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제로가 도착한 스테이지는 한 폭의 지옥도를 연상시켰다.
사방에 죽어버린 인간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으며, 그 시체를 허상괴들이 씹어먹고 있었다.
더 원은 그 명성에 수많은 플레이어들 또한 다니는 클럽이다.
더 원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런 허상괴의 습격에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그 숫자에 밀려 죽음을 맞이했다.
죽어버린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브로커를 뒤쫓던 신성의 길드원들 또한 존재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허상괴에 먹히고 있을 때….
콰가강-!
어디선가 터져 나온 죽음의 탁류가 허상괴들을 덮쳤다.
죽음의 탁류에 휩쓸린 허상괴들은 저항다운 저항 한번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단 한 마리.
전신이 강철 특유의 광택으로 번들거리는 허상괴만이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스테이지 중심에 서 있었다.
그 허상괴를 본 순간, 제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철의 군단장, 가디안.”
철의 군단장 가디안.
그것의 공격력은 다른 허상괴들에 비교하면 약하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급인 군단장급과의 비교. 제아무리 약한 공격이라 한들, 가디안의 공격은 어지간한 최상급 허상괴를 뛰어넘는다.
허나 가디안의 진면목은 방어에 있었다.
그것의 방어력은 그 어떤 허상괴보다 뛰어나다.
군단장급의 허상괴들 중, 가장 드높은 방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회귀 전에도 철의 군단장 가디안이 지닌 극강의 방어를 뚫고 상처를 입힌 플레이어는 몇 없을 정도였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신성 길드원들 또한, 철의 군단장 가디안이 죽인 것이리라.
그런 철의 군단장 가디안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병사들을 단숨에 쓸어버린 제로에 씨익 웃어 보였다.
“네놈들이 ‘약’을 만든 거였냐?”
“글쎄. 과연 어떨까?”
제로의 물음에 가디안이 비릿한 미소를 내비치며 말했다.
가디안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단순히 실험체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자신들과 협력하고 있는 ‘그들’의 요구에 의해서였다.
약에 의해 괴물이 되어버린 플레이어들을 해부해, 더욱 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한편 제로는 가디안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뭐, 상관 없지. 허상괴는 모조리 죽인다.”
그렇게 말하는 제로의 사신의 흉안이 데굴데굴 굴렀다.
가디안은 그런 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네놈. 정말 왕의 대적자가 맞냐?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글쎄, 그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자신이 했던 말을 인용하며 말하는 제로에, 가디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찮은 약소 차원의 존재가….”
콰드득-!
분노한 가디안이 꽉! 주먹을 움켜쥐자, 주변의 강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비틀리고 뒤틀리던 그것들의 끝이 점차 뾰족해지더니….
“죽어.”
가디안이 다시 한번 주먹을 움켜쥐자, 끝이 뾰족하게 변한 강철들이 일제히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철의 군단장 가디안. 그는 단순히 극강의 방어력을 지닌 것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강철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었다.
현대 사회에서 강철은 어디를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어찌 보면 철의 군단장 가디안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뭐하냐?”
스킬 발동, 퍼펙트 데스 실드.
꽈가강-!
제로를 중심으로 반투명한 막이 생기며, 철의 군단장 가디안의 공격을 막아냈다.
단순히 강철을 뾰족하게 만드는 것 정도로는 제로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례지?”
그렇게 말한 제로가 손을 내리그으며 또 다른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발동, 데스 본 스피어.
후웅-!
콰직-!
제로의 등 뒤로 생겨난 거대한 흑골의 창이 가디안을 향해 쏘아졌다.
가디안은 자신의 가슴을 향해 쏘아진, 거대한 흑골의 창에도 이렇다 할 방어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을 꿰뚫었던 제로의 데스 본 스피어가 가디안의 가슴에 틀어박혔으나, 그 단단한 몸뚱이를 뚫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데스 본 스피어가 직격한 가디안의 가슴에는 이렇다 할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확실히 까다로운 방어력이야. 하지만….”
철의 군단장 가디안.
그의 방어는 ‘물리적인 공격’에 절대적이나 마법 같은 ‘이능의 힘’에는 다소 약한 면모를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마스터 레벨의 플레이어의 공격조차 우습게 막아내는 방어력을 선보이지만, 제로의 강함은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나 제로가 다루는 힘은 죽음.
모든 것에 평등한 안식을 안겨주는 그 힘은 평범한 마나를 이용한 스킬 따위와는 그 본질부터가 달랐다.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봐.”
스킬 발동, 데스 이레이저.
흑골의 손가락이 가디안을 가리키는 순간, 그 끝에서 한줄기 잿빛의 광선이 쏘아졌다.
가디안은 처음 제로의 손가락 끝에서 광선이 뿜어질 때, 비릿한 웃음을 내비쳤다.
허나 광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가디안은 무언가를 깨달으며,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날렸다.
그렇게 제로의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온 잿빛의 광선. 데스 이레이저가 가디안이 서 있던 자리에 닿는 순간….
파사삭-!
광선에 닿은 자리가 부식되며 무너져 내리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이것이…, 다른 군단장들이 네놈을 조심하라 했던 이유였나. 확실히 까다로운 힘이군.”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보이는 무저갱에 가디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죽음.
상당히 까다로운 힘이었다.
모든 것에 평등한 안식을 안겨주는 그 힘은, 제아무리 자신이 군단장급의 존재라 하더라도 쉽게 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력한 힘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만.”
쾅-!
그러한 말을 내뱉은 가디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대지가 쾅! 쾅! 하며 터져나갔다.
“죽어라.”
순식간에 제로의 앞에 나타난 가디안이 내뻗은 묵직한 일권이 후웅! 하는 묵직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제로의 척추를 노렸다.
아무리 가디안의 공격력이 다른 군단장급 허상괴에 비해 떨어진다 한들, 군단장은 군단장.
가디안의 공격이 적중한다면, 제아무리 제로라 한들 상당한 데미지를 받게 된다.
그에 제로는 뒤로 몸을 빼내며 퍼펙트 데스 실드를 둘렀다.
가디안이 내뻗은 일권이 실드와 충돌하며, 콰앙! 하는 폭음을 만들어 냈다.
한편, 방어를 했음에도 전부 흘리지 못한 충격에 제로의 몸뚱이가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아직 멀었다.”
쾅! 쾅! 쾅!
상대는 왕의 대적자.
고작 이 정도 공격에 죽을 일은 없다.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는 가디안은 벽에 처박힌 제로를 향해 몸을 날리며 주먹을 내뻗었다.
가디안의 주먹이 내리꽂힐 때마다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으며, 벽이 무너지려는 마냥 우르르 떨렸다.
한편, 폭풍과도 같은 가디안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던 제로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대로 있으면 주변으로 피해가 확장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대를 옮겨볼까?”
딱-!
가디안의 공격이 이어지는 와중, 제로가 손가락을 튕기자 발밑의 공간이 쩍! 하고 갈라지며 거대한 입이 튀어나왔다.
그 입은 제로와 가디안을 집어삼키며 사라졌는데, 그렇게 거대한 입에 집어 삼켜진 둘이 다시 나타난 장소는….
“이곳은?”
한 줌의 생명도 찾아볼 수 없는.
존재하는 것이라곤 오롯이 싸늘한 죽음뿐인 부유성에 그 둘이 내던져졌다.
“여기라면 나도 안심하고 널 죽일 수 있거든.”
부유섬을 가득 메운 죽음을 음미하며 제로가 입을 열었다.
그에 이번엔 가디안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부유섬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이 점차 가딘안을 침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있으면 가디안은 이렇다 할 저항 한번 못하고 소멸하게 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제로를 죽이고 부유섬을 빠져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짜증 나는군.”
쾅-!
쯧! 혀를 차며 말한 가디안이 바닥을 박차며 제로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이곳에 온 순간, 네놈은 패배한 거나 다름없어.”
스킬 발동, 데스 웨이브.
콰가강-!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가디안을 향해 제로가 손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죽음의 탁류가 가디안을 덮쳤다.
가디안은 해일과도 같은 죽음의 탁류가 전신을 두드리자, 큭! 하면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주변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이 제로의 힘을 더욱 증폭시킨 것이다.
그 증거로,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가디안의 전신에 미세한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이대로 계속해서 죽음의 탁류 속에 있으면, 전신이 산산조각 나 소멸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합-!”
생각을 정리한 가디안이 기합성을 토해내자, 사방으로 강렬한 기파가 퍼져나가며 죽음의 탁류 속에 자그마한 틈을 만들어냈다.
가디안은 그렇게 만들어진 틈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닥을 박차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죽여주마.”
우우우웅-!
강하게 움켜쥔 주먹에 막대한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주먹을 중심으로 공간마저 일그러졌다.
‘스로우의 파괴의 일격…, 아니. 그 이상인가.’
철의 군단장 가디안의 주먹에 깃들어 있는 힘의 위력은, 제로가 지금까지 만나온 플레이어 공격 중, 가장 강력했던 스로우의 파괴의 일격 그 이상이었다.
저것에 제대로 얻어맞는다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육체는 그대로 박살 나버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난 외차원으로 강제로 이송되겠지.’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로는 자신이 지구에 소속된 존재가 아닌 외차원에 소속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차원의 균형을 생각하면 외차원으로 넘어가야 했으나, 제로는 육체를 만들고. 자신의 강함을 제약하는 형식으로 지구에 남았다.
그 모든 것은 오롯이 지구를. 그리고 회귀 전 이룩하지 못했던 인류의 구원과 평화라는 목적을 위해서다.
그렇기에….
“미안하지만 난 아직 죽을 생각이 없어.”
스킬 발동, 퍼펙트 데스 실드.
스킬 발동, 인챈트-아이언.
스킬 발동, 인챈트-다크니스.
제로의 앞으로 반투명한 배리어가 나타나고, 그것에 강철의 속성과 어둠의 속성이 깃들었다.
그렇게 제로가 방어할 준비를 끝마치기 무섭게….
“죽어라-!”
순식간에 다가온 가디안이 주먹을 내뻗었다.
가디안의 주먹과 제로의 방패.
그 둘이 충돌하는 순간….
쩌어엉-!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이 퍼져나갔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대했는지 부유섬 자체가 뒤흔들렸으며, 주변의 구름들이 충격파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한편, 강력한 일격을 선보인 가디안은 다소 지친 기색으로 거친 숨을 휘몰아쳤다.
최대한 빨리 제로를 죽여야 한다.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힘을 소진한 이 상태로 부유섬에 5분. 아니, 3분 정도만 있다면 침식한 죽음에 휘말려 소멸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여기를 빠져나가야…!”
퍼억-!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가디안이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성인 주먹만 한 구멍이 만들어져 있었다.
“살아… 남았다는 거냐….”
가디안은 자신의 가슴팍에 구멍을 낸 원흉, 제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비록 제로 또한 성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만나왔던 그 어떤 허상괴보다 강력했던 일격을 막아낸 것 치고는 다소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제 그만 하자.”
제로는 구멍이 뚫린 상태로, 자신을 향해 비적비적 걸음을 옮기는 가디안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에….
퍼버버벅-!
사방에서 흑골의 창. 흑골의 화살. 흑골의 검 따위가 만들어지며, 철의 군단장 가디안의 몸뚱이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