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신… 성 님과 제로 님….”
데릭은 갑작스레 등장한 제로와 신성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당황한 것은 비단 데릭뿐만이 아니었다.
데릭의 뒤에서 협회의 입구를 막아서고 있던 피닉스 길드의 길드원들.
그리고 그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던 만 명이 넘어가는 플레이어들까지.
그들 모두가 갑작스레 등장한 제로와 신성을 향해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뭐 하자는 짓이죠?”
신성은 싸늘한 눈초리로 주변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신성은 레벨이 높든, 낮든. 상대가 플레이어든, 그렇지 않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부드럽고 상냥히 대했다.
그렇기에 이토록 분노하는 신성의 모습을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그것이….”
데릭이 뭐라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으나, 자신을 향하는 신성의 싸늘한 눈초리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 어떤 말을 내뱉는다 한들, 신성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신성은 그런 데릭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이번에는 시위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데릭이 여러분들을 죽일 수 있는 위력의 공격을 감행한 것은 맛지만, 그것 또한 여러분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무언가 불만이 있다면 말로 풀어가야지, 어째서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십니까? 그것도….”
신성이 뒷말을 흐렸다.
허나 이곳에 있는 모두는 그 뒷말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신성이 흐린 뒷말은 ‘어째서 데릭의 화를 돋워,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인가?’일 것이다.
한편 신성의 말에 주변은 순식간에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데릭을 포함한 피닉스 길드의 길드원들. 그리고 시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 모두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웃기지 마!
-너도 똑같아!
-네가 뭐라고 우리들에게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냐!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되찾고 싶을 뿐이다!
무거운 침묵을 깨며 다시 한번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아까 전, 데릭에게 불평을 토해낼 때와 똑같았다.
아니, 그런 불평불만 가득한 목소리만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우웅-!
콰가강-!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기 무섭게 데릭에게 행해졌던 기습적인 공격이 이번엔 신성을 향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데릭에게 가해졌던 공격이 하급 마법인 아이스 애로우였다면.
신성에게 가해진 공격은 상급 흑마법 중 하나인 다크 익스플로전이었다.
발밑에서 폭발하는 다크 익스플로전이 신성을 집어삼키자,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시, 신성 님! 이 새끼들이 진짜! 어떤 새끼야!”
까아악-!
데릭이 또 한 번 활화산 같은 분노를 표출하며 버럭 외쳤다.
그런 데릭의 분노가 흘러 들어간 것인지, 피닉스 또한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내지르며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진짜 막 나가자 이거…!”
“그만.”
데릭이 이번에야말로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듯 피닉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다크 익스플로전의 폭발에 만들어진 흙먼지 속에서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흙먼지를 걷어내고, 그 속에서 순백의 배리어에 감싸여져 있는 신성과 제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로 님.”
“이미 찾았어.”
신성의 부름에 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내딛었다.
그에 제로의 신형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며 사라졌으며, 그와 동시에….
“이, 이거 놔!”
시위대의 한 가운데에서 모습을 드러낸 제로가 한 플레이어의 목을 움켜쥐며 들어 올렸다.
제로에 의해 목이 움켜쥐어진 플레이어는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상식을 초월한 제로의 악력은 한낮 플레이어 따위가. 그것도 마법사 계열의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가 벗어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범인입니까?”
“그래.”
신성의 질문에, 움켜쥔 플레이어를 끌고 나온 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로에게 붙잡힌 플레이어가 걸치고 있는 장비는 100레벨 초반대의 플레이어들이 사용할 법 한 하급품이다.
하지만 그것은 페인트에 불과했다.
붙잡힌 플레이어의 실질적인 레벨은 400 이상.
그렇기에 신성과 제로를 향해 다크 익스플로전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 이 새끼 얼굴 아는 사람 있어?”
우당탕-!
붙잡은 플레이어를 바닥에 내팽게치며, 제로가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질문에 데릭은 고개를 내저었으며, 시위에 참가한 플레이어들 또한 술렁였다.
이곳에 모여 있는, 만 명이 넘어가는 플레이어 중. 그 누구도 제로에게 붙잡힌 플레이어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넌 뭐냐?”
“크윽-!”
제로의 질문에 플레이어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폐공장에 없었던,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플레이어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폐공장에 있었던 플레이어의 숫자는 수백에 불과했지만, 실질적으로 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저레벨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가볍게 십만 단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얼굴은 본 적이 없어.’
죽어버린 하연의 영혼에서 뽑아낸 정보에는, 이런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이놈은 상급 흑마법 중 하나인 다크 익스플로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고레벨 흑마법사다.
특히나 같은 조직에 속해 있다면, 좋든 싫든 하연의 눈에 들어서야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은….
‘제3세력이 끼어든 것인가. 아니면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은 단순히 연막에 불과했던 것인가.’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도구로 사용된 것일까?
아니면 저레벨 플레이어 연합은 단순한 더미.
실질적으로는 혼란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어떤 세력의 수작질일 가능성이 높았다.
제로가 그러한 생각을 하며 흑마법사를 바라봤다.
흑마법사는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사신의 흉안에 으득! 거칠게 이를 갈았다.
그와 동시에….
와그작-!
흑마법사가 몇 번 입을 오물거린다 싶더니, 그의 입속에서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왔다.
그에 신성과 제로, 둘 모두가 의아한 눈으로 흑마법사를 바라보는 순간….
크으으-!
크아아아아아악!
돌연 흑마법사가 비명을 내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 흑마법사의 육체는 이리저리 비틀리고, 팽창되며 압축되고. 뼈가 뒤틀리며 부서졌다가 새로이 만들어지는 격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한 현상이 얼마간 지속되었을까.
고통에 사무친 비명과도 같은 괴성이 사그라들며, 흑마법사는 사라지고 한 마리 괴물만이 남아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로스트 월드에서 상급 몬스터중 하나였던 오우거와 닮았다.
다만 전신을 뒤덮은 가죽은 검게 물들어 있으며, 왼쪽 상반신은 새하얀 뼈로 이루어졌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장소에는 공허한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 속에는 푸른 귀화가 일렁였다.
번뜩이는 두 눈동자에 깃들어 있는 것은 흉성과 파괴 본능뿐. 이성이라곤 단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데릭이 괴로워하다 괴물로 변해버린 흑마법사에 당혹성을 터트렸다.
아니, 당황한 것은 비단 데릭뿐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플레이어들. 그리고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군인과 경찰들마저 괴물이 되어버린 흑마법사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신성.”
“알고 있습니다.”
제로의 말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시위대 쪽에 있던 플레이어 몇몇이 괴로워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렸다.
괴물이 되어버린 플레이어의 숫자는 정확히 100명.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처음 괴물이 된 플레이어처럼 ‘무언가를 깨 먹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시위에 참가했던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진영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 당황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몇몇 플레이어는 저도 모르게 무기를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했으나 무엇 하나 괴물의 질기고 튼튼한 피부를 뚫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데릭!”
“네, 네!”
제로가 당황하며 얼타고 있는 데릭을 향해 버럭 외쳤다.
“네 길드원들을 이끌고 저놈들을 처리해.”
제로가 가리킨 것은 시위대 한복판에서 날뛰고 있는 99마리의 괴물들이었다.
그들의 강함은 가장 먼저 탄생한 괴물에 비해 상당히 약했다.
레벨로 따지자면 흑마법사 괴물의 레벨이 700 정도.
나머지 괴물들의 레벨은 300에서 400 사이일 것이다.
그렇게 데릭이 제로의 명령에 따라 피닉스 길드원들을 이끌고 이동할 때였다.
“크아아아아-!”
오우거를 닮은 괴물이 괴성을 내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그것이 한 번씩 발을 구를 때마다 대지가 쩍적! 갈라졌으며.
휘두르는 주먹에 얻어맞은 협회의 건물이 쿠르르 떨렸다.
그나마 협회의 건물은 마법사들의 강화 마법에 의해 상당히 튼튼했기에 다행이지, 괴물의 주먹에 맞은 것이 협회 건물이 아니었다면 붕괴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위력이었다.
“신성, 생포해.”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제로는 이번에 신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 제로의 말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발동, 홀리 체인.
촤르륵-!
신성의 발밑에서 순백의 사슬이 튀어나와 날뛰는 괴물을 향해 쏘아졌다.
순백의 사슬, 홀리 체인.
그것은 중급 신성 마법 중 하나로 상대를 포박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중급 마법이지만 그것을 사용한 플레이어가 신성인 것을 감안하자면, 어지간한 괴물 혹은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홀리 체인의 구속에서 빠져나갈 순 없었다.
하지만 날뛰는 괴물은 그 ‘어지간한’ 이라는 카테고리에 통용되지 않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크아아아-!”
쩌어엉-!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순백의 사슬에 괴물이 괴성을 내질렀다.
괴물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는 괴성에는 대지를 헤집는 충격이 깃들어 있으며, 그러한 충격파는 신성이 발동한 홀리 체인을 튕겨냈다.
아니, 튕겨내는 것을 넘어 산산이 부숴버렸다.
“으음.”
자신의 홀리 체인이 튕겨 나가는 것도 모자라, 산산이 부서지자 신성이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 모습에 제로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팔다리가 모조리 잘려 나가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돼. 제대로 움직여.”
끄덕.
제로의 말에 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발동, 천상의 단두대.
후웅-!
스칵!
“크아아아아-!”
머리 위에서 거대한 칼날이 떨어지며 괴물의 뼈로 된 왼팔이 잘려 나갔다.
뼈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왼팔이 잘려 나간 괴물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허나 그것도 잠시.
괴물은 잘려나 간 왼팔을 재생하며, 아까보다 더욱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신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정도면 트롤도 한 수 접을만한 재생력이네. 역시 내가 움직여야겠어.”
제로가 귀찮다는 듯 중얼거리며 움직였다.
“어디 보자, 저 정도의 재생력이라면…. 이거다.”
스킬 발동, 명계의 칼날.
스킬 발동, 인챈트-헬 파이어.
제로를 중심으로 반투명한 네 개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칼날에는 지옥의 불꽃이 피어올랐으며….
“잘라버려.”
제로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하자, 지옥의 불꽃을 두른 명계의 칼날이 움직이며 순식간에 괴물의 양팔과 다리를 베어버렸다.
팔과 다리를 잃어버린 괴물은 바닥을 나뒹굴며 버둥거렸다.
허나 상처를 치유하려 해도, 상처 부위에 타오르고 있는 지옥의 불꽃에 재생은 불가능했다.
“깔끔하네.”
제로는 팔다리를 잃고 버둥거리는 괴물을 바라보며 다소 만족스런 웃음을 내비쳤다.