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내가 시간이 얼마 없으니 후딱후딱 끝내자.”
죽음으로 이루어진 제로의 오른팔이 일렁이는 순간, 불길함을 느낀 레비아탄이 다급히 움직였다.
레비아탄이 그 거체를 뒤로 물리는 순간, 레비아탄의 머리가 있던 장소에 죽음으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칼날이 훑고 지나갔다.
“감이 좋네?”
제로는 기습에 가까운 공격을 피해낸 레비아탄에 히죽, 기괴한 웃음을 내비쳤다.
그런 제로의 웃음에 레비아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놈! 네놈이 아무리 발악한다 한들, 심해에서 날 이길 수는 없다!”
콰아아-!
레비아탄이 버럭! 외치기 무섭게 제로를 중심으로 압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이 제로를 중심으로, 주변의 바닷물을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 거대한 압력은 제아무리 제로라 하더라도 쉽사리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리스크를 감당하기 전의 나라면 위험했겠어.”
콰가가가가-!
다시 한번 히죽 읏으며, 제로가 농밀한 죽음의 오른팔을 휘두르자.
점차 압축되어 점으로 변하던 바닷물이 터져 나갔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수백, 수천 톤이나 되는 바닷물이 밀려 나가 제로를 중심으로 잠시나마 자그마한 공간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레비아탄은 한 점으로 뭉쳐가는 바닷물을 힘으로 제로가 밀어내자 으득! 거칠게 이를 갈았다.
대적자가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이것은 단순히 ‘강하다, 아니다’의 논리가 아니었다.
제로의 강함은 무언가 그 결이 달랐다.
제로를 중심으로 압축되어 가는 바닷물은, 단순히 바닷물만 압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당연하게도 레비아탄의 힘이 뒤섞여 있었기에, 같은 군단장이라 하더라도 손쉽게 벗어날 순 없다.
허나 제로는 보란 듯이 압축되는 바닷물을 밀어냈으니, 레비아탄의 드높은 자존심에 상처가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노오오옴-!”
콰가가가-!
레비아탄이 노호성을 내지르기 무섭게 심해 깊숙한 곳의 바닷물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수천 톤의 바닷물이 압축되고, 압축되어 하나의 점이 되는 순간. 그것은 마치 탄환처럼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그 외에도 물의 사슬이 만들어져 제로의 육체를 휘감고 머리 위로는 물의 둔기가 떨어진다.
바닷물이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막대한 절삭력을 가지게 된 물의 칼날이 제로의 전신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허나….
“소용없어.”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제로를 중심으로 농밀한 죽음의 막이 펼쳐졌다.
그 막은 레비아탄이 조종하는, 바닷물로 이루어진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애초에 제로가 ‘평범한 생명’이었다면 이 외에도 다양한 공격을 가할 수 있다.
가령, 제로를 중심으로 자그마한 빈 공간을 만들어, 질식사를 시킬 수도. 혹은 코와 입에 강제로 바닷물을 밀어 넣어 익사를 시킬 수도 있었다.
허나 제로의 육체는 호흡이 필요하지 않은, 망자의 육체다.
그런 방식의 공격은 제로에게 아무런 데미지를 주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제로가 평범하게 호흡을 한다 해도, 그런 초월체를 그런 방식으로 죽일 수 있을리는 미지수였다.
한편, 제로는 다양한 공격을 감행하는 레비아탄에 히죽, 다시 한번 기묘한 웃음을 내비치며 한걸음 내디뎠다.
그 순간, 제로의 신형이 농밀한 죽음으로 무너져 내리며 사라졌다.
레비아탄이 갑작스레 눈앞에서 사라진 제로에 당황하며 주변을 훑어보고 있을 때….
“어딜 보냐?”
퍼억-!
“크아아아아악-!”
레비아탄의 복부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정권을 날렸다.
농밀한 죽음이 뭉쳐 쏘아진 일권이 적중하자, 레비아탄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스럽다는 듯 날뛰는 레비아탄의 복부가 자그맣게 움푹 들어가 있었다.
“노오옴…!”
콰가가강-!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
그런 생각을 품은 레비아탄이 복부에서 퍼져나가는 고통을 억지로 억누르며 거체를 움직였다.
다시 한번 레비아탄의 거대한 꼬리가 수백, 수천 톤의 바닷물을 휘감으며 제로를 향해 짓쳐들듯 휘둘러진 것이다.
제로를 향해 휘둘러진 레비아탄의 꼬리를 휘감은 바닷물은 단순히 뭉쳐있는 것이 아닌, 분자 단위로 진동하고 있었다.
그것에 얻어맞는다면, 그 무엇으로 방어하든 흔적도 없이 갈려 나갈 것이다.
하지만….
“약해. 고작 이 정도야?”
쩌엉-!
제로는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꼬리를 단순히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막아냈다.
그런 제로의 오른팔은 더욱 농밀한 죽음이 뭉쳐, 거인의 팔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하게 변해 있었으며. 제로는 그런 거대한 손으로 휘둘러진 레비아탄의 꼬리를 움켜쥐었다.
“어디 보자…, 이번엔 내가 공격할 차례지?”
히죽 웃으며 말하는 제로에,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 레비아탄이 몸을 빼냈다.
아니, 빼내려 했다.
허나 제로의 거대한 오른손의 거력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레비아탄이 몸을 빼내려 해도, 제로는 붙잡은 레비아탄의 꼬리를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조금 아플 꺼야.”
스킬 발동, 데스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래비아탄의 꼬리를 움켜쥔 제로의 오른손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태양과도 같은 열기를 동반한 그 폭발에, 레비아탄이 ‘크아아악!’ 하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한편, 폭발에 의해 제로의 오른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찰나의 시간에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애초에 제로의 오른손… 아니, 오른팔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개념으로 분류되는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언제 어느 때든 그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식으로 공격에도 이용할 수 있기에, 그것을 상대하는 적은 상당히 까다롭게 느끼게 된다.
힌편, 레비아탄은 태양과도 같은 열기와, 폭발에 의한 충격에 너덜너덜해진 꼬리를 말아 올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레비아탄의, 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이 서리기 시작했다.
“괴물 같은 놈…!”
“사돈 남 말하고 있네. 야, 인간들이 보기에는 너도 충분히 괴물이야.”
“말장난하자는 것이냐!”
콰가가가-!
비꼬듯 말하는 제로에 레비아탄이 분노에 찬 노성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레비아탄의 거체 주위로 수백 톤의 물방울이 뭉치며, 수백 개의 탄환이 만들어졌다.
“죽어라!”
레비아탄이 제로를 노려보며 외치자, 주변을 배회하듯 떠다니던 수백 개의 탄환이 일제히 쏟아졌다.
그에….
스킬 발동, 데스 불릿.
쾅! 쾅! 쾅! 쾅!
재로 또한 죽음으로 이루어진 탄환을 토해내며 레비아탄의 물의 탄환에 응수했다.
한 발, 한 발.
죽음과 물로 이루어진 탄환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거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아직! 멀었다!”
콰가가가가-!
물의 탄환은 단순한 눈속임.
애초에 레비아탄 또한 이 정도 공격에 제로를 죽일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레비아탄이 다시 한번 힘을 사용하자, 이번에는 제로를 중심으로 주변의 바닷물이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바닷물은 곧 거대한 폭풍으로 승화했다.
회전하는 물방울들은 모든 것을 잘라버리는 날카로운 칼날이며.
그 중심부의 압력은 드래곤의 뼈조차 으스러트려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물론….
“이딴 어린애 장난 같은 공격은 또 뭐야?”
푸확-!
제로가 짐승의 그것과 같이 변한 오른손을 휘두르자, 제로를 중심으로 날뛰던 폭풍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레비아탄의 두 눈동자가 찌푸려졌다.
“날 죽이고 싶으면 진심으로 공격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어.”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3분.
허나 제로에게선 여유가 흘러넘쳤다.
3분이면 충분하다.
아니, 저 덩치만 큰 뱀 새끼를 죽이는 것에는 3분이란 시간도 필요 없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제로가 한 발씩 내디디며 움직이자, 레비아탄이 움찔! 몸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스윽.
푸부북-!
“크아아아악!”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수백 개의 칼날이 레비아탄의 거체에 꽂혔다.
하나, 하나가 농밀한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칼날 수백 개가 일제히 꽂히자, 레비아탄이 비명을 내질렀다.
특히나 꽂힌 칼날을 이루는 죽음이 점차 퍼져나가며 레비아탄의 생명을 갉아먹자, 칼날이 꽂힌 장소를 시작으로 주변의 육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크으으…, 놈! 죽여 버리겠…!”
“넌 그놈의 ‘죽여버리겠다!’라는 말밖에 못 하는 거냐?”
촤악-!
레비아탄이 노호성읕 터트리는 순간, 그 뒤에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심해를 헤치며 휘둘러진 오른손에, 레비아탄의 거체에 짐승이 할퀸 것만 같은 다섯 줄기의 상흔이 새겨졌다.
“크아아아악-!”
등에 새겨진 상처에 레비아탄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거체가 주변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날뛰자 심해의 밑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양 진동하고, 갈라졌으며.
그 위로는 다시 한번 거대한 해일이 생겨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좀 가만히 있어라.”
미친 듯이 날뛰는 레비아탄에 제로가 또한번 손가락을 까딱이자, 발 밑에서 죽음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튀어나와 레비아탄의 거체를 구속했다.
본래 같았으면 충분히 죽음의 사슬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레비아탄이었으나, 육체를 잠식해 가는 죽음. 그리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끔찍한 고통에 레비아탄은 죽음의 사슬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제로는 그런 레비아탄의 눈앞으로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전에는 참 개고생을 해가며 겨우 죽였는데 말이야. 확실히 내가 강해지긴 했다? 그치?”
“크르르….”
이제는 언어마저 잊어버린 것일까.
레비아탄은 친한 척하며 말을 하는 제로를 노려보며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그래그래, 금방 죽여줄게.”
제로는 더 이상 날뛸 힘도 없어 보이는 레비아탄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그 앞으로 농밀한 죽음이 뭉치기 시작했다.
“너도 마지막 일격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막대한 죽음이 뭉쳐 만들어진 자그마한 구체.
그것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제로가 말하자, 레비아탄 또한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그런 레비아탄의 벌려진 입으로 다시 바닷물이 뭉쳐 들며 그 속에 레비아탄이 마지막으로 쥐어 짜낸 힘이 깃들었다.
“브레스라. 확실히 마지막 일격으로는 적절하지.”
이제 남은 1분.
제로의 말대로 이번 공방이 각자의 마지막 일격이 될 것이다.
“그럼 이만 끝내자.”
스윽.
제로가 자그마한 죽음의 구체를 툭 건드리자, 그것이 느릿한 움직임으로 레비아탄을 향해 나아갔다.
그에 레비아탄 또한 망설임 없이 최후의 힘을 쥐어 짜내 만들어 낸 브레스를 제로를 향해 쏘아냈다.
그 거대한 두 힘이 충돌하는 순간….
심해의 밑바닥에는 때아닌 침묵이 감돌았다.
* * *
“괜찮으십니까, 형님?”
제로의 등장에, 바닷물을 흠뻑 뒤집어쓴 스타툰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스타툰의 걱정에 제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용케 배가 무사하네?”
“필사적으로 지켰으니까요.”
제로의 말에 스타툰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비록 배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 것이 스타툰만은 아니었지만, 가장 고생한 것은 당연 스타툰이었다.
제로는 고생한 스타툰에 피식피식 웃었다.
“고생 많았다. 그럼 이제 움직이자.”
그렇게 말하며 제로는 플라잉 마법을 통해 날아오르며 일본을 향해 움직였다.
비록 배는 무사하나, 수백 마리의 허상괴의 갑작스런 습격.
그리고 바다 밑바닥에서 일어난, 무엇인지 모를 강력한 두 존재의 전투에 배 위의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 뒤였다.
그렇게…, 스타툰은 제로의 그림자 속에 녹아들고.
제로는 플라잉 마법을 통해 일본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