전 밖으로 도망 나와 제로에게 죽든.
선을 넘어버린 그들의 미래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한편,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죽어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폐쇄된 원전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플레이어들의 피와 죽음의 냄새에 반응해 허상괴와 몬스터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기괴하게 변형된 그들의 개입에, 폐쇄된 원전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리 사람들의 발길이 닫지 않는 장소라 한들, 경비는 존재한다.
특히나 원전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신선조 소속에 300레벨을 넘긴 플레이어였지만, 날뛰는 스타툰과 저격하는 제로.
그리고 뒤늦게 끼어든 변이된 허상괴와 몬스터들에 그들 또한 힘없이 죽어 나가기만 했다.
그러던 와중….
카가강-!
돌연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원전의 천장을 뚫고 스타툰이 튀어나왔다.
그런 스타툰의 전신에는 미약한 상처가 새겨져 있으며, 손에 쥐고 있는 두 자루의 단검에도 미약한 피가 묻어나왔다.
“무슨 일이냐?”
“은림에서 눈치 깐 거 같은데요?”
제로의 물음에 스타툰이 대답하며, 자신이 튀어나온 구멍을 가리켰다.
그 구멍을 통해 내려다본 원전 내부에는 전신이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괴인 한 명이, 흉흉한 붉은 안광을 토해내며 제로와 스타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잰 또 누구냐? 생긴 것만 봐선 쉐도우 친척 같은데.”
그림자 형태의 괴인.
그는 제로조차 난생처음 보는 플레이어였다.
미약하지만 스타툰의 몸에 상처를 입힐 정도라면 최소 700레벨에 근접했다는 것인데….
그때까지 정체를 숨기고 성장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어쩌면….
“은림의 비밀병기 같은 거 아닐까요?”
스타툰 또한 제로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제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스타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괴인의 강함은 확실히 거슬렸다.
거기에 원전으로 몰려든, 변이된 허상괴와 몬스터들 또한 간간히 제로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고.
나아가….
“지원도 왔나 보네.”
사방에서 폐쇄된 원전을 향해 달려오는 플레이어들의 기척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백을 넘어 천으로. 천을 넘어 만으로까지 늘어났다.
어쩌면 근처에 있는 신선조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이곳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일으키게 만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제로가 슬쩍 사방을 훑었다.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플레이어들 중, 조장급으로 보이는 플레이어가 3명. 부조장급으로 보이는 플레이어 또한 3명.
나머지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 또한 하나같이 350에 근접했다.
“어떻게 할래?”
“저놈은 제가 죽여도 될까요?”
같은 동류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스타툰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손님맞이 좀 하고 올 테니, 알아서 처리하고 있어.”
“예이.”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대답과 함께 움직였다.
그런 스타툰의 몸이 어둠에 물들며 무너지는 순간, 원전 내부에 있던 괴인 또한 그림자에 물들며 몸뚱어리가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카가강-!
카각!
카가가각!
원전 곳곳에서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로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스킬 발동, 외차원의 창고.
제로의 등 뒤로 공간이 쩍! 갈라지며, 깊은 심연을 품은 외차원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튀어나와.”
척! 척! 척!
창고를 바라보며 제로가 입을 열자, 심연 속에서 다수의 망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종류도 다양해 단순한 하급 망자인 스켈레톤과 좀비부터, 중급 망자인 구울. 상급 망자인 망자의 장군 등등.
창고에서 튀어나온 망자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물경 수십만에 달할 것이다.
언데드!
설마 제로?
벌써 여기를 찾아냈다고?
세이메이 님의 명령이다! 언데드를 쓸어버리고 제로를 죽여!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제로는 멍청하게 세이메이의 이름을 언급하는 플레이어들을 보고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를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죽여라.”
쿠르르-!
제로의 명령이 떨어지자, 외차원의 창고에서 튀어나온 망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만의 망자들이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은, 잿빛의 해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한편, 플레이어들 또한 망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각자 뽑아 쥔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창칼이 난무하며, 하늘에서는 마법과 화살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제로가 소환한 망자. 피와 죽음의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변이된 허상괴와 몬스터.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신선조의 플레이어들까지 포한된 삼파전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제로.”
망자와 괴물. 플레이어 간의 삼파전을 느긋이 구경하고 있던 제로의 곁으로 세 명의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각기 한 자루의 카타나가 들려 있고, 몸에는 사무라이 특유의 갑옷이 걸쳐져 있었다.
“조장들이냐?”
“죽인다.”
파밧-!
그들은 제로의 물음에 일언반구 없이 제로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카타나에는 마스터 레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찬란한 빛을 흩뿌렸다.
다만, 직업이 같은 사무라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공세는 제각각이었다.
한 명은 묵직한 걸음걸이와, 패도적인 강검을 통해 제로를 공격했다.
누구는 어쌔신과 같이 가벼운 발놀림으로 사방팔방 움직이며, 날카로운 검격을 통해 제로를 공격했다.
누구는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부드러운 움직임을 통해, 제로의 빈틈을 노리며 공격했다.
또한, 그들의 물 흐르듯 깔끔한 합격술은 상당히 뛰어나, 잘만 하면 700레벨의 플레이어마저 방심하는 순간, 목숨을 빼앗길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지랄을 한다.”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제로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죽음의 탁류가 덮치자, 세 명의 조장급 플레이어들이 큭! 하는 신음을 흘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