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대적자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
“알고 있다.”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깊은 심해.
그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수의 군단장 레비아탄은 동료의 연락에 입을 열었다.
아니, 어쩌면 동료라는 단어는 그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군단장급 이상의 허상괴들은 서로 협력하고 있지만, 동료라는 단어의 끈끈한 유대감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 모두가 다른 허상괴들을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공적을 쌓아, 왕의 눈에 띄어 대장군으로 승격하기 위한 경쟁자.
한편, 그런 레비아탄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연락을 취한 군단장의 목소리가 다소 딱딱하게 굳어졌다.
-조심해라. 대적자의 강함은….
“놈의 강함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헌데 뭔가 한가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레비아탄. 대해의 지배자 레비아탄이다. 제아무리 대적자가 강하다 한들, 내 홈그라운드인 바다에서 날 이길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함.
그것이 깃들어 있는 레비아탄의 목소리에 군단장이 침묵했다.
그 무거운 침묵이 어느 정도 이어졌을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연락을 취한 군단장이었다.
-실언을 했군.
“알았으면 꺼져라. 놈은 내가 확실히 죽여버리지.”
그리고 자신은 대적자를 죽인 공로를 인정받아 왕에게 은총을 하사받고, 대장군이 된다.
레비아탄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형님, 괜찮을까요?”
“뭐가.”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항해선.
그것의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만끽하고 있던 제로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스타툰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자칫 잘못하면 십강 간의 전쟁이 발발할지도 몰라요.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게요? 일이 이상하게 꼬이면 일본과 한국. 양 국가의 전쟁으로 일이 커질 수도 있…!”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움직이는 거잖아.”
스타툰의 말을 끊으며 제로가 입을 열었다.
제로 또한 스타툰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정말로 신선조가 타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초월이라는 이름의 약을 팔고 있다면, 그 배후는 당연 은림이다.
그리고 그런 은림은 일본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국의 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다른 십강들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성 또한 대한민국의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지 않은가.
즉, 만약 신성이 직접 움직여 신선조에 압박을 가한다면, 은림이 반응할 것이며.
그렇게 신성과 은림이 맞붙으면 나아가 한국과 일본. 양 국가의 신경전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그러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제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렇듯 제로가 직접 일본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아…. 뭐, 형님도 생각이 있곘죠. 그나저나….”
한숨을 토해낸 스타툰이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는 슬쩍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는 배의 갑판을 훑어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이 이런데도 잘도 해외여행 같은 것을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네요.”
제로와 스타툰이 타고 있는 배는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배 위에는 둘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비율은 8:2로. 일반인이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해외여행을 위해 배에 올라탄 관광객들이었다.
허상괴가 처음 나타났을 땐, 항공편들이 모조리 마비되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고 플레이어 협회 등이 설립되며 변화가 일어났다.
아직까지는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지만, 플레이어들의 호위를 받아 배를 통한 이동까진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나 몬스터의 등장이 호재가 되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는 십강 중 하나인 강철 길드를 선두로, 수백 종의 제작계 직업군이 모여 만들어진 길드들이 협력해 몬스터의 시체를 이용해 개조를 거쳤다.
그로 인해 지금의 배는 하급 이하의 허상괴들의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매우 튼튼해졌으며, 그러한 배에는 플레이어들이 탑승해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렇게 상황이 변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배를 이용한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주변국들밖에 가지 못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면 좀 더 멀리 있는 나라에도 여행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뭐, 제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니…!”
콰가강-!
뭐라 말하던 스타툰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날아온 물대포가 배의 옆면을 후려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허상괴다! 허상괴가 나타났다!
갑작스런 기습에 배에 올라타 있던 관광객들이 패닉에 빠졌다.
이곳은 바다 한복판으로, 도망칠 장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여기서 배가 가라앉게 된다면, 자신들은 모조리 물고기 밥. 아니, 바다에 서식하는 허상괴와 몬스터들의 밥이 될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동요하며 패닉을 일으키자, 그들의 호위를 맡은 길드 수라의 길드 마스터, 수라참마도가 버럭 외쳤다.
“모두 침착히 각자의 객실로 돌아가십시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타고 있는 배는 건축건축 길드에서 제작한 것으로 상당히 튼튼합니다! 또한 저희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걸고 여러분들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침착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배의 갑판 이곳저곳을 누비며 외치던 수라참마도는 곧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쥐었다.
길드 수라의 마스터, 수라참마도.
그는 마스터 레벨을 넘긴 플레이어로, 로열 나이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전신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방패와, 그런 방패와 맞먹는 크기의 대검을 다루는 수라참마도의 방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마스터 레벨을 넘겼기에 사용 가능한 ‘오러 블레이드’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자랑해, 중급 이하의 허상괴라면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물론 수라참마도 외에도, 수라 길드의 정예 플레이어 30명이 이 배에 탑승해 있다.
기습을 가한 허상괴들의 등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라 길드는 자신들이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자만했다.
적어도…, 모습을 드러낸 허상괴들의 숫자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뱃머리에 올라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수라참마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허상괴들의 숫자는 1~20마리가 아니었다.
못해도 백 마리. 아니,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는 그 숫자와 느껴지는 기척으로는 적어도 500마리 이상의 허상괴가 배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배가 바다를 가로지르며 항해를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숫자의 허상괴가 습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명백한 이상 사태였다.
한편, 수백 마리의 허상괴들이 광견병에 걸린 개새끼마냥 배를 향해 돌진해오는 모습에, 스타툰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 형님하고 저 때문인 거 같죠?”
“그런 거 같다.”
스타툰의 말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제로의 공허한 눈구멍에 자리 잡은 사신의 흉안이 데굴데굴 구르며 바다 밑을 훑어봤는데, 그런 사신의 흉안에는….
‘군단장인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똬리를 튼 군단장급 허상괴, 수의 군단장 레비아탄이 포착되었다.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바다 밑바닥에 자리 잡은 레비아탄 또한, 그런 제로의 시선을 눈치챘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음에 가까운 무언가를 내비쳤다.
“어디 한번 막아 보거라. 어리석은 대적자여.”
레비아탄이 입을 쩍! 벌리자, 그것에서 기묘한 파장이 퍼져나갔다.
그 파장을 느낀 허상괴들은 더욱 미친 듯이 날뛰며 배를 향해 돌진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수라참마도가 결여한 표정을 지으며, 거대한 방패와 대검을 들어 올렸다.
“모두 준비! 목숨을 걸어서라도 배를! 시민들을 지키는 거다!”
우오-!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바다를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허상괴를 막아내는 것은 더없이 힘든 미션이다.
특히나 그런 허상괴들의 숫자가 수백을 상회한다면, 수라 길드의 길드원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수라 길드는 투지를 꺾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시민들을 지켜 내겠다는 의지를 다잡고 있었다.
“형님, 우리도 나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스타툰이 두 자루의 단검을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현재 제로와 스타툰은 투명화 마법을 통해 몸을 감추고 있었다.
배에 탑승한 수라 길드의 플레이들 전원이 300레벨을 넘겼기에, 환영 마법을 꿰뚫어 볼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툰이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자세를 잡을 때 제로가 입을 열었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
끄덕.
제로의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자, 스타툰이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그런 스타툰의 몸뚱어리가 검게 물들며 무너져내리는 순간….
키에에에엑-!
배를 향해 돌진해오던 허상괴 한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절명했다.
그런 허상괴의 시채 뒤로 스타툰이 모습을 드러내며 양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단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라참마도와 수라 길드의 길드원들은 갑작스런 스타툰의 등장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 플레이어는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도대체 정체가 누구이길래 저토록 강한 것일까?
허나 지금은 그러한 의문을 해소할 시간이 없었다.
스타툰이 날뛰기 시작하자 허상괴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지만, 제아무리 스타툰이라 하더라도 모든 허상괴를 감당할 순 없었다.
그렇게 스타툰이 놓쳐버린 허상괴들이 배에 근접하자….
“우선은 허상괴들부터 처리한다! 모두 움직여!”
수라참마도가 배에서 뛰어내리며 버럭 외쳤다.
그런 수라참마도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자, 튀어나온 오러 블레이드가 허상괴를 덮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나름 쓸만하네.”
여전히 투명화 마법을 유지하며 수라 길드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이 배는 저들에게 맡겨도 될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제로는 망설임 없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다만, 만에 하나라는 상황을 가정해 배에 망자들을 숨겨두는 조치를 잊지는 않았다.
그렇게 바다에 빠진 제로의 몸뚱어리가 깊이. 깊이 가라앉으며 심해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튀어나와.”
거대한 심해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입을 여는 제로.
그런 제로의 말에 순간 심해를 가득 메운 바닷물이 일렁이더니,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전설. 혹은 신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말의 뱀’이라 불리는 요르문간드를 연상시켰다.
“오랜만이다? 수의 군단장 레비아탄.”
거대한 바다뱀의 형태를 하고 있는 수의 군단장, 레비아탄.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듯이 말하는 대적자, 제로에 의아한 시선을 내던졌다.
“네놈, 날 알고 있는 것이냐?”
“물론. ‘지금’은 처음 보는 거지만, 너와는 다소 악연이 있거든.”
제로의 대답에 레비아탄의 표정이 더욱 묘하게 변했다.
분명 자신은 대적자와 만난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그런데 대적자는 자신을 잘 알고 있듯이, 자신을 한번 만났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레비아탄이 묘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제로가 네크로노미콘을 들며 입을 열었다.
“뭐,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만났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서로 죽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제로의 의도가 전해진 것일까.
오묘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레비아탄의 거체가 꿈틀거렸다.
“대적자여. 네놈은 강하다. 허나 자진해서 심해에 들어올 줄이야. 그 오만함이 네놈의 목줄을 움켜쥘 것이다.”
“과연 어떨까?”
쿠구구-!
폭발하듯 뿜어지는 둘의 존재감이 충돌하며, 심해의 밑바닥이 거칠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